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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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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성종의 시체는 뒤늦게 달려온 경찰이 처리해주었다. 경찰은 우리에게 경례를 하며 품속에서 수표 종이 하나를 꺼내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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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포상금입니다. 시청으로 가시면 교환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오- 정말요?”

    “예. 나중에 정의로운 시민상도 같이 수여될 예정이니, 그때 꼭 참석해주셨으면 하는 바…….”

    “네-! 꼭 갈게요!”

    ​

    싱글벙글 웃으며 알겠다고 답한 비라는 경찰이 저 멀리 사라지자 수표를 냅다 쓰레기통 안에 집어 던졌다. 탁탁- 양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비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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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악의 조직원이 경찰한테 상 받고 그럴 수는 없잖아?”

    “레비탄 씨는 경찰 일 하던데요.”

    “일 하는 거랑 상 받는 건 다르지? 걔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할 수 있는 게 경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하고.”

    ​

    그리 말한 비라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걸쳐 올렸다. 툭- 가녀린 팔뚝이 내 몸을 강제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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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보다, 어때? 이 누나 굉장하지. 반했어? 응?”

    “굉장하다면 굉장한데…… 팔다리 날아간 적 있는 허접한 능력이잖아요.”

    “아-! 그걸 건드리는 거야!? 나름 트라우마인데!”

    ​

    비라는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뾰루퉁하게 내밀었다. 다 큰 성인 여성이 의도적으로 내보이는 애교는 솔직히 말해서 보고 있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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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하느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비라도 자기의 애교가 너무 심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실웃음을 내뱉었다.

    ​

    “헤헤- 좀 과했나?”

    “아뇨. 잘 어울리세요.”

    “칭찬이 아니라 욕 같은데? 아무튼- 어지간하면 내 능력을 뚫고 너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팔다리 날아갔을 때도 아가씨는 지켰고.”

    ​

    나는 방금 전 보았던 각성종의 돌격을 떠올렸다. 각성종의 크기는 어지간한 코뿔소만했으며 그 속도는 어지간한 차량보다 재빨랐다. 그러니까 수천 킬로그램 무게의 짐승이 시속 백여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들었단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이 속도를 낼 수 있는 짐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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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육의 힘은 단면적에 비례하는 데 반해 무게는 부피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각성종보다 백 배는 가벼운 치타가 겨우 시속 100여킬로미터밖에 내지 못 한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

    즉, 각성종의 돌진은 단순히 근육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초능력이 뒤섞인 돌진이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 안에 담긴 물리적 에너지는 전차의 포격만큼이나 위협적이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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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미동도 없이 막아내다니, 생각보다 튼튼한데.’

    ​

    순간적으로나마 과학자로서의 본성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대체 얼마나 큰 충격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 저걸 부수려면 뭘 들고 와야할 지-.

    ​

    나는 그녀의 배리어를 샅샅이 분석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억지로 짓눌렀다. 이 세상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쓴웃음지은 나는 그녀에게서 천천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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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냄새나요.”

    “……그, 그래? 미안- 내가 너무 가까이 달라붙었지…?”

    “농담이에요.”

    “─이 녀석이!”

    ​

    비라가 장난스럽게 내 전신에 달라붙었다. 태양 아래 달궈져 땀으로 끈적거리는 살결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

    ​

    * * *

    ​

    ​

    그 뒤.

    조직으로 복귀한 비라는 제 복귀를 조직원들에게 알렸다.

    ​

    “비라─? 팔다리가 다시 생겼군. 분명 고칠 수 없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응! 운이 좋았지.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

    “하긴, 내 몸뚱아리도 고쳐주는 녀석인데 팔다리쯤이야…… 그렇다면 한 판 뜰 수 있겠군?”

    ​

    갈름은 팔다리 돌아온 비라를 보며 기쁘게 미소지었다.

    ​

    “어, 언니-!? 팔다리가…….”

    “아일레일레-! 우리 아일레 언니가 안아보자!”

    “으으윽…… 떠, 떨어져주세요….”

    ​

    아일레는 어째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비라를 바라보았다. 기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복합적인 감정이 그녀를 괴롭히는 듯 했다.

    ​

    “비라양-!? 다 나은 거양!?”

    “레비땅! 다 나았지롱!”

    “꺄아아앙-! 좋앙! 같이 놀러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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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탄은 과하리 만치 활기차게 비라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일레가 그토록이나 떨떠름했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

    음침아싸찐따인 아일레는 외향적이고 활기찬 사람에게 쥐약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오직 한 사람. 레비탄뿐이었다. 

    ​

    그런데 제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팔다리 돋아나더니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인종인 인싸로 초특급진화해버린 상황. 그녀의 이성과 본능이 인싸가 된 비라를 보며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리라.

    ​

    ‘저건 시간이 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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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일레의 미래를 예측하곤 웃음지었다. 그녀가 갑자기 인싸가 된 비라를 거북해하건 어쨌건 결국 함락당해선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질 것이다. 거북했던 인싸와 친하게 지내며 본인도 나름 인싸가 된 기분을 즐길 것이고.

    ​

    그리하여 저 암울한 성격도 조금은 고쳐지리라. 그건 좋은 일이었다. 여러모로. 언제까지 음침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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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과학자 씨…….”

    “아일레? 비라 씨랑 더 놀지. 왜 왔어?”

    “그, 그건 좀… 언니가 다른 사람이 됐어요…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것마냥….”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걸.”

    “아무튼 이야기 하고 있으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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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는 그리 말하며 내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그녀가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말 없이 어깨 위치를 조정해주자, 아일레는 기쁜 듯 미소지었다.

