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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살굿빛을 띠는 하얀색 손은 그야말로 섬섬옥수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무감각해 보이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와 같은 푸른 눈이 보였다.

         

        언뜻 보면 날카롭다. 혹은 차갑다고 생각할 수 있는 눈매지만 그조차 아름답게 느껴졌다.

         

        눈 밑에 나 있는 자그마한 점. 그 점을 보고 화룡점정이라는 고사가 떠올랐다.

         

        용의 눈을 그린 것처럼, 이 여자도 저 눈물점을 그렸기에 그림이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사람 같지 않은 외모였다. 굵은 선과 얇은 선을 오밀조밀하게 사용해 만든 하나의 명화와도 같았다.

         

        굳이 따지자면 수묵화.

         

        그래. 풍성한 머리카락은 먹으로 그려낸 폭포와 같았다.

         

        내 생전 이리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천하제일미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사람을 고를 거다.

         

        물론 이곳에 와서 처음 본 사람이라 다른 선택지는 없지만.

         

        외모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내 상황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여자 사람.

         

        심지어 굉장히 예쁜 여자 사람.

         

        “게게겍!”

         

        안녕하세요.

         

        저는 도마뱀의 몸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입니다.

         

        커뮤니티에 메이드복을 입은 스피노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이런 꼴이 되었죠.

         

        …….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동굴에 사람이 있는 거지?

         

        지반이 무너져서 도착한 동굴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도 힘들 거다.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 분명 운기조식을 하고 있지 않았나?

         

        이 여자가 날 건드렸고.

         

        거북이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만 해도 내상을 입었는데, 이 여자는 날 직접 만지기까지 했다.

         

        왜 내상을 입지 않은 걸까.

         

        운기조식에 실패해서 그런 건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여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언뜻 보면 단단할 거 같은 가죽이지만 의외로 푹신하구나. 게다가 하얀색 배 부근은 적당히 토실한 게, 계속 만지고 싶은 기분이 드는구나.”

         

        이 여자는 내 배를 조물조물 만지고 있었다.

         

        “게게겍!”

         

        아무리 예쁘더라도 이건 아니지.

         

        거긴 예민하다고.

         

        “신묘하게도 생겼도다. 수많은 영물을 봐왔지만 이렇게 생긴 영물은 본 적이 없는데.”

         

        역시, 난 도마뱀치곤 잘생긴 게 틀림없었다.

         

        이래 보여도 네필라 쥐라시카도 꼬신 몸이라고.

         

        “얼굴은 참 보잘것없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구나.”

        “겍겍!”

         

        이 여자가 예쁘다고 해주니까 아주 막말하네.

         

        언짢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 작은 발은 또 어떻고, 도마뱀이 어찌 물갈퀴를 달고 있는 게냐.”

         

        손가락으로 내 앞발을 만지작거렸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면서 만져지고 있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꼬리도 꽤 볼거리가 많구나. 얇고 긴 것이 촉감도 좋다.”

         

        이번엔 꼬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좋아.

         

        날 만지는 건 그렇다 치자.

         

        어쩔 수 없는 거다.

         

        나도 이런 도마뱀이 눈앞에 있으면 마구 만졌을 테니까.

         

        물론 곧바로 물렸겠지만.

         

        날 봐라, 이렇게 만져대는데도 한 번도 안 물지 않았나.

         

        절대 이빨이 얼얼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아니다.

         

        눈앞의 도마뱀을 만지는 건 좋다 이거다.

         

        다 좋은데, 이제 좀 놔주지 않을래?

         

        살짝 답답해지기 시작했어.

         

        “수궁사의 재료로 쓰기에 딱이구나.”

         

        여성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그래. 수궁사인지 뭔지는 됐으니까 일단 날 풀어달라고.

         

        가만, 수궁사?

         

        수궁사가 뭐였더라.

         

        …기억났다.

         

        수궁사(守宮砂)는 일종의 화장품 같은 것으로 몸에 바르는 붉은 진흙을 말한다.

         

        특별한 기능이 있는데, 유니콘의 무협 버전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다.

         

        신체에 바르는 붉은 진흙이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지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성관계를 했을 때다.

