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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19화. 지금 바로 지상으로
     
     
     
     
     
     
     
     
   강호가 빠르게 낙하지점으로 달려가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레이나를 받아 안았다.
     
   터억.
     
   “윽!”
     
   강호는 순간 묘한 충격을 받았다.
     
   파직.
     
   리사를 두르고 있던 자잘한 전격 스파크들이 한순간에 강호에게 흡수돼 사라졌다.
     
   ‘뭐지?’
     
   의문과 동시에 상태창에 긴급 메시지가 떴다.
     
   [재난 매뉴얼 긴급 패치]
   [(신규)24장. 외계/이계]
   […]: …….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진행률]: 2%
     
   이젠 익숙한 현상이었지만, 내용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쿠우웅. 쿵!
     
   그 사이에도 폭발음은 더 크게, 더 자주, 더 가까이 들려왔다.
   당연히 진동도 강해졌다.
     
   “으으.”
   “어, 어떡해!”
     
   사람들은 이제 패닉 상태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알고 있었다.
   저 문을 지나지 못하면 생매장된다는 것을 말이다.
     
   “비켜요!”
     
   어느새 리사의 몸에 화염이 둘려있었다.
     
   “강제 연소. 위드 파이어.”
     
   그녀가 읊조린 것은 지금까지처럼 화학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화르륵!
   콰아아아아!
     
   리사를 중심으로 한바탕 화염 폭풍이 일었다.
     
   “흡!”
     
   강호는 얼른 방어막을 두르며 뒤로 빠졌다.
   리사가 생각하는 바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도왔다.
     
   ‘불로 불을 끄는 것. 좋은 시도다. 과연, 홍염이 흑염을 잠재울 수 있을까?’
     
   강호는 리사의 화염에 조금은 기대했다.
   레이나의 물리력이 막히고, 그 과정에서 흑염체가 자신과 같은 전기 속성을 보여 상성을 생각해 본 것이다.
     
   ‘차라리 화염이라면….’
     
   하다못해 틈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콰가가가가!
   후우우웅!
     
   지난번 방사포를 능가했을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
   정말이지 파괴력 하나만큼은 압권이었다.
     
   사람들도 리사의 몸을 두른 광포한 화염 폭풍과 그녀의 팔을 타고 쏟아져 나가는 폭포수 같은 불길에 탄성을 질렀다.
     
   “오오오!”
   “와아!”
     
   함께 생존해 오면서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그랬다.
   리사의 화염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우우우우우웅.
     
   검붉은 화염이 흑막을 덮쳤을 때, 기이한 공명이 울리며 리사의 불길을 전부 흡수해버렸다.
     
   쑤하아아아아.
     
   강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고 리사를 돌아봤다.
   그녀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이를 악물고 있었다.
     
   “크읍!”
     
   마치 흑막으로 빨려가는 걸 겨우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토시!”
     
   강호의 외침에 넋 놓고 있던 사토시가 무조건 반사처럼 리사에게 달렸다.
     
   파앗!
     
   거의 동시에 리사가 탈진한 듯 푹 쓰러졌다.
     
   털썩.
     
   그 상태로 정말로 흑막으로 딸려 가기 시작했다.
     
   츠으으으.
     
   다행히 사토시가 제때 리사에게 도착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쉬학.
     
   그의 손에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모를 검은 기운이 뭉글거리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단검의 궤적을 따라 붉은 선이 허공에 휙 그어졌다.
     
   서걱.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뭔가가 잘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곤 마치 철근 다발의 절단면처럼 가는 불꽃이 흩날리다가 사라졌다.
     
   파스스스스.
     
   그제야 바닥을 쓸며 끌려가던 리사의 몸이 멈췄다.
     
   짧았던 일련의 과정을 보며, 강호는 안도하는 대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저 뮤턴트들, 다 이런 식으로 빨려가 죽었구나.’
     
