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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범죄조직은 일거에 제압됐다.

         

       얻어맞고 기절한 악당 열댓 명 정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혼자만 멀쩡한 분홍 소녀는 중심에서 으아아거렸다.

         

       으아아.

         

       손에 피가, 피가.

         

       선량한 범죄자의 피가.

         

       “악마님! 악마님! 양심이 찌르르 울려요!”

         

       찌르르찌르르.

         

       내게도 이만큼의 양심이?

         

       악마가 단호히 말했다.

         

       『굳세게 견뎌라.』

       “네에?”

         

       그게 맞나?!

         

       완전 악마의 조언?!

         

       『마음을 독하게 먹어. 안전은 호의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확실히 상하관계를 정리해 놔야 네가 좀 더 안전해져.』

         

       으에, 그게 맞나?

         

       『이들은 엄연히 범죄자 무리다. 언제든 돌변할 수 있지. 방금은 단지 널 얕잡아봤기에 호의 또한 생긴 거다. 얕잡혀 얻는 호의에 영속성은 없어.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으에에, 악마님 도대체 무슨 삶을 사신 건가요.

         

       『그리고 이들에게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어.』

         

       악마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상하관계를 살인 없이 제압으로 알려줬다. 매우 온정적인 행위지. 네겐 그렇지 않더라도 이들에겐 그래. 넌 뒷골목은 감성이 다르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뭔가뭔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으아.

         

       마검이 정장 차림의 악마로 변했다. 붉은 눈동자가 온화하게 파스텔을 훑었다. 악마가 파스텔의 피 묻은 손을 잡았다.

         

       『자자, 그보다 손부터 씻는 게 좋겠군. 저쪽에 세면대가 있을 거다.』

       “네에.”

         

       파스텔은 손을 씻었다. 시원한 물줄기에 핏자국이 씻겨나갔다.

         

       『손에 피가 묻은 게 두렵다면 씻으면 된다. 물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악마가 옆에서 뽀송뽀송한 수건을 들고 말했다.

         

       “앗, 그거 비유 표현 아니에요? 땡땡땡!”

         

       악마님의 부끄러운 실수 포착했습니다!

         

       악마가 얼핏 미소 지었다.

         

       『나도 비유로 말한 거다.』

         

       으아?

         

       갑자기 나만 멍청해진 기분.

         

       가만히 있어야지.

         

       “세수도 할래요!”

       『그래라.』

         

       찰박찰박.

         

       어푸어푸.

         

       헤헤, 다 했당.

         

       뽀송뽀송 수건에 얼굴과 손을 닦고 나왔다. 완전 깨끗.

         

       깨어난 범죄자들이 지면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파스텔은 묘한 표정이 됐다.

         

       “아마 악마님 말이 맞겠죠. 거친 세상엔 거친 방법이 있을 거예요.”

         

       손뼉을 한번 치고 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일어나면 사과할래요! 그러고 싶어요!”

         

       헤헤.

         

       악마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얕잡힐 거다. 제압만으로 이미 충분히 여지를 줬어. 사과는 너무 유약하다.』

         

       소녀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땡땡땡.

         

       “악마님! 이건 악마님이 틀렸어요!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시니 정장 차림인 거예요!”

         

       으에, 칙칙해.

         

       난 저런 거 안 입어야지.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하는 거죠!”

         

       악마님은 생각이 너무 많아.

         

       파스텔은 악마를 놀리듯이 흔들흔들 뛰었다. 옆으로 걸었다가 빙글 돌기도 하며 살랑살랑 움직였다.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원피스가 들썩였다.

         

       붉은 눈동자가 직시했다.

         

       『무엇을 믿고……?』

         

       피로에 찌든 직장인 같은 눈빛이었다.

         

       파스텔은 밝게 웃었다.

         

       자신감 넘치는 손짓으로 스스로를 짚었다.

         

       “전 인생 너무 쉬워 파스텔이니까!”

         

       세상이 도와줄 거예요!

         

       오예.

         

       얼마 뒤 조직원들이 모두 깨어났다.

         

       젊은 보스가 피멍 든 코를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입에 문 나무줄기가 질겅였다.

         

       으으, 할 수 있어.

         

       파스텔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밀무역 협조를 어떻게 얻을까 갈팡질팡하다가 손이 먼저 나갔어요! 죄송합니다!”

       “어어.”

         

       보스가 코에서 손수건을 뗐다. 얼떨떨해하는 표정으로 파스텔을 바라봤다.

         

       “뭐 그래 뭐.”

         

       고민하던 보스의 손이 휘저어졌다.

         

       “괜찮아괜찮아. 어차피 심하게 다친 사람도 없고. 마비독은 겁주는 용도로 과하긴 했지. 무서웠을 만해.”

         

       보스가 조직원을 돌아봤다.

         

       “다들 다친 데 없지!”

       “예!”

         

       모두가 대답하던 와중 조직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저는 좀 아픈, 아악!”

         

       말하던 조직원이 얻어맞고 끌려갔다.

         

       엣.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흠흠!”

