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

       로던 백작은 골이 아팠다.

         

       아픈 이유는 수십 가지도 넘지만, 그중 그의 머리를 당장 아프게 하는 요소들은.

         

       “여보! 이건 단단히 따져야 해요! 어떻게 우리 애를 건드렸는데 그자가 퇴출되지 않는 거냐고요! 기사단에 단단히 따져야 해요!”

         

       막내아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아내가 바락바락 소릴 지르며 기사를 벌하라고 소리친다.

       부귀한 후작가의 여식으로 자라, 정치란 걸 모르는지 바보 같은 소릴 한다.

       기사단에 따진다는 게, 아니 백은사자와 싸운다는 게 정녕 무슨 의민지 모르는 걸까?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을 했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님이 말릴 때 들었어야 했다.

         

       허나 아내의 칭얼거림 정도는 어느 정도 넘겨들으면 그만이었다.

       나중에 풀어주면 되니.

       허나 그보다 앞선 심각한 문제들은.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기사란 인종은 생명력이 워낙 강한 이들이니 말입니다. 다만, 회복하려면 1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트롤의 신선한, 순도 80% 생혈(生血)이 있으면 단축될지도 모르지만.”

         

       은퇴직전인 기사단장을 이어 영지 기사단을 이끌어줘야 할 부기사단장의 회복세가 느리다는 것도 문제다.

       폴렛 가는 기사의 가문.

       명성을 노리는 자유기사와 용병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대결을 신청하는 게 일상이다.

       이를 받아주는 게 그들의 긍지이기도 하고.

         

       한데 하필 중요한 영지의 기사 중 하나가 저렇게 쓰러졌다.

       그것도 영지의 챔피언 소리 듣는 기사가.

         

       백작으로선 속이 얹힌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다.

         

       ‘트롤의 생혈이라니,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순도 80%인 트롤의 생혈이 있다면 회복이 빨라진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구하기 쉽겠는가?

       깊은 숲속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트롤이며, 설사 사냥에 성공한다고 한들 죽는 즉시 피가 응고되거나 탁해지는 것으로 인해 30% 순도도 잘 건졌다는 소리가 나오는 트롤의 생혈이다.

       80% 순도 생혈을 구하고 싶다면 오러 유저라도 대동해야 할 터.

         

       즉, 구하기 불가능하다는 의미.

         

       ‘머리가 아프구나, 아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주군,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아버지!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그대들까지 대체 왜 이러나.”

         

       영지를 수호해야 할 기사단과 후계를 이어야 할 장남까지.

       이번 일에 분개하여 언제라도 칼을 뽑을 기세다.

         

       이를 보며 백작은 아찔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생각이 없는 것인가?’

         

       기사나 정치에 대해 모르는 아내는 그렇다 치자, 한데 이놈들은 훗날 가문을, 아니 더 나아가 팬드래건을 수호해야 할 놈들이 아닌가?

       아니 당초 폴렛 가가 왕당파란 사실도 잊고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백은사자를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면, 이놈들의 목을 지금 당장이라도 베어야 함이 옳다.

         

       이놈들은 가문을 말아먹을 테니.

         

       ‘…내 잘못이군.’

         

       브리튼과의 3년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가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게 이토록 큰 잘못으로 돌아오는가.

         

       주위에 이토록 한심한 것들밖에 없다니, 자신이 자식들과 가문을 잘못 다스렸다.

       좀 더 엄히 다스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들도 이토록 나대진 않았을 터인데.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하는가.’

         

       백작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고민이 깊어 보입니다, 백작.”

         

       “…….”

         

       “허허, 하긴 가문을 다스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해합니다.”

         

       “…….”

         

       “어찌 아무런 대답도 안 해주십니까? 이 늙은이가 그토록 보기 싫었습니까? 무안하군요.”

         

       “…….”

         

       ─로던 백작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니, 어떠한 응대도 하지 못하며 그대로 손발이 덜덜 떨렸다.

         

       언제부터 저기 있던 걸까?

         

       밝은 달을 등진 채 음영이 짙은 그림자에서 슬며시 걸어오는 노인.

       겉보기론 인자하기 짝이 없는 노 집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로던은 결코 속지 않을 것이다.

         

       저 부드러운 목소리에 속지 않을 것이며.

       저 인자한 얼굴에도 속지 않을 것이다.

         

       ‘저 노인’이 일으킨 참사(慘事)를 절대 잊을 수 없는데, 어찌 속을 수 있으랴.

         

       로던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감히’ 내뱉었다.

         

       “아, 알버트 공….”

       “허허, 백작께서 저 같은 노인을 기억해주고,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버트 공! 우,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우리 가문은 결코 왕가를 거스를 생각이 없단 말이오!”

         

       그는 절규하듯 변명했다.

       이유도 없는 변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 정도로 로던은 그가 ‘무서웠다’

         

       그가 왕국의 단 셋밖에 없는 오러 유저라서?