   이능력을 사용하면 그 힘을 흡수해버리는 흑염체라니.
   리사를 보니 이능력만 가져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는 정말 일어설 힘도 없는 것처럼 지쳐 보였다.
   순식간에 체력까지 전부 빨아 가버린 것이다.
   그것으로 또 한 가지를 알 것 같았다.
     
   ‘이능력이 없으면 생명력을 흡수하는군.’
     
   평범한 인간은 껍데기조차 남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호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저런 괴 에너지체를 대체 어떻게 없애야 하는 건지 좀처럼 해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사람들의 동요를 통제하고 있는 인데르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어김없이 전음이 들려왔다.
     
   [나도 봤네.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반사하기도 하는 전이체야.]
   –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아닙니까?
   […….]
     
   인데르는 강호가 무얼 말하는지 알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흡수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시켜 터뜨리거나, 반대로 저 흑염체를 통째로 흡수하거나.’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실현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유는 상대의 한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살길을 틀어막고 있는 저 흑염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뮤턴트와 인간을 흡수했을지, 어림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배불려 터트린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반대의 경우라면 더더욱 불가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인데르는 딸리는 자신의 두 손을 봤다.
     
   ‘하아.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절망감보다는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
     
   마침 강호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레이나가 눈을 떴다.
     
   “으음…. 아, 고마워요.”
     
   잠깐 눈동자를 굴리더니, 빠른 상황 판단 후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일으켰다.
     
   비틀.
     
   “어?”
     
   역시나, 레이나도 체력이 바닥이었는지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주저앉았다.
     
   텁.
     
   다시 강호 품에 안긴 레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걸 없애는 건 불가능해요.”
     
   그건 레이나가 직접 부딪쳐 본 소감이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그녀의 경험이었다.
     
   강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두려움, 절망, 혹은 포기.
     
   인데르와 사람들도, 기진맥진한 리사와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사토시도.
   그래서 제 품에 있는 레이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 네.”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힘겹게 대답했다.
   강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한 가지 방법, 이제 막 생겼다.”
     
   [긴급 패치 완료]
   [신규 업데이트 내용]
   [(신규)24장. 외계/이계]
   […]: …….
   [3절-구성체]
   [이름]: 다크앱.
   [종류]: 모조 흑동(黑洞:유사 블랙홀).
   […]: …….
   [현재 상태]: 포화도 98%
     
   인데르와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정보가 생겼다.
     
   ‘그거면 충분하다. 다만,’
     
   강호는 레이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미 바닥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뭐든 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내가 2%를 채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망설일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저벅.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가는 강호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천성인 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희생을 선택하는 자신이, 기특하기보단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하지만 강호는 더 걷지 못했다.
     
   컹!
     
   울프가 그의 앞을 막아서서 얼굴을 비볐다.
     
   끼잉.
     
   어쩐지 울프의 눈이 강호의 선택을 모두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강호는 그런 울프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울프. 남은 일행들, 잘 부탁한다.”
     
   그러자 울프가 그의 손길을 거부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공명감 좋은 하울링을 길게 내뱉기 시작했다.
     
   아오오오올~
     
   순식간이었다.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울프의 모습이 한순간에 쑥 달려 나갔다.
     
   크르릉!
   파팟!
     
   지하 1층까지 올라오며 코뿔소만큼 몸집이 커진 울프의 도약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멋있었다.
     
   ‘아.’
     
   울프는 여전히 농익은 검은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는 흑염체를 향해 날았다.
   그러고는 온몸으로 들이받듯 충돌했다.
     
   슈욱.
   콰광!
     
   “…….!”
     
   엄청난 파장이 울프의 몸을 감싸며 폭발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쿠구구구구구.
     
   그런데, 신기하게도 폭발의 여파가 울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핵이라도 터진 것 같은, 도시 정도는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의 폭발인데, 어떻게….’
     
   울프가 야수의 울부짖음을 사납게 토해냈다.
     
