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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여행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수다를 떨며 말을 탄다.

       

       잠시 쉬었다가 말을 탄다.

       

       밥을 먹고 말을 탄다.

       

       주구장창 말만 탔다.

       

       심지어 나는 말도 잘못타서 엉덩이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달린 우리는 지금 땅을 파고 있었다.

       

       “영감님, 일단 여기다 한번 써 봐요.”

       

       “흠흠. 드디어 보여 줄때가 됐구만.”

       

       클로셀 영감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통째로 날리는 게 아니라 땅만 파셔야 해요!”

       

       “걱정 말게.”

       

       주변의 기운들이 클로셀영감의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마법이라는 것은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마나라는 것이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고, 그 결과물은 더 신기했다.

       

       “디그!”

       

       땅이 움푹 파였다.

       

       문제는 너무 과격하게 파였다는 것이다.

       

       파여진 땅에는 돌마저도 부서져 있었으니까.

       

       “아니, 영감님 살살하라니까… 사람 두 번 죽일 일 있나 진짜…”

       

       내 말에 파라몬 영감이 냉큼 반응을 하며 핀잔을 날렸다.

       

       “로셀, 자네는 대 마법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조절 못하나?”

       

       “조용히 하게. 자네는 땅을 부숴놓지 않았는가.”

       

       “다음, 아이린! 여기 옆에 파봐요.”

       

       정령으로 땅을 팔 수 있다고 했던가?

       

       사뭇 기대되는 순서였다.

       

       “노움!”

       

       아이린의 부름에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진한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오….”

       

       다부진 형상이었다.

       

       노인 같기도 어린아이 같기도 한 그것은 겨우 내 정강이쯤 되는 크기였다.

       

       영혼이긴 한 것 같은데 조금 다른 느낌이다.

       

       살아 있는 영혼이라고 해야 하나···?

       

       땅이 살아 있다면 딱 이 느낌일 것이다.

       

       “…..?”

       

       왜 날 저렇게 쳐다보지?

       

       맑고 투명한 눈동자.

       

       제법 고집있어 보이는 입술에 두터운 눈썹.

       

       아주 좋은 관상이다.

       

       그런데 정령의 관상도 인간하고 똑같은가?

       

       노움이 걸어 다니며 관심 있게 나를 살펴봤다.

       

       무언가 확인할게 있는 듯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노움이 멈춰 선 곳은 허리춤에 있는 방울 앞이었다.

       

       “왜?”

       

       내 얼굴을 한번, 방울을 한번 번갈아 본 노움이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호오?”

       

       “노…노움?”

       

       영감들의 감탄사와 아이린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참 예의가 바른 정령이다.

       

       인사도 잘하고 말이다.

       

       “애가 참 착하네요.”

       

       “…예?”

       

       노움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제법 친근해 보이기까지 했다.

       

       “크리스, 혹시 정령하고 계약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지난번 아이린이 정령을 썼을 때를 제외하고는 정령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때도 먼발치서 느끼기만 했으니 제대로 보는 건 아예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령이 이렇게 친근하게 굴다니…”

       

       노움이 방울을 가리키며 몸을 흔들었다.

       

       그 모양새가 꼭 지난번 굿을 할 때의 내 모습을 흉내 내는 것 같았다.

       

       “내가 굿 하는 걸 봤구나? 아이린, 혹시 우리 집 감시했어요?”

       

       “가지의 흔들림을 쫒았을 뿐이예요.”

       

       변명이라고 내놓은 게 가지의 흔들림이라니.

       

       아이린을 보며 입맛을 다신 나는 노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같이 놀았나 보네. 저기 땅 한번 파볼래?”

       

       “크리스, 정령은 계약자의 부탁만 들어 준답니…”

       

       아이린이 경악하며 말을 멈췄다.

       

       고개를 끄덕인 노움이 땅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노움?!”

       

       “옳지. 잘한다. 좀 더 살살.”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노움이 땅을 파는 시늉을 하니 흙들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 무엇도 부수지 않는채로 땅이 파였다.

       

       “조금만 더! 거기!”

       

       그곳에서 드디어 내가 찾던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봐요! 어르신들!”

       

       “우리 말인가?”

       

       “영감님들 말고요.”

       

       “또 근처에 영혼이 있나 보군. 보이지가 않으니…”

       

       아까부터 우리를 졸졸 따라오던 영혼들이 있었다.

       

       괜히 눈 한번 마주쳤다가 끈질기게도 따라붙은 영혼들이다.

       

       잡귀도 아닌 것이 뭔가 딱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네 명의 영혼.

       

       갑옷을 잘 갖춰 입은 하나는 기사로 보였고, 나머지는 병사였다.

       

       공통점이라면 하나 같이 흉측하게 등을 다쳤다는 것.

       

       “이거 어르신들 몸 맞죠?”

       

       땅이 파헤쳐 질수록 유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삭아 없어진 건지 온전한 형상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마 추측건데 이 어르신들도 대륙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인 것 같다.

       

       이런 산속에서도 전투가 있었다니···.

       

       “다시 잘 묻어 드릴 테니까 얼른 성불하세요.”

       

       잔뜩 녹이슨 갑옷을 유골에서 떼어낸 나는 뼛조각들을 모으며 고개를 들었다.

       

       “안 가시나요?”

       

       – …..

       

       생전의 육신을 찾아 주었음에도 영혼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한이 쌓인 게 이것 때문이 아닌 건가···?

