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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허허, 이 씹년아. 사람 말 좀 하자 새끼야.”

   

    그 한 마디에 광역 침묵이라도 걸린 것처럼 문주전 내부가 조용해졌다.

   

    문주의 부릅 뜬 눈과 격렬한 눈싸움을 한 판 조지고 있으니, 곧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문주가 호통을 쳤다.

   

    “이런 무례한 놈을 봤나!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가!”

    “진짜 확 그냥. 어? 확 마 팍!”

   

    손을 치켜올리자 문주도 흥이 올랐을까?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꽉 쥔 주먹을 앙증맞게 떨어댄다.

   

    “거 아재요.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게이처럼 그러지 말고 그냥 한 판 뜨지?”

   

    게이…? 춘봉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보였지만 문주는 지금 그런 게 귀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오냐! 좋다! 구태여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한다면 내 그리 해주마!”

   

    그때까지 멍하니 굳어있던 청운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뜨렸다.

   

    “문주께서 나서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 건방진 놈은 제가 직접 벌하겠습니다!”

    “되었다! 내 이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문주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문주님!”

   

    잘 짜여진 한 편의 연극 같다. 감탄하며 구경하던 서준이 춘봉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진짜 지랄들을 한다. 그치? 그냥 싸우면 되는 걸 저러고 있네.”

    “음…. 뭐, 그래.”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아니야. 응.”

   

    어처구니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튼 조심해. 이 정도 되는 문파면 문주도 절정급은 될 거야.”

   

    초절정일 리는 없다. 이런 변방에 초절정의 무인이 있었다면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으니까.

   

    절정 정도 되는 무인이 있는 것도 놀랍긴 하지만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범위 내다.

   

    “절정? 내가 씹어먹지.”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내가 대신 할까?”

    “어허. 동생은 여기서 구경이나 해.”

   

    서준이 낄낄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때쯤 저들도 결론이 났는지 문주가 의자 뒤에 걸려있던 검 한 자루를 뽑아들었다.

   

    “놈! 따라와라!”

    “놈! 싫다!”

    “…네놈이 정녕 미친 게로구나!”

    “아닌 게로구…! 악!”

    “제발 지랄 좀 하지 말자 우리. 응? 제발. 나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오빠.”

   

    춘봉이가 굳이 오빠라는 말까지 입에 담았다? 간절하다는 소리다.

   

    더 했다가는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아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고.”

   

   

    *

   

   

    문주가 향한 곳은 문파 내에 있는 연무장이었다.

   

    거대하다고까지 말하긴 힘들지만 나름 갖춰질 건 다 갖춰진 듯 보인다.

   

    확실히 변방의 문파치고는 세가 크다. 그리고 문파의 세가 크다는 것은 문주가 강할 확률이 높다는 말과 같다.

   

    춘봉은 걱정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으려 입매를 단단히 굳혔다.

   

    ‘진다고 해서 큰일이야 없겠지만….’

   

    여기가 흑도 놈들 소굴도 아니고 어지간하면 죽을 일은 없다.

   

    정 급하다면 금희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라도 막으면 그만이다.

   

    “하여간 알아서 일을 만든다니까.”

   

    춘봉이 한숨을 내쉬며 대치하고 있는 두 무인을 바라보았다.

   

    분노한 문주와 실실 웃고 있는 서준.

   

    그 즐거워보이는 모습에 문득 의심이 들었다.

   

    ‘쟤 혹시 일부러 저러나?’

   

    서준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좀 모자란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멍청한 건 아니다. 오히려 꽤 영리한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무공 자체가 멍청하면 대성하기 힘들다.

   

    ‘저 새끼는 그냥 싸움을 좋아하는 걸지도.’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청운이 크게 소리쳤다.

   

    “시작하십시오!”

   

    대련의 시작이었다.

   

    어느새 근처에 모여든 청하문의 문도들. 그 사이에서 춘봉이 눈을 부릅 뜬 채 대련을 지켜보았다.

   

    파바박-!

   

    선공을 취한 건 서준이었다. 특기인 지탄을 날리며 문주에게 빠르게 달려든다.

   

    문주는 그 공격에 꽤나 놀란 듯 보였다.

   

    “지탄? 어찌 저런 놈이!”

   

    서준은 기를 워낙 잘 다루는 탓에 경지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다. 문주는 서준이 절정임을 몰랐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문주가 당황한 지금이 기회.

   

    서준 역시 알고 있는지 검에 탁한 금빛의 검기를 휘감아 내리베었다.

   

    콰르륵-!

   

    거친 강과 같은 기세로 검이 나아간다. 그 앞에 선 문주는 의외로 차분했다.

   

    우웅-!

   

    검이 울부짖는다. 검명劍鳴과 함께 뻗어진 문주의 검이 부드럽게 흘렀다.

   

    두 강물이 하나로 합쳐지듯, 부드럽게 검을 휘감은 문주가 서준의 검을 아래로 흘려냈다.

   

    “으음….”

   

    안 좋은데.

   

    춘봉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검을 흘려낸 문주는 부드러웠던 흐름이 거짓말처럼 거칠게 서준을 몰아쳤다.

   

    서준이 한 손으로는 검을 휘두르고 한 손으로는 지탄을 날려대지만 조금 밀린다. 

   

    어쩔 수 없는 차이였다. 검을 다루는 솜씨가 너무 차이 난다.

