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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양 팔에는 판금 갑옷.

        양 다리에는 중갑.

        몸통에는 가죽 갑옷.

        그리고 투구는 아예 없다.

         

        상대가 자신보다 한참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에야, 저런 빌드를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소위 ‘고인물 룩’ 특유의 기괴함을 가진 외형을 보고, 자신과 시청자들, 그리고 도적마저 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도댓은 이를 악문 채 빠르게 달려들었고-

         

        단 15초 만에 그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딴 생각을 할 시간에 한 수라도 더 생각해보고, 전투 시뮬레이션을 한 번이라도 더 돌려보았어야 했다.

         

        아니,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결코 어설프게 달라붙어 공격을 하며 호흡을 낭비해서는 안 됐다.

         

        싸움이 시작한지 이제 겨우 15초.

         

        오른손의 단검을 순간적으로 역수로 고쳐 쥐고, 손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상대의 단검을 가까스로 막아내면서, 그는 직감했다.

         

        ‘반격할 수가 없어.’

         

        방어에 쓴 시간이 상대의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 시간보다 길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공격이 그러했다.

         

        처음에는 서로 번갈아가며 공격과 방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상대의 공격은, 어째서인지 방어하기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듯이,

         

        눈 앞의 도적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수씩 그의 흐름을 빼앗아갔다.

         

        하나의 공격을 방어하고 나면, 다음 공격을 방어하기에 필요한 시간이 아주 조금씩 늘어난다.

         

        부족한 시간을 억지로 당겨쓰는 움직임으로 방어에는 성공하고 있는 그의 체력은 가득 차 있었지만-

         

        대가가 없을 순 없었다.

         

        자세는 계속해서 흐트러져갔고, 신체 구조상 힘겨운 움직임을 강요당한 캐릭터의 스태미너는 깎여 나가고 있었다.

         

        전에 없이 집중하여 무아지경에 가까운 상태에서 도댓은 문득 어렸을 적 배드민턴을 치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떤 할아버지가 음료수 내기를 하자고 꼬신 탓에 시작했던 배드민턴 시합.

         

        하루 종일 날아오는 셔틀콕을 쫓아 강아지마냥 온 코트를 뛰어다니는 동안, 할아버지는 코트 한가운데에서 한 두 걸음이나 움직이며 도댓이 가까스로 넘긴 셔틀콕을 가볍게 다시 넘겼다.

         

        결국 다리가 풀려 바닥을 구르며 처참하게 패배하고 울음을 터트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음료수를 건넸던 그 할아버지.

         

        어째서인지 갑자기 떠오르는 그 기억을 애써 머리 저 편으로 치우며, 도댓은 본능의 영역에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좌상단 찌르기를 급히 피하느라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다시 우하단에서 좌상단으로 휘둘러지는 베기 공격이 들어왔다.

         

        몸을 크게 젖혀서 겨우 피해냈지만- 공격을 피했다는 만족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상대는 반격 따위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모든 공격을 연계기로 우겨 넣고 있었으니까.

         

       그런 상대의 눈에는 흐트러진 자세로 휘청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뼈저리게 체감됐다.

         

        ‘아마, 위에서-’

         

        예상했던 대로, 아직 상체만 뒤로 젖혀진 채 밸런스를 회복하지 못한 그를 노린 상대의 단검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듯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예상을 했음에도 쉬이 피하기 어려운 공격이다.

         

        넘어지다시피 몸을 던지며 급히 뒤로 스텝을 밟은 결과, 날카롭게 번뜩이는 칼날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그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자세가 반쯤 무너져버렸지만-

         

        그 순간에, 비로소 도댓의 눈은 눈 앞의 도적을 노려보며 전에 없이 번뜩이고 있었다.

         

        ‘찌르기. 찌르기다.’

         

        그 동안의 공격 패턴. 자신의 무너진 자세. 벌려진 거리.

         

        이 상황에서, 저 도적이라면.

         

        반드시 거리를 좁히며 들어오는 직선적인 공격으로 공격을 연계할 것이다.

         

        그 찰나에 주어질 단 한 번의 기회가 손 끝에 있었다.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타이밍에 맞춰 찌르기를 카운터치기 위해 오른손 엄지가 단검을 고쳐 잡기 시작하던 순간.

         

        눈 앞에 칼끝이 나타났다.

         

        VR로 나오나를 한 경험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리얼한 단검.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순간에 허리를 굽혀 가까스로 공격을 피하면서,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찌르기였다면 불가능했을 속도로 눈 앞에 단검이 나타났다는 것은,

         

        ‘찌른 게 아니고 던진-!’

         

        도적 대 도적에서, 쌍수의 이점을 포기해가면서까지 단검 하나를 던졌다는 것이다.

         

        도댓의 입장에서, 투척된 단검이 가지는 의미는 단 하나였다.

         

        ‘다음 한 수.’

         

        ‘많아도 세 수. 그 안에, 끝낼 자신이 있다고?’

         

        버티면 된다.