         

       보스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근데 너 엄청 잘 싸우는구나? 애라고 가볍게 본 게 미안할 정도야. 나이로 편견을 가져 미안하다.”

         

       보스의 고개가 숙여졌다.

         

       으아아?

         

       제대로 된 어른……!

         

       악마님? 악마님?!

         

       악마가 멋쩍어했다.

         

       『흠. 잘했다, 어린 크래프트. 네가 잘 대처했어.』

         

       오예, 칭찬 들었다.

         

       오예오예.

         

       기념일로 삼아야지.

         

       파스텔, 악마님의 의견을 꺾다.

         

       허억.

         

       묘한 배덕감.

         

       이것이 말괄량이의 희열?

         

       보스가 나무줄기를 질겅였다.

         

       “밀무역은 우리가 도와줄게. 힘 좀 써서 내륙에 팔면 꽤 이득이기도 하니. 근데 밀무역품은 있고? 아니 비공정은? 그거까지 우리가 준비해 주는 건 어려워.”

       “괜찮아요! 저 있어요!”

       “오? 그렇다면 일이 쉽지.”

         

       파스텔은 보스와 업무 사항을 협의했다.

         

       열댓 명 정도의 작은 조직이지만 파스텔의 밀무역품을 처리할 정도의 역량은 됐다.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야말로, 크래프트.”

       『흠.』

         

       파스텔은 해맑게 웃었다.

         

       “이제 우리 친분 쌓아요, 보스님! 아니 프레스턴 님?”

       “편한 대로 불러.”

       “네! 보스님! 그런데 보스님! 나무줄기는 왜 드세요?”

         

       혹시 염소?

         

       허억.

         

       “이거?”

         

       보스가 입에 문 나무줄기를 까딱였다.

         

       “네!”

       “씹으면 단맛이 나. 담배 대신이지.”

         

       오오.

         

       “저도 하나요!”

         

       프레스턴이 피식 웃었다.

         

       “아가씨, 담배 펴?”

       “그냥 하나요!”

       “기다려 봐.”

         

       보스가 서랍을 뒤적였다.

         

       문득 보스방 밖에서 소란이 들렸다.

         

       문이 벌컥 열렸다.

         

       조직원이 창백한 안색으로 외쳤다.

         

       “보스! 습격입니다! 그 자식들이에요!”

       “뭐?”

         

       밑층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바닥이 잘게 흔들렸다.

         

       보스가 인상을 구겼다.

         

       “썩을, 무기 챙겨!”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흔들리는 찻물을 내려봤다.

         

       오잉.

         

       보스가 돌아봤다. 크게 긴장한 얼굴이었다.

         

       “아가씨, 오늘은 이만 돌아가. 유술을 잘하는 건 알겠지만 백병전은 다르거든.”

         

       보스가 부하에게 손짓했다.

         

       “지하 통로를 안내해 줄 테니 그쪽으로 나가면 안전할 거야. 안내해 줘!”

       “예!”

         

       보스가 총과 검을 챙겨 뛰었다.

         

       파스텔은 안내자와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다.

         

       오잉.

         

       “길을 알려줄게, 따라와.”

         

       입술에 칼자국이 난 친숙한 안내자를 보다가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폭발로 망가진 건물 입구를 서른 명가량의 무장한 무리가 둘러쌌다. 단검, 도끼, 망치 등이 햇살을 받아 빛났다.

         

       입구를 노리던 대포가 끙끙거리며 치워졌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앞으로 나섰다.

         

       “프레스턴! 오늘은 네 녀석의 제삿날이다! 목이나 씻고 있으라고! 으하하!”

         

       비웃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호응하듯이 서른 개의 병장기가 들썩였다. 은빛이 번쩍였다.

         

       파스텔은 손이 떨렸다.

         

       덜덜덜.

         

       으아아.

         

       진짜 나쁜 어른들……!

         

       차원이 다른 사악함……!

         

       굶주린 아이를 노리는 비정한 현실……!

         

       덜덜덜.

         

       1층에서 프레스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목을 씻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대장이 빵 터졌다. 웃으며 부하들을 돌아봤다.

         

       “이야아! 기다리고 있었단다! 인원 차이가 두 배인데! 묘지라도 예약했나?!”

         

       비웃는 소리가 떠들썩했다.

         

       으아아.

         

       “이제 가야 해. 싸움이 격해지면 빠져나가기 어려워.”

         

       안내자가 다가왔다.

         

       으아아아.

         

       파스텔은 갈팡질팡하다가 외쳤다.

         

       “싫어요!”

       “뭐?”

         

       마검을 빠르게 두드렸다.

         

       악마님, 악마님.

         

       제게 보호받지 않을 용기를 주세요.

         

       『탁 트인 공간에 상당한 인원인가. 언제나 좋은 전투 환경에서 싸울 순 없겠지.』

         

       악마가 담담히 말했다.

         

       『한 가지만 명심해라. 다인전에서 네가 베야 할 건 사람이 아니라 전의다. 과격한 손속으로 사기를 떨어트려.』

         

       알겠어요.

         

       파스텔은 창틀에 손을 댔다.

         

       마음을 다잡고 뛰어내렸다.

         

       시야가 확 트였다.

