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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아프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그냥 맞서 싸운 것 뿐이잖아.

       

       살기를 느껴서 반응했다. 그리고 승리한 자로서 패배한 자를 포식했다. 그게 당연한 자연의 섭리니까.

       

       너희도 나를 잡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럼 왜 바로 죽이지 않고 마구 찌르고, 할퀴고, 상처입히면서 괴롭히는 거야?

       

       “하하. 인간형이라고 해도 새끼는 새끼네.”

       “빨리 죽이고 퇴근하러 가요.”

       “잠깐! 죽이면 안돼요! 귀중한 실험체라고요!”

       “…그러면 적당히 무력화만 시키도록 하죠. 뭐.”

       

       아파.

       

       하지 마.

       

       잘못했어.

       

       “아, 그아…”

       

       충분하잖아.

       

       이겼으면 빨리 죽이고 잡아먹어.

       

       왜 계속 팔다리 쪽만 집요하게 공격하는 건데.

       

       “아아, 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밀리기 시작하던 새끼 괴수의 허벅지로 투척된 단도가 꽂혔다.  

       

       “갸악?!”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틈에 양쪽에서 놈을 붙잡은 헌터들은 그대로 새끼 괴수를 맥없이 바닥에 무릎 꿇렸다.

       

       “괜찮니?!”

       

       아파.

       

       너무 아파.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새끼 괴수는 정면을 돌아봤다.

       

       자신을 향해 걱정어린 표정으로 달려오는… 인간.

       

       “으아…아..?”

       

       왜 슬픈 표정을 짓는 걸까.

       

       왜 걱정해 주는 걸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미가 죽은 탓에 아직 타인에 대한 호의를 느끼지 못한 새끼였다.

       

       그래서 종족 상관없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희정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눈빛에 생기가 감돌던 것도 잠시.

       

       “휴우. 다행히 생식기관 쪽은 이상 없는 것 같네.”

       “나 참, 우리도 생각이 있지. 그래서 일부러 팔다리 쪽만 노렸던 거 아닙니까.”

       “B급 헌터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똑같은 눈높이로 무릎까지 꿇어줬으면서 눈 따위 맞추지 않고 하반신만 살피는 인간.

       

       알 수 없는 혐오감이 피어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믿었고 배신당했다.

       

       이에 어린 괴수는 분노를 표출하듯 울부짖었지만.

       

       “아아아! 아아!”

       “엄마야?!”

       “어이쿠.”

       “가만히 있어.”

       

       도저히 붙잡은 손아귀를 뿌리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씨… 놀랐잖아!”

       

       퍼억!

       

       

       갑자기 시야가 옆으로 돌아가더니 뺨 한쪽이 얼얼했다.

       

       동시에 다시 정면을 돌아보자 씩씩 숨을 몰아쉬며 일어선 채로 한쪽 발을 자신이 돌아본 방향으로 향한 인간.

       

       어린 괴수는 이내 자신이 발로 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걱정해 줬던 타인에게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하물며 폭력까지 당해버렸으니까.

       

       뭐라 말로 허용할 수 없는 괴로운 감정이 솟구쳤다.

       

       허나, 진짜 괴로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그 괴물. 그대로 잡고 있어 주시겠어요.”

       

       새끼 괴수에게서 등을 돌린 이희정.

       

       헌터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그녀가 향한 곳은 무참히 사냥당한 괴수 사체들의 한가운데였다.

       

       “어디보자… 음, 얘는 좀 멀쩡하게 죽었네.”

       “뭘 하시려는 겁니까?”

       “뭐긴 뭐겠어요. 유전자 추출이죠.”

       

       이희정은 연구동의 연구원답게 능숙히 한 죽은 괴수의 사체 사이로 주삿바늘을 꽂았다.

       

       그런 다음 아직까지는 멀쩡한 유전자를 뽑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어린 괴수 쪽으로 걸어가며 붙잡은 헌터들에게 말했다.

