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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이 세계에는 수많은 전장이 있었다.

       

       이상한 형태의 포탈들이 끝없이 이어져, 그곳에서 무언가 이계의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마물이라 불렀다.

       어떠한 지능을 가지지 않은 채, 그저 무의미한 살육만을 위해 태어난 생물들.

       

       그들의 개개인은 강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에 언제나 주의를 가져야 했다.

       

       끊임없이 토벌하고, 경계하고, 죽여야만 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규칙이 나름 확립이 되어 있었다. 철저히 포탈을 감시하고, 포탈이 생긴 주위에 성벽을 지어 민간인들과 이어진 통로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통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포탈을 넘어오는 마물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고, 수천 년간 이어져온 전선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장에서 사망자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수천 년간 수많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사람이 다시금 길을 틀어 막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인간들은 서로를 위하여 죽고 죽이며 버텨왔다.

       

       [역겹구나.]

       

       딱히 누굴 위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전날 나에게 더러운 기분을 선사해주던 그 쓰레기와, 주제도 모르고 선을 넘던 마족을 위한 복수였다.

       

       놈들도 저 포탈을 타고 넘어올 터.

       자신이 저 포탈을 넘기엔 크기가 너무나 크다.

       

       물론 작아진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만, 왜인지 저 포탈을 직접 넘어서는 안 될 거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저 포탈은 불안정한 포탈이었다.

       비록 어느 정도 격이 낮은 생물들은 포탈을 넘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격이 높으면 높을 수록 더 강한 제약을 받아 강한 패널티를 받게 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그 마왕도 저 포탈을 직접 넘지는 않은 것이다.

       

       요르문간드는 그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신이 되어 느껴지는 일종의 미래 예지라고 봐도 좋았다.

       

       저 포탈을 넘는다고 해서 자신이 죽을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 건 아닐 거라고.

       

       그렇기에 저 포탈을 넘어 직접 녀석들을 토벌하는 건 포기했다.

       

       하지만 놈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육체가 부유한다.

       드높은 하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며 모든 전장을 한눈에 담는다.

       

       처절했다.

       수많은 인간과 마물들이 뒤엉키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그건 모든 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끝도 없이 생겨난 마물들이, 인간들을 압도적인 물량으로 뛰어넘는다.

       

       그렇기에 전장의 상황은 매우 불리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격을 드러냈다.

       저 하찮은 벌레들을 내려다보며, 신이 되어 조절이 능수능란해진 격을 다루며 오로지 마물들에게만 격을 집중시켰다.

       

       처음 격이 놈에게 닿았을 때.

       놈은 영문도 모른 채 몸이 비틀어 썩어 문드러졌다.

       

       그리고 그 격이 누군가에게서 쏘아지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놈은 완전히 늦은 상태였다.

       

       녀석은 아무런 발버둥 조차 치지 못한 채, 아주 찰나의 순간 존재의 흔적 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 모든 일들이.

       전장의 모든 마물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뭐, 뭐지…?!”

       

       그들과 뒤엉켜 싸우던 인간들이 혼란에 잠겼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마물들이 순식간에 소멸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라진 마물들을 찾았으나, 그들이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육신, 영혼, 존재.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한 존재의 생각만으로 소멸해버렸기에.

       

       요르문간드는 그 모든 일들을 벌이면서도 태연했다.

       신으로써의 위엄을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물론 저들에게 자신을 신이라 각인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채, 내가 이 전장을 지배했노라고.

       

       저 많은 마물들을 일격에 처리해버린 것이 자신이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도 된다. 하지만 싫었다. 이건 단순히 나의 유희였다. 그런 유희에서, 쓸모 없는 경외와 존경심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요즈음 자신에게 소원을 비는 이들이 늘어났다.

       

       정확히는 그들의 생각이 머릿속에 전송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매일매일 수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소원을 비는 탓에, 요르문간드는 진저리가 났다.

       

       하물며 그 소리들은 완전히 차단하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라서.

       수많은 이들의 소원이 메아리쳐 제대로 구분하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요르문간드는 그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물론 그런 짓을 한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신성이 줄어들겠지만, 지금 얻은 신성만으로 앞날을 도모하기엔 충분했다.

       

       애초에 신성만으로 더 강해진다는 사고 방식도 글렀다.

       

       신성은 어디까지나 벽에 가로막혀있던 자신을, 하늘로 승천하게 만들어줄 뿐.

       

       거기서 더 강해지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신의 축복을 받아 신에 대해 가깝던 이들은, 하늘에 떠있는 자신을 알아보는 듯 싶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하늘을 유유히 유영하며 전장의 모든 마물들을 죽였다.

