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

       

       

       “···뭐야, 이건.”

       

       “시, 실···? 설마···.”

       

       [아, 안늦었다아! 크, 큰일 날 뻔했잖아요!]

       

       

       후, 다행이다.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유시우가 반토막이 날 뻔했다.

       

       그 돌덩이들 치우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썼나?

       

       아니,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더 실을 써도 되는 건가, 싶어서 한참을 고민했다고.

       

       

       “···너, 살아있었냐?”

       

       “하하, 그렇게 된 것 같네요. 라이라 양에게는 안타깝지만.”

       

       

       라이라, 나를 좀 많이 싫어하더라.

       

       조금 슬펐다.

       

       ···내 잘못이 좀 크긴 하지만 말이야.

       

       역시 확인하겠답시고 모르는 척 재능 운운했던 게 많이 화가 났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말고는 없는데.

       

       어딜 어떻게 봐도 내 잘못이라 할 말이 없어서 더 슬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그게 확인하기 제일 편했는걸.

       

       

       “···어떻게?”

       

       “네?”

       

       “분명 떨어지는 돌에 압사했을 텐데···.”

       

       “아아, 그거 말인가요? 정말로 깔렸으면 아팠을 거에요.”

       

       

       급하게 능력을 쓰느라 너무 많이 풀린 실의 일부분이 아까워 살짝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을 꼬고, 펼치는 것을 넘어 삼각형, 사각형. 에펠탑에 이어 동그란 원 모양까지.

       

       이런저런 모형을 만들어보았다.

       

       어떠냐, 이게 바로 손 없이 하는 실뜨기다.

       

       멋있지?

       

       

       “다행히도 제 능력이 이런 능력이라서. 몸 주위에 두르면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답니다.”

       

       “···칫.”

       

       

       너무하잖아.

       

       필살의 개인기였는데···.

       

       이 능력 받자마자 언젠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아까 조금 상처받았다고 했지? 취소.

       

       많이 상처받았어.

       

       

       “뭐, 됐어. 살아있는 건 조금 의외였지만, 바뀌는 건 없으니까.”

       

       “그런가요?”

       

       “힘 빠진 토끼 두 명을 사냥하는 게 그렇게 힘들 리가 없지.”

       

       

       머리를 긁으며 라이라가 씨익 웃었다.

       

       ···어라?

       

       뭔가 송곳니 같은 게 보인 것 같은데?

       

       

       [아, 시작했네요. 부작용.]

       

       “···부작용이,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라이라는 힘을 얻기 위해 수상쩍은 약을 먹었다.

       

       위버멘쉬에게 받은 환약,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지금? 갑자기?

       

       

       “머, 머리에 귀가···!”

       

       “뭐? 머리에 귀? ···뭐야, 이건!”

       

       

       라이라가 머리를 긁던 위치 주변에서, 귀가 돋아났다.

       

       

       [그게, 장점이면서 단점이라고 할까요? 헤헤, 동물의 인자를 사람에게 주입하는 약이라는 설정이거든요!]

       

       

       동물의 인자?

       

       ···아, 그래서 초인. 위버멘쉬인가.

       

       인간을 벗어났으니까.

       

       중의적인 의미네.

       

       라이라가 계속 머리를 긁고 있던 것도, 귀가 솟아나기 전의 전조증상이었던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동물의 성질이 강해지는 거에요. 그러면서 엄청나게 강해지지만, 점점 그 동물의 특징이 발현 되는 거죠. 최후에는 그 모습이 반인반수가 되어버리는···.]

       

       

       잠깐.

       

       내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반인반수?”

       

       [네. 미노타우로스처럼.]

       

       

       퍼리잖아!

       

       지금 장난해?!

       

       

       “바꾸죠.”

       

       [···네? 하지만 동물의 인자를 받는다는 설정이라, 결국 그런 몸이 될 수밖에···. 그리고 설정 바꾸는 거 힘들단 말이에요.]

       

       

       어지러웠다.

       

       작가님의 힙스터 기질을 너무 얕봤어.

