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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19 – 입학시험 1차 관문>

     

    승려들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입학시험 상급시험장은 사방이 자갈과 바위투성이인 바위산 입구였다.

     

    도합 500명.

     

    드문드문 띄엄띄엄 서로 떨어져서 앉은 입학시험 상급참가자들은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쥐방울아. 보모를 달고 다니는 주제에 여유가 아주 넘치는구나.”

    “흥. <아기꽃사슴>이나 찾으러 가셔야 할 분이 할 소리는 아니네요.”

    “으극…… 보, 보고 있었나?”

    “지금이라도 허접들 곁에서 고생할 <아기꽃사슴>이나 찾으러 가지 그래요?”

     

    오는 길에 봤던 하급시험장 쪽은 시험시간이 되거든 모르긴 몰라도 수만 명 단위의 참가자들이 우글거리며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으리라.

    그에 비하면 선택받은 500명의 상급참가자는 정말 적은 편이다.

    이왕이면 원숭이수인도 강해보이니까 저쪽으로 가줬으면 싶었지만, 아무리 물소라도 제 기회를 걷어찰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가보다.

     

    “아기꽃사슴은 수줍음이 많지. 분명 나라는 남자를 받아들이기엔 제 실력이 부족해서 눈치가 보였을 거다…….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네 다음 1 차임.”

     

    부족했던 건 당신의 그 살인멘트를 견디는데 필요한 인내심이었겠지.

     

    “오크노디양. 여유로운 건 좋지만 슬슬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아무래도 경쟁자들은 우리를 탐탁찮아하는 모양이니 말입니다.”

     

    언제 봐도 턱수염이 멋진 남자, 암상인 지젤.

    원숭이수인이나 이 인간이나 입구의 나이제한은 어떻게 통과했는지 나란히 옆에 앉아서 말을 건다.

    그것이 퍽 싫지만은 않았다.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아이인 나를 굉장히 노려보고 있거든.

    시험관문으로 대결이라도 뜨면 무조건 나를 찍겠다고 작정한 기색이다.

     

    “저 꼬맹이지?”

    “맞아.”

     

    귀를 곤두세우니 들리는 목소리들이 참 심상찮다.

    에이스 견제 너무 빠르지 않아?

     

    “천한 수인이랑 어울리다니.”

    “수준을 알 법도 하지.”

    “마장갑옷도 없어.”

    “그럴싸한 보검도 보이지 않아.”

    “시종을 데리고 다녀봤자 어차피 한미한 시골출신 귀족이었던 거겠지.”

     

    어렸을 때부터 영재교육으로 나고 자라며 귀족들의 인싸커넥션에서 안면을 트고 자란 참가자들은 이미 니 편 내 편을 다 갈라놨다.

    그 수만 대략 서른 명.

    귀족으로 시작해도 저들의 연합에 내가 들어가기는 무리인가보다.

     

    “모험가복장인데. 아는 사람?”

    “처음 봐.”

    “그보다 꼬맹이잖아.”

    “이름 난 용병은 아닌가본데?”

    “그럼 우리가 챙겨줄 의리도 없지.”

     

    각지에서 뛰어난 공적을 세우다가 입학시험에 도전한 모험가들도 귀족들에 맞서 이삼십명씩 패거리를 이루면서 이쪽을 흘끗거렸다.

    성가시고 짐이 되는 애는 받아주지 않겠다는건지 와서 말 거는 사람도 하나 없다.

    근육떡대남캐일 때는 제일 먼저 찾아와서 귀찮게 굴어대는 놈들이라 짜증이 났는데, 막상 개무시를 당하니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나쁘다.

     

    “쥐방울아. 일일이 신경 쓰다간 네가 먼저 지친다.”

    “충고 고마워요.”

     

    신경 써봤자 이쪽이 손해지.

    남들 다 쉬면서 눈만 부라리고 있을 때 혼자 날 세우고 있어봐야 뭐하겠나.

     

    “아아아아악!!”