       

       인간들이 눈을 깜빡이는 찰나.

       그들과 싸우던 모든 마물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소멸했다.

       

       그 모든 일들을 벌인 요르문간드는.

       포탈을 자신의 신성으로 잠시 봉인하며 동굴로 돌아왔다.

       

       그 봉인이 오래가진 않을 터였다.

       자신은 봉인에 재능이 없을 뿐더러, 그 포탈 근처는 법칙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모든 게 금방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을 유지하기엔 충분했다.

       

       그걸로 됐겠지.

       저 쓰레기들에게 한 방을 먹여주기에는.

       

       

       * * *

       

       

       압도적인 물량이었다.

       분명 인간들을 모두 휩쓸어버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왕은 뜻밖의 결과에 눈썹을 찡그렸다.

       

       [전부… 죽었다?]

       

       이상했다.

       그 수많은 마물들이 한 순간에 죽어버렸다.

       

       

       마치 존재 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건 분명히 인간이 지닌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가 파악한 바로, 적어도 최전방에 있는 용사와 인간들은 그 많은 마물들을 처리할 능력이 없었으니까.

       

       계획은 완벽했다.

       모든 인간들이 성벽에 갇혀 씨가 마른 채 죽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 하하….]

       

       원대한 꿈이었다.

       이번에 모든 마물들을 총돌격시켜, 방심한 인간들의 최전선을 무너뜨려버리고 그렇게 쌓인 죽음과 피로 자신의 본신을 현현시키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 마물들이 그저 죽기만 했어도, 끝없이 전장에 쌓인 죽음의 힘으로 자신이 재탄생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모든 힘들이.

       죽음 조차 면치 못한 채 흩어졌다.

       

       그리고.

       마왕은 그런 일들을 벌일 후보들 중, 가장 유력한 이를 알고 있었다.

       

       [뱀 새끼가…….]

       

       그 녀석이었다.

       그 놈이 전장에 나선 게 틀림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모든 생물의 존재를 그저 없었다는 듯 말소시키는 능력은, 오로지 그 놈이 지닌 능력 뿐이었으니까.

       

       피가 끌어올랐다.

       이 계획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들여왔던가?

       

       끝도 없이 마물들을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았다.

       생각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멍청한 마물들을 직접 복속시켜 계획에 강제로 참여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그 마물들 모두가 자신의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죽인 마물들의 피로 마법진을 만들어, 자신의 본신을 현현시키는 것과 동시에 죽음의 힘을 흡수하여 한 단계 더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웬 다리도 달리지 않은 하찮은 미물이 막아섰다.

       

       [하.]

       

       그래.

       네놈은 강하다.

       

       인정하겠다.

       내가 만나본 미물 중 가장 강했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이를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계획을 짜왔던가.

       

       자그마치 수천 년이다.

       그 긴 세월동안 인간들의 방심을 유도하고, 놈들의 수뇌부에 몰래 자신의 부하들을 심었다.

       

       그렇게 뿌리부터 장악시킨 후.

       자신이 직접 현현하여 인간계의 모든 걸 쓸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수천 년의 계획을.

       

       고작해야 뱀 새끼가 막았다.

       

       [그래, 그렇게 나온단 말인가.]

       

       마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쿠웅——!

       

       거대한 옥좌가 그와 동시에 박살난다.

       그의 육체를 중심으로 새카만 마기가 검게 피어올랐다.

       

       그 모든 건 소용돌이처럼 마왕의 몸을 휘몰아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 내기 시작했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부서지고, 주변의 모든 것이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가마.]

       

       패널티?

       그딴 건 상관 없었다.

       

       인간계의 모든 생물들을 먹어 치워, 다시 한 번 강해져주마.

       

       그렇게 포탈 앞에 섰을 때였다.

       

       우우웅——!

       

       포탈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신비한 힘이 포탈을 침범한다.

       그와 동시에 포탈을 순식간에 찌그러트리고, 거대한 빛으로 된 사슬로 포탈이 묶이기 시작했다.

       

       마치, 봉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빌어쳐먹을!!]

       

       당장 그 사슬을 떼어내려 했으나, 그 사슬은 전혀 만져지지 않았다.

       

       마치, 하찮은 너는 건들 수 조차 없다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파스스…….

       

       포탈이 완전히 봉인되어 버렸다.

       마계에서 인간계로 넘어가는 유일한 수단이 막혀버린 것이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아, 아아아….]

       

       

       마왕은 다짐했다.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하찮은 미물을 죽이겠다.

       

       자신의 손으로.

       

       그것도 형체 조차 남기지 못하게, 감히 자신을 건드린 것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마왕은, 그리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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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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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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