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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강화]를 계속 사용하며 스킬메커니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본래 연금술로 물질을 강화하면 한 가지 특성을 한 단계 높게 강화한다.

     

    이를테면 철은 단단하다. 한 번 강화하면 좀 더 단단해지고, 두 번 강화하면 아주 튼튼해진다.

     

    여기서, 첫 강화 시전에 1시간이 걸렸다면 두 번째 단계는 10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고단계 강화는 시전시간 자체를 오래 필요로 했다.

     

    ‘또 한 가지, 재료의 영향을 받아.’

     

    체력 회복을 특성을 가진 장미약은 2단계 강화 시전 자체가 불가능했다.

     

    재료의 특성 한계라고 생각된다.

     

    버드나무는 약재로서 가능성이 더 있는 것인지, 2단계 강화가 가능했다.

     

    다만 시전 시간이 아주 오래 필요했다.

     

    실험 삼아 한 번 잠을 줄여서까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무통약이다.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는 약에는 강도가 약한 것부터 진통약, 무통약, 마취약으로 단계가 나뉜다.

     

    무통약은 마취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취약을 만들려면 다른 재료를 쓰거나, 내 연금술 스킬 랭크가 더 올라야 가능할 듯하다.

     

    지금 만들 수 있는 약제에서는 이게 최고 레벨이다.

     

     

    나는 무통약을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 보리스의 입을 열었다.

     

    “보리스, 귀한 거니까 흘리지 말고 꿀떡 삼켜라.”

     

    “크윽, 후웁, 예…!”

     

    보리스의 골절된 다리는 척 보기에도 모양이 흉측한 것이 아주 고통스러워 보인다.

     

    기스의 치유술이 한 번 헤집어놔서 더 맛탱이가 가 있을 터였다.

     

    보리스의 입에 무통약을 털어넣고 물을 흘려 넣어주니 간신히 꿀꺽꿀꺽 삼켜낸다.

     

    “후우, 후우.”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키는 보리스.

     

    어느새 다른 치유사들과 기사들, 아버지까지 우리 주위로 몰려들어 있었다.

     

    이 전투에서 가장 부상이 심한 건 보리스였으니 그도 당연했다.

     

    “후, 후우… 어으, 도련님?”

     

    “오냐, 보리스. 정신 좀 들어?”

     

    “예… 어쩐지 좀 몽롱한데요.”

     

    “다리는? 아직도 많이 아파?”

     

    “그게… 어찌 된 일인지 통증이 많이 줄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다른 감각도 안 느껴지는….”

     

    “효과는 확실하군. 만진다.”

     

    보리스의 다리를 들어 뼈가 부러진 각도를 확인한다.

     

    내 거침없는 손길을 본 치유사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보리스가 더 비명을 지르는 일은 없었다.

     

    “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도련님이 방금 기사님에게 뭘 먹인 거지?”

     

    보리스의 종아리뼈 중간이 부러져 하부가 반대 방향으로 뒤틀린 상태였다.

     

    “잠깐 참아.”

     

    “예에….”

     

    보리스는 몽롱한지 멍하니 대답했다.

     

    환자에게 환부가 보이지 않도록 등진 채 허벅지를 내 겨드랑이에 끼우고 힘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각도가 틀린 채로 더 시간이 지나면 혈전이 생긴다.’

     

    뛰어다니는 게 일인 기사가 근육이 죽어버리면 큰일이지.

    조금 과격하더라도 우선 원위치부터.

     

    종아리 아래쪽을 한 번에 있는 힘껏 눌러냈다.

     

    ―우득!

     

    그다지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보기에는 멀쩡하게 돌아왔다.

     

    “부목. 거기, 몽둥이 두 개 가져와줘.”

     

    “저요? 웬 몽둥이요?”

     

    치유사 하나가 어리버리 고개를 갸웃했다.

     

    쯧, 여기엔 써먹을 놈이 없다.

     

    말 잘 듣는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여실히 느껴지는 찰나, 타냐가 바로 고블린 샤먼이 들고 있던 지팡이와 몽둥이를 가져왔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딱 맞는 사이즈야.”

     

    큰 외상은 안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빨간약으로 소독을 마쳐놓는다.

