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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보스까지 강화되는 일은 없었다.

         

        ‘놈도 이 이상은 간섭하지 못하는 건가…’

         

        숨은 기억의 회고자.

         

        이 녀석이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나와 계약을 하려는 의도를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녀석과 계약할 생각이 없었다.

         

        지난 모든 회차를 통틀어 처음 보는 성좌였기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무엇보다.

         

        저 대가.

         

        저 대가가 너무나도 위험해 보였다.

         

        이 설을 줘패면서.

         

        아니, 이세린이 미쳐버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녀의 상태창을 봤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 잡은 녀석의 이명(異名).

         

        이놈과 계약했을 때, 자신도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아니, 필시 그럴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완벽하게 그 성좌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시현 씨! 옆!!”

         

        몸을 굴러 찔러오는 랜스를 피했다.

         

        쿠궁!

         

        살벌한 그 공격이 바닥을 가르며 파괴했지만, 강화된 데스나이트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검을 쥐고, 보스 몹을.

         

        아니 정확하게는 놈이 타고 있는 말의 다리를 베어냈다.

         

        흐히힝-!!

         

        푸른 불꽃을 내뱉는 해골말이 단말마를 내뱉으며 꼴사납게 넘어졌다.

         

        동시에 말을 포기하고 바닥에 착지하는 보스 몹.

         

        철컥.

         

        육중한 갑옷을 입었음에도 깃털처럼 착지하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운 자색의 풀플레이트 아머.

         

        목에서 타오르는 파란 불꽃.

         

        한 손에는 자신의 거대한 랜스를.

         

        한 손에는 자신의 머리를 지니고 있는 보스 몬스터.

         

        듀라한.

         

        투훙-!

         

        놈이 착지하자마자 랜스를 휘둘러왔지만, 나는 그걸 가볍게 피해내며 박지원에게 외쳤다.

         

        “오른쪽이요!”

         

        “네!”

         

        쾅-!

         

        박지원이 생존자들에게 새롭게 받은 방패로 듀라한을 들이받았다.

         

        하지만.

         

        “…”

         

        보스몹답게 터프하게 버텨내는 놈이었다.

         

        이시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놈의 다리.

         

        정확하게는.

         

        갑옷 사이의 틈.

         

        서걱.

         

        가벼운 절단음과 함께 놈의 몸이 휘청거렸다.

         

        다리가 잘린 것이었다.

         

        하지만,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후웅후웅후웅!!

         

        넘어지는 그 순간에도 살벌하게 푸른 불꽃을 머금은 랜스를 이리저리 찔러대는 녀석이었다.

         

        그때였다.

         

        “뒤져 이 씹새끼야!!”

         

        욕을 내뱉으며 숏소드를 찔러넣는 박지원.

         

        잭팟이었다.

         

        “…!!!!! …!!!”

         

        랜스를 피해 놈의 머리를 찌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후웅 쾅-! 후웅 쾅-!

         

        박지원은 다리를 잃어 무릎을 꿇은 채 마구잡이로 날아오는 랜스를 방패로 흘려내며 내게 머리를 던졌다.

         

        나는 기꺼이 그 머리를 받아 들었고.

         

        “…!!!”

         

        분노한 놈의 포효가 끝나기도 전에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후웅-!

         

        날아오는 랜스를 여유롭게 피해낸다.

         

        서걱!

         

        박지원이 놈의 손을 잘라내는데 성공했다.

         

        랜스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놈의 머리를 향해 비소를 흘렸다.

         

        푸른 불꽃으로 둘러싸인 놈의 두개골은 화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체크메이트다.”

         

        놈의 목에 머리를 꽃아 넣고, 그대로 정수리에 검을 찔렀다.

         

        푸국! 그그그극!

         

        투구의 틈을 찔러 넣자 부드럽게 들어가는 검.

         

        아마 검 끝은 녀석의 가슴까지 닿았을 것이다.

         

        놈이 살아 있었더라면 심장이었을 그 부위 말이다.

         

        “…!! …! …”

         

        조용한 놈의 분노가 사그라들어갔다.

         

        푸른 불꽃이 힘을 잃어갔다.

         

        그렇게.

         

        놈이.

         

        죽었다.

         

        “후우…”

         

        쿵-!

         

        놈의 거체가 쓰러졌다.

         

        두개골에 내 검을 박은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끝났다.’

         

        말 그대로 끝났다.

         

        그 좆같았던.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던.

         

        망할 튜토리얼이 말이다.

         

        “이야! 어떻게든 깨셨네요! 13일! 신기록이네요! 축하드려요!”

