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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

       

       달그락 달그락. 드넓은 식당에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은 아니었지만, 식사를 하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내 오른쪽 뒤에는 양혜인이 서 있고, 오늘 아침 요리를 한 요리사들이 조금 더 떨어진 곳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내가 뭔가 지시하면 바로 행동하겠지만, 내가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 저 사람들은 아마 한마디도 하지 않겠지.

       

       그러니까, 식당 안에 있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지만 사실상 혼밥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쪽 세계로 오고 나서 나의 최대 관심사는 혼밥탈출같은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혹은 이 예사라의 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최대한 나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정도였으니까.

       

       최근 두 달 사이에 나름대로 적응했다……고는 하는데, 사실 예사라의 생활에는 ‘적응’이랄 것이 없었다.

       

       이 저택 안에서 나에게 무언가 시킬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저택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만 지킨다면 이 저택 안을 어떻게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오래된 저택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 사용인들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

       

       그런 건 이 저택에서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택의 분위기가 무거우면 어떤가. 어차피 내 건데. 무거운 공기가 흐르면 뭐 어쩌라고? 그 사람들을 계속 쓸지 자를지를 내가 결정하는데.

       

       그러니까,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름대로 예사라가 해오던 그 적막한 생활에 쉽게 적응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혼자 먹는 것은 익숙하다. 이렇게 큰 저택에서 스스로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익숙해졌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이상하게 나는 어제 저녁 식사가 자꾸 떠올랐다.

       

       물론 어제 저녁 식사 중 우리는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다들 자신의 앞에 있는 스테이크에 열중하고 있어서 말을 걸었어도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겠지만.

       

       하지만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경직되고 불편한 식사 시간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그래.

       

       달그락 달그락. 내가 지금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면서 나는 이 소리가, 어제는 몇 번이나 겹쳐서 들렸다. 모두 같은 소리였던 것도 아니다. 내가 식기를 놀리는 소리와 유하늘, 이수아, 신소희가 식기를 움직이는 소리는 모두 달랐다.

       

       이수아는 규칙적이고 조용하게 움직였다. 포크와 나이프를 여러번 사용해봤는지, 솔직히 고작 두 달 정도 사용한 나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사용했다.

       

       유하늘은 이수아와 나의 움직임을 따라 하긴 했지만, 다소 급했다. 그래서 가끔 불규칙하게 접시에 나이프나 포크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했지만, 본인은 그보다는 스테이크에 집중하고 있어서 알아차리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신소희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어색하게 다른 아이들의 분위기를 따라 하다가, 결국 점점 고기를 크게 썰어서 입에 넣더니 나중에는 거의 스테이크만을 바라보며 식사했다. 당연히 포크와 나이프 소리도 제일 크게 들렸고.

       

       사실 고작 세 명이 식사하기에는 큰 식당이었지만, 적어도 나 혼자 식사를 하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꽉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내가 이렇게 사람과의 관계를 그리워하던 사람이던가?

       

       “…….”

       

       나는 남은 토스트 조각을 마저 입에 넣었다. 그리고 냅킨으로 입을 닦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혜인이 조용히 내 뒤에 따라붙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거의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데, 식사는 언제 하는 걸까. 뭘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양혜인을 흘끗 보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양혜인은 눈치 좋게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뇨, 별 이유는 없어요. 어서 학교 갈 준비나 하죠.”

       

       “알겠습니다.”

       

       그래, 뭐. 학교에서는 적막에 휩싸여서 식사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수아는 게임에서와는 다르게 의외로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유하늘은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적어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평범한 기분이 들겠네.

       

       양혜인의 손길을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나는 멍하니 그런 생각에 잠겼다.

       

       *

       

       유하늘은 자신이 학교에 꽤 일찍 나오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름대로 꼼꼼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 유하늘 자신도 스스로 준비성이 꽤 철저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화영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해보기도 했고, 덕분에 유하늘이 학교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등교하게 된 것도 있다.

       

       화영 고등학교는 돈 많은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다. 유하늘처럼 학비를 면제받아 등록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극히 일부의 학생을 제외하면, 이 학교의 등록금이 일반적인 서민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무리하면 절대 못 다닐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가족의 미래까지 모두 포기해가며 화영 고등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집안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준이 되는 집에서는 조금 멀더라도 이 학교에 자기 자녀를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사람이 몰리니, 당연히 화영 고등학교, 아니, 화영 학원 재단 휘하의 모든 학교의 입구는 아침만 되면 그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차로 붐비게 되는 것이다.

       

       학교가 학교이다 보니 입구에 차가 설 자리도 많았고, 나름대로 통제도 잘 되어 교통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화영 고등학교에 가면서 깨지게 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벌써 차들이 자주 보였다.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이 많았고, 교실에 들어가면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딱히 먼저 와서 공부하는 분위기는 없다. 저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분위기 자체는 따뜻하고 살가운 분위기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라서 누군가를 따돌릴 때 더 크게 느껴지긴 했지만.