         

        주로 아미파가 사용해 그들의 순결이 지켜졌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귀한 집 자녀에게 바르는 경우도 있고.

         

        그야말로 최고급 처녀 판별기와 다름없는 신묘한 물건이었다.

         

        여기까진 좋다.

         

        유니콘 친화적인 물건이다.

         

        그런데 수궁사의 재료가 바로….

         

        주사를 먹인 도마뱀이다.

         

        “겍겍겍겍겍!”

         

        몸을 바둥거렸다.

         

        키운다며.

         

        키운다며!

         

        아니, 키운다고 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갈아버린다는 말도 안 했잖아.

         

        “어디가 불편한 게냐?”

         

        여성이 내 목덜미를 잡고 쭉 들어 올렸다.

         

        힘이 쫙 빠졌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겍….”

        “겍? 겍코? 울음소리도 특이하구나.”

        “게엑….”

         

        이상하다.

         

        왜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거지?

         

        카이만을 만났을 때도 결국 움직이는 데 성공했는데.

         

        게다가 이 여자는 겉으로 보기에 그리 세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덩치가 나보다 클 뿐.

         

        검은 머리의 여성은 반대쪽 손을 들어 내 배를 꾹 눌렀다.

         

        “작은 몸에 너무나 많이 들어 있구나. 채 소화도 하지 못한 게 이리도 많아.”

        “겍!”

         

        그렇게 누르면 안 돼요.

         

        안 그래도 방금 식사를 했다고.

         

        “겍겍!”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 울부짖기를 사용했다.

         

        내 정성이 닿았던 걸까 내가 바라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알았다. 내려줄 터이니 가만히 있거라.”

         

        지면에 점점 가까워졌다.

         

        날 놓아줄 게 분명하다.

         

        가만히 있으라곤 했지만, 어쩐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도망갈까?

         

        이상한 수법으로 날 제압 하긴 했어도 힘 자체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내 보법을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좋아. 땅에 내려놓는 순간 도망가자.

         

        그 전에 잠깐 확인 좀 하고.

         

        눈에 힘을 주었다.

         

        [감정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얼레.

         

        이건 또 뭐야.

         

        감정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카이만도 레벨이랑 이름은 보였는데?

         

        이런 메시지는 이곳에 와서 처음 봤다.

         

        인간이라서 안 뜨는 건가?

         

        이 여자가 설마 카이만보다 강하다는 건 아니겠지.

         

        내 스킬이 인간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타당할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수궁사 어쩌고는 무림인의 질 나쁜 농담일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날 잡아먹는다는 말이 더 믿기 쉬울 거다.

         

        “게엑!”

         

        굉장히 착한 눈으로 저 여성을 바라봤다.

         

        “무어냐, 그 표정은? 호. 수궁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상했다.

         

        왜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가부좌도 틀 줄 아니, 수궁사를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구나.”

         

        봤구나.

         

        그러면 좀 잘 해줘 봐.

         

        나 희귀한 도마뱀이야.

         

        “그렇다면 저 뱀에게 새겨진 자상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겠고.”

         

        여성은 내가 잡아먹은 뱀의 뼈를 가리켰다.

         

        먹을 수 있는 부분은 다 먹어 살이 거의 남지 않았는데, 저기서 뭘 봤다는 거야.

         

        “어설프긴 하지만 도마뱀의 움직임으론 남길 수 없는 흔적이 있더구나.”

        “겍!”

         

        깜짝 놀랐다.

         

        저 뼈를 보고 그걸 알아낸다고?

         

        아니 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어서 그런 건가.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따라 한 것이냐?”

         

        푸른 눈동자가 날 보고 있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깊었다.

         

        해일과 같은 거대한 중압감이 내 몸을 짓눌렀다.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겍겍.”

         

        고개를 끄덕였다.

         

        “간밤에 꿈자리가 좋더니, 너를 만나려고 이랬던 거 같구나.”

         

        이유는 모르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영물이라는 건 말을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우호적으로 나오진 않는다. 그러나 너는 다르다.”

         

        그야 우호적으로 안 나오면 네가 나를 도마뱀 가루로 만들어버릴 거 같으니까.

         

        “좋다.”

         

        뭔진 몰라도 난 안 좋다.