    ​

    쉴틈없이 말을 걸어대며 신경을 갉아먹던 비라, 레비탄에게서 벗어난 아일레는 내 옆자리가 마치 휴식처라는 듯 완전히 긴장을 풀고서 안정을 취했다. 

    ​

    “……과학자 씨.”

    “응. 왜?”

    “며칠 뒤에…… 마법소녀 코믹북이 열리거든요…? 가,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일레 부탁이라면 어디든지.”

    “저, 정말이죠!?”

    ​

    아일레는 두 눈을 부릅뜨며 재차 확인을 받았다. 나는 얼마든지 같이 가주겠다고 확언을 해주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손가락을 꼬아 약속하고 도장까지 찍었지만…….

    ​

    같이 가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게 그토록 기쁜지, 아일레로서는 드물게 두 다리를 흔들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익숙한 멜로디. 그녀가 자주 보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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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비라의 복귀는 악의 조직에게 평화를 선물했다. 원래도 아무 일 없긴 했지만 이토록 활기차진 않았더랬다. 악의 조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음습하고 음침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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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롭네…… 악의 조직스럽지 않게도.’

    ​

    그러나 그 평화가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나는 저 멀리 대련하는 비라와 갈름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까지고 이 평화가 지속되리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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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약속의 날. 그러니까 아일레와 함께 마법소녀 코믹북인지 뭔지 하는 행사로 가기로 한 날. 

    아일레는 놀랍게도 악의 마법소녀 복장을 차려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

    “……아일레?”

    “왜, 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꼴로 가는 건 조금…….”

    ​

    본인이 악의 마법소녀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뭔지. 지적을 받은 아일레는 괜찮다는 듯 어디선가 커다란 바바리 코트를 꺼내 들었다.

    ​

    마법소녀복 위로 트렌치 코트를 걸친 아일레는 이제 되었다는 양 양팔을 쭈욱 뻗었다.

    ​

    “이, 이러면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은데…….”

    “아, 아뇨! 정말 괜찮아요! 저를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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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 믿음직스럽지 못한 말투였지만, 결국 나는 그녀에게서 마법소녀복을 벗기는 데 실패했다. 본인이 저렇게 가고 싶다는 데 어쩔 것인가?

    ​

    보스가 준비해준 차량에 올라타 행사장으로 향한 우리는 행사장에 도착하고 나서 아일레가 그토록 괜찮다고 외쳐댔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

    “우, 우와아아…! 저건 1세대 마법소녀인 매지컬 캐논…! 퀄리티 좋다….”

    “……무슨 마법소녀 코믹북이라며?”

    “네, 네에에-! 마법소녀 굿즈를 파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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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엔 각양각색의 마법소녀로 코스프레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했던가. 진짜 마법소녀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짜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흥분을 금치 못 하던 아일레는 곧장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코트를 벗어던졌다. 이 행사장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돋보이는 악의 마법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시선이 아일레를 향해 몰려든다.

    ​

    “……악의 마법소녀다.”

    “진짜 아냐?”

    “바보야. 진짜가 이런 데를 왜 오냐?”

    ​

    사람들은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퀄리티를 갖춘 아일레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 탄성이 그토록 기분 좋은지, 아일레는 움찔움찔 몸을 떨어댔다.

    ​

    슬쩍- 뒤를 돌아본 아일레는 마치 허락을 기다리는 애완동물처럼 나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지. 가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일레는 멋지게 모델 워킹을 하며 마법소녀들 한복판을 걸어나갔다.

    ​

    수많은 가짜들 사이에서, 오직 단 하나의 진짜가 빛을 발했다.

    ​

    “─에이트.”

    “네. 비라 씨.”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

    비라는 행사장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보며 그리 읊조렸으나, 나는 딱히 걱정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자고로 이런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오타쿠요 오타쿠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는 선입견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

    물론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무능력자가 장애인 취급 받을 정도로 모든 이들이 초능력 가진 세상이다.

    ​

    비라의 능력을 뚫을 정도로 위험하면서 정신병까지 가진 사람은 진즉에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들어가 있겠지.

    ​

    “걱정마요. 이런 곳에 설마 위험한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 방심이 가장 위험하단 말이지…….”

    “비라 씨를 믿는 거예요.”

    “호위를 믿는 건 좋은데….”

    “괜찮다니까요? 애시당초 이런 곳에 위험한 능력자가 올 리가 없다니까 그래도.”

    ​

    나는 그리 말하며 행사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비라는 내 옆에 꽉 달라붙은 상태로 주변을 힐끔힐끔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이런 곳이 익숙치 않은 애인쯤으로 보인 걸까, 주변에서 오타쿠들의 살기등등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

    살의 섞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행사장 안을 돌아다니던 어느 순간, 누군가가 비라와 부자연스럽게 접촉했다.

    ​

    “앗- 죄송.”

    ​

    좁아터진 곳에서 유약해보이는 비라를 노린 성추행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내와 부딪친 비라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

    갑자기 사라진 비라에게 반응할 틈도 없이, 그 사내는 씨익 웃으며 내게도 손을 갖다댔다. 그 손이 닿는 순간 내 육신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어?”

    “아저씨 안녕?”

    ​

    차량 안으로 납치당한 나는 곧이어 의식을 잃고서 기절했다. 이 또한 무슨 초능력의 일종…….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나는 주변이 꽉 막힌 어느 방 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앞에는 방금 전 나와 부딪친 사내가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리자, 뒤늦게 납치범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

    “이 새끼 웃는데?”

    “냅둬, 좋은 꿈이라도 꿨나보지.”

    ​

    악의 조직 간부로서 무척이나 수치스럽게도.

    나는 납치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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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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