       

       드륵.

       

       유하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순간 들리던 말소리가 멈추고 시선이 이쪽으로 몰린다. 이내 들어온 아이가 별 볼 일 없다고 판단한 아이들은 다시 서로에게 시선을 돌리고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 한 명.

       

       유하늘이 교실에 들어올 때, 시선을 돌리지 않는 한 명이 있었다.

       

       다소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 아이는, 유하늘을 발끝에서 위로 훑듯이 바라본다. 유하늘의 얼굴을 향해 그 시선이 올라올수록, 마치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양 붉은 눈동자를 가진 눈매는 점점 더 가늘어진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인상의 얼굴은 유하늘의 얼굴을 볼 때쯤에는 거의 노려보는 것 같은 표정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날카로운 눈매는, 유하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슬쩍 휘어진다. 진심으로 노려본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긴장하게 만드는 그 날카로운 눈매에서 순식간에 살기가 빠진다. 남는 것은, 여우도 홀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매혹적인 눈웃음이다.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걸려 있다.

       

       턱을 괸 채 그렇게 눈을 한 번 마주치고, 그녀는 별다른 인사는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또 새침해 보인다.

       

       요 며칠 동안 매일 아침, 유하늘이 보아온 예사라의 모습이었다.

       

       이 장소에서, 유일하게 유하늘의 인사를 받아주고, 유하늘의 말에 반응해주는 사람이었다. 막상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 속이 간질간질해서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분명히 이 장소가 평범한 곳이었다면 그런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유하늘은 언제나처럼 사라의 옆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오늘은 요 며칠 동안과는 조금 다르다. 평소라면 굳이 말을 걸지는 않고, 뭔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을 때까지는 그냥 가만히 있었겠지만, 오늘은 챙겨온 게 있었으니까.

       

       가방을 뒤져 챙겨온 것을 꺼내놓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생각에 깊게 빠진 사라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사실 사라는 일부러 부르거나 보여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을 보이는 성격이 아니기는 했다. 얼핏 보아도 주변과 고립되어있는 그녀가, 정작 자신의 처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마 그 태도 때문이겠지.

       

       ……어제 저녁을 먹던 때를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지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유하늘은 작게 심호흡했다. 솔직히 조금 긴장된다. 중학생 때 친구들끼리는 이런저런 일들을 해봤지만, 사라와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본인이 어떻게 반응할지 잘 예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서보지 않으면 영영 모르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유하늘은 검지로 사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으헿!?”

       

       깜짝 놀랄 때면 언제나 귀여운 소리를 내는 사라였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솔직히 사라는 옆구리를 찔러도 이쪽으로 고개만 스륵 돌려 ‘뭐?’하고 물어볼 것 같은 이미지였다. 물론 그런 이미지와는 완벽히 상반되는 반응이라 더 돋보이는 것이기도 했지만.

       

       주변의 누군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소리만 들렸고, 대놓고 티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불시에 옆구리를 찔려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만 사라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볼 때를 노려,

       

       유하늘은 미리 손에 쥐고 있던 초콜릿을 사라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큰 건 아니었다. 입이 그리 크지 않은 사라였는데도 초콜릿은 별다른 저항 없이 사라의 입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입술에 손가락 닿았다.

       

       순간 손가락을 떼었지만, 이미 부드러운 살결에 닿았던 감각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하늘을 빤히 쳐다보았다. 유하늘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사라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더니, 입 안의 초콜릿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유하늘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초콜릿 봉투를 슬쩍 보았다.

       

       “하나 더 먹을래?”

       

       어색함을 지워버리기 위해 얼른 그렇게 말하자, 사라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물었다.

       

       “그래도 돼?”

       

       “응, 어차피 같이 먹으려고 사 온 거니까.”

       

       고급 초콜릿은 아니고, 그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평범한 초콜릿일 뿐이었지만, 역시 단 것은 진리인 모양이다. 사라는 거리낌 없이 다음 초콜릿을 가지고 갔다.

       

       그렇게 초콜릿을 가지고 가는 사라의 손목이 유독 얇아 보였다.

       

       점심 시간 때도 그렇고, 어제 함께 저녁을 먹을 때도 사라가 먹는 양은 눈대중으로만 봐도 유하늘이 먹는 양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운동해야 하는 법이고, 운동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매번 겨우 한 바퀴에 그로기 상태가 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기초 체력을 위해서 어느 정도 에너지 넘치는 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 이것저것 많이 먹이는 거였고.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한다면 꾸준히 조금씩 계속 먹이면 되지 않을까?

       

       기왕이면 열량 높고, 본인도 좋아하는 것으로.

       

       “……뭘 그렇게 봐?”

       

       두 번째 초콜릿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던 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유하늘을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평소에는 완전히 얼음공주 그 자체면서, 이상하게 작은 동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단 말이야.

       

       “아냐, 그냥.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

       

       하지만 유하늘의 대답에도 사라의 경계심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초콜릿은 두 개 더 먹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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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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