         

        “원래 자연에 개입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널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깝구나.”

         

        아니, 그냥 둬도 될 거 같은데.

         

        “잠깐이지만 백연영의 가르침을 전해주도록 하겠다.”

         

        뭐라고?

         

        백연영의 가르침이라고?

         

        그게 뭔데.

         

        백연영이 누구예요.

         

        “…그렇다고 이 몸의 직전 제자라고 떠들고 다니면 아니 된다. 그러고 싶으면, 본교에 입교한 후에 하도록.”

         

        이 사람 이름이 백연영이구나.

         

        그럼 나한테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건가.

         

        난 도마뱀인데?

         

        무림인은 생각보다 고정관념이 없구나.

         

        “덩치가 조금 더 자랐으면 좋겠건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해야겠지.”

         

        백연영이 손가락으로 내 배를 톡톡 건드렸다.

         

        덩치가 자라면 날 재료로 쓸 생각이겠지.

         

        헨젤과 그레텔처럼!

         

        절대 살찌지 않을 거다.

         

        “겍겍!”

         

        그런데 진짜 나한테 무공을 알려주려고?

         

        뭔가 잘못 걸린 거 같은데.

         

        도마뱀에게 무공을 알려주겠다는 여자가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니, 그래도 제자를 죽이진 않겠지.

         

        대충 배우는 척하면 수궁사가 되지 않을 거다.

         

        겸사겸사 진짜로 무공을 익혀 공격기를 배우면 좋은 거고.

         

        좋아. 한 번 들어나 보자.

         

        “작은 도마뱀아, 자세를 잡아라.”

        “겍?”

         

         

        *

         

         

        백연영.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에잇. 그게 아니리라.”

         

        이 여자, 설명을 더럽게 못한다.

         

        “게게게게겍!”

        “어찌 이걸 모르느냐. 직선에서 곡선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면 되니라.”

         

        내 양팔을 잡고 뭔가 휘적휘적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이 쳐봐야 삼류무사인 거 같다.

         

        아니, 지나가던 꼬맹이도 이렇게 설명하진 않겠다.

         

        그냥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양과 음이 어쩌고 무의 묘리란 어쩌고.

         

        “답답하구나. 내 이래서 제자를 두지 않으려고 했거늘.”

         

        나도 이래서 스승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겍겍!”

         

        백영연은 내 손과 발을 잡고 마구 만져대기만 했다.

         

        “잘 보거라. 왼손을 앞으로 보내면서 오른발을 뒤로 보내고….”

        “겍겍겍!”

         

        이거 도마뱀 학대야.

         

        “그래. 너는 꼬리가 있으니 이것도 활용하면 되겠구나. 자, 이건 내 생각인데….”

         

        아무리 봐도 무공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인형 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물론 내가 인형이었고.

         

        “게엑…. 게엑….”

         

        기분이 언짢다.

         

        확 손가락을 물고 도망쳐버릴까.

         

        “으음, 그래. 백번 말하는 것보단 한 번 보여주는 게 이해하기 쉽겠지.”

         

        오.

         

        드디어 깨달았구나.

         

        빨리 시범을 보여줘.

         

        삼류지만, 기본적인 건 할 수 있겠지.

         

        백연영은 내 목덜미를 들어 높은 바위에 앉혔다.

         

        “겍?”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거라.”

         

        전용 의자인가.

         

        나쁘지 않네.

         

        백연영은 손을 들었다.

         

        드디어!

         

        그리고 나를 쓰다듬었다.

         

        …뭐 하는 거야.

         

        “겍게겍!”

         

        시범을 보여주는 거 아니었어?

         

        이 여자는 한참이나 나를 만져댔다.

         

        “기다리거라. 곧 도착할 테니.”

         

        뭔 소리야.

         

        뭐가 도착….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카이만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그 기분.

         

        내 위험 감지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쿠구구.

         

        처음에는 멀리서 들렸다.

         

        쿠우우우웅!

         

        그러나 빠른 속도로 그 존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바위벽이 부서지면서 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티타노보아 LV50(+)】

        

       그동안 본 어떤 생물보다 거대한 크기.

       

       절로 압도되는 거체였지만, 백연영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무기구나.”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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