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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EP.19

     

   편안함이란 참 좋은 것이다.

     

   신체적인 편안함은 체력을 보충할 여유를 주고 심적인 편안함은 그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여유를 허락해 주니까.

     

   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강한 정신에 강한 육체가 깃든다… 아, 반대였나?

     

   “……제가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었던 거죠?”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거울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던 한가민.

     

   그녀는 내가 저주가 걸린 조각상을 파괴한 이후 침대에 얼굴을 깊게 파묻고는 잘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뇌와 환각.

   그 외의 다양한 정신 공격까지 유지되고 있던 상태였으니 평소 자신의 행동과 괴리감을 느끼지 못했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 미안하다…”

     

   나는 일단 사과부터 했다.

   한가민의 행동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그녀가 보인 모습이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뭘 먹었길래 이렇게 예뻐?」

   「목소리도 아주 꾀꼬리야!」

   「하핫! 꺄하하하하하!!! 꺄르륵! 꺄르륵!」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던 건지 반쯤 미쳐있던 한가민.

     

   물론 그 상상도 하기 힘든 언행을 한 장본인은 지금 침대에 거의 잡아먹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으음… 자존감이 높다는 건 참 좋은 거지.”

   “……”

   “저기… 가민아? 살아는 있지?”

     

   한가민의 이름을 부르니 그녀가 움찔거리며 슬쩍 고개를 든다.

     

   다 죽어 가는 얼굴.

     

   음… 진짜 죽어 가는 건 아니겠지만 약간 이건 사회적 사망을 체험중인 무언가가 아닐까?

     

   “아……그냥 지금 죽을까.”

     

   이미 열반에 오른 듯한 한가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일단 박조철이나 남궁천호의 방을 먼저 찾아갔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이것은 엎질러진 물. 나는 내 양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두드린 이후,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가민아.”

   “……뉘에.”

   “지금 이곳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네네, 좋지 않죠. 사람 한 명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한가민이 다시 침대에 얼굴을 파묻으며 꿍얼꿍얼 대꾸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대화를 할 때.

     

   “여기 오기 직전에 그 파티장에 있었던 ‘노야’라는 사람 기억해?”

   “……네, 파티장에서 훈화 말씀하시던 그 할아버지 말이죠?”

   “맞아. 그럼 혹시 그 사람이 들고 있던 지팡이는?”

     

   나의 말에 한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지팡이가 있었어요?”

   “역시 못 봤구나.”

     

   나는 그녀에게 지팡이의 생김새와 그 끝에 박혀 있던 푸르스름한 보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지금 들어 보니까 그 지팡이 위에 있던 보석이라는 거, 아저씨가 들고 있는 ‘그거’랑 같은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각상을 부수고 남은 잔여물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리얼 피스.

     

   마력을 가득 품은 채, 조각상에 저주를 고정해 놓았던 물건이었다.

   물론 저주의 강도가 그리 강하지는 않아 숙소를 잠식하는 정도로 끝이었지만 이 건물 어디에 이런 물건이 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뭔가 열쇠인 것 같은데 말이지……”

     

   이번 임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히 불친절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7일.

   그 안에 2층으로 향하는 문을 찾으라는 임무.

     

   특별한 설명 없이 ‘가까운 곳에 길이 있을 것’이라는 단서만 주고 우리에게 클리어를 강요하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한가민이 자신이 했던 추태는 이미 잊어버린 채, 뭔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의견을 피력했다.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

   “아뇨, 그렇잖아요. 아저씨가 했던 설명을 다 종합해 보면 결국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 ‘노야’라는 사람한테 세뇌를 당하고 있는 건데, 지금 이 방은 세뇌가 완전히 풀린 상태잖아요?”

     

   한가민의 말에 나는 계속 설명해 보라며 그녀를 응시했다.

     

   “그럼 그 세뇌에 당한 사람 한 명을 여기로 데려와서 물어보면 되죠.”

     

   확신에 찬 듯한 어조로 말을 이은 한가민의 말에 나는 살짝 미심쩍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이곳 사람보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 그런데 말이지.”

     

   나는 지금까지 가장 신경 쓰였던 한 가지를 그녀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

     

   만약 우리가 그 사람의 세뇌를 풀어 줬다고 해 보자.

     

   여기에서 가장 이상적인 플랜은 그 사람이 세뇌가 풀림과 동시에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고 1층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비밀이나 2층으로 가는 확실한 정답을 얻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사람이 사실은 세뇌를 당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그런데.

     

   “그게 왜 문제에요?”

   “만약 그 사람이 ‘노야’라는 사람의 편이고 우리가 세뇌를 벗어났다는 걸 보고하게 되면……

   “그건 해결법이 있는걸요?”

     

   나는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내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숙소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울리라 했던 핸드 벨을 들고 정확히 세 번 흔들었다.

     

   띵-

   띵-

   띵-

     

   “잘 봐요.”

