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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입상 축하해요 사감.”

       

       비나가 내 병실에 찾아온 것은 마법제가 종료되고 일주일 정도가 흐른 뒤였다.

       가끔 시간 개념이 엇갈리는 마탑에서도 일주일은 다음의 세 가지 사건이 지나가기 충분한 기간을 의미했다.

       

       하나, 갤러리에서 정체불명의 창술사에 대한 떡밥이 서른 번쯤 돌다 결국 ‘해주학파가 대단한 게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수렴하고.

       둘, 목발을 짚은 채 병실에 찾아온 시엔이 ‘왜 패배한 건 나인데 네가 더 오래 입원해 있느냐’며 핀잔을 주며.

       마지막으로 셋, 수습생들을 대상으로 한 ‘메테오가 얼음마법인 이유’ 강의의 다음 수업 주기가 돌아오는 때.

       

       결론적으로 그녀는 내가 조교로서 수업에 참석하지 않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찾으러 온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마법제에 나간다고 따로 말을 안 했던 내 잘못도 있으니 원망은커녕 병문안을 와줬다는 사실에 감격할 따름이었다.

       

       마치 아기 오리가 걸음마를 떼듯 한 발짝씩 학파 바깥으로 나오며 세상 물정에 익숙해져 가던 순혈마법사가 아니던가.

       일면식도 없는 상대의 명치에 곧장 주먹을 꽂던 첫 만남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선물도 있어요.”

       “정말요?”

       “네, 사실 놀래켜주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이건…….”

       

       물론 누가 봐도 방금전 마법으로 만든 케이크 모양 얼음을 내 침대에 올려놓는 시점에서 아직 사회화까지는 한참 멀었다는 것을 실감했지만.

       이불이 축축해지기 시작한 건 둘째치고 하반신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이 얼음 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굉장한 발상을 생각해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 얼음은 무려 순혈 마법사의 순수한 마력으로 뽑아낸 마법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해주를 통해 ‘간섭기’의 숙련도를 올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터.

       

       시험 삼아 간섭을 시도하자 정 십이면체 큐브를 연상케 하는 철옹성 같은 술식들의 연결고리가 느껴졌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이걸 녹인다는 것은 연약한 이빨과 혓바닥으로 거대한 얼음조각을 깨부수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자신의 마법을 파훼하려는 것을 눈치챈 비나는 특별히 거부감을 표하진 않았다.

       단지 청명한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며 수습생들에게 갈취한 노트에서 이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

       

       “사감, 제게 마력간섭을 쓰고 있나요?”

       “눈치채셨습니까?”

       “일정 실력 이상의 마법사라면 술식을 건드리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기분이 나쁘시다면 하지 말까요?”

       “저는 괜찮아요. 이런 걸 예상한 건 아니지만 사감에게 준 것이니 마음대로 쓰도록 하세요.”

       

       허락을 받은 나는 이후 30분 정도 얼음 케이크의 연약한 부분을 찾기 위해 가상의 혓바닥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술식의 연약한 부분을 찾아 침을 발라본다거나, 날카로운 이빨로 흠집을 내려 시도했다.

       결과는 마력회로가 괴사 직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동상.

       케이크는 여전히 견고했고, 이걸 깨부수려면 시간을 천 단위로 갈아 넣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괜찮나요 사감?”

       “비나 님은 멀쩡해 보이시네요. 술식이 간섭당해도 시전자에게 부담이 없나요?”

       “지금 상태라면 오금이 약간 가려운 정도네요. 마법사의 성향마다 다르지만 이 정도라면 부담스럽진 않아요. 사감의 간섭 방식은 뭐랄까…….”

       “…….”

       “간지러워요, 축축하고.”

       

       침대 옆 의자에서 무릎을 모으며 자세를 고쳐앉는 비나.

       약간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지긴 했으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현재 나와 그녀의 위계가 그 정도 격차라는 거겠지.

       이렇듯 투창만으로는 마탑을 끝까지 오를 수 없다. 마법제처럼 매번 용 잡기 대회라도 개최한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몸조리 잘하고, 다음 수업부터 나오면 돼요.”

       “감사합니다.”

       

       비나가 떠난 후, 나는 얼음 케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실 부상은 옛 저녁에 나아 있었다.

       투창 이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다친 발목이 아직 삐그덕거리긴 했으나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수준.