    “시비를 걸 상대는 제대로 골랐어야지.”

     

    가차없이 사고를 친 저 인간은 그런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저 자식, 같은 참가자의 팔을 잘랐어!!”

     

    햇볕을 피하기 좋은 나무 아래.

    위험한 느낌을 풍기는 검사 한 놈이 검집으로 바닥에 그린 원을 침범한 녀석의 손목을 뎅강 베었다.

    원작게임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

    그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이자 플레이어가 선택하지 않으면 조연으로 활약하는 동방제국의 검객, 싱Xing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막대한 업적점수를 모아서 개방하거나 현질로 구매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아카데미 주요캐릭터이자 고성능 캐릭터.

    NPC가 되면 성격은 보다시피 무서움.

    동료로 삼기는 어렵지만 성능 하나는 단연 발군인 무시무시한 캐릭터다.

    계속 보고 있으면 또 귀찮은 이벤트가 열린다.

    그래서 눈을 꾹 감고 귀를 닫았다.

     

    [탑승편 이벤트를 완료했습니다.]

    [시험장에 15시간 20분 0초 일찍 도착했습니다.]

    [조기도착 보너스로 552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게임이라면 먼저 도착한 시간을 1초마다 1포인트로 환산해서 지급하는 기능이 뜰 시간이지.

    포인트를 모으면 몇 달에 한 번씩 등장하는 포인트상인을 찾아가서 게임진행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 내지 유니크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한다.

    물론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 포인트는 어디에 있는지 알 길도 없으니 포인트는 깔끔하게 버린다.

     

    <피를 부르는 검객 이벤트>

    먼 동방제국에서 건너온 검객이 소란을 일으켰다.

    그늘자리를 탐하고 다가온 패거리의 하수인을…

     

    밀짚모자녀의 이벤트가 그렇듯이 호감도 이벤트라는 것들은 지뢰가 많다.

    고생해서 깨봤자 일반시험장에나 들어가는 여캐의 호감도를 딸 뿐이고, 게임에서는 귀한 시간과 포인트만 뭉텅이로 줄어들지.

    저래놓고 제일 웃기는 점이 정작 밀짚모자녀는 시험에서 일정확률로 탈락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무슨 엑스트라 호감도 이벤트가 다 있냐고.

    스윗판타지남자 노릇 했더니 포인트는 줄고 여자는 탈락, 남은 건 비효율적으로 소모한 시간 뿐.

    초보자 멘탈 털리라고 있는 지뢰 이벤트지.

     

    동방검객 싱의 이벤트도 다를 건 없다.

    자리를 탐내고 다가온 대귀족과 그의 하수인들.

    내버려두면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알아서 조용해진다.

    플레이어가 뛰어들면?

    괜히 그것 때문에 시비가 걸리고 싸움 난다.

     

    ‘잠이나 자야지.’

     

    하품이나 하다가 아무도 눈독들이지 않은 나무 중에서 적당히 높은 나무 하나를 골라잡고 기둥을 슥슥 올라가서 나뭇가지에 등을 기댔다.

    밑에서 황당하다는 듯이 올려다보는 원숭이수인놈과 지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잠들어도 절대로 기습당하지 않는 이 명당은 양보 못한다.

     

    “허. 고놈 참 날래네. 저것도 원숭인가?”

    “우리는 이 밑에서 쉽시다.”

     

    나무등치 너무 딱딱해.

    침대가 그리워.

    벌써 조나랑 리프랑 같이 살 때가 그립다.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려는데 밑에서 뭔가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걸렸다.

     

    “덮고 자세요. 감기 걸립니다.”

     

    감기를? 내가?

    코웃음을 치려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피부가 살짝 차갑게 느껴졌다.

    아, 그랬지…

    나 지금은 근육떡대 아니었지.

    주섬주섬 담요를 꺼내 덮고는 배낭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지젤에게 던져주었다.

     

     

    “아야.”

     

    저 바보 아저씨.

    그걸 못 잡고 떨어뜨리네.