       

       “이 괴물 때문에 연구동의 거의 모든 샘플이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빨리 원상복귀부터 시키려고요.”

       “그 말은 즉… 여기서 바로 인공수정을 시키겠다는 말씀인가요?”

       “네. 괴수의 유전자는 생존한 체내에서 벗어나면 최대 2시간 정도 밖에 살 수 없어요. 그래서 바로 여기서 번식을 시켜야 해요.”

       “그래봤자 저 짐승형 괴수랑 이 새끼 괴수는 종 자체가 다르잖아. 그런데 교배가 된다고?”

       “돼요. 다른 괴수라면 모를까 인간형 괴수는 종이 다른 괴수들과 교배해서 개체명 ‘키메라’를 만들었다는 논문이 있거든요.”

       

       다시 한쪽 무릎을 꿇어 어린 괴수와 시선을 맞춘 이희정.

       

       그녀가 한 손에 쥔 주삿바늘을 들어 올리자 어린 괴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본능대로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아아…!”

       “쯧. 세게 붙잡으세요. 그냥 이대로 생식기관에 바로 꽂아 넣을 테니까.”

       “넵.”

       “정 날뛰면 팔이나 다리… 눈알을 통째로 도려내도 되요.”

       “그래도 되나요?”

       “네. 어차피 얘는 교배용으로만 쓸 거라서 생식기관만 멀쩡하면 어딜 분질러 놓든 상관없어요.”

       

       어린 괴수는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너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분뇨를 지려버렸다.

       

       “흐음. 생식기관뿐만 아니라 배설기관까지 인간이랑 비슷한 모양이네? 나중에 따로 해부할 필요가 있겠어.”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무서워.

       

       살려줘.

       

       하지 마.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이빨이 딱딱 떨린다.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온다. 주삿바늘이 배꼽 밑으로 점점 다가올수록 새끼 괴수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큭…!”

       “이게!”

       “제대로 좀 잡으라고요! 남자라는 것들이 새끼 상대로 왜 이렇게 힘을 못써요!”

       

       그러다.

       

       “꺄악?!”

       

       한쪽으로 몸을 심하게 기울여 있을 수 없는 각도로 팔이 꺾이는 대신, 붙잡고 있던 헌터를 한 명 던져버려 겨우 포박에서 풀려난 새끼 괴수.

       

       동시에 날아온 헌터와 몸이 부딪혀 같이 바닥에 넘어진 이희정은.

       

       쨍그랑!

       

       “어, 어라?”

       

       그나마 남아 있던 괴수 샘플이 든 주사기를 깨트렸다는 사실에 좌절하면서.

       

       “이, 이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빨리 무력화해 주세요!”

       

       자신과 함께 쓰러진 헌터를 일으키며 주변의 다른 헌터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팔이랑 다리 힘줄만 끊으면 되는 거죠?”

       “통째로 잘라도 돼요! 아씨! 그냥 죽지만 않으면 되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도록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으라고요!”

       “그럼 하던 일 마저 하자고.”

       

       뼈가 어긋난 탓에 한쪽 팔이 아래로 축 늘어진다.

       

       눈앞의 세 헌터가 거리를 좁힐수록 새끼 괴수는 지레 겁먹고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러다 벽에 등이 닿자 무서워 다시 ‘눈물’이라는 걸 흘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아아, 그, 그으…!”

       

       지켜줄 동족, 없다.

       

       부모, 없다.

       

       힘, 부족하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가만히 있어라. 그래야 빨리 끝나니까~.”

       

       자신의 팔다리를 노려보며 제각기 다른 흉기를 든 인간들.

       

       고작 팔 하나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 당한다면 분명 죽는 것보다 끔찍할 일을 겪게 될 거라고 본능이 속삭였다.

       

       그렇게 끝나기 직전에 생명체라면 모두가 다 느낀다는 데자뷔에서.

       

       새끼 괴수는…

       

       …아니.