       그럼에도 아직 병실에 남아있는 이유는 기숙사 사감을 비롯한 모든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

       

       나와 시엔이 둘 다 다음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된 바람에 영석은 구경도 못 했지만, 이쪽은 9층까지 빠르게 넘어왔다.

       이제 당분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창을 꺼내어 창대와 날을 분리했다.

       병실 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면회 사절’ 팻말을 붙이고 커튼을 쳐서 빛을 완전히 차단했다.

       마지막으로 창대 끝에 특수 제작한 물건을 붙여 침대의 머리부분에 고정시키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위대한 세 모험가.

       창끝.

       용언 청소부.

       성주의 첨병(尖兵).

       

       한때 동료들과 함께 대륙 전체를 휩쓸고 다니던 내가 모두의 감시를 피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넌 나가라.”

       

       바로 갤질.

       그것도 침대에 누운 채 창대를 위치노트 거치대로 사용하며 하는 갤질이었다.

       

       

       

       *

       

       ====

       [분탕들 비사아앙!!!!]

       

       주딱 이새끼 지금 100시간 연속 갤질 중이다!!

       살고 싶으면 도망쳐!!!!

       

       — 100시간? 오우 쉣

       — 드디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구나…….

       — 엄마…… 주딱은 언제 잠에 드나요?

        ㄴ 세상의 모든 악질을 차단한 다음이란다

       — 마의 20시간의 벽을 넘은 주딱은 강하군

        ㄴ 이게…… 탑주의 품격?

       ====

       

       농담이 아니라 지금은 갤러리에 집중할 때였다.

       배팅으로 수많은 포인트를 쌓아놓은 유저들이 있을 테니 그걸 소비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차단당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컸지만 보상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침대에 누워, 가끔 얼음 케이크를 핥으며 나흘을 더 고민한 내가 내놓은 해답은 크게 세 가지였다.

       나는 마법제 동안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늘어난 분탕들의 목을 차례로 배며 공지글을 작성했다.

       

       ====

       관리자

       [포인트 상점 오픈 공지]

       

       마법제가 끝났으므로 배팅에 참가해주신 갤러리 유저 분들께 지금껏 모아온 포인트의 사용처를 안내할까 합니다

       

       1. 랜덤박스(100,000P)

       

       2. 갤러리 내 원하는 게시판 신설(5,000,000P)

       

       3. 연회 초대장(30,000,000P)

       

       총 세 가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랜덤박스의 내용물과 확률은 비밀입니다

       포인트는 개인 간 거래가 불가능하지만 2번의 게시판 신설을 원하시면 자발적인 모금은 가능합니다

       포인트 상점은 한정된 기간만 운영할 계획이니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시즌을 기대해 주세요

       그럼 뿅

       ====

       

       갤러리에는 ‘의뢰 게시판’, ‘신고 게시판’ 등 별도로 분리된 카테고리가 존재했다.

       다만 가짓수가 현저히 적었기에 마탑 공략에 대한 정보나 학파끼리 모일 수 있는 구역을 원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다.

       포인트를 사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게시판을 만들 수 있다는 공지는 과연 반응이 좋았다. 

       몇몇 부작용도 존재했지만.

       

       ====

       [드디어 주딱이 우리의 염원을 들어줬구나]

       

       우리 ‘강아지 애호가’들이 두 발 뻗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다니

       모두 가자, 신대륙으로

       

       — 님아

       — 제발 숨을 10분만 참아주세요…….

       — 저기가 진짜 심연이네

       — 벌써 모금 끝났다는데? 뭐야 ㅅㅂ?

       ====

       ====

       [전략핵연구소 게시판 신설 요청합니다~]

       

       소통해요~

       

       — 완장!!!! 당장 튀어나와!!!

       — 이런 새끼들은 무조건 벤 해야됨

       — 저따가 포인트 던진 놈들 죄다 기록해놨다

       ====

       ====

       [근데 게시판 늘어나면 관리는 누가 함?]

       

       게시판마다 관리자 붙여주나?

       아님 걍 자율제?

       

       — 관리자 : 파딱

       — 파딱

       — 파딱

       ====

       ====

       메테오는얼음마법

       [글레시아 학파 게시판 신설할거에요]

       

       메테오에 대해 논하고 싶으신 분들 모두 환영이에요

       

       — 저는 글레시아 학파 게시판 신설 반대 게시판 신설할 거에요~

       — 저는 메테오는 불마법 게시판이요~

       ====

       

       수위가 심한 몇몇 게시판은 개설을 반려하더라도 꽤 많은 포인트를 털어낼 수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절대다수의 유저들은 구태여 게시판까지 찾아가지 않으니 그들을 만족시킬 방법도 찾아야 했다.