         

        조금 전, 예상치 못한 속도와 타이밍으로 투척된 단검을 피하느라 자세가 다시 꺾이고 스태미너가 뭉텅 깎여 나갔지만, 버티면 된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며 버티면, 무기 하나를 잃어버린 도적 따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조금만. 제발, 7초만-!’

         

        극한까지 집중한 도댓의 아래쪽 시야에서 다시 작은 반짝임이 보였다.

         

        아래에서 위로 베어져 올라오는 상대의 칼날.

         

        정확하게,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피하기 위해 이를 악물며 턱을 뒤로 젖혔으나-

         

        미처 다 피하지 못한 검이 턱 끝으로 파고들며 체력이 움푹 깎여 나갔다.

         

        스태미너 부족.

         

        그가 현실에서 입력하는 커맨드를 캐릭터가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단 한 호흡만 힘껏 들이쉴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렇게 온전해진 정신으로 캐릭터를 뒤로 물려, 자세를 바로잡을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렇다면, 다시 페이스를 가져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에게 스태미너를 회복할 시간은 단 1초도 주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처음 맞닥뜨린 순간부터 첫 유효타가 들어갈 때까지의 모든 움직임이 도댓의 스태미너를 노린 공격이었고-

         

        그 모든 빌드업의 피날레가 바로 조금 전 투척된 단검이었다.

         

        그리고, 도댓이 그 단검을 허리를 굽혀가며 피한 시점에 그의 숨통은 이미 끊긴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최후를 직감하면서도 승부의 끈을 놓지 못하고 매달리고 있던 그의 시야에, 자신의 목을 향해 크게 휘둘러지는 단검이 슬로우모션처럼 들어왔다.

         

        ‘패링! 패링을 해야-!’

         

        장비를 부숴트릴 기세로 주먹 쥔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으나,

         

        도적의 단검이 그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내는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물어져가는 게임 속 분신의 오른팔이 뒤늦게 움직이며 허탈하게 흩날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승부에 결착이 났다.

         

        .

        .

        .

        .

        .

        .

         

        [도댓(도적)님이 처치되었습니다!]

        [아따먹(도적) → 도댓(도적)]

         

        『???』

        『뭐야 이거』

        『아니』

        『???????』

        『선생님……?』

        『뭐야? 방금 렉 걸린 거 아님?』

        『ㅇㅇㅇㅇ오른팔로 분명히 막았는데 캐릭이 늦게 움직임』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뭐야 진짜』

        『망겜 진짜』

        『스태미나 고갈됐었자나 뭔소리여』

         

        당혹스러워하는 채팅들.

         

        심지어 방금의 교전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채팅이 한없이 흘러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쌤 1호 제자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선생님 여학생이라고 회초리 힘 빼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아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ㅋㅋ』

        『도쌤 언제 여자인 거 알아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따먹 여자야?』

        『ㅇㅇㅇㅇ여자라더라』

        『ㅇㅇㅇㅇㅇㅇㅇㅇ목소리 인증함』

        『역시 40대 체육교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도쌤 여자한테 약하구나』

        『우리 아따먹 눈나를 넘보지 마라 도댓』

         

        그딴 짓 한 적 없다고 할 힘도 없었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격하게 움직였던 탓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희귀하디 희귀한 여성유저를 이 악물고 죽여버리기 vs 놀아주다가 맛깔나게 죽어주기】

         

        『닥후』

        『ㄷㅎ』

        『ㄷㅎㄷㅎㄷㅎ』

        『도댓쌤 너무 마음 약해서 문제야』

        『닥후지 당연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윗도댓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스위이이잇 그 자체】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위이이잇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대하다 관대해』

        『역시 선생님이야…어떤 학생도 포기하지 않아…』

         

        -도생팬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땀 흐르는거봐 닦아주고 시퍼】

         

        『나가라』

        『ㄴㄱ』

        『넌 나가라』

        『근데 쌤 땀 흘리는 거 첨 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쌤 여자 앞이라 긴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내가 여자랑칼을 나누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순진 그 자체야 쌤』

        『허억허억 하면서 여제자 훈육…어?』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길게 호흡했다.

         

       “아. 하아……하.”

          

        『와웅』

        『다 조용히해』

         

        -도생팬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방금 그거 좀 ㅅㅔ쿠…ㅅㅅㅣ했다고 느끼면 중증이야?】

         

        『아 씨1발 진짜 요즘 채팅때메 못 보겠네』

        『ㄴㄴㄴㄴㄴㄴㄴ정상ㅇㅣㅁ』

        『정상 그 잡채』

        『씨12팔 진짜 도쌤 채팅 좀 어케 해봐요』

        『평소에 적당할 때 커트 잘 하면서 왜 이래』

        『???누가 뭐 선 넘었다는 거야?』

         

        그리고, 조금 전부터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생각을 그저 뱉어 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님?”

         

       “혹시, 도적. 제자, 받으시나요?”

         

        『????』

        『쌤?』

        『??????????』

        『제자???』

        『진심이에요?』

        『?????????????????????』

        『도댓쌤……???』

         

        혼란스러운 채팅창과,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도댓.

         

        침묵을 지키던 아따먹은, 10초가량 지난 후에야 채팅을 남겼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무죄인가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니시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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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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