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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빛으로 이루어진 사슬에 오를레이앙의 몸이 감겼다.

       ​

       “커, 허윽…….”

       ​

       로즈마리는 눈동자를 뒤룩 굴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

       오를레이앙은 구천지대계. 즉, 절멸급 마수다. 플레어도 없이 저런 사슬만으로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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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년이, 뭐 하는 년이… 크아악!”

       ​

       꽈악.

       ​

       여인은 말없이 쇠사슬을 조였다. 그러더니 사슬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을 치켜들었다.

       ​

       손끝에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달려있었다. 철조(鐵爪)라고 불리는 무기였다.

       ​

       촤악! 철조 끝에서 가는 실이 사출된다. 쇠로 된 실이 오를레이앙의 내핵을 파고든다.

       ​

       모든 마수의 급소는 내핵. 그곳에서 동력원이 되는 마석을 뽑아내면 즉사하고 만다.

       ​

       “아, 안 된다…! 여기까지 어떻게 와, 왔는데……!”

       ​

       여인은 오를레이앙의 급소를 정확히 노렸다. 끼익! 철실에 걸린 마석이 강제로 딸려 나온다.

       ​

       “크아아아악!!”

       ​

       7석은 절규를 토해냈다. 스릉! 실이 줄자처럼 감긴다. 갈고리처럼 생긴 실의 끝부분에서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토르말린이 뽑혀 나왔다.

       ​

       오를레이앙은 흐물거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

       ‘설마,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로즈마리는 상황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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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를레이앙을 한 번에 보내버렸다. 그것도 플레어라는 강력한 무기 없이.

       ​

       그렇다면 인간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

       ‘누구지?’

       ​

       엘프, 수인, 드워프? 아니, 전부 아니다. 귀가 길지도, 꼬리가 나 있지도, 키에 비해 팔이 길지도 않았다.

       ​

       눈이 노랗지만 금안족은 아닌 듯했다. 여인의 신체 주위로 은은한 마력파가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마력초를 피운 냄새도 없다. 저건, 저 여자의 고유한 마력이다.

       ​

       ‘어째서, 금안이 자연적인 마법을….’

       ​

       사락. 한참을 고민하던 로즈마리 앞에 여인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설마.

       ​

       혹시.

       ​

       상황을 종합해냈다. 로즈마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몸을 굴릴 때마다 신음이 새어 나왔다.

       ​

       로즈마리는 숨을 헐떡이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궁지에 몰린 쥐나 다름없었다. 여인은 공중에 살짝 발을 띄운 채로 서서히 다가왔다.

       ​

       ‘부양 마법까지 쓰고 있어.’

       ​

       이젠 확실하게 알겠다.

       ​

       ‘……이 년은 정령이다. 그것도 최상급이나 대정령급.’

       ​

       여인이 입을 붙였다 떼길 반복했다. 무언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

       타락했기 때문이다. 마왕에게 혼을 바쳐 타락한 금안족은 정령의 말을 듣지 못한다.

       ​

       대신 입 모양을 보고 여인의 말을 대강 유추할 수는 있었다.

       ​

       ‘남… 동… 생을…… 잘 보살… 펴… 달라……?’

       ​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로즈마리는 고개를 까딱이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여인은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손에 새하얀 구체를 다듬어 올렸다.

       ​

       파아앗! 주위가 밝아진다. 적어도 황성 주변만큼은 비가 그쳐가고 있었다.

       ​

       “…아.”

       ​

       로즈마리는 짧게 탄식했다.

       ​

       조금 전보다 머리가 맑아졌다. 숨쉬기도 편해졌고 말이다.

       ​

       로즈마리는 손으로 복부를 쓰다듬었다. 오장육부에 뚫린 구멍이 아물고 있었다. 팔다리는 여전히 가누기 힘들었지만, 아까보단 훨씬 나았다.

       ​

       ‘뭐 하는 녀석이야.’