     

    [응급처치가 발동합니다.]

     

    지팡이와 몽둥이를 보리스의 다리 양쪽에 대고 준비해온 리넨 붕대로 칭칭 감는다.

     

    응급처치의 숙련도로 나도 모르게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치료가 완료되자 흰 빛의 입자가 처치를 마친 부위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응급처치가 효과를 발휘해 체력 회복이 들고 있다는 표시였다.

     

    “이걸로 내 일은 끝이야. 뼈 원위치 시켜놨고 추가감염도 방지했어. 다른 치유사들, 치유주문으로 회복시켜줘.”

     

    “그럼 제가 마저 치유하겠습니다.”

     

    기스가 이어 치유술 시전에 들어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보리스의 다리가 회복되어간다.

     

    “휴우.”

     

    나는 마침내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본래 방식이면 재구축까지 한 시간은 주문을 시전해야 하는데, 신기하군요.”

     

    상급치유사들이 감명받은 듯 보리스의 다리를 유심히 살폈다.

     

    보리스는 몽롱하다 못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는지 눈을 반쯤 뜨고 꿈뻑였다.

     

    “도련님, 감사합니다요.”

     

    “감사하면 선물이나 가져와.”

     

    “하하, 제가 비장의 술이 있는데….”

     

    “술 말고 맛있는 걸로. 의사가 알콜중독 걸려서 손 떨면 답도 안 생겨.”

     

    안 되고 말고.

    손 떠는 의사는 최악이야 최악.

     

    “그럼 이걸로 고블린 토벌 및 주치의 실기시험을 마치겠다.”

     

    아버지가 나지막이 선언했다. 기사들과 치유사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전원 수고하였네. 귀환까지 긴장을 풀지 말아 부상입는 일이 없도록 하게.”

     

    시험이 끝난 아버지는 온화한 태도로 돌아와 기사와 치유사들을 다독였다.

     

    천천히 이동을 시작하는 부대.

    그 뒤를 따르자니 타냐가 내 옆에 섰다.

     

    “도련님, 고생하셨습니다.”

     

    “뭘, 단장이 고생했지.”

     

    “보리스를 치유하신 일은….”

     

    “치유가 아니라 치료야.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조금 달라.”

     

    “그랬죠. 알겠습니다.”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스를 치료하신 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치유사들은 저희 기사들이 싸울 때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그만큼 고통을 더하는 이들이기도 했지요.”

     

    “부상 정도에 따라 치유 과정은 아프니까.”

     

    이를테면 마족에게 얼음창을 맞아 배에 구멍이 뚫렸다고 치자.

     

    장기 일부가 날아가는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을 강력한 치유술로 치유할 때는 어떻게 되는가?

     

    정답은 원래 있던 장기를 떨어내고 그 자리에 새 장기를 수복한다.

     

    신성력으로 신체를 만들어내는 건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래서 저 케이스에서는 오히려 치유주문을 받는 동안 통증으로 쇼크사하게 된다.

     

    심지어 치유주문을 지속해서 걸어준다고 해도 순차적으로 회복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장기를 만들었다가, 갑자기 멀쩡한 팔다리를 치유하느라 혈액이 부족해 죽게 된다든가 하는 식이다.

     

    “평범한 치유주문이었다면 보리스의 다리가 망가져서 복귀하기까지 긴 훈련이 필요했겠죠. 도련님의 치료는 확실히 다르군요.”

     

    “타냐 단장, 눈썰미 좋다?”

     

    “물론이죠. 어설픈 실력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타냐는 실력에 대한 자부심만은 끝내줬다.

     

     

    동굴 밖으로 나오니 상쾌한 공기를 들이쉴 수 있었다.

    기사들이 물통을 열어 머리를 적셨다.

     

    “고블린 굴은 붕괴시키도록 하지. 상급치유사들은 채점한 점수를 가져다주게나.”

     

    아버지가 상황을 정리하고는 의견을 모았다. 점수를 확인한 후 치유사들을 향해 선언했다.

     

    “결과가 나왔다. 지금부터 황실 주치의 최종후보를 발표한다.”

