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

       찰싹, 찰싹.

         

         

       음.

         

       뭘까.

         

         

       정신이 몽롱하니 이대로 계속 누워있고 싶은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찰진 소리가 상당히 거슬렸다.

         

       게다가 양쪽 볼이 따가운 거 같기도 하고.

         

         

       “으윽….”

         

         

       뇌는 계속 누워있으라고 명령했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소리와 함께 뺨이 점점 더 따가워져서 결국 상체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그 소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소외신이 눈물을 머금은 채 꼭 내 뺨이 북이라도 되는 것처럼 양손으로 신명 나게 쳐대고 있던 게 아닌가.

         

         

       아.

         

       맞다.

         

       분명 나는 정원사한테 공격당하고….

         

         

       “아으윽.”

         

         

       몸에 피가 돌자마자 전신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져 왔다.

         

       너무 아파서 몸에 상처라도 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훑어보았지만, 그 어떤 외상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배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꼭 게임 속 캐릭터가 HP가 아무리 깎여도 다 닳기 전까지는 아무런 외상도 없다가 HP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죽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멍이라도 생겨야 할 텐데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은 걸 보면 그런 메커니즘이 맞는 것 같았다.

         

       하, 슈퍼 겁쟁이 모드는 이런 것도 검열한다, 말이지?

         

         

       만약 그렇다면 내 상태를 게임 용어로 ‘딸피’ 상태라고 할 수 있으려나.

         

         

       평외신이 직접 공격한 것도 아닌 잡몹의 공격에 이 정도 데미지라니.

         

       소름이 돋았다.

         

         

       평외신이 이 정도인데 그보다 높은 계위인 감시자가 우리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상에 얼른 고개를 저어 잊어버리기로 했다.

         

         

       어쨌거나 얻은 건 있었다.

         

       슈퍼 겁쟁이 모드 덕분에 정신적인 두려움은 어떻게 해결이 되어도 상대와 나의 신체적인 격차가 심하다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

         

       두들겨 맞고 아주 잠깐 기절한 듯했지만, 그래도 긴가민가했던 걸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게 됐네.

         

       값진 경험… 이라고 해야 하나?

         

         

       찰싹, 찰싹, 찰싹.

         

         

       “…정신 차렸어. 이제 그만해도 돼.”

         

         

       아직까지도 내 뺨을 때리는 소외신을 저지하니 뿌엥한 표정으로 달려들길래 일단 달래주었다.

         

         

       어째 정원사한테 맞은 것보다 소외신이 때린 곳이 더 얼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거울을 본다면 소외신의 앙증맞은 손자국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 귀여운 상상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아까 나를 습격한 꽃처럼 생긴 것들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도망칠 구멍은 아직 남아 있었다.

         

         

       “친구야, 탈출 방향이 어디야?”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소외신은 여전히 정원사를 가리킬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의도를 갖고 계속 정원사를 가리키는 걸까.

         

       막상 또 죽을 위기에 놓이니까 뺨을 때려서 깨워준 거 보면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좋아, 그렇단 말이지?”

         

         

       무슨 의미이건 간에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슈퍼 겁쟁이 모드 덕분일까. 고통은 한순간일 뿐.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소외신이 알려주는 방향과 반대로 도망쳤다.

         

         

       그나저나 무연은 정말 괜찮은 걸까.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촥, 촥, 촥.

         

       무언가 으깨지는 불쾌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의 중심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있는 무연이 있었다.

         

       바닥에는 식물에게 침식당해 마치 수액을 빨린 것처럼 쪼그라든 기사들이었던 것들이 널브러져 있어서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달리느라 시체들을 전부 밟고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이렇게 무서운 곳인데도 자신을 위해서 앞장까지 서 주고, 거기에 진심으로 자신을 도우려는 듯한 태도가 무연의 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대체 왜 범죄자 신분인 거지?

         

       분명 뭔가 중간에 꼬인 게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아니야!’

         

         

       범죄자는 어쨌든 잘못을 저지른 인간이며, 심지어 그 인간은 그 외신에게 육욕을 느껴 덮친 인간 아닌가.

         

       절대 론단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잡생각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정문에 도착한 무연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전력으로 달려가 정문을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꼼짝도 안 하는 문을 보며 무연은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열려, 열리란 말이야…! 왜 열리지 않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던 무연은 정문과 철책이 맞닿는 부분을 보게 되었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안 돼….”