       

       정확히는 유전자로 이어진 기억의 단편에서 새끼 괴수는 볼 수 있었다.

       

       이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

       

       자신의 모체를 끝장낸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일격을.

       

       “그, 그그…”

       “…?”

       “극, 진… 가라, 데…”

       “…뭐.”

       “괴수가 말을?!”

       

       모체의 기억 속에서 본 정면.

       

       땅을 밟은 두 발끝을 안쪽으로 모은 채 무릎을 약간 구부린다.

       

       그러고 나서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정면의 상대보다는 공간 그 자체를 친다는 느낌으로 어깨를 등 뒤로 당겼다가 주먹을 뻗었다.

       

       “정권, 지르기.”

       

       파앙!

       

       그것은 모체의 기억 속에서 본 진짜 기술에 비하면 한없이 조잡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듯.

       

       “끄흡?!”

       “히익?!”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는데도 새끼 괴수의 바로 정면에 있던 헌터는 배 속의 근육이 출렁이더니 이내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양쪽에 있던 헌터들도 마치 바람에 튕겨 나가듯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가만히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희정은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희미했던 회색 눈동자가 루비처럼 영롱하게 빛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이, 겼다…!”

       

       이후 새끼 괴수는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 따위 없었다.

       

       그저 자신은 살고 싶었기에.

       

       때마침 풍압의 영향으로 떨어져 나간 연구동의 환풍구 덮개를 확인하곤 그 구멍속으로 빠르게 들어가 사라지기 직전.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모체.

       

       “엄, 마…”

       

       머리는 없이 몸만 덩그러니 남은 모체를 힐끔 돌아보더니.

       

       “안, 녕.”

       

       작별 인사를 고하며 연구동에서 자취를 감췄다.

       

       

       ***

       

       

       괴수 청소부 일을 끝마치고 협회 지부에 돌아왔을 때였다.

       

       “분위기가 왜이러냐…?”

       “그러게?”

       

       오늘이 무슨 종말의 날인 것 마냥 잔뜩 바빠 보이는 협회 로비.

       

       나와 소피아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소피아 헌터님! 헌터님 맞으시죠?!”

       

       우리를 향해 황급히 달려오는 한 사람.

       

       평소 로비에서 일을 보던 업무원 분이셨다.

       

       “지금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큰일이요?”

       “네! 최소 C급 이상 되시는 헌터 분들은 이미 6층의 작전회의실에서 간단한 브리핑만 받은 후 바로 현장에 출동했어요!”

       “C급 이상이 전부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어, 그게…”

       

       업무원 분은 잘 이야기하다가 나를 힐끔 돌아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대충 여기서부터는 내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눈치껏 빠져주기로 했다.

       

       “소피아. 나는 먼저 집에 가 있을게. 그러니까 나중에 만나자.”

       “…응. 알겠어. 그럼 저녁에 보자.”

       “그래.”

       

       내가 소피아한테서 떨어지자, 업무원은 죄송하다는 얼굴로 소피아에게 사과하며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6층의 작전회의실까지 안내해 줄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가는 척 즉시 계단으로 뛰어가 5층까지 달려갔다.

       

       ‘이거 분명히 원작대로 안 흘러간 각이다!’

       

       숨을 몰아쉬며 5층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우선 화장실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나 철저히 살피고 나서 완벽히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5층 화장실의 바로 위쪽이 6층의 작전회의실이었으니까.

       

       ‘도청’을 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청력이 꼭 필요했기에.

       

       “우어어어어어…”

       

       공공장소니까 조용히.

       

       나는 작게 포효를 질러 검은 번개를 몸에서 내뿜었다. 그리고 칠흑의 갑주를 걸친 괴수 우로갈로 괴수화했다.

       

       그런 다음 곧장 변기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위쪽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항상 추천과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연참해서 독자님들의 마음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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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ransported into a hunter genre game. Not as a national power, but as a catastroph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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