         

        갑작스럽게 솜뭉치가 튀어나오며 우리에게 그리 외쳤다.

         

        “여러분들은 튜토리얼을 클리어하셨어요! 이제 곧 포탈이 생성되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뿅하고 사라지는 놈의 형체.

         

        얼마 지나지 않아 듀라한의 시체 앞에는 파란빛을 띄는 전형적인 차원문이 생겨났다.

         

        이제.

         

        저걸 넘어가면 도달한다.

         

        탑의 1층을 말이다.

         

        또다시 똥꼬쇼를 해야 하는 그 좆같은 반복의 시작이.

         

        저걸 넘으명서 시작이었다.

         

        “하아…”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요. 깼잖아요. 저 너머는 그래도 여유는 있겠죠.”

         

        박지원의 말.

         

        맞다.

         

        확실히 이곳 튜토리얼보다 안전한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위험해지려 하면 얼마든지 위험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탑은.

         

        그런 곳이니까.

         

        “저, 저기만 들어가면 끝나는 거야?”

         

        “포, 포탈! 처음 본다…”

         

        “이제… 끝난 건가…”

         

        뒤에서 아무렇지 않게 저런 마음 편한 소리를 내뱉는 생존자들이 부러워질 지경.

         

        “시현 씨.”

         

        “아. 아현씨.”

         

        “생존자 분들을 먼저 밖으로 내보낼까요?”

         

        “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합니다.”

         

        “에이 감사는요… 이번에도 시현 씨가 전부 해결해 줬잖아요. 감사는 제가 해야죠.”

         

        “하하… 정 그렇다면 저 쪽에 있는 지원 씨한테 감사 인사나 해주세요.”

         

        “저요?”

         

        만담이 지나간다.

         

        평범하게.

         

        아주 평범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이어 나가는 만담.

         

        그것이 끝나자 강아현은 늘 그렇듯 모두를 이끌며 포탈을 타고 나갔다.

         

        이곳의 생존자들 모두가 나갔다.

         

        텅 빈 던전의 내부.

         

        어둡지만 이제는 보스가 없어 안전한 그 공간.

         

        나는 가만히 그곳을 바라봤다.

         

        “…”

         

        “시현 씨 안 나가십니까?”

         

        “나가겠습니다.”

         

        박지원은 내 대답을 듣고는 포탈을 타고 나갔다.

         

        “씨발…”

         

        그와 동시에 나는 욕을 내뱉었다.

         

        [상태창]

         

        [이름: 이시현]

         

        [레벨: 20]

         

        [성별: 여]

         

        [성좌: 없음]

         

        [칭호: 튜토리얼의 구원자, 튜토리얼의 학살자, 524회차의 회귀자]

         

        [특징: 정의, 분노, 생존, 사명감, 회피]

         

        [특성: 회귀]

         

        [근력(극상): 30]

         

        [민첩(극상): 30]

        

        [마력(상): 26]

         

        [지력(상): 26]

         

        [정신력(상): 30]

         

        [총평: 하늘이 내려준 재능입니다! 무엇을 하던 최고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상태창.

         

        하지만, 나는 어느 한 군데에만 시선이 못 박힌 채로 더러운 기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성좌: 없음]

         

        523회차 동안 함께 했던 성좌가 떠나간 것.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

         

        그것이 만들어낸 쓸쓸함은 굉장한 것이었다.

         

        “하…”

         

        여기서 우울해져서 뭐하냐.

         

        아직 이번 회차에는 할 게 많은데.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조금만.

         

        그리 생각하며 나는 포탈에 몸을 던졌다.

         

        ***

         

        지켜내지 못했다.

         

        지켜내기로 해놓고 또 아프게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이시현.

         

        그 망할 년이 이 설을 고통 받게 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이 망할.

         

        이 좆같은 메시지가!!!

         

        나를 계속 방해하고 있었다고!!!

         

        “…”

         

        그 상황에서.

         

        그가 이빨을 꾸역꾸역 삼킬 때마다.

         

        그의 목에서 들리면 안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목이 기괴하게 부어올랐을 때마다.

         

        막고 싶었다.

         

        그년을 죽이고 싶었다.

         

        내.

         

        내가 지켜야 하는.

         

        내가 속죄해야 하는 그 작은.

         

        소중한 것.

         

        그걸 계속해서 망가뜨렸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피해자였고.

         

        죽을 정도로 억울하고 불쌍한 한 순수였다.

         

        그런 순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고통만을 주며 나에게 강요를 한 그 회귀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너무.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더 컸다.