     

    치유사들이 다시 긴장했다. 실전에서 싸우기 급급했기에 퍼포먼스에 신경 쓴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최종후보는 셋. 모레 황실 내의원에서 2품 주치의가 한 분 방문할 예정이다. 그분이 최종후보에서 한 명을 발탁한다. 후보는 최고점, 최저점을 제외하고 나와 여기 육성소 상급치유사 다섯 명이 채점한 점수로 결정된다.”

     

    아버지가 마침내 이름을 호명한다.

     

    “최종후보는 세브람, 기스, 라스. 이상.”

     

    치유사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부분 탈락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버지가 기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기스, 자네는 라스와 같은 조였지. 결과에 불만이 있는가?”

     

    기스가 흠칫하며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없습니다.”

     

    있으면 이상한 거지.

    눈앞에서 문화충격을 받을 정도의 새로운 치료 메커니즘을 보았으니까.

     

    “전원 고생했네. 돌아가서 휴식하도록.”

     

    그렇게 실기시험은 무사히 끝났다.

     

     

     

    ***

     

     

     

    “…으응.”

     

    전날 복부의 통증으로 잠을 설친 아셀라는 결국 그날 늦게 깨어났다.

     

    시녀장도 주치의 실기시험의 감독으로 가버렸기에 그녀를 깨울 사람이 없었다.

     

    “추태를.”

     

    황실도 아니고 혼약가다.

    아니, 황실에서도 있어선 안될 일이다.

     

    아셀라는 즉시 시녀들을 시켜 몸가짐을 단정히 했다.

    그 작업에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침실을 나서고 후작가의 정원에서 호위기사들을 소집했다.

     

    “어디로 모실지요, 황녀님.”

     

    “별관으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셀라는 이미 자신의 기사단을 완벽하게 수하에 두고 있었다.

     

    그녀의 기사들은 황비가 아닌 아셀라에게 충성한다.

     

    아니, 황비의 기사와 시녀들조차 제3 황비파의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셀라가 가진 천성적인 아우라와 강대한 마나.

     

    그녀가 시전하는 고위계 마법을 한 번이라도 목도했던 자라면 그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시종이 이 파벌의 실권이 옮겨가고 있음을 알아채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불안요소.

     

    아직 아셀라가 어린 소녀라는 점만 제외하면.

     

    나의 주군은 성장하여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되신다.

     

    아셀라를 모시는 기사들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다.

     

    정작 그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

     

     

     

    “혼자서 올라가마.”

     

    별관에 도착한 아셀라는 라스의 방을 찾았다.

     

    주치의 시험의 결과가 궁금해서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계단을 올라가던 중, 별관의 시녀가 짐을 나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셀라를 알아보고 손을 멈춘 채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시녀.

     

    아셀라는 시녀가 들고 있던 커다란 물건에 눈이 갔다.

     

    “뭘 들고 있어?”

     

    “네? 아, 그게….”

     

    시녀는 황녀가 말을 걸리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당황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공자님의 이불보입니다. 세탁을 하려고….”

     

    파악!

     

    아셀라가 라스의 이불보를 잡아 펼쳤다.

     

    새하얀 고급 면 곳곳에 작게 스며든 검붉은 흔적.

     

    혈흔이었다.

     

    “이 자국은?”

     

    “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공자님 방에서 나오는 침구는 늘 이런데….”

     

    “늘 이렇다? 옛날부터?”

     

    “그건 아니고… 최근 일주일일까요.”

     

    아셀라는 미심쩍은 눈으로 이불보를 바라보고는 홱 몸을 틀어 다시 라스의 방으로 향했다.

     

    쿵쿵, 발소리에 기품이 없어졌다.

     

    “공자.”

     

    방문을 거칠게 노크한다.

    실기시험이 끝났을 시간이다. 방으로 돌아와 있을 터.

     

    …대답이 없다.

     

    “라스 공자?”

     

    아셀라는 무심코 달칵, 손잡이에 손을 댔다.

     

    방문은 저항 없이 열렸다.

     

    호기심 많은 금빛 눈동자가 방 안 틈새를 뚫어본다.

     

    그리고 그 방바닥에.

     

    “……!”

     

    라스가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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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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