   

    오히려 서준이 저렇게까지 선전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춘봉이 이를 악물었다. 져도 별일이 없다고? 쟤가 지는 꼴은 내가 못 본다.

   

    “오빠…! 힘내…!”

   

    이렇게까지 하는데 지면 진짜 두고 보자, 이서준.

   

   

    *

   

   

    검이 휘몰아친다.

   

    문주의 검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아주 자연스러웠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거칠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물줄기가 시시각각 변화하듯, 그런 강의 변화가 한낱 날붙이에 깃들어있었다.

   

    “이전의 기세는 어디 갔느냐! 또 입을 놀려보아라!”

   

    폭포처럼 쏟아진 검이 머리를 노린다.

   

    서준은 왼손으로 지탄을 쏘아내며, 오른손에 든 검을 부드럽게 쥐었다.

   

    운류청천. 

   

    황운신검의 초식으로 어떻게든 검을 흘려냈다.

   

    ‘자연스러움. 그런가.’

   

    저것이 청류검의 본의本意다. 어쩌면 청류검이 아니라 그 상위의 검술일지도 모르지.

   

    그것을 계속 관찰하며 깨닫는 것이 있었다.

   

    ‘검술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하늘.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강. 풀잎에 맺힌 이슬과 짙게 끼는 안개.

   

    우연찮게도 혼원신공과 비슷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 황운신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지금까지 본 무공들은 전부 그랬다. 하다못해 삼재검법 역시 그랬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뤄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자 했다.

    

    어쩌면 그것이 무공이 추구하는 하나의 종착점일지도 모른다.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이 깨달음으로 승화한다.

   

    황운신공의 심상. 금빛으로 물든 노을과 그 아래 유유히 흐르는 구름. 그외의 세상만물을 그려내는 것은 무공을 익히는 개개인의 몫이 아닐까?

   

    “오빠…! 힘내…!”

   

    춘봉이의 응원이 들려온다. 귀여운 자식.

   

    응원까지 해주는데 처발릴 수는 없지.

   

    씩 미소 지은 서준이 검을 크게 쳐내고 뒤로 물러났다. 뒤로 살짝 밀려난 문주가 간헐적으로 우는 검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역시 아니었군. 청류검과 비슷하나 청류검은 아니야.”

    “뭐 인마?”

    “이제 됐다. 대련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문주가 서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대의 무공은 누가 보아도 흑도의 것이 아닌 명문정파의 것. 청류검을 훔쳐배운 것 역시 아니다. 더이상 싸울 이유가 있는가?”

    “아하, 그니까 처음부터 청류검을 쓰는지 보려고 도발했다는 건가?”

    “이제 그대도 그만하지 그러나? 구태여 입이 험한 척 할 필요 없네. 아니면 흑도인 척을 하고 있는 이유라도 있는 겐가?”

   

    문주가 고개를 저으며 납검했다.

   

    “이만하고 사문의 이름을 밝히게. 이름 없는 문파는 아닐 것 같은데, 이 이상 일을 크게 만들 이유가 없네.”

    “거 아재요.”

   

    서준이 검을 치켜들었다. 맑은 금빛이 검에 어리며 강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본래 황운신검의 초식이던 황운낙천黃雲落天.

   

    서준은 처음 써보는 초식을 제멋대로 뜯어고쳐 지금껏 보아온 문주의 검을 섞어냈다. 

   

    부드럽게. 하지만 그 끝은 거칠게.

   

    “누구 멋대로 싸움을 끝내!”

   

    서준이 달려들었다. 문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검을 뽑아 마주 휘둘렀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잘게 떨리는 손에 문주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이제 조금 알겠다.”

   

    황운신공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깊어졌다. 깨달음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공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혼원신공.

   

    스스로 창조해낸 무공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난폭하게 흐르는 강과 어둡고 밝기를 반복하는 하늘. 세계를 만들어냈다 착각했지만 그저 모형에 지나지 않았어.’

   

    그건 생명이 깃들지 않은 그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깨달은 지금, 서준의 심상에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한 줄기 바람에 변화를.’

   

    땅을 끌듯 발을 옮기며 부드럽게 문주의 옆으로 돌아간다.

   

    문주가 검을 얽어오며 근접전을 유도하지만, 서준은 그대로 검을 위로 쳐올려 떨쳐냈다.

   

    ‘부는 비바람에 강렬함을.’

   

    치켜올라간 검끝에 하늘을 건다. 검끝에 걸려 끌려내려오는 하늘이 비바람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검과 검이 부딪힐수록 서준의 검이 어지럽게 변화한다. 문주는 끝내 탄성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내 검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고스란히? 틀렸다. 그의 검은 심상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물들였을 뿐이다.

   

    서준이 맑게 웃으며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다.

   

    낮과 밤. 강과 바람. 비와 구름.

   

    어느덧 풍성해진 심상의 조각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아직은 미숙하다. 하지만 언젠가 이 모든 마음이 살아움직이는 날, 혼원신공 역시 완성되리라.

   

    “거 아재, 영광으로 아쇼. 혼원신공의 첫 번째 초식을 처음 쳐맞아보는 사람이 될 테니.”

   

    검을 강하게 틀어쥔다. 이제 갈피가 잡혔다. 혼원신공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무공. 검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정했다. 혼원신공은 기공氣功.

   

    검은 혼원신공을 그려내기 위한 붓일 뿐이다.

   

    “혼원混元.”

   

    탁하게 물들어 끈적한 검기가 검 전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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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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