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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신성력.

       

        현대 과학을 뛰어넘은 그 물질은 존재만으로도 거대한 힘을 동반한다.

       

        치유는 물론, 파괴의 힘까지. 말 그대로 만능의 힘을 가진 것이 신성력이란 뜻이다.

       

        “잠깐만요.”

        “왜?”

       

        두 아이의 입원 수속을 마친 나와 한유리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회색빛 도시. 히어로 아카데미를 본 떠 만든 것과 같은 도시의 거리 가운데서 한유리가 걸음을 멈췄다.

       

         “그,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동화의 영향일까?

       

        한유리가 피곤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네가 시나리오의 캐릭터를 배반한 결정을 내려서 그럴거야.”

        “분명히. 당신의 말대로라면, 이 세계의 한유리는 아이들을 두고 떠날 사람은…… 절대 아니죠.”

       

        나름대로 예리한 안목.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가슴 한켠이 답답해. 하지만 가만히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지.”

        “후! 그건 저도 동의해요. 아이들을 구하는 게……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라는 게 조금 꺼림칙하지만.”

        “세계의 멸망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걸 확신할 수 있어.”

        “그, 그런가요?”

       

        수첩엔 <히사있>에 꿈속을 걷는자가 등장한 에피소드를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호스트’였던 D급 능력자의 발악.

        ‘빌런’과의 연결 해제.

        빌런, 꿈을 걷는자의 처참한 패배.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붕괴하는 세계와, 현실로 복귀하는 히어로들.

       

        그 내용들을 되짚어보면, 내 선택은 ‘정답’과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아! 당신이 말한 곳 간판이 보여요.”

        “생각보다 빨리 왔네.”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얼마간 걸으니 목적지가 보인다.

       

        [ 빛의 신이 추천하는 ‘신성 PC방’ ]

       

        “…….”

       

        눈으로 직접보니 빌런의 의도 가득한 악의가 눈에 훤히 보였다.

       

        보나마나 놈에게 가장 큰 위협인 <성녀>를 격리하기 위해 부랴부랴 만들어낸 공간이겠지.

       

        꿈속을 걷는자, 놈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언뜻 보기엔 ‘유리멘탈’의 정점으로 보이는 <성녀> 안젤리카, 그녀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성녀는 신의 축복이라는 신성력의 축복과 보호 아래에 살아간다. 그렇기에 온갖 질병과 정신공격, 우발적 피해에 사실상 면역이다.

       

        그렇기에.

       

        <성녀>는 이 꿈속에서도 ‘캐릭터’와 ‘동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쉽게 표현하자면 한 차원 위의 방벽을 지녔기에 정신방벽이 전무한 그녀가 자아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성녀가 이런 PC방에 틀어박혀있을까?

       

        “아니이! 거기서 그걸 쓰면 당연히 내가 죽지!”

       

        ……그건 바로.

       

        <성녀> 안젤리카 ‘더 글로리아’ 플리머스. 그녀는.

       

        “던질까요? 이러다 저, 그냥 확 적진 가운데에 맨몸으로 날아가버려요?”

       

        게임에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생각보다 훨씬 쉽게 찾았네.”

       

        어두운 PC방의 계단을 내려와, 유리문을 열고 진입하니 곧장 공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갸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꿈속에 들어온 직후의 그녀는 소리쳤을 것이다.

       

        [ 당황하지 마세요! 저에게 모이세요! 신성의 빛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겠습니다! ]

       

        그런 행동의 원인은 뻔하다.

       

        성녀는 강하다. 성녀는 유명하다. 성녀는 수많은 인류의 지지를 받고있다.

       

        하지만 이 회색빛 도시의 주민들은 다르다. 그들은 성녀를 모른다. 미친사람 보듯이 빤히 그녀를 쳐다보며 지나쳤겠지. 

       

        실제로 현실세계의 사람이 있어도 빌어먹을 동화덕에 그녀를 알아볼 수도 없었을 거고.

       

        그렇기에.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 참새는 이 도시를 방랑했을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참새를 묶어두기 위한 새장에 쏙 들어간 거겠지.

       

        “헤헹. 내가 그럴줄 알았지. 그러니까 말을 착하고 이쁘게하면 좋았을 걸!”

        “…….”

       

        충격적인 발언이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얌전히 그녀의 뒤에 서서 그꼴을 구경하고 있자니, 한유리가 이내 경악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서, 설마? 성녀? 저 사람이?”

       

        그녀도 놀란 모양이다. 성녀가 본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 것은 <히사있> 완결까지 없었던 일이니까.

       

        “도대체 무슨 캐릭터에 동화된 거죠?! 저건 그냥 개망나니인데요!”

       

        눈을 부릅뜬 한유리가 소리쳤다.

       

        “그게 아니야.”

        “네? 그게 아니라뇨? 아니 그보다, 이 동화라는 것. 최악의 경우엔 정신병자 캐릭터에 동화될 수도 있나봐요!”

        “그게 아니라고.”

        “더러운 빌런!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아카데미는 물론, 전 인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바로 그녀인데.”

        “…….”

       

        설명하기를 그만둔 나는 한심함 가득 담아 <성녀>를 보았다.

       

        투두두두두.

       

        열심히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올리는 그녀는 나와 한유리가 나타난 것도 모른채,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 패배 ]

       

        그녀에게 익숙할 붉은 화면이 곧장 모니터에 출력됐다.

       

        “으으으! 으아아!”

       

        쿵!

       

        다시 한번 포효를 흘리기 시작하는 성녀. 그 목소리가 워낙 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삭막한 얼굴이 보인다.

       

        그래, 마치 ‘제발 죽여줘……’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가득하다.

       

        “흠흠.”