       ​

       몸뚱이를 더듬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여인이 떠난 자리에는 깃털 몇 조각만이 남아있었다.

       ​

       끔뻑, 끔뻑.

       ​

       로즈마리는 멀뚱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

       ​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의식이 혼탁해서 어지러웠다. 두 인격이 섞인 듯했다. 에테르는 머리를 부여잡다가,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

       반사적으로 소맷단을 더듬었다. 분명히, 여기 어디쯤 담배를 쟁여두었는데.

       ​

       “후우.”

       ​

       마력초를 피우니 심신이 안정된다. 흐릿했던 잔상이 지워지는 느낌. 무언가 동화되고 있다.

       ​

       에테르는 자신에게 물었다.

       ​

       ‘지금 난 누구지?’

       ​

       몸에 잠시나마 마력이 돌기 시작했다. 에테르는 손을 까딱였다. 아공간에서 스태프를 꺼내 꽉 쥐었다.

       ​

       스태프를 올려다보았다. 첨단에 달린 일곱 개의 마력파 위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

       팔정도(八正道)의 거의 모든 부분에 불이 들어와 있다.

       ​

       ‘전성기 시절 기술은 전부 쓸 수 있군.’

       ​

       지금이라면 전자기력뿐만이 아니다.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 중력을 제외하면 모조리 다룰 수 있다.

       ​

       중성자를 전자와 양성자로 쪼개는 것도. 핵을 나누거나 변환하는 것도.

       ​

       그녀도 완성하지 못한 ‘8식’을 제외하면 그 무엇이든 가능하다. 신에 준하는 권능을 현현할 수 있는 것이다.

       ​

       에테르는 피식 웃었다. 강자가 지니는 여유의 미소였다. 프레이는 그런 에테르를 보며 로켓을 쏘다 말았다.

       ​

       “너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그래?”

       ​

       에테르는 겸연쩍게 미소를 지었다.

       ​

       “자세히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난 원래부터 이랬다, 꼬맹아.”

       ​

       이제야 감이 잡힌다.

       ​

       주도권은 반반. 정확히는, 다른 세상에서 온 ‘나’에게 지분이 조금 더 많다.

       ​

       – 누군가가 몹쓸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는, 내가 이 몸을 움직인다.

       ​

       자기 자신과 그런 계약을 나눈 까닭이다.

       ​

       덧붙여서 조금 전. ‘내면의 거울’에 두 번째로 들어갔을 때 스스로와 한 가지 약속을 추가로 맺었다.

       ​

       지금, 그 약속을 시험해 볼 차례였다.

       ​

       “야! 가만히만 서 있지 말고 버멜 좀 도와줘! 앞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잖아!”

       “…그래야지.”

       ​

       에테르는 정면을 응시했다. 프레이의 말대로였다. 버멜은 자신이 만든 EMP 발생원을 들고 부리나케 뛰었다.

       ​

       그가 반타 토터스의 발을 이리저리 피하며 움직였다. 다리 밑으로 들어갈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는 듯했다.

       ​

       쾅! 콰앙! 콰앙!

       ​

       연속해서 발이 내리찍힌다. 움직임은 둔한 편이었다. 때문에 버멜은 모든 치명타를 피할 수 있었다.

       ​

       하지만.

       ​

       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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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윽……!”

       ​

       발길질의 반동으로 튀어오른 돌조각까지 전부 회피하지는 못했다. 화산 쇄설물처럼 튕긴 돌이 버멜의 머리에 직격했다.

       ​

       분명 작은 돌이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골통이 징징 울렸다.

       ​

       “야!”

       ​

       프레이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빗소리 때문에 크게 들리진 않았다.

       ​

       에테르는 눈을 부릅뜨고 왼손에 마력을 담았다. 뇌를 거치지 않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

       [팔정도(八正道) 제5식(式), 차지 커런트(Charged Current)]

       ​

       쏴아아아!

