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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비앙카가 걸린 저주.

   눈인형.

     

   비앙카로부터 감정을 앗아 가버린 그 저주는 그녀가 날때부터 겪어온 저주다.

     

   크라슈는 세계 침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광증을 죽이기 위해 비앙카의 그 저주가 필요했고.

   지금까지 그녀의 다이얼을 풀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며칠 전 그는 드디어 비앙카의 첫 번째 다이얼을 풀었다.

   엄청난 성과였지만 문제는 두 번째 다이얼이었다.

     

   ‘이게 뭔.’

     

   크라슈가 비앙카에게서 확인한 두 번째 다이얼은 그도 막막함을 느끼게 했다.

     

   [ 비앙카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것. ]

     

   가장 소중한 사람.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이기도 하고, 자식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며, 연인이기도 한.

     

   정의하기가 참 까다로운 말이었다.

   그러나 크라슈가 이걸 보고 막막함을 느낀 건 다른 이유였다.

     

   친구까지야 그렇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비앙카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원래도 까다로운 조건이 비앙카라 더 까다로워 지고 만 것이다.

     

   ‘나는 부모도 자식도 될 수 없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두 개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연인이라는 것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크라슈는 이미 그 부분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

   자신과 비앙카는 가문에서 정해준 약혼자니까 말이다.

     

   그러나 약혼과 연인은 별개의 위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애초에 연인이란 사랑의 감정을 전제로 하는 거였다.

   감정이 결여된 비앙카에게 사랑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크라슈가 뭔가 기분 나빴다.

   아무리 그래도 다이얼을 풀자고, 12살인 꼬맹이를 꼬셔야 한다니 너무 그랬다.

     

   “골치 아파졌구만.”

     

   예전에 비앙카의 저주를 훔쳤을 때는 이런 조건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긴, 다이얼의 조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반영하니 당연한 이야기긴 했다.

     

   그때의 비앙카와 지금의 비앙카는 다르니까.

     

   지금은 제 육감이 있으니 괜찮지만 언젠가 그녀의 저주가 꼭 필요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파닥파닥!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창문 밖에서 날개짓 소리를 들었다.

   크라슈가 익숙한 듯 창문을 열자 거기에 들어 온 것은 한 마리의 까마귀였다.

     

   그 까마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그녀의 종이었다.

     

   “아이가 나를 참 좋아하는구나. 쉽게 놔주지를 않아.”

     

   그녀가 지금까지 있다가 온 것은 다름 아닌 비앙카 때문이었다.

   이번에 알았지만 비앙카는 동물을 많이 좋아했다.

     

   그녀는 크라슈가 데려온 크림슨가든만 보면 조심히 따라다녔고, 자신을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그녀를 무척이나 예뻐했다.

   덕분에 최근 크라슈는 비앙카가 자신보다 크림슨가든을 더 따라 다닌다고 생각 중이었다.

     

   “나보다는 크림, 너가 더 쉽겠다.”

     

   비앙카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건 크림슨가든이 더 쉽지 않을까.

   자신도 까마귀 분장이라도 해야하나 생각하고 있으니 크림슨가든이 불만스럽게 크라슈를 보았다.

     

   “크림이라 부르지 말라 했거늘.”

   “비앙카는 잘 부르고 다니던데.”

   “그 아이는 그 이름밖에 모르지 않느냐.”

     

   그거야 그렇다마는.

     

   “그것보다 밖에 마차가 오더구나.”

     

   그러는 순간 이어진 말을 듣고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달링이 온 모양이었다.

     

   ‘알리오드 녀석 좋아라 하겠네.’

     

   그래도 자신의 전속 집사이니 크라슈는 뿌듯함을 느끼며 크림슨가든을 어깨에 올린 채 방을 나왔다.

   그러는 순간 계단에서 다급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알리오드였다.

   크라슈는 그가 벌써 치료제에 관해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알리오…….”

   “크, 크라슈 도련님!”

     

   평소와 달리 자기 말도 끊고 알리오드가 다급하게 외쳤다.

   치료제라고 하기에는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걸 보며 크라슈는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그의 반응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뭐냐. 뭔 일이야. 달링이 온 거 아니었어?”

     

   알리오드는 고개를 거세게 양쪽으로 저었다.

   달링이 아니면 자신을 찾아 올 일이 있던가.

     

   알리오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오늘 따라 참 많다고 생각한 순간.

   이어진 말을 듣고, 크라슈의 몸 또한 동시에 굳고 말았다.

     

   “가, 가주 님입니다!”

   “어?”

   “가주 님께서 오셨단 말입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튀어 나왔다.

   크라슈는 벼락을 맞은 기분과 함께 그 자리에서 굳었다.

     

   가주, 그게 누구인가.

   알리오드가 가주라 부를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

     

   천상사강(天上四强)

   무황(武皇)

   발록 발하임

     

   발하임 그 자체인 그가 청송관에 나타났다.

   크라슈가 현실을 인식하듯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알리오드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는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 가고 있는 그의 얼굴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왜.’

     

   그가 왜 청송관에 왔는가.

   그 해답은 간단했다.

     

   “……미친.”

     

   요즘 줄이려던 욕설이 무심코 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왜냐하면.

   크라슈가 직접 오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설마 그 이야기를 그대로 아버지에게 전했던 걸까.

   크라슈가 미약한 두통을 느끼는 사이 크라슈의 어깨 위에 있던 크림슨가든이 날개짓과 함께 내려왔다.