     

   종소리를 들은 것인지 복도에서 찹찹거리는 앙증맞은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이내 문 앞에서 멈춰서더니 예의 그 감정이 없는 듯한 아이의 목소리가 문틈을 넘었다.

     

   – 들어가도 될까요?

     

   한가민은 소리가 들리자 밝은 목소리로 응답하며 문가로 다가갔고 나는 일단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흠흠!”

     

   아이가 들어오기 전, 한가민은 가볍게 목을 풀었다.

   물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가민이라면 나름 지혜로운 대처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아이가 들어온 순간.

     

   “무슨 도움이 필우으읍!”

     

   화악!

     

   아이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온 다음 이불로 꽁꽁 묶기 시작하는 한가민.

     

   “으읍! 으으으읍!!!”

   “가만히 있어! 뒤지기 싫으면!”

     

   나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이내 어찌할지 갈피를 잡지 못 하는 아이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납치 및 감금을 시행하는 한가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방법이 있긴 했네.

     

   ***

     

   “푸하!”

   “어때? 이제야 좀 말할 생각이 드니?”

   “무… 물어본 것도 없잖…! 아…요오……”

     

   자신의 입을 꽁꽁 싸매고 있던 베개 커버가 벗겨지자 꼬마는 한가민에게 소리를 지르려다 그녀의 사나운 얼굴을 보고는 다시 쭈그러들었다.

     

   “힝……”

     

   잔뜩 주눅이 든 아이. 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으며 한가민의 노고를 한 번 물려받아 보기로 했다.

     

   “꼬마야. 혹시 지금 괜찮니?”

   “…………예?”

     

   꼬마가 이 인간은 또 무슨 미친놈인가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금빛 단발에 붉은 눈을 가진 아이.

   변성기가 지나지 않아 목소리가 얇은 건가 싶었는데 지금 다시 들어 보니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몸 말고 정신적으로 말이야. 멍한 느낌이라거나 뭔가 띵하고 하늘에 붕 뜨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냐 이 말이지.”

   “……어? 그러고 보니?”

     

   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니?”

   “……”

   “기억이 나지 않아?”

   “……네.”

   “나이는?”

   “……”

   “그럼…

     

   아이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아는 것이 없는 평범한 ‘꼬마1’에 불과했다.

     

   그나마 얻게 된 정보라면 이곳의 살림 대부분을 이 아이와 비슷한 또래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는 것.

     

   성에 거주하는 경비나 기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물량이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특별히 건질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한가민의 아쉬움이 담긴 한숨에 나는 뻐근해진 몸을 쭉 펴며 창밖을 바라봤다.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기에 천천히 고민하며 한 걸음씩 단서를 찾아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음의 경계에서 꾸역꾸역 살아남으며 버텨 온 사람들이 아니던가… 하루 정도는 쉬어가는 것도……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상태이상 ‘세뇌(F-)’에 저항합니다.]

     

   쓰읍.

     

   편안한 마음이 들려하니 기가 막히게 또 떠오르는 상태창.

   나는 방을 둘러보며 조각상 외에 또 다른 저주의 매개체가 있는지 천천히 살폈다.

     

   아이의 눈은 방에 들어온 이후부터 쭉 말똥말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가민 또한 마찬가지. 그렇다면 지금 이 저주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마약을 탐지하는 공항의 셰퍼드마냥 주변을 서성거리며 의심이 갈 만한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내가 한참을 서성거리자 아이가 슬쩍 손을 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왜 그러시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그게 문제 아닐까요?”

   “그거?”

     

   아이의 시선이 나의 손을 향하고 있었다.

   나의 손에 쥐어진 푸른 보석 두 조각. 나는 다시 한 번 보석의 설명을 확인했다.

     

   띠링.

   [메모리얼 피스의 히든 피스가 발동 됩니다.]

     

   —

   [메모리얼 피스]

   종류 : 보석

   랭크 : 스토리

   설명 : 마력전도율이 높으며 적은 양의 마력을 품고 있는 보석이다. 단일 저주나 마법을 고정시킬 수 있다. 단, 저주나 마법을 고정시켰을 경우 해당 매개체가 파괴되면 기능을 상실한다.

     

   ※ 모든 마력이 증발된 마력석입니다. 재활용은 불가합니다.

   ※ (???) 다른 메모리얼 피스와 함께 있으면 상실된 기능을 일부 되찾습니다.

   —

     

   ‘???’로 표시 되어 있던 설명 한 줄이 자연스럽게 추가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파괴한 조각상은 총 2개.

   그렇게 두 개의 조각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 숨겨져 있던 기능이 발동된 것 같았다.

     

   고작해야 F-의 어정쩡한 세뇌라 크게 의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능력치 ‘마력 Lv.6’이 ‘메모리얼 피스’와 반응합니다.]

     

   서서히 암전되어가는 시야.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성의 복도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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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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