     

     

    * *

     

     

    데에엥─!

     

    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날이 밝았다.

     

    <입학시험 이벤트>

    마침내 시작된 입학시험!

    아카데미 입학도 못하고 입구 컷을 당해서야 당신의 모험은 이대로 끝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된 관문들을 모두 통과하여 시험에 합격하십시오.

     

    나무 위에서 내려와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푸는 사이, 곳곳에서 다른 참가자들도 몸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이어나갔다.

     

    “담요 잘 썼어요.”

    “돌려주지는 않아도 됩니다. 제 배낭은 인벤토리 기능이 있는 마법배낭이거든요.”

    “그게 아니라 저 이거 둘 곳이 없는데요.”

    “아.”

     

    지젤이 머쓱해하며 담요를 제 배낭에 넣었다.

    이 늙다리아저씨, 너무 방심하시네.

    인벤토리라는 말에 근처 참가자 몇 명이 눈을 번뜩였다고 생각하는 건지.

    장담컨대 마법배낭 털어갈 생각에 신이 난 참가자만 열댓 명이 넘을 거다.

     

    데에엥─!

     

    다섯 번쯤 더 이어지는 종소리.

    모든 종소리가 그치자 단상 위로 대머리 스님 한 분이 올라왔다.

     

    “현 시간부로 상급시험장의 입장을 마감하겠습니다.”

     

    골이 울릴 정도로 요란한 종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는데 한가하게 나자빠질 인간은 없다.

     

    드르렁─.

    푸휴─.

     

    나자빠질 ‘인간’은.

    스님의 시선을 따라 참가자 전원의 시선이 나와 지젤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우리 뒤에서 숨 소리도 요란하게 자고 있는 덩치 큰 원숭이수인에게.

     

    “손오천씨. 이만 일어나십시오.”

    “오우. 시작이냐?”

     

    그 큰 종소리와 참가자들의 대화소리에는 꿈쩍도 않던 양반이 지젤의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난다.

    그제야 스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소승은 이번 1차 관문을 맡은 명호스님이라고 합니다. 물론 평범한 스님은 아닙니다. 아카데미에서 사역하는 망령계 몬스터와 저주받은 물건의 확보, 보관, 퇴치 및 성불을 업으로 삼는 무승이지요.”

     

    전 세계 모든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세계제일의 교육기관, 기프트 아카데미로부터 인정받고 협업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제일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기프트 아카데미가 기용하는 인재들도 각 분야의 가장 뛰어난 인재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방제국의 무승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방왕국에는 12주신들의 종교가 천하만민을 수호하지만 동방제국에는 강대한 신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깨우친 개인들이 고을 하나, 산 하나를 제 영역을 삼아 지키고는 하지요.”

    “동방에서는 이중 산을 지키는 소신격을 산신이라 부르고, 산신을 부르는 기복신앙의 상징으로 석탑을 쌓아올리고는 합니다.”

    “석탑은 단순히 돌을 쌓아 높이 올리는 것. 쌓은 돌의 층수와 높이에 따라 산신께서도 더욱 눈여겨보시니 석탑은 많이, 높게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시, 입구에서부터 떠올렸던 예상이 맞았다.

     

    “세계제일의 아카데미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심사관인 제게 보여야 할 성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시험장인 이 바위산에서는 부족한 몸이나마 소승이 산신의 노릇을 대신하여 여러분의 석탑을 평가하고 합격유무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최대한 많은 돌을 이용해서 높은 석탑을 쌓으십시오.”

     

    이번 시험은 돌탑쌓기다.

    그리고 이 시험은…….

     

    “물론 시험이 끝날 때에 석탑이 무너져있거나 응시생이 시험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할 시에는 무조건 탈락입니다.”

     

    내 탑을 열심히 쌓기보다 남의 공들인 탑을 무너트리기가 더 쉬운 관문.

    트롤들이 활개 치기 딱 좋은 시험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든 탑 무너뜨리기 장인들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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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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