     

   뒤뚱뒤뚱,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딱 도망치는 꼴이었다.

   하긴, 자신의 아버지라면 크림슨가든의 정체를 바로 꿰뚫어 볼지도 모르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가주님은 어디 계셔?”

   “일단 응접실에 모셨습니다.”

     

   크라슈는 자신의 넥타이를 제대로 조였다.

   그러곤 옷매무새도 확실하게 확인했다.

     

   어디 책잡힐 것은 없다.

   그것을 확인한 크라슈가 알리오드를 보았다.

     

   그러자 알리오드의 고개 또한 끄덕여졌다.

     

   “차와 다과는 됐어. 가주님께서는 입에 안 대시니까. 하녀에게도 괜히 응접실 쪽으로 오지 말라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자신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알리오드를 두고 크라슈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당연히 발록이 있을 응접실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긴장감이 후욱 느껴졌다.

   과거였다면 이미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크라슈는 응접실 앞에 섰다.

     

   왜인지 오늘 따라 응접실이 무척이나 크게 느껴졌다.

     

   똑똑-

     

   “가주 님, 크라슈 발하임입니다.”

   “들어와라.”

     

   크라슈가 목소리를 내뱉은 순간 안쪽에서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이미 진작 기척을 느끼고 있었겠지.

     

   크라슈는 조심히 문고리를 잡곤 밀어 열었다.

   그러자 불이 들어와 있는 응접실 아래 크라슈와 똑 닮은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마 아래까지 내려오는 앞머리카락 사이로 푸른빛의 별들이 감도는 듯한 눈동자가 조용히 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것만으로 크라슈는 피부가 저릿저릿한 감각을 받았다.

     

   그곳에는 산이 있었다.

   고개를 아무리 들어도 닿지 못할 아득한 산이 말이다.

     

   압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크라슈는 이 순간 절실하게 체감했다.

   인간이라는 규격을 넘어서 반신에 도달한 존재.

     

   발록 발하임.

   그를 눈 앞에 두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쥔 어줍잖은 강함이 아직 한참 멀었음 또한.

     

   ‘다시 봐도 괴물이네.’

     

   크라슈는 마른침을 애써 삼키곤 예를 갖췄다.

     

   “발하임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이번에 그와 마주치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크라슈가 입안이 바싹 마름을 느끼고 있자 발록이 입을 떼었다.

     

   “앉아라.”

     

   크라슈는 그 말의 즉시 자세를 고쳐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가주와 직접 마주 볼 수 있는 것은 직계들의 유일한 특권이다.

     

   하지만 그 특권이 가장 적응안되는 크라슈가 애써 발록을 보고 있자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세계 침식을 처음 갔다고 들었다.”

     

   금역에 있었을 그가 자신이 세계 침식에 있단 건 어찌 들었을까.

   어머니인지 누구인지는 몰라도 크라슈는 바로 대답했다.

     

   “예, 최근에 갔다 왔습니다.”

   “어땠지?”

     

   어땠냐니.

     

   벨로킨의 추악함을 다시금 확인했고, 불사자라는 기연을 손에 쥐었으며 난생 처음 스킬까지 훔쳤다.

   크라슈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승전보를 울린 상황.

     

   하지만 그것을 발록에게 말하면 어떨까.

     

   형을 함정에 빠트려 그의 민낯을 드러낸 채 죽이고, 정작 죽은 것은 그의 숭고한 희생인 양 포장했다.

   게다가 그의 스킬을 빼앗은 뒤 심지어 세계 침식자와 손을 잡았다.

     

   크라슈는 감탄했다.

   자신이 한 일이 사람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발록이 어디까지 꿰뚫어 보는지는 크라슈는 모른다.

   반신에 올라 신안(神眼)까지 개안한 발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그리 두렵지 않았습니다.”

     

   벨로킨의 죽음을 앞두고, 크라슈는 이제 와서 보니 참 별거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그토록 지독하게 괴롭히고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벨로킨은 결국 샬롯이란 별에 짓눌린 범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본 그는 한심하면 한심했지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를 죽이는 것을 마음 먹는 것조차도 말이다.

     

   “그렇군.”

     

   발록은 아주 짧게 대답했다.

   반신이 되면 인간이 얽매이는 감정에서 상당히 멀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비앙카처럼 저주 받지 않았음에도 무척이나 딱딱한 표정이었다.

     

   “그럼 됐다.”

     

   그리고 발록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크라슈가 당황하여 발록을 따라 일어났다.

     

   “이 이야기를 하시러 오신겁니까?”

   “그래, 이것뿐이다. 충분히 알았으니까.”

     

   방금 전 대화로 대체 뭘 알았다는 걸까.

   크라슈는 당혹스러웠지만 발록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

     

   “금역으로 돌아간다.”

     

   금역을 무슨 산책 나간다는 듯이 말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주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크라슈는 떠나는 발록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발록은 정말로 금역으로 떠났다.

     

   심지어 본가에조차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긴 하지만 발하임 내부에서는 감히 가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이 없었다.

     

   몰아친 폭풍이 사라진 기분과 함께 크라슈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나원, 갑자기 수명이 팍 줄어든 느낌이다.

     

   정말 뭘 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창문 너머 다른 마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마차에 새겨진 문양이 단펠리온인 것을 본 크라슈는 뒤늦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 빨리 올 것이지.”

     

   괜히 곧 도착할 달링에게 속으로 화풀이하는 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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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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