   크릉!
   크하아아아!
     
   마치 홀로 보이지 않는 적과 사투를 벌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속성]: (신규)영혼 감지 : 영혼 감화. (신규)비물질 흡수.
     
   동시에 인데르가 한 말이 맞물려 생각났다.
     
   – 저 흑염은 비물질 에너지 결정체라네.
     
   절로 헛숨이 터졌다.
     
   하!
     
   ‘개가 영혼이나 귀신을 본다는 미신 같은 옛말을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는데.’
     
   처음 달라진 울프의 능력을 보고 정말 그랬었다.
     
   아우우우울~!
     
   늑대의 긴 하울링에 전율이 일었다.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 같은 그 울부짖음에서 울프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울프!”
     
   얼마 지나지 않아, 울프의 몸이 암흑의 빛을 빨아들이면서 점차 흐려졌다.
     
   사아아아.
   스르륵.
     
   곧 흑염체와 함께 사라졌다.
     
   “… 울프!”
     
   * * *
     
   “울프가, 사라졌어요.”
     
   사토시의 얼빠진 중얼거림이 겨우 정적 일부를 밀어냈다.
   그리고 레이나가 말했다.
     
   “흑염체도 없어졌어.”
   “…….”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울프의 능력을 볼 수 있었던 강호만은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희생.’
     
   울프가 흑염체를 제 몸에 품고 그 안에서 폭발을 담아냈다.
   흡수해버린 것이다.
     
   강호 자신이 흑염체의 포화도를 채우려고 했던 것과 반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울프의 선택이 옳았다.
     
   ‘그게 밖에서 그대로 폭발했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정은 한 가지뿐이었다.
     
   ‘전멸.’
     
   세계 종 보관소와 함께 일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지금 일행은 동료를 잃은 슬픔에 잠겼다.
   울프는 단지 반려견이나 명령을 잘 수행하는 군견이 아니었다.
   강호고, 리사고, 레이나고, 사토시였다.
     
   ‘작전 중 동료를 잃는 일은 더는 없을 줄 알았더니.’
     
   강호는 잠깐 아랫입술을 물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인데르 박사님은 괜찮은 건가?”
     
   인데르의 상태를 살피는 리사에게 물었다.
   그는 흑염체가 사라지기 직전 극단적인 고통에 정신을 잃은 후 아직 의식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신체 기능에는 이상이 없어요. 호흡, 맥박 다 정상이고 외상도 없어요.”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지상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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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지금 바로 지상으로

강호가 빠르게 낙하지점으로 달려가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레이나를 받아 안았다.

터억.

“윽!”

강호는 순간 묘한 충격을 받았다.

파직.

리사를 두르고 있던 자잘한 전격 스파크들이 한순간에 강호에게 흡수돼 사라졌다.

‘뭐지?’

의문과 동시에 상태창에 긴급 메시지가 떴다.

[재난 매뉴얼 긴급 패치]

[(신규)24장. 외계/이계]

[…]: …….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진행률]: 2%

이젠 익숙한 현상이었지만, 내용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쿠우웅. 쿵!

그 사이에도 폭발음은 더 크게, 더 자주, 더 가까이 들려왔다.

당연히 진동도 강해졌다.

“으으.”

“어, 어떡해!”

사람들은 이제 패닉 상태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알고 있었다.

저 문을 지나지 못하면 생매장된다는 것을 말이다.

“비켜요!”

어느새 리사의 몸에 화염이 둘려있었다.

“강제 연소. 위드 파이어.”

그녀가 읊조린 것은 지금까지처럼 화학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화르륵!

콰아아아아!

리사를 중심으로 한바탕 화염 폭풍이 일었다.

“흡!”

강호는 얼른 방어막을 두르며 뒤로 빠졌다.

리사가 생각하는 바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도왔다.

‘불로 불을 끄는 것. 좋은 시도다. 과연, 홍염이 흑염을 잠재울 수 있을까?’

