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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행복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배가 부를대로 불러진 루크는 물을 마시며 숨을 몰아쉬었다.

    ‘생각보다 너무 먹고 말았구나……. 언제나 식사량은 적절히 조절해왔건만…….’

    5000년전의 향과 맛이 부족한 음식만 먹던 루크에게 현대의 향신료는 반칙이었다.

    100년간 호기심과 탐구심 외에 모든 욕망을 극도로 절제했던 그였지만, 이 꼬치는 예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루크가 마법사로써 현역일시절은 일단 대전쟁으로 먹을것이 부족한 시대였던데다, 전쟁의 영향으로 당장 요리에 대한 인식이 대단하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서 살았던 루크에게는 현대의 향신료가 너무나 강렬했던 것이다.

    본디 인간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미식행위는, 현대에서는 이제 완전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끄응…….”

    그래서, 루크는 과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이튼은 무리하게 꼬치를 입 안에 욱여넣던 루크의 모습을 떠올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게 그만 먹으라니까…….”

    “흐음…….”

    다이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입안에 욱여넣은것은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새삼 부끄러워진 루크는 다이튼의 안쓰럽다는 시선을 피했다.

    다이튼은 루크에게 말했다.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토를 해. 등 두드려줘?”

    “그럴 순 없다, 그대가 힘들여 만든 음식이 아닌가? 그리고, 음식을 그렇게 낭비하는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야.”

    너무 맛있어서 위가 작아진것을 계산에 넣질 못한 루크는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으나, 이미 입 안에 넣은 음식을 토해낸다는것은 자원의 낭비다.

    한정된 자원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몸에 밴 루크는 그러한 낭비를 싫어했다. 

    물론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역시 그러한 낭비를 좋아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그나저나, 이 나이를 먹고 과식이라니. 오랜 세월에 노망이라도 난 것일까하고 생각하며 루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대답과 쓴웃음에 담긴 세월을 본 다이튼은 대체 과거에 얼마나 굶주린 생활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뒷목을 주물렀지만.

    “그……. 맛있게 먹었으면 됐고…….”

    “그래, 정말로 맛있었다.”

    빵빵해진 배를 살살 문지르던 루크는, 다이튼에게 무어라도 보답을 해줄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렸다는듯이 말했다.

    “혹, 러브레터는 잘 써지고 있는가?”

    루크의 질문을 들은 다이튼은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말했다.

    “하아……. 아니. 역시 내겐 글솜씨따윈 없는것 같다. 뭘 써야할지 전혀 모르겠어.”

    “흐음, 좋다. 식사도 대접받았으니,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방으로 따라오게나!”

    어린이가 쓰는 러브레터를 참고할만한 구석이 있을까하고 생각한 다이튼이었지만, 루크의 당당한 목소리에 한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뭐, 알겠다. 그럼 종이랑 볼펜 가져올게.”

    그럼에도 별 기대는 안했지만.

    ———

    루크가 아무리 도와준다곤 했지만, 러브레터를 다이튼 대신 작성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도와주느냐.

    “자아, 러브레터의 작성 요령을 알려주겠네. 잘 듣게나.”

    “예에, 루크 이루시님. 부디 이 미천한 중생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다이튼의 과장된 어투에 살짝 미소지은 루크는, 책상에 종이를 놓고 볼펜을 댔다.

    다이튼이 그 옆에 적당히 서자, 충분히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 루크는 종이에서 볼펜을 움직이며 설명했다.

    “자아, 러브레터란건 결국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루크가 ‘마음’이라는 단어를 쓰고,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니까, 그대의 마음이 잘 드러나게 쓰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구나.”

    다이튼은 처음엔 적당히 대꾸했다.

    어린아이가 해 주는 강의인 만큼,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루크의 연설에 다이튼은 잠깐 넋을 잃었다.

    “그렇다고 너무 갑자기 사랑을고백하는건 좋지 않다.

    결국 러브레터란것도 글이며, 순서가 있다. 순서가 맞지 않는 글은 읽어봤자 난잡하고 곤란할 뿐이다. 그러한 글을 보고 사랑에 빠질 여인은 없겠지?”

    ‘어라, 이거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10살짜리 꼬맹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건가?

    다이튼은 살짝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이튼의 태도변화에 조금 의욕이 붙은 루크는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라는 단어를 종이에 순서대로 적어내려가며 말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먼저 서술하는것이 좋다. 그대의 상대는 이 편지를 받을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것은 ‘언제부터?’라는것이 가장 궁금한 정보일 것이다. 동의하는가?”