       

        나는 아무렇지 않은척, 성녀에게 다가갔다.

       

        고귀함의 상징, 새하얀 순결의 증명인 <신성교단>의 자랑인 그녀에게로.

       

        “반갑다.”

        “……? 당신은 누구신가요?”

        “네가 잘 아는 사람이야.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어.”

       

        캡 모자를 푹 눌러쓴 성녀가 잠시간 내게 흥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잘 아는 사람? 그렇다고 하기엔 제 기억에 없는 얼굴입니다.”

        “그거야 차차 기억을 떠올리면 되는 거고.”

       

        스윽.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석인 PC방엔 그녀의 좌우 옆자리만 비어있었다.

       

        “용건을 말하십시오. 간단히.”

       

        내 의도를 알 수 없었던 건지. 방금까지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성녀>는 서늘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말했다.

       

        “닉네임, 이단 도살자. 티어는 아이언 1.”

        “그, 그걸 어떻게?!”

        “불행히 실력은 충분한데, 등반할 파워가 모자른 느낌이야. 팀운도 없고, 운영도 미숙하지.”

        “제, 제법 안목이 있는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제 실력은 아무리 못해도 골드……!”

       

        척!

       

        확신에 찬 음성을 내뱉는 성녀에게.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래. 나는 네 티어를 천상계로 올려줄 사람이야.”

        “……!”

       

        아이언인 그녀의 게임 랭킹을 천상계로 올려준다는 말을 믿을 수 없던 걸까?

       

        <성녀> 안젤리카는 눈을 부릅뜬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누가 보아도 경계심이 풀리지 않은, 의심 가득한 눈빛이다.

       

        “그 말을,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네 재능을 보았어. 잠시 뒤에서 플레이를 보았는데, 충분한 포텐셜을 가진 사람이더군.”

        “맞습니다. 저는 운이 엄청 없는 사람입니다. 실력은 충분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하지만 도저히,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까맣게 잊은 성녀의 말에 헛웃음이 나올것 같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나쁘다고, 게임 던진다는 사람이 누구였지?

       

        “나를 도와줘.”

        “……갑자기 듣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약속한다. 내 아주 가벼운 일 하나만 도와주면, 네 티어를 올려줄게.”

       

        안젤리카의 얼굴이 곧장 일그러졌다.

       

        자신의 추태를 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제안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하긴, 천하의 <성녀>가 아이언 늪에서 허우적대는 걸 아는 사람은 독자 밖에 없으니까.’

       

        “티, 티어라면. 어디…… 까지?”

       

        헌데 곧장 들려온 대답이 제법 우스웠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한 성녀가, 내 제안에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있어.’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일이 쉽게 풀리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골드, 혹은 그 이상. 네 의지가 닿는 곳까지.”

       

        엄숙히 선포하는 것처럼. 나는 그녀의 앞에 서 선언했다.

       

        “……!”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녀> 안젤리카가 작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월척이다.

       

        * * *

       

        “저, 정말입니까?”

        “그래. <재창조>의 한유리가 바로 이 사람이야.”

        “놀랍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색한 한국어의 <성녀>가 연신 감탄을 흘렸다.

       

        PC방에서 그녀를 꺼내온 우리는 작은 카페에 둘러앉았다.

       

        초췌한 안색에, 흐리멍텅한 눈. 도대체 이 회색빛 도시의 PC방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는지, 진득한 피로가 보이는 건 물론이고 피부마저 푸석푸석해 보인다.

       

        “그리고 나는 D등급의 임혜성이다.”

        “……네?”

       

        카페에 앉아 서로간 소개를 하고 있으니, 곧장 성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 놀랄 필요가 있나? 잠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협력하는 사이인데.  네가 내 뒷조사를 지시한 건 이미 알고있어.”

        “……!”

       

        안젤리카가 들뜬 숨을 몰아쉬었다.

       

        며칠 전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신속>의 최영웅, 그 겁도 없는 자식이 내게 달려들어 혼을 내줬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과거를 신경쓸 시간이 없어.”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잔뜩 굳은 대답을 내뱉는 성녀.

       

        그런 녀석이 PC방에 틀어박혀 있어? 바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옅은 한숨을 쉰 나는 간략한 계획을 설명했다.

       

        “네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해. 신성력, 그 신성력을 여기, <재창조>의 한유리가 창조의 힘으로 빚어낸다.”

        “그, 그게 가능할까요? 제 능력은 제가 보고, 기억하는 것만 가능해요.”

        “가능하지. <성녀>가 신성력을 선보이면 되는 일이니까.”

        “……마치 신성모독처럼 들리는 말입니다.”

       

        고작 온라임 게임 점수를 대가로 협력하는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 신성력을 다루는 것은 <성녀>만이 가능하지. 한유리가 창조한 신성력을 내가 압축한다.”

       

        참으로 간단하고 간략한 설명이었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자연히 두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그에 나는 뻔한 일이라는 것처럼,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걸 터뜨리는 거야.”

       

        심플 이즈 베스트.

       

        호스트니, 빌런이니, 할 것 없이 아주 편안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아주 만족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그래요. 여보가 하는 말이니까. 저는 믿고 따를게요.”

        “여, 여여, 여보? 지금 여보라고 했습니까?”

       

        ‘동화’의 영향으로 다정다감한 그 칭호가 한유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것이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여보는 대한민국에서 애인, 혹은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 당신들, 설마 그런 사이였습니까?”

        “아, 아니에요! 아, 아닌 건 아닌가? 물론 저와 임혜성은 부부긴 한데, 부부는 아니고!”

        “그건 당최 무슨?”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에 실시간으로 오해가 깊어진다.

       

        “…….”

       

        음, 그나저나 이 집 커피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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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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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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