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0

       레오가 보여준 것은 검기였다.

        

       별다른 놀거리가 없는 뒷골목 아이들에게 그런 검기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검기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검술을 수련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카데미에서도…… 주인공 파티를 기준으로 하면 검을 다루는 캐릭터가 훨씬 많았지만, 학생 수를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총기를 다루는 아이들이 몇 배는 많았다. 훨씬 다루기 쉽고, 기술을 쌓기에도 쉽고, 일상생활에서도 쓸 일이 많으니까.

        

       레오를 가운데 두고 반원으로 둘러앉아 그레이스 가 특유의 검술을 보는 아이들의 입은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나도 커서 형처럼 되고 싶다…….”

        

       “바보야, 형은 아카데미에 다니잖아. 우리는 꿈도 못 꿔.”

        

       “하하…….”

        

       아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레오는 차마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아카데미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허황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

        

       반대로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가느다란 실 같은 희망조차 짓밟는 행위.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대화를 보면서 샤를로트는 가슴 앞에서 양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저기, 저기.”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소피아에게 한 여자아이가 말을 걸고 있었다.

        

       “언니는 뭐 하는 언니야? 언니도 오빠처럼 아카데미 다녀? 그럼 언니도 저런 거 할 수 있어?”

        

       “야, 저 사람은 누나잖아. 누나들은 그런 거 안 해. 아카데미 다니는 누나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오호호호’하고 웃는 것만 하면 된다고.”

        

       그것참 당당한 성차별이었다.

        

       정작 아카데미 다니는 여자애들은 대부분 자기 실력으로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줄 아는 아이들인데.

        

       하긴, 그래도 바깥에 나온 아이들이 하는 일은 저 아이가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학년이 높을수록 미래의 남편감을 찾아 유혹하려 드는 학생들의 비중도 많아졌고, 그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면 데이트하면서 저런 식으로 웃는 애들도 있었으니까.

        

       “훗.”

        

       하지만 소피아는 그런 아이들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아무래도 여러분이 저의 실력을 잘 모르시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네요.”

        

       소피아의 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원작에서도 들어봤던 것 같다.

        

       뭐, 상황은 완전히 달랐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들 앞에서 저렇게 뽐내듯 말하는 소피아의 모습이 조금 어울리기는 했다.

        

       본질이 성당 소속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아이들에게는 조금 무른 성격일지도.

        

       뽐내듯 검을 뽑아 든 소피아가 중얼중얼 기도를 올리자, 검에 검기가 서렸다. 누가 신성력 다루는 성당 기사 아니랄까 봐, 레오의 검기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우와!”

        

       레오의 검술이 끝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아이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하앗!”

        

       소피아는 웃으면서 검을 휘둘렀다. 검 뒤로는 반짝이는 검기가 마치 은하수를 놓듯 따라붙었다.

        

       저거 연출이네.

        

       실전성보다는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검기 활용이었다. 검기는 특정한 모습을 할수록 컨트롤이 어려워지니까. 클레어가 검기로 사복검 비슷한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나, 벨라가 쓰는 사복검이 자기 생각대로 휙휙 움직이는 것 모두 검기를 엄청나게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실전성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요기로는 그것만 한 것이 없었다.

        

       아이들의 열광하는 소리를 들은 소피아는 더 신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면서 몇 가지 더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아이들을 향해 멋지게 검례를 올렸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리고, 소피아는 무척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왠지 저 표정이…… 상황에 엄청나게 잘 어울려 보였다.

        

       레오와 소피아가 그런 쇼를 보여주고 나자, 아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와 샤를로트에게로 향했다.

        

       뭔가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

        

       우리 두 사람 다 딱히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후우.”

        

       샤를로트는 결국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레오에게 검을 빌렸다.

        

       평소에 쓰던 얇은 검은 아니었지만, 샤를로트도 검술 실력으로는 자부심이 상당한 캐릭터다. 평소의 검술을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못했더라도, 아이들의 박수를 얻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나에게 모여든 시선이었다.

        

       ……음.

        

       나도 총이 한 자루 있기는 한데.

        

       뭐, 총으로 뭔가 보여주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나는 아이들 앞으로 나서서,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동전을 틱 튕겨 올렸다.

