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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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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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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제 실험실과 연결된 지하 창고에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윗부분이 뻥 뚫린 오크통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반짝이 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거리는 보라색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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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질은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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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옆에 놓인 다른 오크통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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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실험하는 데 문제는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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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러 두 개의 오크통을 허공에 띄웠다. 오크통은 미끄러지듯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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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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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창고 문을 닫고 나오자, 평소보다 북적거리는 실험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쪽에는 뿌리가 팔뚝만 한 풀이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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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는 마치 사람 얼굴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는데, 볼이 홀쭉해진 채 ‘흐엑,허엑..’ 소리를 내며 눈가로 추정되는 곳에서 갈색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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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꾸로 매달린 탓에 액체는 아래 받쳐놓은 비커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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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에도 다양한 약초나 부산물들이 독물을 뽑히고 있었다. 그 독물들을 합쳐 숙성시킨 게 오크통에 가득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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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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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오크통에 들어있던 액체를 실험실 한쪽에 놓인 검은 색 욕조에 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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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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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탄산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라색 액체가 출렁거리다가 이내 얌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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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텅 빈 오크통을 마법으로 띄워 창고에 내려보낸 후 실험실 한 가운데, 차가운 실험대 위에 앉아있는 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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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준비는 다 끝났으니 실험을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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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보다 하드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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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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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종종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잡혀 실험당하곤 했다. 딱히 내가 특별히 운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은 수천, 수만 단위로 실험을 진행하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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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나기 전에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오는 개그 세계의 특성상 그들의 실험이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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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난 온갖 실험을 당하며 어느새 실험이란 것에 익숙해졌고, 어느새 실험이 한 번씩 돌아오는 중간고사나 쪽지 시험쯤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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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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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처음에는 피부가 녹아내린다거나, 피가 철철 쏟아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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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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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아프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면 몸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다 실험을 당했던 사람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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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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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의 장기와 시선이 마주하게 되어도, 피가 살해 현장보다 더 뿜어져 나와도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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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당신 혹시 드래곤의 핏줄을 타고난 건 아니죠?”
   “에이, 그럴 리가요.”
   “아니면 부모님이 오크라던가?”
   “그건..너무 심한 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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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 정도로 못생겼나 싶어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아는 눈썹을 까딱거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뭔가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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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오크의 자식은 아니겠네요.”
   “…?”
   “흐음,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몸이길래 이렇게 회복이 빠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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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의 눈이 호기심을 반짝거렸다. 미아는 내 몸을 잘라보고, 부러뜨려보고, 독도 뿌려보더니 주삿바늘을 가져와 내 팔뚝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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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과 연결된 호스를 통해 피가 주르륵 빨려가 바닥에 놓인 커다란 통에 담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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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따로 장치도 없는데 피가 빠져나가네요?”
   “이렇게 보여도 바늘에 세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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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말에 바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팔뚝에 반쯤 꽂혀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바늘에 새겨진 마법진을 찾아내는 걸 포기하고 판타지 세계다운 실험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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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저런 거 없었는데. 언제 가져오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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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쪽은 동그랗고 긴 목을 가진 플라스크를 보며 감탄했다. 플라스크의 크기가 무려 사람의 상반신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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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어떻게 생긴 몸인 거지? 분명 온몸을 해부해봤는데도 알 수가 없어. 역시 머리를 열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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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살벌한 말에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피가 가득 담겨 찰랑거리는 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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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씨, 뭔 피가 저렇게 빨리 채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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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에서 저만한 피가 나온 것은 딱히 놀랍지 않다. 빠져나간 피는 원래 숨 쉬듯이 회복되는 게 당연한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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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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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피를 받던 통보다 더 큰 통을 가져와 거기에 피를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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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혈이 나기 시작하면 말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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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말은 ‘숨 쉬는 게 지치면 말해요.’나 다를 바 없는 말이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주변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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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이후 몇 개의 통을 더 가져와 피를 채웠지만 난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결국 미아는 주삿바늘을 팔뚝에서 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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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이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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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잡한 표정을 짓는 미녀를 보자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개처럼 미아의 눈치를 슬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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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그럼 다음 실험을 해볼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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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바짝 말라 ‘히에엑..’ 