    “어, 그래. 동의해.”

    “그러니 그것을 가장 먼저 쓰는 것이다. 그것이 전제되어야 상대는 그대의 감정의 깊이를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겠지. 1년이라고 했던가? 인간치고는 꽤 긴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대가 이 편지를 보낼것은 엘프다. 그대와는 삶의 길이가 두배이상 차이나는 엘프. 그녀에게 1년은 그리 길진 않은 시간이니, 이 1년간 있었던 감정에 조금 더 글을 할애하는편이 좋을것이다.”

    “어? 어.”

    “그 다음엔 ‘무엇이’ 좋은지를 써야겠지. 그대가 예르나에 대해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고, 그것이 그대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서술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너무 은유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을 쓰진 말라는 거다. 그대가 지금 써야하는 글은 문학이 아니다. 러브레터에는, 차라리 조금 직설적으로 쓰는것이 좋다.”

    “직설적으로……?”

    “그러니까, 그대의 눈동자는 보석같이 빛나며……. 이런건 쓰지 말라는거다. 그냥 눈동자가 아름답다고 써라.”

    루크는 다이튼이 한번 구겼던 것인지 쭈글쭈글해져있는 종이에 쓰여진 문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루크의 지적에 다이튼은 머리통을 긁으면서 대꾸했다.

    “나도 그건 별로기는 했어.”

    “그러니까 구겼겠지. 나도 안다.”

    고개를 끄덕인 루크가 씨익 미소지으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좋아, 예르나의 무엇이 좋은지를 썼으니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할 것인지를 써라. 너무 앞서나가지는 말고, 적당한 수준으로. 그러니까, 뭐 그대가 예르나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가장 하고싶은게 뭔가?”

    다이튼은 괜히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았다.

    “그, 뭐……. 같이 데이트라던가……. 그런거 있잖냐.”

    그 모습을 본 루크는 젊은이의 풋풋함과 덩치값 못하는 남자의 역함이 동시에 올라와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덩치는 케일 프롭슨만한것이, 어찌…….’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루크는 종이에 ‘데이트’라는 단어를 썼다.

    데이트가 무엇인지는 루크도 알았다.

    아까전에 보게된 소설에 그러한 단어도 나왔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뭐……. 상관 없겠지. 그래도 너무 노골적인건 자제해라.”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꼭 사랑한다는 말은 붙이고. 그러면 된다.”

    “오오…….”

    놀랍기도 했지만, 루크의 말에 다이튼은 매우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가, 의자에 높이도 안맞아서 책을 쌓아놓고 앉아서 말하는 꼬맹이가 한 말 같지않은 강의였다.

    루크는 과거 아카데미의 학장이었던만큼 누군가를 가르침에 익숙했던데다, 말년에 한 마을의 촌장으로 살아가며 젊은이들의 연애상담을 몇번 도왔던 경험이 발현된 것이었지만, 다이튼은 기껏해야 어린애의 놀이수준을 생각했었던게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얘 대체 뭐지?’

    어린녀석이 이게 대체 무슨 연륜이란 말인가.

    뭐, 공부를 열심히하면 이런걸 알게되는건가?

    “너, 대체 이런걸 어디서 안거냐?”

    “다 경험이지. 그대가 보는것처럼 나는 어리지 않다네.”

    당당한 표정의 루크를 내려다본 다이튼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꼬맹이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니까, 그대는 나를 존중하는 시선을 좀 보낼 필요가 있다는 얘길세!”

    꼬맹이라는 말은 역시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

    다이튼이 루크의 조언에 따라 다시 러브레터를 쓰러간 시간, 루크도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우리아이 언어공부, 한권으로 끝내요!’라는 언어학습지였다.

    루크도 다이튼에게 예시로써 적당히 러브레터를 써서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제 글을 읽는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긴 하지만, 쓰는건 여전히 서툴렀다.

    5000년 전의 고대문자를 100년간 써온 루크가, 아무리 대마법사로써 총명한 두뇌를 가졌다고해도 단 몇주만에 완벽히 마스터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글을 읽는다는것과 쓴다는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 현대문자를 무리없이 읽어낼 수는 있지만, 현대의 표현을 머릿속에서 조합해 현대의 정서를 담아 문장으로 엮어내는 작업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문자의 변형도 무시할 수 없고, 이제는 쓰지 않는 표현도 걸러낼 필요가 있었다.

    “흐음, 역시 바뀐 표현이 너무 많구나.”