       

       아무리 적이라지만, 퍼리?

       

       미쳤냐고.

       

       예쁜 미소녀 스파이를 왜 그렇게 소모하는 건데.

       

       그렇게 호불호 갈리는 소재를 단역이라 한들 막 집어넣으면 큰일 난다.

       

       소설이 터져버리니까!

       

       수인의 마지노선은 귀, 꼬리, 눈까지라고!

       

       

       “막아요. 설정 집어넣건, 바꾸던. 당장!”

       

       [어, 어···?! 아, 알겠어요!]

       

       

       내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잔뜩 당황한 작가님이 다급하게 설정을 바꾸었다.

       

       

       [서, 설정 추가했어요! 라이라 양은 사실 수백 년 전 웨어울프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후손이에요! 그, 그러니까 인자가 몸을 심하게 변형하지는 않아요!]

       

       “후우…”

       

       

       평소 같았으면 그 설정이 독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봤을 텐데.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잔뜩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

       

       혼내는 건 나중으로 할까.

       

       작가님이 볼 영상도 챙겼으니, 영상을 보면서 혼내기로 했다.

       

       

       “감시카메라 설정, 끝났죠?”

       

       [네, 네에···. 독자님의 말대로 세 시간 전 갑작스러운 정전에 고장 났다는 설정이에요.]

       

       

       좋아.

       

       하얀 후드티의 안쪽에 담긴 USB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이걸 가져가서 느긋하게 작가님과 감상하면 끝.

       

       이곳에 볼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어떻게 영상을 가져왔냐고?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원들에게 설정을 추가했거든.

       

       [가끔 농땡이를 피우며 당구를 치러 간다. 적어도 다섯 시간 동안.]

       

       ···이런 설정을 추가하고, 그게 세 시간 전이었다고 설정을 변경하면 되니까. 잠입이랄 것도 없더라.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경비실의 컴퓨터에 저장되는 영상을 모두 USB에 저장되게끔 조치한 후, 멀쩡한 CCTV가 사실은 세 시간 전에 고장 나 있었다는 설정을 추가하면?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영상의 제작, 완성.

       

       마지막으로 USB에 감아둔 실을 회수하면 끝.

       

       쉽지?

       

       아무리 아카데미라도 교사 전원이 오지는 못하니까.

       

       그 많은 학생 인솔하기에도 바쁜데, CCTV를 확인할 만큼 한가한 교사가 어디 있어?

       

       다 믿을만한 경비업체에 외주 맡기는 법이라고.

       

       언제나 고급 인력은 부족한 법이지.

       

       ···그리고, 사고는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에서 터지는 법.

       

       이야, 경비원들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운도 나쁘게 정전이 일어났다니.

       

       심지어 그 세 시간 사이에 변절자가 나타났다고? 그거 엄청난 우연이네.

       

       

       “이, 이게 무슨···!”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미안해요. 라이라.”

       

       

       하얀색 후드티를 괜히 끌어안았다. 나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있어도 괜히 주춤하게 되네.

       

       시선이 더 신경 쓰이잖아.

       

       눈치 못 챘겠지?

       

       유시우가 도망쳐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레오타드보다 교복의 실을 먼저 풀어버려서, 지금 후드티 안에 레오타드밖에 안 입고 있다고.

       

       조금 풀린 거면 몰라도, 낙석을 막고 돌을 치우느라 대부분 써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었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부끄러워.

       

       

       “죽어주세요?”

       

       

       

       ***

       

       

       

       기습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라이라는, 멀리 떨어져있던 아르테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

       

       

       “주, 죽었···?!”

       

       “네, 죽었어요.”

       

       

       단검을 묶은 실이 쇄도했고, 자신의 변화에 정신이 팔린 라이라는 자신의 등에 날아오는 단검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손쉽게 처치하고, 나의 목숨을 위협하던 라이라의 끝.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나는, 죽이지 않네.”

       

       “···? 네. 제가 시우 군을 죽여야 할 이유라도?”