소리를 내는 뿌리 식물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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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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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말에 순순히 실험대 위에 눕자 순식간에 상체가 벌어지더니 흉터가 가득한 배가 마법에 의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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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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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없이 몸을 덜덜 떨던 식물이 비명을 지르며 내 뱃속에 꾹 하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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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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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뿜어져 나오는 피를 익숙하게 실드로 막으며 뱃속에 쑤셔박아진 독초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뱃속에 들어간 뿌리 식물을 보며 안타까움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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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쌍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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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고 있다. 내 장기들이 평범하게 생체 활동을 도와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그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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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익,힉…”
   “제성..제서엉…”
   “끄흐흡,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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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속에 박힌 독초가 어느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말은커녕 제대로 된 지성도 갖추지 못한 독초가 울기 시작하자 미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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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저 안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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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새로 온 신입이냐?”
   “이 녀석 패기도 없어? 왜 인사도 안 해?”
   “야, 조용히 해봐. 저 녀석 말하는 거 들어보게.”
   “학,학!! 바이러스? 바이러스야?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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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내 장기는 정말로 ‘살아있다.’ 그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 상황에서 대화가 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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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음침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실험당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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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머리를 눈가까지 가린 음침한 그러나 마음이 넓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호기롭게 내 배를 갈랐다가 장기들에게 대차게 욕을 먹고 울면서 실험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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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그때 분명 납치당한 상황임에도 서럽게 우는 그녀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갈라진 배는 장기들이 알아서 닫아버리기도 했다. 아무리 개그 세계에 익숙해진 나라도 충격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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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소심하거나 음침한 사람이 내 배를 열어버리면 장기들이 깨어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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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배를 갈랐을 땐 별 반응이 없는 녀석들이 이상하게 소심하거나 음침한 이들이 배를 갈랐다 하면 그렇게 미쳐 날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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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약약강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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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독초는 엉엉 울다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든 풀처럼 갈색으로 변한 채 오들오들 몸을 떨다가 그대로 깩하고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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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 선량한 친구가 이렇게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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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사회를 버티지 못하고 그렇게 한 생명이 떠났다. 어쩐지 눈물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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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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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세상의 모든 상식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들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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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우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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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평소와 달리 저절로 다물려 닫혀버렸다. 아마 춥다고 닫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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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왜 이렇게 되는 거죠? 평소에는 이렇게 아물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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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베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아물지 않았다. 당연했다. 장기들에게 미아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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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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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어딘가 텅 빈 눈으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던 범위가 시험 범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등학생 2학년의 표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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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실험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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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더 이상의 이해를 포기하고 준비해놓은 마지막 실험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녀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내 몸 곳곳에 상처를 만들고 마법으로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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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회복 속도가 경이로운 수준이라 고정하는데 꽤 많은 마기가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니 쉽게 몸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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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합을 주고 몸을 가볍게 털어내면 마법이 적용되었든 말든 몸이 회복되어 버리기 때문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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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에 들어가요.”
   “저건..”
   “아티아의 독, 이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독 중 하나에요. 마법 처리된 물건이 아니면 보관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독이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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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에 들어가면 해골이 되려나? 종종 너무 심각한 독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뼈다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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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조금 부끄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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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몸의 중요 부위보다 더 깊숙한,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뼈가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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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부끄럽다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처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욕조에 발을 집어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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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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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과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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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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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발을 빼냈다. 그러자 미아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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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고통이 느껴졌나요? 아니면 목숨의 위협이나…!”
   “아, 그게. 저 옷이 별로 없어서. 옷이 녹아내리면 조금 곤란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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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또다시 영혼이 사라진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에 머쓱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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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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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열린 실험실 문틈 사이로 익숙한 녹안과 눈이 마주쳤다. 노아의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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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저속잔루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