강호는 리사의 화염에 조금은 기대했다.

레이나의 물리력이 막히고, 그 과정에서 흑염체가 자신과 같은 전기 속성을 보여 상성을 생각해 본 것이다.

‘차라리 화염이라면….’

하다못해 틈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콰가가가가!

후우우웅!

지난번 방사포를 능가했을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

정말이지 파괴력 하나만큼은 압권이었다.

사람들도 리사의 몸을 두른 광포한 화염 폭풍과 그녀의 팔을 타고 쏟아져 나가는 폭포수 같은 불길에 탄성을 질렀다.

“오오오!”

“와아!”

함께 생존해 오면서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그랬다.

리사의 화염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우우우우우웅.

검붉은 화염이 흑막을 덮쳤을 때, 기이한 공명이 울리며 리사의 불길을 전부 흡수해버렸다.

쑤하아아아아.

강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고 리사를 돌아봤다.

그녀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이를 악물고 있었다.

“크읍!”

마치 흑막으로 빨려가는 걸 겨우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토시!”

강호의 외침에 넋 놓고 있던 사토시가 무조건 반사처럼 리사에게 달렸다.

파앗!

거의 동시에 리사가 탈진한 듯 푹 쓰러졌다.

털썩.

그 상태로 정말로 흑막으로 딸려 가기 시작했다.

츠으으으.

다행히 사토시가 제때 리사에게 도착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쉬학.

그의 손에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모를 검은 기운이 뭉글거리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단검의 궤적을 따라 붉은 선이 허공에 휙 그어졌다.

서걱.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뭔가가 잘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곤 마치 철근 다발의 절단면처럼 가는 불꽃이 흩날리다가 사라졌다.

파스스스스.

그제야 바닥을 쓸며 끌려가던 리사의 몸이 멈췄다.

짧았던 일련의 과정을 보며, 강호는 안도하는 대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저 뮤턴트들, 다 이런 식으로 빨려가 죽었구나.’

이능력을 사용하면 그 힘을 흡수해버리는 흑염체라니.

리사를 보니 이능력만 가져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는 정말 일어설 힘도 없는 것처럼 지쳐 보였다.

순식간에 체력까지 전부 빨아 가버린 것이다.

그것으로 또 한 가지를 알 것 같았다.

‘이능력이 없으면 생명력을 흡수하는군.’

평범한 인간은 껍데기조차 남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호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저런 괴 에너지체를 대체 어떻게 없애야 하는 건지 좀처럼 해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사람들의 동요를 통제하고 있는 인데르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어김없이 전음이 들려왔다.

[나도 봤네.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반사하기도 하는 전이체야.]

–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아닙니까?

[…….]

인데르는 강호가 무얼 말하는지 알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흡수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시켜 터뜨리거나, 반대로 저 흑염체를 통째로 흡수하거나.’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실현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유는 상대의 한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살길을 틀어막고 있는 저 흑염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뮤턴트와 인간을 흡수했을지, 어림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배불려 터트린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반대의 경우라면 더더욱 불가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인데르는 딸리는 자신의 두 손을 봤다.

‘하아.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절망감보다는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

마침 강호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레이나가 눈을 떴다.

“으음…. 아, 고마워요.”

잠깐 눈동자를 굴리더니, 빠른 상황 판단 후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일으켰다.

비틀.

“어?”

역시나, 레이나도 체력이 바닥이었는지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주저앉았다.

텁.

다시 강호 품에 안긴 레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걸 없애는 건 불가능해요.”

그건 레이나가 직접 부딪쳐 본 소감이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그녀의 경험이었다.

강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두려움, 절망, 혹은 포기.

인데르와 사람들도, 기진맥진한 리사와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사토시도.

그래서 제 품에 있는 레이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 네.”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힘겹게 대답했다.

강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한 가지 방법, 이제 막 생겼다.”

