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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9

       어이가 없군. 노친네.

       

       나이를 먹었으면 몸을 사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늙어 빠져선 세월의 뒤안길로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는 인간이 무슨 극을 보겠다고 진기를 터트리려 하는 것인지.

       

       은인의 어깨를 뒤로 끌어당긴 나는 대지를 짓밟으며 권을 내질렀다.

       

       혈교주가 사용하는 수라쌍극패는 분명 무림의 절기 중 하나이다.

       

       양 극에 이른 양기와 한기를 자신의 손 안에서 융합한다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고서 자신의 이치를 만들어내는 일과 같으니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과 같다 해도 무방했다.

       

       허나 저 무공 또한 본인이 이전에 한 번 꺾어 본 것에 불과하니.

       

       상대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내가 장법을 받아치자 뒤로 밀려난 혈교주가 침음성을 냈다.

       

       “어찌 이리 빨리 오셨습니까.”

       

       나는 거기에 답해주지 않았다.

       

       혈교주가 혀를 나불거리는 것에 대답을 해줘봐야 내 머리만 아플 뿐이란 건 진즉부터 알고 있는 일이었으니.

       

       진각을 밟으며 품 안으로 달려들자 혈교주가 자신의 기운을 키웠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빨아먹었기에 그 짧은 기간에 자신의 그릇을 저만큼이나 거대하게 만든 것인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그릇에 내기라는 물이 끊임없이 생겨나니 저것은 바다라 이야기해도 무방했다.

       

       허나 단기간에 힘을 얻어서 그런 것일까.

       

       힘을 다루는 데에 서툴러 보이는 구나.

       

       네 놈이 지닌 그릇을 강시의 육신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수라쌍극패의 하얀 색과 천마신공의 검붉은 기운이 부딪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합이 이어질 때마다 점차 혈교주의 표정에 새겨진 여유가 줄어간다.

       

       “어찌.”

       

       왜 내가 밀려나지 않는 지가 궁금한 거겠지.

       

       지닌 내기의 양도.

       

       도달한 경지의 높이도.

       

       가진 육체도.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대치가 이어지는 지가 궁금할 것이야.

       

       냉정을 잃어버려 궤도를 뻔히 드러내는 장법을 피하고 혈교주의 몸에 권을 박아 넣었다.

       

       균열이 나기 시작한 몸에 거대한 충격을 박아 넣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그저 균열에 박차를 가할 수준의 힘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지금 이 몸으로도 얼마든 할 수 있지.

       

       콰앙!

       

       촌경을 박아 넣은 순간 혈교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리곤 척박한 산의 나무들을 부러트리며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서도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저 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강시의 끈질긴 생명력이 저 정도로 끝이 날 리가 있나.

       

       어디 깊은 곳에 매장을 하건, 아니면 사지를 베어 병신으로 만들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단 사실은 혈교주라 하여 다르지 않았다.

       

       “당신을 볼 때마다 너무도 신기하군요! 당신은 도대체 뭔가요?!”

       

       숲 너머에서 희열에 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방금 전에 너무 강하게 얻어맞은 나머지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더냐?

       

       대적할 수 없는 인간이 앞에 서 있는데 어찌 기뻐하는 것인지.

       

       아니군. 그건 기뻐할 일이 맞지.

       

       “인간이면서. 외부인이면서. 경지는 기껏해야 절정에 닿을락말락한 주제에! 어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겁니까?”

       

       나무의 그림자 아래에서 다시금 혈교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운을 견디지 못한 얼굴에 금이 가 있었다.

       

       찢어진 옷 아래에 드러난 몸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였으며.

       

       극한의 한기와 양기를 견뎌야 했던 팔은 괴사해 움직이는 것조차 기적처럼 보였다.

       

       저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오롯이 하나.

       

       강시이기 때문이겠지.

       

       “당신은 어디를 보고 있는 겁니까?!”

       “궁금하더냐?”

       “예. 무척이나!”

       “그럼 직접 알아내 보거라.”

       

       미안하지만 본인은 적에게 쉬이 답을 해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다.

       

       네 놈이 내 아래로 기어들어올 게 아니라면 내게서 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본인을 이겨야 할 것이다.

       

       재차 내기를 끌어올리자 혈교주가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혈교주의 손 안에서만 머무르던 두 기운이 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서 내린 결단이겠지만 혈교주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저 자에게 몸이라는 것은 그저 한 번 쓰고서 버릴 탄환이 불과하니까.

       

       예전에는 저 빌어먹을 자살 특공 때문에 짜증을 냈었는데 지금은 나도 똑같은 짓을 벌일 수가 있게 됐구나.

       

       혈도를 눌러 몸 안의 내기를 증폭시킨다.

       

       주변의 모든 걸 집어 삼키려는 포악한 신공의 내기를 잠시 풀어 주었다가 다시금 내 안에 집약시킨다.

       

       와라.

       

       네 놈의 바다가 너무도 넓어 하늘마저 집어삼킬 수 있음을 증명해 보아라.

       

       그렇지 못하다면 네 놈이 도달한 경지는 그저 나의 발아래에 머무를 뿐이니.

       

       발을 치켜들어 진각을 밟았다.

       

       *

       

       노인은 자신의 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몸의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싸움에 끼어들기에 그의 경지가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가로 막혔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자신이 끼어드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여인이 펼치는 무를 보고 있자면 노인은 자신이 하늘이라 생각했던 게 얼마나 낮은 것인지를 알 수밖에 없었다.

       

       여인은 놀라웠다.

       

       그녀가 지닌 경지는 절정조차 되지 못했다.

       

       그녀가 가진 신체는 여느 평범한 무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지닌 내기는 경지치고는 많은 편이었으나 그 뿐이었다.