제가 봤던 개그물 중 가장 충격적이었고, 성인이 되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건…보보보였습니다.

오늘도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D다음화 보기

“어디 보자.”

미아는 제 실험실과 연결된 지하 창고에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윗부분이 뻥 뚫린 오크통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반짝이 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거리는 보라색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품질은 나쁘지 않네.’

미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옆에 놓인 다른 오크통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실험하는 데 문제는 없겠어.”

미아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러 두 개의 오크통을 허공에 띄웠다. 오크통은 미끄러지듯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끼익,탁.

지하 창고 문을 닫고 나오자, 평소보다 북적거리는 실험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쪽에는 뿌리가 팔뚝만 한 풀이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뿌리는 마치 사람 얼굴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는데, 볼이 홀쭉해진 채 ‘흐엑,허엑..’ 소리를 내며 눈가로 추정되는 곳에서 갈색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탓에 액체는 아래 받쳐놓은 비커에 떨어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약초나 부산물들이 독물을 뽑히고 있었다. 그 독물들을 합쳐 숙성시킨 게 오크통에 가득 들어있었다.

촤아아악 -.

미아는 오크통에 들어있던 액체를 실험실 한쪽에 놓인 검은 색 욕조에 부어버렸다.

부글부글.

마치 탄산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라색 액체가 출렁거리다가 이내 얌전해졌다.

미아는 텅 빈 오크통을 마법으로 띄워 창고에 내려보낸 후 실험실 한 가운데, 차가운 실험대 위에 앉아있는 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났으니 실험을 시작하죠.”

평소보다 하드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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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잡혀 실험당하곤 했다. 딱히 내가 특별히 운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은 수천, 수만 단위로 실험을 진행하곤 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기 전에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오는 개그 세계의 특성상 그들의 실험이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하여튼, 난 온갖 실험을 당하며 어느새 실험이란 것에 익숙해졌고, 어느새 실험이 한 번씩 돌아오는 중간고사나 쪽지 시험쯤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치이익.

물론 처음에는 피부가 녹아내린다거나, 피가 철철 쏟아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푸화악!

딱히 아프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면 몸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다 실험을 당했던 사람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우드득.

그 탓에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의 장기와 시선이 마주하게 되어도, 피가 살해 현장보다 더 뿜어져 나와도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리안, 당신 혹시 드래곤의 핏줄을 타고난 건 아니죠?”

“에이, 그럴 리가요.”

“아니면 부모님이 오크라던가?”

“그건..너무 심한 욕 아닐까요?”

내가 그 정도로 못생겼나 싶어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아는 눈썹을 까딱거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뭔가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크의 자식은 아니겠네요.”

“…?”

“흐음,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몸이길래 이렇게 회복이 빠른 건지…”

미아의 눈이 호기심을 반짝거렸다. 미아는 내 몸을 잘라보고, 부러뜨려보고, 독도 뿌려보더니 주삿바늘을 가져와 내 팔뚝에 꽂았다.

바늘과 연결된 호스를 통해 피가 주르륵 빨려가 바닥에 놓인 커다란 통에 담기기 시작했다.

“와, 따로 장치도 없는데 피가 빠져나가네요?”

“이렇게 보여도 바늘에 세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거든요.”

그녀의 말에 바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팔뚝에 반쯤 꽂혀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바늘에 새겨진 마법진을 찾아내는 걸 포기하고 판타지 세계다운 실험실을 구경했다.

‘전에는 저런 거 없었는데. 언제 가져오신 거지?’

아래쪽은 동그랗고 긴 목을 가진 플라스크를 보며 감탄했다. 플라스크의 크기가 무려 사람의 상반신만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몸인 거지? 분명 온몸을 해부해봤는데도 알 수가 없어. 역시 머리를 열어봐야 하나?”

그녀의 살벌한 말에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피가 가득 담겨 찰랑거리는 통이 보였다.

‘와씨, 뭔 피가 저렇게 빨리 채워지지?’

내 몸에서 저만한 피가 나온 것은 딱히 놀랍지 않다. 빠져나간 피는 원래 숨 쉬듯이 회복되는 게 당연한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텅.

미아는 피를 받던 통보다 더 큰 통을 가져와 거기에 피를 받기 시작했다.

“빈혈이 나기 시작하면 말해요.”

“네.”

저 말은 ‘숨 쉬는 게 지치면 말해요.’나 다를 바 없는 말이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주변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아는 이후 몇 개의 통을 더 가져와 피를 채웠지만 난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결국 미아는 주삿바늘을 팔뚝에서 빼버렸다.

“하아…이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착잡한 표정을 짓는 미녀를 보자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개처럼 미아의 눈치를 슬슬 봤다.

“후, 그럼 다음 실험을 해볼게요.”

“네.”

미아는 바짝 말라 ‘히에엑..’ 소리를 내는 뿌리 식물을 가져왔다.

“누워봐요.”