         

         

       무연이 보고 있는 부근에 아주 질겨 보이는 넝쿨들이 겹으로 감겨 있었다.

         

       마치 탈출을 저지하려는 것처럼.

         

       정원사가 이렇게 사람을 가둔다고 무연은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이렇게 된 가장 유력한 경위는…

         

         

       외신의 공격에 전신을 휘감겨 잔인하게 죽어가는 탄튼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무연은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탄튼이 그렇게 되고 나면 다음은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싫어, 싫어…!’

         

         

       죽는 것은 상관없었다.

         

       죽는 과정이 무서운 게 싫었다.

         

         

       결국 공포조차 극복하지 못한 채 여기서 비참하게 죽는다니.

         

       그 어떤 것도 마주하기 싫었던 무연은 자신의 귀를 틀어막은 채 몸을 웅크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연의 발목에 감촉이 느껴지던 것은.

         

         

       이미 두려움이 극에 달한 무연은 뇌가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팽팽 돌았다.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몸이 저절로 떨렸다.

         

         

       보고 싶지 않다는 이성과 확인해서 피해야 한다는 본능이 충돌해 무연의 고개를 아주 천천히 뒤로 돌리게끔 하였다.

         

         

       ‘아, 안 돼. 움직이지 마.’

         

         

       속으로 아무리 빌어보아도 이미 몸은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마치 거대한 마력이 자신의 고개를 억지로 붙잡고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무연의 고개는 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가 버렸고,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꺄아아아아아악!”

         

         

       무연의 목청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에 깔렸던 시체들이 일제히 무연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무연이 뛰어오느라 밟았던 시체들이 밟힌 흔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실실 웃으면서 추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 한 시체가 무연의 발을 잡고 있던 것이었다.

         

         

       무연은 안 잡힌 발로 시체를 걷어차 보았지만, 머리가 날아가면서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되려 조소하면서 두 손으로 떨어지지 않게 지지했다.

         

       그나마도 열심히 걷어차던 반대 발조차 기어온 한 시체에게 붙잡히자 온몸에 얼음을 넣은 것 마냥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두려움이 몸을 잠식했다.

         

         

       “안 돼, 싫어 오지 마….”

         

         

       자신의 다리에 집요하게 매달려 있는 시체들을 보며 무연은 사색이 된 채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안달하듯 말해보았지만,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크하핫! 결국,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구만!”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무연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목소리의 출처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시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점차 변형되어 기사의 모습을 한 시체로 변했다.

         

         

       “고작 평외신조차 무서워서 외면한 채 자신을 도와준 죄인을 죽게 만드는 것인가?”

         

       “아, 아니야… 나는 그저….”

         

       “흐하핫! 핑계 대는 꼴을 보아라, 이런 게 무슨 기사이로고!”

         

         

       깔깔깔!

         

       해골들이 턱을 달그락거리며 앙상한 손으로 박장대소했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것인지 호흡이 빠지는 웃음이 무연의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설산 원정에서 뒈져버린 네 아버지, 무신이 눈에 파묻힌 지하에서 통곡하겠구나!”

         

       “아, 아버지….”

         

       “그 피를 잇고도 하는 일이 영광스러운 외신 사냥이 아닌, 망나니 짓거리라고? 자식이라는 년은 뭘 하고 있는 게고!”

         

         

       이건 정신 공격이다.

         

       계속 듣고 있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지만, 자신의 자존감을 찌르는 말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

         

         

       무연은 시체들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았지만, 점차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어가기 시작했다.

         

         

       “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최강의 기사 중 하나였던 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너는 무력한 자식이며….”

         

       “고작 이런 것도 무서워서 주저앉는 겁쟁이가….”

         

         

       온갖 시체들의 목소리가 무연의 정신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러한 목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릴 지경까지 간 무연은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겨우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호흡은 가빠지고, 시체들은 계속해서 무연의 다리를 잡은 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마침표를 찍듯, 시체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녀석은! 네 아비의 털끝 만큼도 못 따라간! 소대가리 새끼다!”

         

       “아아아아악!”

         

         

       결국 그 말에 무연은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면서 스트레스를 분출했다.

         

       그 때문일까.

         

         

       콰직!

         

         

       “아, 아아….”