       

       그러니 단순 조건만을 따져 보자면 여인은 노인이 관심을 줄 이유조차 없는 무인이여야 했다.

       

       허나 여인이 바라보는 경치는 달랐다.

       

       그녀는 너무도 높은 곳에 서 있어서 노인으로써는 그녀가 어디를 쳐다보는지를 추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녀는 왜 저렇게 발을 움직이는 것일까.

       

       그녀는 왜 저렇게 권을 내지르는 것일까.

       

       그녀는 왜 저렇게 천마신공을 펼치는 것일까.

       

       노인의 머릿속에 생겨나는 의문은 의아함이 아니라 깨달음을 바라는 어린양의 것이었으니.

       

       그는 배움을 찾아 여인이 움직이는 것을 살폈다.

       

       “당신. 급했던 건 알지만 그래도 말을 하고 던져줘야 할 거 아냐.”

       

       투덜대는 목소리에 고갤 돌린 노인은 용의 꼬리를 지닌 여성이 여우의 귀를 지닌 여자아이와 같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왜 다시 온 게냐.”

       “당신 시체가 있으면 묻어주려고.”

       “안 죽어서 아쉽겠구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치료 안 해줄 거에요!”

       “어이쿠야. 미안하구나.”

       

       투닥거리는 두 사람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방금 전까지 둘 중 하나가 죽을 것을 걱정하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혈교주를 몰아붙이는 여인이 너무도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저 자가 패배하려면 무림에 신화라 여겨졌던 이들이 와야겠구나.

       

       화령이가 오더라도 이길 수 있을까?

       

       …화령이?

       

       반쯤 억지로 자신의 제자 칭호를 가져간 아이의 이름을 떠올린 순간 노인은 기시감을 느꼈다.

       

       어찌하여 저 자에게서 파천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일까.

       

       하늘을 부수어 그 위에서 서고자 하는 오만이 보이는 것일까.

       

       왜?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여인이 자신의 혈도를 누르자 그녀의 몸 안에서 내기가 치솟아 올랐다.

       

       저것은 단순히 진기를 터트린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을 내버리고서 적을 죽이고자 하는 의지였다.

       

       왜 저런 수를 택하는가!

       

       저 정도 수준에 이른 이가! 머잖아 무림 최고의 자리에 오를 이가!

       

       어째서 저런 선택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그를 말리기 위해 노인이 일어나려던 순간 여우귀를 지닌 여자아이가 노인을 가로 막았다.

       

       “그럴 필요 없다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지금 저 자가.”

       “민가는 외부인이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돌아오지. 비슷한 짓거리를 몇 번이나 해왔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외부인이라고?

       

       그들 중에서도 저런 수준에 이른 이가 있단 말인가.

       

       노인이 그에 놀라던 순간이었다.

       

       여인이 지닌 천마신공의 내기가 주변의 모든 기운을 포악하게 집어 삼키다 여인의 몸 안으로 집약됐다.

       

       혈교주가 다루는 바다와도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기운이 한 점에 뭉친다.

       

       그를 보며 혈교주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심지로 삼은 혈교주는 자신의 안에 담긴 바다를 자신의 손바닥에 담아 쏘아낼 준비를 마쳤다.

       

       서로의 모든 걸 담은 일격이 준비된 순간에 먼저 움직인 것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발을 내딛는다. 발끝에 모인 내기가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다리를 타고 허리를 통하여 어깨를 타고는 주먹으로 향한다.

       

       각 길목을 지날 때마다 한 점에 모여들었던 기운이 증폭되지만 내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내기를 다루는 실력이 뛰어난 것인가.

       

       너무도 커져서 언제 터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저 기운을 어찌 완벽하게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있단 말이냐.

       

       그리고 나서 여인이 주먹을 휘두른 순간 여인의 주먹에 집약되었던 기운이 터지듯 쏘아졌다.

       

       노인은 보았다.

       

       여인의 권이 바다를 가르는 것을.

       

       숲을 갈라내는 것을.

       

       그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늘에 닿아 세상을 반으로 가르는 것을.

       

       노인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을 부수는 주먹.

       

       파천의 권이로구나.

       

       *

       

       육신이 날아가 머리만이 남은 혈교주에게로 다가가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무한한 목숨을 지닌 적이란 건 이렇게나 까다로운 존재였군요.”

       

       자신의 목숨을 내버릴 수 있는 수를 얼마든 택할 수 있는 적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이제야 깨달았느냐?

       

       지금이라도 네 놈에게 그를 알려줄 수 있다니 기쁘구나.

       

       “어찌하실 겁니까. 마무리를 지으실 겁니까?”

       

       나는 거기에 답하지 않았다.

       

       이 놈에게 물리적인 위협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은 지겹도록 경험을 해보았다.

       

       그렇기에 짜증나는 머리를 박살낸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럼 이 놈을 위협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느냐. 그렇진 않지.

       

       품 안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입에 문 나는 나의 살의를 내기에 담아 주변을 짓눌렀다.

       

       “기억하거라. 내가 그대의 적이라는 것을.”

       

       그리고는 혈교주의 머리를 발로 짓눌러 없애버린 후 다시금 은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노친네는 자신을 치유하던 이 산의 신령이 말리는 것을 무시하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내 앞에 서더니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무슨 감사입니까. 당신이 베푼 은혜가 돌아왔을 뿐인데.”

       

       내가 그리 말을 하자 노인이 눈을 끔뻑였다.

       

       허어. 나름대로 단서를 많이 보였다 생각하는데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인가.

       

       “당신이 구한 목숨 중에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자가 어디 한 둘입니까.”

       

       그래서 노골적인 단서를 주었더니 노친네가 당혹스러워하며 눈을 끔뻑였다.

       

       하하. 이건 좀 재미있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벨피아 측에 부탁드린 표지가 드디어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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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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