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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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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병이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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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이나 서쪽에 병력을 배치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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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에서 머리만 남긴 채로 중얼거리던 금천강은 함 속에 고이 밀봉된 벽력탄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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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끝날 때까지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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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하나가 천금 같은 물건이지 않은가. 가능하면 쉽게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며 그는 손가락에 내공을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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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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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물속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원래라면 거품 몇방울 이는 게 끝이었겠지만, 내공을 실었기에 얆은 기파가 파도를 타고 뒤쪽에 있는 흑사대원들에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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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패로 나눠서 움직여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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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언젠가 배웠던 손자병법을 떠올리며, 신호를 세 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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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한 대로 양측으로 갈라져 침투하라는 지시. 흑사대원들은 삼호와 흑사대주 금천강을 중심으로 반으로 갈라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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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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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의문이 떠올랐다. 뭍까지 거리는 이제 채 1리도 남지 않은 거리. 조금만 헤엄치면 부두에 닿을 거리까지 왔건만, 아무도 반응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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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과 동쪽에 병력을 몰아넣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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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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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설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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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이게 적의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정신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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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시작한 이상 후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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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거나, 죽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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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지는 이미 두 개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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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기를 꺼내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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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목책 앞에 붙어 잠시 숨을 돌렸다. 뒤이어 흑사대원들이 하나둘씩 목책에 붙어 숨을 죽였다. 건너편도 마찬가지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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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시선을 돌려 심복인 삼호를 쳐다보았다. 그의 충실한 심복인 삼호는 금천강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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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금천강이 고개를 까딱였다. 꽤 먼 거리였지만,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삼호는 단번에 신호를 알아채고 단전에서 내공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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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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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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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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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한 몸인 것마냥 동시에 물속에서 튀어나와 목책을 넘어갔다. 뒤이어 수백의 흑의인들이 그를 따라 조용히 목책 너머로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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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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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항구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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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그들이 올 것이라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전부 숨어버린 모양새. 금천강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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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경계하며 은밀하게 해남검문을 향해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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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대가 한밤중에 골목을 누비는 고양이처럼 조용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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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경계하면서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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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칠 정도로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에 의문을 품으며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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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을 곤두세우며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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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주님. 전부 비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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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피난 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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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사람은 전부 대피한 모양이군.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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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가슴팍에 끼워놓은 함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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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육호에게 건넨 하나를 제외하고 두 개. 시의적절하게 던지면 적을 일망타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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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에서 벽력탄을 사용했으니 해남검문도 벽력탄의 존재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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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건 희망 사항에 불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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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수하들이 잘 뒤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며 마을 외곽을 따라 이동했다. 해남검문을 들어가려면 마을에서 곧장 이어진 길로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흑사대는 어디까지나 침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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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도 아닌데 길을 따라 들어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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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실전이라도, 그 정도 생각할 머리는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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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검문에 모여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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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함 속의 내용물을 꺼내 품속에 집어넣고, 함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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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의 아가리로 얼굴을 들이밀어야 한다니. 암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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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 대주. 허나 이건 대업을 위한 과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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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안다. 그러니…목숨을 걸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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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담호혈(龍潭虎穴)에 들어가는 심정이란 게 이런 걸까. 금천강은 생소한 감정에 쓴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쓴웃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금천강은 굽혔던 무릎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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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 최대한 빠르게 침투한다.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전부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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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 대신 흑의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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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선두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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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틀리면 벽력탄을 적들이 모여있는 곳에 던져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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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발끝에 내력을 모으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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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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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평생을 들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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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정말로 그러기를 바라야 하는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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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의 발끝에 실린 내기가 터져 나오며 그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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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뒤를 따라 흑의인들이 해남검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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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들을 맞이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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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이다! 모두 검막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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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에 흑의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검막을 펼쳤다. 수백명의 무인이 일제히 검막을 펼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날아가는 수백발의 화살도 그에 못지않은 그림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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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가 있었다면 이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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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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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밤하늘이 화살이 검에 튕겨 나가는 소리로 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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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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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욱…이거 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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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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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술이 아직 미숙해 검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화살에 맞은 흑의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검막을 펼치던 동료들은 곁눈질로 슬쩍 낙오자들을 바라보고는, 굳게 마음먹은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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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할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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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등을 보여주는 순간 곧바로 고슴도치가 될 게 뻔한 상황이니 당연한 일. 흑의인들은 하나둘씩 생겨나는 낙오자를 버려두고 해남검문으로 가는 대로에서 화살을 날리는 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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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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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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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누구 마음대로 싸운단 말인가. 해남검문의 무인들이 신속한 움직임으로 뒤로 빠지자, 그들에게 달려들던 흑의인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 마냥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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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가 꽤 되는 데다가, 산의 초입에 도달한 순간 바닥이 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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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주! 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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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 이호!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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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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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이라고? 설마 당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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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가는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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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에 함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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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이대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면 큰 피해를 볼 것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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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나 마나 해남검문 무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함정이 깔려있을 테니까. 아무리 고된 훈련을 받은 흑사대라도 함정을 피하면서 해남검문과 검을 맞대야 하는 상황은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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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으로 싸우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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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무인은 활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정파의 무인은 더더욱 그런 면모가 있어서, 그는 해남검문이 죄다 활을 들고 방어한다는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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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그들의 진격이 막힌 동안,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윌리엄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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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운데요. 무작정 돌격했으면 쉽게 상대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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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산 초입에서 멈춰선 흑사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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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의 뒤에 남쪽 항구 촌락이 존재하는 이상, 독화살과 함정만으로는 상황을 끝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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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꽤 유의미한 타격을 준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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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에서 걸리적거리는 건 시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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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에서 가장 걸리적거리는 것은 다름 아닌 부상을 입은 동료의 존재. 저놈들이 강시라면 모를까, 살아있는 사람인 이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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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을 당한 동료만큼 눈에 밟히는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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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전장에서 한창 활약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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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당한 걸 내가 써먹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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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놈들이 물러나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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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인이 꺼낸 말에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장문인의 말대로, 적들은 쉽사리 해남검문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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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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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이라면 후퇴를 고려해보겠지만…마교의 무인들이 그럴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해남검문의 무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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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배를 버리고 항구에 들어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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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저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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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있는 남쪽 항구로 돌아가서 재정비하고 다시 전투에 임하던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돌격해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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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거나 숨는 선택지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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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폴액스를 바닥에 꽂아 넣고 손을 들었다. 해남검문의 무인들과 미리 짜 맞춰 놓은 신호. 활을 내려놓았던 무인들이 일제히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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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습을 본 흑의인들의 얼굴에 긴장이 달렸다. 이대로라면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다가 전멸당할 터. 막상 뒤로 도망치려 해도 텅 빈 남쪽 항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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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바다 한복판에 떠 있기에 배를 타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숨어서 농성하면 천천히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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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상황을 타개하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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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린 건지, 아니면 우연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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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이든 그가 쥔 패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 금천강은 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벽력탄을 쓸데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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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접근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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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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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대원들이 하나둘씩 그의 앞으로 나와 그를 둘러쌌다. 어떻게든 접근만 하면 벽력탄으로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시도라도 해봐야 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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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뜨고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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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저승에서 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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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의인들이 넓게 퍼진 채로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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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돌진을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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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침착한 얼굴로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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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이 시원한 밤바람을 가르고 적들을 향해 날아간다.