       

       “몸을 찾는 게 아닌가요?”

       

       내 말에 기사의 영혼이 다시 한번 땅을 가리켰다.

       

       “으음? 노움! 좀 도와줄래?”

       

       “크리스..왜 자꾸 남의 정령을…”

       

       아이린의 반응이야 어쨌든 노움은 착실하게 내 부탁을 들어줬다.

       

       자기도 영혼이라고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스으윽 –

       

       스윽 –

       

       땅이 점점 더 파헤쳐지고 이걸 지켜보던 사람들은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파라몬 영감의 입에서 나온 탄식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허어…”

       

       “어린아이…인가….”

       

       유골들은 네 명이 하나를 에워싼듯 엎드려 있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는 자그마한 어린아이의 유골이 나왔다.

       

       이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으나 결국은 다 같이 죽은 모양이다.

       

       “… 어르신들이 이 아이를 찾은 모양이네. ”

       

       영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서야 후련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이 아이가 그들의 한이었던 것 같다.

       

       “이 아이는 이미 성불했어요. 어르신들도 아실 텐데?”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들은 조용히 다가와 만져지지 않는 아이의 유골에 손을 뻗었다.

       

       자신들의 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그렇게 계속 아이를 쓰다듬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어르신들의 한은…”

       

       무당이라고 하여 모든 영혼들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들을 풀어나갈 뿐.

       

       그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아이를 지켜 주지 못했음을 미안해하였다.

       

       이렇게 산속에 묻히게 된 아이를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수습해 달라고 나를 따라온 게 아니었다.

       

       이 아이를 따듯한 곳으로 옮겨 주기를 바랬을 뿐이다.

       

       영혼들의 손 사이로 다른 손 하나가 끼어들었다.

       

       파라몬 영감의 손이었다.

       

       “갑옷이 망가져 확실하지는 않으나 문양을 보니 함께 싸웠던 기사단이군.”

       

       유골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듯 침묵하던 파라몬 영감이 입을 열었다.

       

       “이들의 영혼이 아직 여기 있는가?”

       

       “예. 영감님 손이랑 겹쳐져 있어요.”

       

       “그렇군.”

       

       숨을 고른 파라몬 영감이 몸을 일으켰다.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길이 유골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내 그대들과 함께 싸웠던 파라몬이라고 하네. 나를 알지도 모르겠군.”

       

       잠시 뜸을 들인 파라몬 영감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경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름 모를 기사와 병사들이여.”

       

       파라몬 영감의 눈은 조금도 깜빡이지 않았다.

       

       이들의 모습을 새겨넣기라도 하듯 굳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름 모를 방패와 검들이여…”

       

       무거운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그대들의 희생을 기억하겠다.”

       

       파라몬 영감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영혼들의 입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동시에 후련함 역시 밀려왔다.

       

       “하아…”

       

       그들에게는 죽어서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으리라.

       

       영혼이 점점 희미해졌다.

       

       그들은 더는 미련이 없는 듯 환한 미소를 남기고 그렇게 사라졌다.

       

       성불이었다.

       

       “이제 갈 길들 가셨습니다.”

       

       “허어…”

       

       클로셀과 아이린 역시 침중한 분위기로 이곳을 보고 있었다.

       

       “대륙전쟁 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내 말에 파라몬 영감이 자기가 칭찬을 받은 듯 웃어 보였다.

       

       “그렇다네. 그들은 평안한 안식을 가졌는가?”

       

       영혼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불할 때 느껴졌던 후련한 기분들은 그 목적지가 나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다···.

       

       “죽어서까지 아이를 지킨 분들이예요. 평안 하지 못하다면 이상한 일이죠.”

       

       아이는 이미 떠났는데 왜 이곳을 지키고 있단 말인가.

       

       자기몸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몸인데 말이다.

       

       “쯧쯧…어찌 이리 미련할꼬.”

       

       하나 같이 미련한 영혼들이었다.

       

       지금 만난 영혼도, 파라몬의 곁에 있던 영혼들도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 된게 가진 한들이 전부 남을 위한 것이냔 말이다.

       

       “할 일이 많구나…”

       

       영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

       

       아무리 쌓아보려고 해 봐도 안 쌓이더니.

       

       아무래도 한이 풀리며 나에게로 흘러들어온듯싶었다.

       

       “영감님들. 마법사나 기사는 마나를 어떻게 쌓나요?”

       

       “마나를 쌓는 수련이 따로 있다네.”

       

       “명상이 최고지.”

       

       부럽다 부러워.

       

       수련만 하면 마나가 쌓인다니.

       

       “다시 움직이시죠. 여기 말고도 더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겠군.”

       

       아이린의 의사도 중요했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는 세계수였으니까 말이다.

       

       “흐음…”

       

       잠시 나무들을 바라보던 아이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람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죠.”

       

       방금 성불하는 영혼들을 느낀 것일까.

       

       이곳저곳에서 영혼들이 보였다.

       

       도망가는 잡귀들도 보였다.

       

       잡귀새끼들은 성불하는 것만 보면 저렇게 도망을 다닌다.

       

       가진 원한을 풀어내는 것에 미친놈들이기 때문이다.

       

       분노, 욕정, 탐욕 등 대부분이 더러운 이유다.

       

       켜야 할 초가 더 늘어날것 같은 기분이다.

       

       “갈 수 있는 놈들은 다 보내버려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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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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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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