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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무인이 기절하자 남은 것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다.

       2층은 물론이고 3층까지 그에게 저항할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고, 진성은 그저 산책하듯 움직이며 기절한 사채업자들을 죽이고 다닐 수 있었다. 진성의 왼손에 들린 고양이의 목은 살아있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리며 아까처럼 머리를 수확했고, 진성은 3층의 사장실까지 도착했다.

         

       “허억, 허억.”

         

       그곳에는 2층의 사장과 똑같이 숨을 몰아쉬고 있는 3층의 사장이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뿌드득!

         

       진성은 누워있는 사장의 머리를 고양이에게 먹였다. 그리곤 팔 한쪽을 그대로 뽑아버린 후 지문을 금고에 갖다 댔다.

         

       삐리릭.

         

       지문인식 금고는 뽑힌 사장의 지문을 인식하고 그대로 덜컹하며 열렸고, 초록색과 노란색의 지폐 더미를 그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허허허, 이곳에 재물복이 넘쳐났구나.”

         

       지폐.

       지폐.

       지폐!

         

       위대하신 세종대왕님과 자애로운 신사임당이 미소를 띤 채 그를 맞이하고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은행과는 달리 대부업체 놈들이 지폐의 일련번호를 하나하나 기억할 리도 없고, 진성이 훑어보니 그 어떤 에너지원이나 사념도 없는 것이 이능으로 추적당할 염려도 없어 보였다. 즉, 눈앞에 있는 지폐는 진성이 온전히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금액이란 이야기다.

         

       “ॐ.”

         

       진성은 금고를 가득 메우고 있는 돈을 허공에 띄운 뒤 몸을 작게 웅크렸다. 진성의 주문과 함께 돈은 다른 극의 자석이라도 만난 듯 진성의 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진성의 검은 껍질 표면에 닿자마자 미끄러지기라도 하듯이 각각의 틈새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웅크린 진성의 몸은 물풍선이 부풀듯 크기는 점차 늘어났고, 금고의 돈이 지폐 뭉치 몇 개만을 제외하곤 다 사라지자 거구의 몸이 되었다. 족히 100kg은 훌쩍 넘어 보이는 육중한 몸에 이미 사라져버린 혹이 다시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특히 진성이 끼고 있는 벌레 가면은 검은 광택에 곰팡이가 들러붙었는지 얼룩덜룩해져 더더욱 지저분해 보이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묵직하구나.”

         

       몸속으로 파고든 황금 슬라임의 무게.

       몸속으로 파고들어 껍질과 피부 사이에 층층이 쌓인 지폐 더미.

         

       진성은 참으로 만족스러운 무게감이라 생각하며 그대로 방을 나서 2층으로 내려갔다.

         

       “행복한 환상을 보고 있는가?”

         

       그는 아직 멍한 표정으로 곰팡이가 하얗게 내려앉은 복도에 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환각에 취한 것인지 참상에 넋을 잃은 것인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만을 응시할 뿐이었고, 곰팡이 때문에 하얗게 변해버린 침은 턱을 타고 목 아래까지 흘러간 흔적이 보였다.

         

       진성은 남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참으로 잘해주었네.”

         

       남자의 얼굴에서 꿈틀대고 있던 그림자의 뱀은 진성의 손이 올라오자 주인의 부름을 들은 충견처럼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그의 손으로 완전히 이동해 진성의 손등에서 한참을 헤엄치다 엄지손톱으로 이동해 몸을 웅크려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니 성공하도록 해주겠네.”

         

       무얼, 부담은 갖지 말게나. 이것은 상여금(賞與金)이자 퇴직금이니.

         

       진성은 그 말과 함께 남자에게 다른 주술을 걸었다. 그리곤 입안으로 극도로 압축된 지폐를 쏟아내었다.

         

       “욱! 우욱!”

         

       정신이 없음에도 자신의 목으로 들어오는 것이 평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남자는 계속 헛구역질을 했지만, 진성에 의해 강제로 쑤셔박히는 지폐뭉치들은 그 하잘것없는 저항을 모조리 무시하고 계속해서 들어갔다.

         

       그리고 허공에 지폐 뭉치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툭.

       툭.

         

       진성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복도 밖으로 나갔다.

       다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의 표정은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같았고, 진성의 몸은 무언가 맛난 것이라도 잔뜩 먹은 듯 크게 부풀어 있었으며, 그 어깨에는 이상한 남자가 기절한 채 업혀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

         

       오직 그것만이 달라졌을 뿐.

       이상한 것은 없다.

         

         

         

        * * *

         

         

       “여, 여기는?”

         

       남자는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자신의 방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뇌를 송곳으로 찌르고 후비는 듯한 날카로운 두통이 그를 괴롭혔고, 온몸이 뻐근하고 근질근질한 이상한 느낌이 가득했다.

         

       “나는, 나는 분명히 주술사님과….”

         

       남자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주술사님을 사장실로 인도했을 때.