       ​

       활 한 번 쏴본 적 없는 무인들의 활 솜씨란 처참해서, 인접한 거리가 아닌 이상에야 명중률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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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시하고 직진으로 달려도 무방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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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런 화살이 수백발에, 함정까지 더해지면…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화살조차 위협적으로 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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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함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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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가미를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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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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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

       사방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금천강은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 나갔다. 어떻게든 벽력탄만 던지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으니까.

       ​

       확실한 희망이 있었기에, 그의 눈에는 아직 투지가 가득했다.

       ​

       그리고, 눈에 실린 투지를 본 윌리엄이 폴액스를 바닥에서 뽑아냈다.

       ​

       “저놈이 대장인 모양입니다.”

       ​

       “자네가 나설 생각인가?”

       ​

       “예. 저놈이 벽력탄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이쪽으로는 아예 얼씬도 못 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다 자네가 다칠 수도 있네.”

       

       “걱정마십시오. 벽력탄에 대한 대책은 이미 해두었습니다.”

       ​

       윌리엄은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그는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는, 장문인을 바라보며 손을 활짝 펼치며 선언했다.

       ​

       “벽력탄을 쓰지도 못하게 만들어놓겠습니다.”

       ​

       ‘이 짓 해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

       기사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윌리엄이 앞으로 나아갔다.

       ​

       목표는 누가 봐도 ‘내가 대장이오’하고 기운을 흩뿌리는 금천강.

       ​

       윌리엄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해남검문과 마교 사이에 착지해 금천강의 앞을 막아섰다.

       ​

       “색목인…?”

       ​

       “네가 대장인가?”

       ​

       “…비켜라. 색목인.”

       ​

       “그건 안될 말이지. 네가 벽력탄을 들고 올라가게 할 수는 없어서 말이다.”

       ​

       윌리엄이 천천히 폴액스를 들어 올렸다. 자루 끝부분을 금천강을 향해 겨눈 자세. 그것이 곧 기수식임을 눈치챈 금천강이 위쪽의 눈치를 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

       눈앞의 색목인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터.

       ​

       ‘빠르게 처리하고 달려나가야겠군.’

       ​

       이렇게 발목을 잡힐 수는 없는 노릇.

       ​

       “…앞으로 나선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

       “그건 내가 할 말인데.”

       ​

       

       색목인 무사와 마교의 무사가 격돌을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기사 VS 마교!

    SYSTEM:작가는 장염에 걸렸다! 작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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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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