         

       아니다.

         

       비록 그가 가진 무력은 강대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토록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운 이유는….

         

       “이단 심문을 하러 온 것은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제가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흘흘.”

         

       그의 ‘전직’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단심문관 존 레이 알버트.

         

       과거 아흔 개의 가문을 ‘멸문(滅門)’시킨 살인귀!

         

       그리고 로던은 여전히 기억한다.

       저 늙은이가 십자가를 등 뒤에 매고 다니며, 얼마나 무수한 사람을 꼬챙이에 끼우고 다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 속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다 과거의 얘기일 뿐. 이제 전 손을 다 씻었으니 백작께서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헛소리-!

         

       “…당시를 기억하는 원로들은 당신의 이름만 나와도 오줌을 지리고, 공포 때문에 머리에 피가 나도록 긁기 일쑤이요. 한데 과거일 뿐이라고?!”

       “젊었을 때 치기지요. 누구나 젊은 시절 열중하게 되는 분야가 있고, 이 늙은이가 열중했던 분야는 신의 가르침이었을 뿐입니다. 그 때는 제 삶의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뭐, 지금은 젊음을 모두 불태우고 뼈밖에 남지 않은 늙은이에 불과합니다만.”

       “…….”

       “허허, 웃으십시오, 백작. 이 타이밍엔 웃어야 하는 것입니다. 허허! 센스가 이렇게 없어서야 젊은이들이랑 어찌 어울리려고.”

         

       알버트는 그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남작이 백작의 얼굴에 손을 대는 행위가 감히 용납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이 늙은이 앞에서 차마 그런 말을 지껄일 위인은 없다.

         

       어느새 알버트는 로던의 입 꼬리를 억지로 올려주는 것으로 미소를 만들어주었고, 로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촉촉하게 젖어갔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적셔갔고, 그는 추위에 떨듯 오들오들 떨었다.

         

       그렇게 그의 입매가 억지스러운 반달을 그리자.

         

       “음, 좋은 미소입니다.”

         

       알버트는 만족스럽다며 점차 손을 떼었다.

         

       “……어, 어째서 찾아오신 것입니까.”

         

       백작은 공포에 떨면서도 물었다.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저 늙은이가 다신 안 나타날 테니까.

         

       “허허.”

         

       이것이 정답이었음일까.

       그는 흐뭇해했다.

         

       가문의 주인다운 영리한 판단이 아닐 수 없으니.

       그렇기에 ‘원래의 목적’을 바꾸기로 하며 그는.

         

       “아아, 별건 아니고. 이 노인이 주목하는 젊은이가 있는데, 그 젊은이가 최근 백작가와 얽힌 일이 있단 소식을 들었지 뭡니까. 그래서 이리 와봤습니다.”

       “서, 설마!”

       “백작. 백작은 훌륭한 귀족입니다. 세상이 제 것인 줄 아는 귀족파의 바보들이나. 중립파의 정신병자들과 달리 시국을 잘 아는 왕당파의 일원이니. 그러니까, ‘부디’ 이 노인네가 십자가를 들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찌,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허허, 답변은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스륵.

         

       다음 순간.

         

       그는 갑작스레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사라졌다.

         

       “…….”

         

       로던은 침묵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했지만, 로던은 제 얼굴에 남아 있는 온기와 억지로 올라간 입 꼬리를 느끼며 자신이 본 것이 귀신이 아닌 현실임을 인지했다.

         

       그리고 더욱이 그를 만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는.

         

       “……피?”

         

       피였다.

         

       그것도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

         

       자신의 피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알버트의 피도 아니리라.

         

       굳이 따지자면 분명 이건….

         

       ‘타인의, 타인들의 피.’

         

       섬찟!

         

       그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저 노인은 자신에게 오기 전 이미 피를 묻히고 왔다고.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피를 말이다…!

         

       로던은 이를 깨달으며 서서히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얕게 떨었다.

       만약 그가 먼저 숙이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찌 됐을지 깨달은 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도 무서운…!

         

       콰앙.

         

       “여보, 다시금 말하는데 이 일은 당장 왕실에게 따져야, ……여보?”

         

       “…….”

         

       “여, 여보? 다, 당신 왜 그래요? 여보…?”

         

       “…….”

         

       “다, 당신 울어요?”

         

       백작은 울먹였고, 아내는 당황했다.

         

       강직하기 그지없는 그가 우는 모습은 결혼 생활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그녀가 과연 어찌 알까.

         

       그가, 아니 가족 모두가 죽다 살아났음에 그가 얼마나 안도하고 있는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그렇게 백작은 울었고, 아내는 당황하며 서서히 그를 위로해주려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총 여섯이 넘는 신문사와 신문사를 후원한 상단 하나가 하루아침에 불길에 휩싸여 소각(燒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백작은 묵묵히 목검을 들고 제 아들을 찾아갔다.

         

         

       어느 달밤에 벌어진, ‘사소한 사건’의 결말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