       ​

       빗발치는 증기 사이로 빛의 궤적이 그려진다. 경로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에 강한 자기장과 압력이 걸린다.

       ​

       핵종이 꿈틀거린다. 약력으로 변환된 마력을 견뎌내지 못한 중성자가 제 모습을 바꾼다.

       ​

       만들어지는 것은 베타선. 즉, 전자의 흐름이다.

       ​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입자가 토터스의 몸통에 맞닿는다. 베타선은 종이 하나 투과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다. 그러나, 에테르가 내쏜 전자는 초기에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

       그것이 차폐물에 닿았다.

       ​

       기긱! 기기긱!

       ​

       토터스가 땅고르기를 멈추고 옆으로 기우뚱했다. 급하게 멈춘 전자선이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X-선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

       제동복사(Bremsstrahlung) 현상이었다. 토터스는 내상을 입고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괴성을 내지르며 여러 사람의 고막을 찢어놓았다. 포대가 달린 등딱지에선 어느 때보다도 많은 물이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버멜은 제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지금이다.’

       ​

       그리고 어느 순간.

       ​

       촤아아악!

       ​

       버멜은 토터스의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그러더니 스태프를 소환해 땅에 꽂았다.

       ​

       카카카캉! 평범한 스태프에 부하가 걸린다. 중간 마디가 끊어질 정도로 강한 제동이었다.

       ​

       버멜은 두 번째 다리가 있는 곳 직전까지 파고 들어갔다. 스태프가 고장났지만 쥐포가 되는 불상사는 면했다.

       ​

       아슬아슬했던 상황. 멀찍이서 상황을 바라보던 에테르는 저도 모르게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

       ‘잠깐, 내가 왜 안도하는 거지?’

       ​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

       ‘아, 아닌가? 우리 동향 사람이잖아. 당연히 걱정하는 게…….’

       ​

       따지고 보면 조금 전 도와주었던 것도 이상하다. 저 엘프, 분명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을 텐데. 대체 왜.

       ​

       이번에는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

       인격장애가 생긴 듯한 기분. 불쾌하고도 어지러운 감각이었다.

       ​

       그때였다.

       ​

       쿠웅!

       ​

       토터스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마법을 하도 많이 맞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명백한 고의였다.

       ​

       “어……!”

       ​

       에테르는 헛숨을 들이켰다. 프레이도 로켓을 내려놓고 비명을 질러댔다.

       ​

       가장 패닉에 빠진 건 헤를라인이었다. 그녀는 다른 마수를 견제하다 말고, 버멜이 있는 방향으로 골렘 두 체를 할애했다.

       ​

       “버멜…!!”

       ​

       둘 다 그녀를 호위하던 최상급 골렘. 최정예 전력이었다. 예티처럼 생긴 두 골렘은 비를 맞으며 쿵쿵 뛰어갔다.

       ​

       그러나.

       ​

       끽! 끼긱! 끼기긱!

       ​

       어째서인지 토터스는 주저앉다 말고 기계음을 토해냈다. 녀석이 다시 일어나며 다리를 비틀거렸다.

       ​

       ‘주, 죽을 뻔했다.’

       ​

       찰나와도 같은 순간. 버멜은 ‘윈드 커터’로 토터스의 연한 부분을 찢고 들어갔다. 그 사이에 숨어서 절삭계 마법을 난사하고 나온 참이었다.

       ​

       어디 그뿐일까.

       ​

       ‘거의 성공이다.’

       ​

       에테르가 만든 EMP 생성기까지 심어놓고 나왔다. 버멜은 머릿속에서 상태창을 불렀다. 반타 토터스의 체력바가 떠올랐다.

       ​

       ‘3분의 2가량 깎았다. 슬슬 패턴을 바꿀 때군.’

       ​

       그런 생각이 떨어지자마자, 토터스의 등에서 전례 없는 양의 증기가 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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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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