그녀의 말에 순순히 실험대 위에 눕자 순식간에 상체가 벌어지더니 흉터가 가득한 배가 마법에 의해 갈라졌다.

“꾸엑 -..!”

힘없이 몸을 덜덜 떨던 식물이 비명을 지르며 내 뱃속에 꾹 하고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될지…”

미아가 뿜어져 나오는 피를 익숙하게 실드로 막으며 뱃속에 쑤셔박아진 독초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뱃속에 들어간 뿌리 식물을 보며 안타까움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불쌍한 녀석.’

나는 알고 있다. 내 장기들이 평범하게 생체 활동을 도와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그래, 살아있다.

“히익,힉…”

“제성..제서엉…”

“끄흐흡,엄마..”

뱃속에 박힌 독초가 어느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말은커녕 제대로 된 지성도 갖추지 못한 독초가 울기 시작하자 미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마 저 안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것이다.

“뭐야? 새로 온 신입이냐?”

“이 녀석 패기도 없어? 왜 인사도 안 해?”

“야, 조용히 해봐. 저 녀석 말하는 거 들어보게.”

“학,학!! 바이러스? 바이러스야? 응? 응?”

그렇다. 내 장기는 정말로 ‘살아있다.’ 그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 상황에서 대화가 통하기도 한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음침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실험당할 때였다.

앞머리를 눈가까지 가린 음침한 그러나 마음이 넓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호기롭게 내 배를 갈랐다가 장기들에게 대차게 욕을 먹고 울면서 실험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난 그때 분명 납치당한 상황임에도 서럽게 우는 그녀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갈라진 배는 장기들이 알아서 닫아버리기도 했다. 아무리 개그 세계에 익숙해진 나라도 충격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소심하거나 음침한 사람이 내 배를 열어버리면 장기들이 깨어났지.’

다른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배를 갈랐을 땐 별 반응이 없는 녀석들이 이상하게 소심하거나 음침한 이들이 배를 갈랐다 하면 그렇게 미쳐 날뛴다.

‘강약약강의 표본.’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독초는 엉엉 울다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든 풀처럼 갈색으로 변한 채 오들오들 몸을 떨다가 그대로 깩하고 죽어버렸다.

‘아아 -… 선량한 친구가 이렇게 가는구나.’

무서운 사회를 버티지 못하고 그렇게 한 생명이 떠났다. 어쩐지 눈물이 흘러나온다.

“이게,이게 무슨…”

미아는 세상의 모든 상식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들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쭈우웁.

배는 평소와 달리 저절로 다물려 닫혀버렸다. 아마 춥다고 닫았을 것이다.

“왜…? 왜 이렇게 되는 거죠? 평소에는 이렇게 아물리가 없는데?!”

미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베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아물지 않았다. 당연했다. 장기들에게 미아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아…”

미아는 어딘가 텅 빈 눈으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던 범위가 시험 범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등학생 2학년의 표정 같았다.

“…마지막 실험을 하죠.”

미아는 더 이상의 이해를 포기하고 준비해놓은 마지막 실험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녀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내 몸 곳곳에 상처를 만들고 마법으로 고정했다.

내 회복 속도가 경이로운 수준이라 고정하는데 꽤 많은 마기가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니 쉽게 몸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

기합을 주고 몸을 가볍게 털어내면 마법이 적용되었든 말든 몸이 회복되어 버리기 때문일 터였다.

“저기에 들어가요.”

“저건..”

“아티아의 독, 이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독 중 하나에요. 마법 처리된 물건이 아니면 보관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독이죠.”

“오…”

저기에 들어가면 해골이 되려나? 종종 너무 심각한 독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뼈다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건 조금 부끄러운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몸의 중요 부위보다 더 깊숙한,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뼈가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건.

하지만 부끄럽다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처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욕조에 발을 집어넣자.

치이이익!

옷과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으앗!”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발을 빼냈다. 그러자 미아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고통이 느껴졌나요? 아니면 목숨의 위협이나…!”

“아, 그게. 저 옷이 별로 없어서. 옷이 녹아내리면 조금 곤란해서요.”

“…”

그녀가 또다시 영혼이 사라진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에 머쓱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던 중.

“…!”

살짝 열린 실험실 문틈 사이로 익숙한 녹안과 눈이 마주쳤다. 노아의 눈동자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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