         

       그때 주술사님이 의자를 보고 만족해하길래 크게 성공한다면 저것을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지?’

         

       그 이후의 기억이 없었다.

         

       술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 것처럼 그 이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남자는 혹여 자신이 술을 퍼마신 게 아닌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두통이 혹시 숙취인가 의심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그리고 일어서자마자 엄습하는 어지러움에 다시 주저앉았다.

         

       마치 뱃멀미를 하는 듯한 어지러움이다.

       남자는 그 생각과 함께 위장이 꿀렁이고 식도에 무언가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욱!”

         

       우웨에엑!

         

       그 토기란 도저히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결국 남자는 화장실에 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방바닥에 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술을 마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부침개를 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뭐야 이거.”

         

       고개를 들자 보인 것은 끈적끈적한 체액이 묻어 있는 지폐. 만원과 오만 원이 혼재된 지폐는 은행에서 갓 뽑기라도 한 듯 빳빳했고, 남자의 몸에서 나온 거라고 주장하듯이 시큼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욱!”

         

       웩!

       웨엑!

         

       그 지폐의 개수는 남자가 토를 할 때마다 점점 늘어났다. 그가 토를 할 때마다 입에선 엄청나게 압축되어 작은 구슬처럼 보이는 지폐가 튀어나왔고, 방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다림질이라도 한 듯 몸을 활짝 피고 구김이 사라졌다.

         

       그런 행위가 몇 번이고 반복되었을 때.

         

       “이, 이게 다 얼마야….”

         

       얼핏 봐도 수천만 원은 되어 보이는 돈.

         

       “이 돈이 대체 왜…?”

         

       수천만 원의 돈이 대체 왜 자신의 배 안에 있었는가.

       대체 왜 자신이 토를 하자 저 돈이 나왔는가.

         

       남자는 멍하니 돈을 쳐다보았다.

         

       『 성공하도록 해주겠네. 』

         

       그렇게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을까.

       남자는 주술사가 음산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한 그 말을 떠올렸고, 저 돈은 주술사가 자신에게 준 선물임을 깨달았다.

         

       찌릿.

         

       ‘가야 해.’

         

       그 깨달음과 함께 머리를 찌르는 약한 두통이 일었고, 남자는 다시 자신의 직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주술사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곳에 해답이 있다고, 자신이 받은 돈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남자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집을 박차고 나와 직장으로 다가갔다.

         

       “왜 짭새들이 있지?”

         

       직장에 다가가자 보인 것은 경찰.

       그것도 직장을 에워쌀 기세로 잔뜩 와 있는 경찰들이었다.

         

       남자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노란 폴리스 라인에 가로막혀 조금 전까지 자신이 다니던 직장이었던 곳에는 단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었고, 오직 그 안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만 들을 수 있을 뿐.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네.”

       “이게 대체 몇 명이야….”

       “와, 진짜 이 또라이 새끼. 독하다 독해. 혼(魂)이고 백(魄)이고 하나도 남지 않았어. 무슨 짓거리를 했길래 이렇게 철저하게 지랄을 한 거지?”

       “씨발 이 고양이는 또 뭐야? 모진 놈들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았나?”

         

       2층. 혹은 3층에 있으리라 생각되는 경찰들의 말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이듯 크게 들렸다.

         

       “선배님! 이것 좀 보십쇼! 여기!”

       “허미 씨이-팔. 피로 글자를 써놨네?”

         

       아주 또박또박.

         

       『 이것은 상여금(賞與金)이자 퇴직금이니. 』

         

       남자는 이 청력이 주술사가 자신에게 준 선물임을 깨달았다. 그는 선물 덕분에 저주받은 현실을 이해했고, 건물 안에서 무슨 참사가 일어난 것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말았다.

         

       너무 안타깝게도.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런, 이런 미친….”

         

       그는 주술사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놨음을 깨달았다.

         

       “아룀.”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모른다.

         

       “사회의 해악을 잡느라 노고가 많습니다. 점괘에 길일(吉日)이 나왔으니.”

         

       하지만 남자는 앞으로 자신이 건실하게 살게 될 것이라 직감할 수 있었다.

         

       “부왜인(附倭人), 친일반민족행위자(親日反民族行爲者), 정한론자(征韓論者)를 전초제근(剪草除根)하였습니다.”

         

       다시는 주술사.

       아니, 괴인을 만나고 싶진 않았으니까.

       비슷하게 살다가 괴인, 혹은 괴인과 비슷한 이를 만나게 된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남자는 코끝에서 느껴지는 짙은 피 냄새에 토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길바닥에 토하기 전에 등을 돌려 자신의 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돌아가는 길에 무언가 억울한 것이 있었는지, 아니면 지금 이 현실에 기가 막혀서 그러기라도 한 듯 입이 저절로 움직이며 한탄을 토해냈다.

         

       “씨이발. 내가 원숭이 손에 소원을 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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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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