         

         

       자신이 들고 온 호신부가 결국 효력을 다하여 갈기갈기 찢어진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신 공격을 버티지 못해 호신부가 결국 한 번 버텨주고 효력을 다 한 것이었다.

         

         

       그러자 무연을 향해 기어오던 시체들의 소리가 일제히 멈추는 게 아닌가.

         

       무연이 시체들이 있는 방향으로 얼굴을 드는 순간 무연은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놀랐다.

         

         

       시체들이 일제히 찢어진 호신부를 쳐다보았다가, 무연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찢어졌구나.”

         

       “찢어졌어.”

         

       “찢어졌네.”

         

         

       시체 하나가 무연의 다리를 타고 기어 와서는 그녀의 턱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게 없어졌으니.”

         

       드디어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연의 다리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당겨졌다.

         

         

       “단단하구나! 정신은 무력하기 그지없는데 몸은 축복받아 강골이야!”

         

         

       그 탓에 무연은 결국 일으켰던 상체가 뒤로 넘어지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어어!”

         

       “크하하하핫!”

         

         

       무연의 위치가 시체 떼 한가운데에 위치하자마자 시체들은 일제히 무연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녀의 몸을 전부 더듬기 시작했다.

         

       얼굴만이 가려지지 않아 공포 때문에 고장나버린 그녀의 표정이 드러났다.

         

         

       “하지 마, 싫어어어어!”

         

         

       더듬는 것으로 모자라 갑자기 무연은 자신의 허벅지에 격통이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

         

       “네 녀석의 정신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 육체 또한 탐낼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네 녀석은 우리에게 졌으니. 그 육체를 바쳐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무연이 시체 한 구, 한 구를 빠르게 둘러보고 있으니 시체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꽃이 되자 꾸나.”

         

       “우리처럼 아름다운 꽃이 되는 거야.”

         

       “그래, 너도 우리와 함께하자.”

         

         

       아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겁쟁이의 꽃은 어떤 꽃일까?”

         

         

       정신이 아득해진다.

         

         

       시체들이 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뇌세포 하나하나를 집어 뜯어버리는 것만 같은 정신 오염.

         

         

       점차 이들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점차 잡음이 되어 단 하나의 언어로 수렴된다.

       

       

       

       

       

       “҉͈͖͇͖͉͔̭͙̱̯͍̏̍̔̀̆́̓̏̇͑̍̈̾͒͗́””к҈͚̟̗͙̯͚̲̱͔̠̳͗̓̆̑͗͒̄͋̇р҈̩͔̬̣͎̜̬̤͕͙̬͉̎̓̈́͊̒͌̈́̃а̷̳͈͈̰̥͙̗̰͇͚̩̙͌̎̒̉͗͛͑̂̂͌͑͛͂ͅͅс҈͉͚͕͙̦̲̘̯̱͖̱̭͔̣͖̾̋́͌̌̍͊͑͐̀͗̆͆и҉̮͉̣̤̩̖̪͉̫̀̈́̃͆̓̀́́̋͌̔̈́ͅв̸̣̗͈̖̟̞̰̳̳̄̇̿͆̿͊̇̎͌̉̒̆͂̓ы̵̭̗̥͎̳̘̲̠̝̪͖̲̐͋̍̍͆̑͊̓̔̐̆̆̄ͅͅͅе̸͍̰̣̫͚͉̟́́̓̀̎̈̆̀̿͗̈́̓̚ͅ ц̴̠̰̙̤͖̳͓͈͓̘͈̝͔͂̋̌͌̓̈͋̒͒̈́̿́̇̉в҈̝͖̤̯͈͎̗̭̤͕̫̘͓͈̃̐̉̽́̾͒͛͂̈̑̐ͅе̴̫͈̯̤͙̜͖̳̦̲̬͂̾͗͑͐̉̏̃̊́̌̓͑т̴͓͎̯̱͕̫͕̭͈̈́̾̇̓͋͌̆̾̋̚ы̷̭͙̬̜̰̲̞̲͎̂̓̓̌̎̌̂̄͑̌̉̆̇̚”””

       

       

       

       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꽃이 피었다.

       

       꽃이 피.

       

       꽃의 피.

       

       피.

       

       

       흐려져가는 의식속에서 무연은 어쩌면 이런 최후가 자신에게 어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은 이렇게 되어 마땅하다.

       

       그러니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무연이 생각할 때쯤이었다.

       

       

       

       “…정신 차려요, 무연 씨!”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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