    사실, 루크가 다이튼에게 예시로 글을 써보는 것도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예르나에게 편지를 남겼더니 제대로 읽지 못했던것을 미루어보아, 아마도 현대의 문자에는 조금 변형이 있었던 모양.

    그래서 긴 글을 쓸 수 없었던 루크는 그 언어학습지의 표현과 예시를 비교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흐음…….”

    하지만 막상 써보려니 쉽지 않았다.

    대상이 없는 러브레터는 공허할 뿐이고, 감정 없이 공허한 러브레터를 예시랍시고 가져다줄수는 없는 노릇.

    ‘누군가를 떠올려야ㅡ…….’

    깊게 고민하던 루크는, 마침내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매번 떠올리니 미안하군. 레네. 아직 그대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아서 그렇다네. 용서해주게.’

    과거의 삶의 인연중 가장 사랑이라는 감정과 가까웠던 인물은 결국 그녀뿐이었다.

    가장 깊은 관계였고, 또 가장 즐거운 관계였으니.

    비록 연인은 될 수 없었지만, 그나마 마법사의 냉철한 가슴을 뛰게 할 수 있었던건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들 뿐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빛이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루크는 레니에 아린세이아를 생각하며 러브레터를 적어내려갔다.

    마음을 다해서.

    사각, 사각.

    하지만 너무 집중한 탓일까.

    예르나가 들어온줄도 모르고 진지하게 글을 써내려가던 루크는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랐다.

    “으, 으앗! 뭐, 뭔가?”

    “루, 지금 뭐해?”

    “예, 예르나. 대체 언제 왔는가? 놀랐잖나.”

    루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중얼거리듯이 묻자, 예르나는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턱선에 대며 말했다.

    “방금 왔지. 루, 근데 대체 뭘 쓰는거야?”

    예르나가 자신이 쓴 러브레터에 궁금증을 갖자, 황급히 그것을 구겨 등 뒤로 숨겼다.

    그것은 제 3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도 아니고, 보여줄 필요도 없었으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쓰지 말거라.”

    “흐음, 뭔데 그래?”

    예르나는 생소한 루크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반응이 꽤나 귀여웠던 탓에, 장난을 치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너무 심한건 아니고, 가벼운 정도로.

    “흐흥, 우리 루가 뭘 그렇게 숨기려고 하실까~. 혹시, 러브레터라도 썼을까?”

    하지만 그 농담은 루크에게 치명적이었다.

    사실이었으니까.

    “혹시, 봤는가……?”

    ‘러브레터를 쓰는걸 들킨다는건, 원래 이토록 부끄러운 일이었나…….’

    잘난듯이 다이튼에게 설명은 했지만, 실제로 마음을 가득 담아서 글을 써본것은 처음인지라 너무나 부끄러웠다.

    게다가, 100살이나 먹어선 러브레터를 쓰다가 들켰다는 이 현실이 끔찍할 정도로 오한이 들어온 루크는, 대답을 순간 하지 못했다.

    예르나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파악할 정신보다, 당장의 부끄러움이 더컸으니까.

    “어, 진짜로?”

    그런 반응에 예르나는 입가를 가리며 놀란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까 대충 보니까 붉은머리가 어쩌구 하던데……. 루크가 본 남자는 다이튼밖에 없잖아? 혹시…….’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그러나 이미 예르나의 머릿속에선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중이었지만.

    이건 다이튼이 잘못한거다.

    예르나는 아무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차이가 얼만데, 대체 다이튼은 무슨 짓을 한거지?’

    “……예르나, 무슨 일인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루크가 의자에서 내려와 다가가며 묻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린듯이 가져온 서류를 책상위에 턱 내려놓고는 숙소의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잠깐, 언니 어디좀 갔다올게.”

    “무슨 일인데 그러는겐가……? 표정이 많이 좋지않네만…….”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 걱정마.”

    “뭐……. 알겠다.”

    무슨 이유로 기분이 나빠져서 바람이라도 쐬려는 것인가 생각한 루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후, 다이튼의 숙소에서는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짜야! 예르나!! 나는 루크한테 아무것도 안했어! 꼬치를 좀 구워주긴 했지만,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했다니까!”

    “웃기지 마! 꼬치로 꼬신거잖아! 이 변태, 로리콘!”

    “으아아악!!”

    그 사이, 루크는 자신이 예시로 썼던 러브레터를 역시 다이튼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럽다는 이유로 벽난로에 던져 소각시키는 것으로 하루는 끝을 맺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르나에게 있어서 다이튼의 호감도는 매일 내려가기만 하네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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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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