       

        또.

         

        또 아프게 해버렸다.

         

        멍청한 년이.

         

        거기서 또 왜 망설여서.

         

        그냥 그거 한 번 치료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하나뿐인 친구를 죽일 뻔하고.

         

        내 소중한 것을 고통받게 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그 이빨들을 구역꾸역 삼키던 이 설의 모습이 계속해서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지금 기절해서 내게 안겨져 있는 그의 피 묻은 순수한 얼굴과 오버랩 되며 내 심장을 푹푹 찔러댔다.

         

        아플 정도로 뛰어대는 그 심장이 지금 내가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 같았다.

         

        안된다.

         

        이러면 안된다.

         

        그를.

         

        그를 지켜야 하는데.

         

        자꾸만 행동과 말이 가로막힌다.

         

        좆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대한 이 설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

         

        그리고.

         

        회귀자에 대한 살심을 갈고 닦는 것 뿐이었다.

         

        찢어죽일 년.

         

        아무 죄 없는 이를 더 고통받게 한 년.

         

        그리 생각하니 그녀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던 자신 역시 역겨웠다.

         

        스스로를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 아니야…!’

         

        나는.

         

        나는 그년과 다르다.

         

        나는.

         

        이 설의 억울함을 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그가 고통을 받으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만이 속죄하고 있으며, 나만이 그를 지켜내고 있었다.

         

        나만.

         

        나만.

         

        그에게 특별하다.

         

        그리 생각하니.

         

        다행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피로 범벅이 된 낡은 후드를 입은.

         

        작고 한없이 가벼운.

         

        그런 이 설을 꽉 껴안았다.

         

        두근.

         

        두근.

         

        그의 심장박동이 전해져 왔다.

         

        “새액… 새액…”

         

        그의 숨소리가 전해져 들려왔다.

         

        소중한.

         

        아주 소중한 것.

         

        최대한.

         

        최대한 지켜줄게요.

         

        어떻게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회복시켜 줄게요.

         

        어떻게든 살려낼게요.

         

        어떻게든 이 망할 행동 제약을 풀어볼게요.

         

        그니까.

         

        제발 끝까지 살아서.

         

        제가 하는 속죄를 계속 받아주세요.

         

        제발.

         

        히히히.

         

        그리 생각하며 그녀는 이 설과 함께 포탈에 몸을 담갔다.

         

        ***

         

        “언제쯤 나오려나…”

         

        최서안은 튜토리얼 포털이 생성될 장소를 하염 없이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클리어한 튜토리얼 최단 시간은 15일.

         

        하지만, 아직 13일차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녀의 눈에는 긴장은커녕 무료함만이 자리 잡았다.

         

        “에이… 망할 놈들… 이래봬도 길드장인데…”

         

        그녀는 길드장.

         

        탑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길드라는 집단 중 하나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밤을 꼬박 지세우며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길드장인 그녀였지만, 자신의 길드원들이 무조건 그녀가 나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강조를 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이곳에서 튜토리얼 인원을 맞이할 운명이 되었다.

         

        하지만.

         

        “15일 차에 왔어도 되는 거잖아…”

         

        그녀는 그런 불평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기록은 깨지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시간 이내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기적이 있어야만 가능했기 때문.

         

        이유는 간단했다.

         

        압도적인 크기의 미로.

         

        그리고 정중앙의 클리어 던전.

         

        이 미로의 구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규모만큼 뒤지게 복잡할뿐더러 중앙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 번이라도 미로 끝자락에 도달해야 했다.

         

        그게 유일하게 중앙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미로는 미로인 법.

         

        방법을 안다고 해도 그 복잡한 미로를 한방에 뚫고 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15일차라는 기록을 넘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몬스터가 쳐 기어나오지, 보급품은 부족하지.

         

        그 와중에 생존자 무리는 또 있어서 언제 위협이 될 줄 모르지.

         

        정말 기적이 아니고서야 15일 안에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

         

        그녀는 방금 기적을 목격했다.

         

        포탈이 열렸기 때문이다.

         

        “씨발?”

         

        그것도 13일 차 밤에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전 화의 독자님들의 평을 봤습니다.

    안좋더군요.

    일단.

    새롭게 플롯을 짜서 최대한 빠르게 사이다 파트를 끌어내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시현, 이세린 이런 애들은 전부 히로인이 아닙니다.

    그저 폭풍 후회를 시킬 제물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제가 쓰는 글이 많이 미흡한 점.

    정말 죄송하고.

    이런 글을 열심히 읽고 조언 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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