       

       

       시우는, 아르테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 같자 안도했다.

       

       아르테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봐버렸다.

       

       그런 얼굴을 하며 사람을 죽였는데, 자신은 살아남을 것 같아서.

       

       시우는 부끄러웠다.

       

       영웅이 되고자 아카데미에 들어왔는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라이라는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어.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이상하지.

       

       하지만, 하지만···. 시우가 목표로 하는 영웅이란, 그런 것에 연연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빌런이라고 무조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영웅이 아니야.

       

       시우의 마음속 영웅은 그 어떤 고난이든 정면에서 부숴버리는 존재.

       

       설령 세계에 미움을 받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관철하는 존재다.

       

       그런 영웅을 목표로 하면서, 다른 사람이 죽었는데도 나는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 꼴이란.

       

       우습기 그지없었다.

       

       

       “유시우, 아르테! 있으면 대답해라! 살아있나?!”

       

       “이런, 선생님이 오셨네요.”

       

       

       먼저 돌아가실래요? 피곤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물어보는 아르테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 무슨···일이시죠?”

       

       “지금의 나는 약해. 정신적으로도 미숙하고, 변절한 빌런 하나 감당하지 못해 죽을 뻔했어.”

       

       “네?”

       

       “···언젠가, 나는 너보다 강해질 거야.”

       

       

       시우는 스스로 일어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직은 미숙하다.

       

       변절한 라이라 한 명도 감당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신보다 강해지겠다니.

       

       아르테에게는 병아리가 삐약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

       

       하지만 그녀는 방심하고 있다.

       

       이유는 몰라도, 내게 모종의 관심이 있어.

       

       아멜리아의 말이 맞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를 죽이지 않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게 보인 저 반응.

       

       적어도 당분간은 나는 죽지 않아.

       

       나는 미숙하다.

       

       ···하지만, 미숙하다는 건 성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 것 아니었던가.

       

       계속 방심해라.

       

       언젠가, 나는 너보다 강해질 테니.

       

       

       

       ***

       

       

       

       “으햐아···. 깜짝 놀랐네. 누, 눈치챈 줄 알았잖아. 추, 추워어···.”

       

       

       너무 긴장해서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일까.

       

       선선한 바람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체온을 앗아가 급격히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후드티를 끌어 올려 가리기는 했지만, 서늘한 바람이 통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봄이라고 춥지 않은 건 아니니까.

       

       게다가 교복도 사라졌고.

       

       

       “그래도 다행이네요, 작가님. 주인공에게 실망할 뻔하셨는데. 성장형인가?”

       

       [···그, 그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역시 주인공은 유시우 군 말고는 없어요! 주인공이 초반에는 조금 약할 수도 있지, 뭐!]

       

       “또 그러신다. ‘주인공이 히로인을 두고 도망갔어요···! 우와아앙!’ 하고 울었으면서.”

       

       [꺄아아아악! 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니, 근데 나는 히로인도 아닌데.

       

       ···뭐, 상관없나.

       

       그 타이밍, 그 장소, 그 상황에 빌런이랑 대치하는 주인공의 뒤에 있으면 누구나 히로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대충 그런 의미겠지.

       

       

       “그나저나, 이제 어쩐담.”

       

       [그, 그러니까 죽이자고 했잖아요! 히전죽!]

       

       “아잇, 아무리 그래도 너무 미안하잖아요. 그리고 히로인은 무슨.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 다 해놨거든요?”

       

       

       아무리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미안함은 느끼는 법이다.

       

       야생동물의 집을 부쉈더니 추위에 얼어 죽어가고 있으면 미안함을 느끼는 게 사람이지.

       

       이렇게까지 했는데 죽여버리면 찝찝하잖아.

       

       

       “꼬리까지 나 있네.”

       

       

       신기하다.

       

       ···조금 만져볼까?

       

       예전부터 수인의 꼬리, 만져보고 싶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라이라가 머리를 긁는다는 묘사를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어요

    쟤 머리 안 감고 다니냐는 말 듣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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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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