[긴급 패치 완료]

[신규 업데이트 내용]

[(신규)24장. 외계/이계]

[…]: …….

[3절-구성체]

[이름]: 다크앱.

[종류]: 모조 흑동(黑洞:유사 블랙홀).

[…]: …….

[현재 상태]: 포화도 98%

인데르와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정보가 생겼다.

‘그거면 충분하다. 다만,’

강호는 레이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미 바닥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뭐든 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내가 2%를 채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망설일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저벅.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가는 강호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천성인 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희생을 선택하는 자신이, 기특하기보단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하지만 강호는 더 걷지 못했다.

컹!

울프가 그의 앞을 막아서서 얼굴을 비볐다.

끼잉.

어쩐지 울프의 눈이 강호의 선택을 모두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강호는 그런 울프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울프. 남은 일행들, 잘 부탁한다.”

그러자 울프가 그의 손길을 거부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공명감 좋은 하울링을 길게 내뱉기 시작했다.

아오오오올~

순식간이었다.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울프의 모습이 한순간에 쑥 달려 나갔다.

크르릉!

파팟!

지하 1층까지 올라오며 코뿔소만큼 몸집이 커진 울프의 도약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멋있었다.

‘아.’

울프는 여전히 농익은 검은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는 흑염체를 향해 날았다.

그러고는 온몸으로 들이받듯 충돌했다.

슈욱.

콰광!

“…….!”

엄청난 파장이 울프의 몸을 감싸며 폭발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쿠구구구구구.

그런데, 신기하게도 폭발의 여파가 울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핵이라도 터진 것 같은, 도시 정도는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의 폭발인데, 어떻게….’

울프가 야수의 울부짖음을 사납게 토해냈다.

크릉!

크하아아아!

마치 홀로 보이지 않는 적과 사투를 벌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속성]: (신규)영혼 감지 : 영혼 감화. (신규)비물질 흡수.

동시에 인데르가 한 말이 맞물려 생각났다.

– 저 흑염은 비물질 에너지 결정체라네.

절로 헛숨이 터졌다.

하!

‘개가 영혼이나 귀신을 본다는 미신 같은 옛말을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는데.’

처음 달라진 울프의 능력을 보고 정말 그랬었다.

아우우우울~!

늑대의 긴 하울링에 전율이 일었다.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 같은 그 울부짖음에서 울프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울프!”

얼마 지나지 않아, 울프의 몸이 암흑의 빛을 빨아들이면서 점차 흐려졌다.

사아아아.

스르륵.

곧 흑염체와 함께 사라졌다.

“… 울프!”

* * *

“울프가, 사라졌어요.”

사토시의 얼빠진 중얼거림이 겨우 정적 일부를 밀어냈다.

그리고 레이나가 말했다.

“흑염체도 없어졌어.”

“…….”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울프의 능력을 볼 수 있었던 강호만은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희생.’

울프가 흑염체를 제 몸에 품고 그 안에서 폭발을 담아냈다.

흡수해버린 것이다.

강호 자신이 흑염체의 포화도를 채우려고 했던 것과 반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울프의 선택이 옳았다.

‘그게 밖에서 그대로 폭발했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정은 한 가지뿐이었다.

‘전멸.’

세계 종 보관소와 함께 일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지금 일행은 동료를 잃은 슬픔에 잠겼다.

울프는 단지 반려견이나 명령을 잘 수행하는 군견이 아니었다.

강호고, 리사고, 레이나고, 사토시였다.

‘작전 중 동료를 잃는 일은 더는 없을 줄 알았더니.’

강호는 잠깐 아랫입술을 물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인데르 박사님은 괜찮은 건가?”

인데르의 상태를 살피는 리사에게 물었다.

그는 흑염체가 사라지기 직전 극단적인 고통에 정신을 잃은 후 아직 의식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신체 기능에는 이상이 없어요. 호흡, 맥박 다 정상이고 외상도 없어요.”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지상으로 올라간다.”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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