       

       가장 많은 포인트를 뽑아내는 방법에는 역시 가챠만한 게 없었다.

       

       ====

       [주딱이랑 데이트권 떴냐!!!!]

       

       응 ‘파딱 해제권’이야

       설마 이거 꽝도 있는 거 아니겠지?

       

       — 꽝 있던데?

       — 아니 1회에 10만이면 너무 비싸잖어

        ㄴ ㄹㅇ 몇 번 하지도 못함

        ㄴ 그건 네가 갤질을 열심히 안 해서 아닐까?

       — 씨발 해주학파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3번은 더 뽑는데!!!

       — 초천재금발미소녀 : 그거 제게 넘기는 것이에요 지금 당장

       ====

       ====

       천문대묘지기

       [랜덤박스내용물알아냈어]

       

       20만포인트지급

       주딱과1대1채팅

       파딱해제권

       원하는게시판즉시신설

       1시간 차단

       

       그리고용의비늘이나가죽같은구하기어려운부산물들도있었어확률은낮았어

       

       무엇보다주딱데이트권진짜로있었어0.002초동안이었지만확실히봤어주딱은거짓말안했어전재산바쳐서라도뽑을거야

       

       — 진짜임?

       — 이번 건 좀 믿고싶네

       — 0.003이 확률임? ㅅㅂ 랍스터칩에 랍스터 함량도 그거보단 높겠다

       — 주딱이랑 데이트할 수 있었다고? 글레시아 게시판에 넣은 포인트 도로 빼러간다

       — 1시간 차단은 저기 왜 끼어 있냐고 ㅋㅋㅋ

        ㄴ 아 현생 살라고 ㅋㅋㅋㅋ

       ====

       ====

       [주딱이랑 일대일로 대화하는데 굳이 뽑기까지 해야 됨?]

       

       그냥 버튼 하나 누르면 달려오는 게 완장 아님?

       

       — 대신 차단 당하잖아

       — 요즘 응대는 파딱이 다 함

       — 일대일 대화면 갤러리 외적인 내용 가지고도 얘기할 수 있겠지

        ㄴ ㄹㅇ 이거야말로 연회랑 동급 아님? 탑주한테 마법 물어볼 수 있는 기회인데

       ====

       ====

       [이번 상점은 안 쓰고 존버한다]

       

       지금 10연차 돌릴 수 있는 사람도 갤러리에 몇 없는데 원하는 거 뽑을 확률 너무 낮음

       게시판 신설하느라고 포인트 너무 분산되기도 했고

       애초에 3번 확정 단차는 천장이 너무 높아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주딱 이거 보통 지능적인 게 아닌듯

       

       — 똑똑하니까 주딱인 거에요~

       — 맞음 나 강아지 애호가 게시판에 포인트 넣느라고 몇 번 돌리지도 못했어

        ㄴ 넌 죽어 제발

       — 3번은 사실 더 쉽게 얻는 방법 따로 있는데…….

        ㄴ 파래지면 됨 ㅋㅋㅋㅋ

       ====

       

       빠르게 소진되는 유저들의 포인트.

       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쳐두고 오직 ‘프리나나’에게 주목했다.

       

       해주학파 소속 고닉인 만큼 출전한 경기마다 많은 유저들이 배팅에 참여해 받은 수수료가 압도적이었고.

       본인도 마법제의 우승팀까지 배팅으로 맞춰서 현재 갤러리 내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보유 중이었다.

       

       3번인 연회 초대권의 가격은 사실상 그녀의 포인트를 털어내기 위해 만든 항목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다른 파딱들을 부를 때 한 자리쯤 더 끼워넣는 셈 치면 큰 부담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프리나는 초대권 대신 무한으로 가챠를 돌리며 포인트를 낭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썼던 주딱에 대한 글들을 모두 봐온 나로서는 다소 이상한 선택이었다.

       

       뭐 하려고 저러는 건가 지켜보던 내게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조금 전 가챠로 ‘일대일 대화권’을 뽑은 프리나가 보낸 것이었다.

       

       ====

       프리나나 : 주딱

       관리자 : 네

       프리나나 : 혹시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 화에 작가의 전달력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모험가 시절 예명과 본래 쓰려했던 저주명은 ‘창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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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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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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