         

       대기가 원피스를 감쌌다.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발이 지면에 닿고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시선이 쏠렸다.

         

       대장과 그 무리가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냐?”

       “파스텔이요.”

         

       소녀는 검을 뽑았다. 검집에 검날이 스쳤다.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서늘한 은빛이 드러났다.

         

       검날이 곡선을 그리며 정면을 겨눴다.

         

       문득 날 끝이 옅게 떨렸다.

         

       망설임과 저항감.

         

       앗.

         

       파스텔은 민망해하며 대장과 그 무리를 바라봤다.

         

       “혹시 총 쏴주실 분……?”

         

       헤헤.

         

       사람 죽이기 너무 어렵네.

         

       언제 적응될지 모르겠어.

         

       “허참, 뭐 하는 애야.”

         

       대장이 무신경하게 벨트로 손을 내렸다. 손이 걸쳐진 권총에 닿았다.

         

       총구가 겨눠졌다.

         

       정신 차린 프레스턴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

         

       “도망-”

         

       총성이 울렸다. 둥근 탄환이 회전했다. 검날이 번뜩였다. 탄환이 베이고 불꽃이 튀었다.

         

       아드레날린이 폭주했다.

         

       파스텔은 정신이 잠긴 채 지면을 박찼다. 거리가 폭발적으로 좁혀졌다. 당황한 얼굴이 눈앞에 다가왔다.

         

       검날이 물결쳤다. 대장의 몸 이곳저곳을 궤적이 스쳤다. 은빛이 번뜩였다. 피육음이 연달아 났다. 육신이 조각나고 흩날렸다. 피 분수가 솟구쳤다.

         

       멍해진 부하의 볼에 핏물이 튀었다. 검날이 곡선을 그렸다. 부하의 목에 금이 갔다. 머리가 잘리고 회전했다.

         

       베야 할 건 사람이 아니라 전의.

         

       머리를 잃은 육신에 검격이 몰아쳤다. 검날이 시체를 스치며 조각냈다. 잔해가 주변을 폭발적으로 휩쓸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옷이 붉게 물들어 갔다.

         

       “아……?”

         

       부하가 혼란스러워하며 얼굴을 닦았다. 손바닥에 살점이 묻어났다.

         

       검날이 번뜩였다. 손바닥을 보던 육신을 검격이 스쳤다. 사지가 흩날렸다.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비명이 울렸다.

         

       달음박질 소리가 전염되듯이 퍼졌다.

         

       소녀는 도망치는 양 떼를 덮쳤다.

         

       등을 베고 목을 날리고 사지를 절단했다.

         

       비명이 하나씩 사라졌다.

         

       분홍 머릿결을 타고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핏물이 거칠게 밟히며 소리를 냈다.

         

       문득 무의식을 뚫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생했다. 멈춰도 돼.』

         

       도망자를 뒤쫓던 파스텔은 멈칫했다.

         

       정신이 깨고 멍한 감각이 몸을 삼켰다.

         

       으에?

         

       뒤늦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핏방울이 검날을 타고 흘렀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며 잦아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프레스턴과 조직원들이 걸음을 멈추며 멍하게 바라봤다.

         

       우와아, 범죄조직이다.

         

       완전 신기.

         

       파스텔은 몽롱한 정신으로 해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분홍 머릿결에 핏물이 흘렀다.

         

       소녀가 스스로를 짚었다.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라고 해요.”

         

       피 묻은 손이 내밀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헤헤.

         

       그 이후 파스텔은 왜인지 더욱 친절해진 프레스턴과 업무 협약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오잉.

         

       “어? 정말로요? 이렇게 양보해 주셔도 돼요?”

         

       각종 조건이 굶주린 아이를 위해 더 좋게 조정됐다.

         

       허억, 감동.

         

       “악마님! 악마님! 진짜 착한 분들이에요!”

         

       우와아.

         

       “역시 세상은 아름다워요!”

         

       파스텔은 양팔을 버둥거렸다.

         

       인생 너무 쉬워 파스텔이 됐어!

         

       “인생 너무 쉬워 파스텔……!”

         

       우와앙.

         

       악마가 한숨을 쉬었다.

         

       영혼에서 나온 듯한 한숨이 푸욱.

         

       잉.

         

       정말 악마님의 감수성은 이해할 수 없다니까. 정장이 잘못된 거 아니야? 다른 걸 입는 게 어떨까.

         

       하여튼.

         

       파스텔은 기존보다 20% 증가한 듯한 마석 상자들을 바라봤다.

         

       우와우와.

         

       입이 헤 벌어졌다.

         

       그냥 20%가 아니다.

         

       밀무역 때마다 증폭되는 복리 수치다.

         

       파스텔은 양 주먹을 쥐었다.

         

       숨을 한껏 들이켰다.

         

       하나, 둘, 셋!

         

       “우와앙!”

         

       다시 한번 더.

         

       “우와아앙!”

         

       밀무역 수수료 0% 달성!

         

       몸이 떨렸다.

         

       이것이 완전 탈세의 희열일까?

         

       혹시 나, 범죄 체질……?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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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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