        

       동시에 재빠르게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바로 탕, 하고 발사하고—

        

       툭.

        

       —바닥에 떨어진 동전에는 구멍 하나 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동전 구석에 총알이 지나간 자국조차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동전을 보고, 그 뒤에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훗.

        

       나도 당연히 한 방에 맞출 생각은 없었거든.

        

       다시.

        

       *

        

       “오늘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요.”

        

       골목을 나오면서 샤를로트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는 나가는 편이 낫다는, 아까 우리 가이드를 했던 그 남자의 말에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은 시간에 골목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실 내가 총을 쐈던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동전을 몇 번씩이나 맞추며 튕겨 올리고, 그 가운데 총알구멍을 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총소리에 기겁해서 아까의 그 가이드가 창백해진 채 우리 쪽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하긴, 뒷골목에서 총소리가 들리면 보통은 누구 하나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아무리 경찰이 이 안쪽까지 순찰을 오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서 신고가 들어가면 수색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꽤 커진다.

        

       얼굴이 창백해져서 그런 말을 늘어놓으며 내 손에 달린 자동권총을 몇 번이나 흘긋거리는 그 남자에게, 나는 말없이 명함 하나를 주었다.

        

       이름은 쓰여있지 않은 명함이었지만, 무척 고급스러운 종이 위에 팬그리폰의 문장이 찍힌 것이었다.

        

       참고로 그 문장은 도장으로 찍은 것이다. 도장 자체를 위조하지 않는 이상은 만들 수 없는 복잡한 위조 방지 문양이 숨겨진 것으로.

        

       경찰이 수사한다면 그걸 건네주라고 하자, 남자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친구들과 골목에서 나왔다.

        

       레오와 소피아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샤를로트는 오히려 나의 그런 일 처리에 만족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철저하게 ‘왕족스러운’ 생활만 하다가, 그런 일탈을 즐길 수 있었기에 시원했던 걸까?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

        

       내가 말하자, 샤를로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살짝 지워졌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샤를로트는 금세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혼자 신나서…… 당신이 레오와 지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어요.”

        

       “…….”

        

       아, 맞다. 그랬지 참.

        

       애초에 내가 여기까지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건 샤를로트가 나를 도와주겠답시고 끌고 왔기 때문이었지.

        

       “그런 거 아닙니다.”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샤를로트는 이미 혼자 단단히 착각 중인 모양이었다.

        

       “제가 이른 시일 내로 레오와 당신의 자리를 주선해보도록 할게요. 앨리스한테는 비밀이겠죠?”

        

       만약 내가 정말로 레오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앨리스뿐만이 아니라 샤를로트, 미아나 레나…… 아니, 내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비밀로 했을 거다.

        

       “아무래도 남작가와 황녀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으니……”

        

       아니, 그런 거 아닌데.

        

       황제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 있다면 좋다고 결혼시킬걸. 그런 쪽으로는 눈곱만큼도 기대를 안 하던 인간이니까.

        

       자기 능력을 갖춘 아이를 만들어보겠다고 창관에 씨앗을 파종했던 인간인데, 자기 손자 생긴다고 하면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팬그리폰 황가는 굳이 상대방 핏줄에 연연해야 할 정도로 빈궁하거나 정치적인 입지가 좁지도 않다. 충성파 남작 정도라면 충분할지 모르지. 게다가 나는 황제 자리에 오를 인물도 아니고.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샤를로트의 저 생각에 휘발유를 뿌리게 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입 닥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야?”

        

       그런 우리 둘에게 레오가 불쑥 말을 걸었다.

        

       “내 이름이 들린 것 같은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오의 반응에 샤를로트가 황급히 대답했다.

        

       “우리는 그냥 아까 골목에서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렇죠, 실비아?”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레오에게까지 진상을 말해버리면 이건 집만 타는 게 아니라 산맥을 태울 거대한 화재가 될테니 일단은 참았다.

        

       ……어째 소피아의 시선이 따갑다.

        

       딱히 노려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또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조금 감시를 한 건 사실이지만 말야.

        

       그게 레오를 좋아해서 감시한 게 아니라고.

        

       너 때문에 감시한 건데…….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이걸 그대로 말했다가는 또 이상한 방향으로—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10월의 첫날부터, 나는 이번 달의 내 생활이 전혀 평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