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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뱀파이어의 왕, 인간 수집가, 밤의 지배자, 강혈귀. 여러 가지 이명을 가진 사천왕이 있었다.

     

    진조. 최초의 흡혈귀이자 뱀파이어 로드라는 뜻이다.

     

    미래에서는 세 번째 맞붙은 적으로, 단숨에 다수의 제국민을 감염시켜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능력도 강해 토벌하기도 까다로워 굉장히 애를 먹었었다.

     

    흡혈귀의 능력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피를 빤 상대를 하수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건 의외로 전염만 막으면 큰 문제는 안 됐는데, 놈의 하수인은 좀비 마냥 지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번째 능력이었다.

     

     

    “무대에서 빛이 나시더군요, 주치의님.”

     

    특유의 매력적인 호감형 미소를 보내는 던세이니 백작.

     

    문장 끝에 웃음을 붙이는 저 말버릇.

     

    틀림없다.

     

    이놈이 진조다.

     

    정확히는, 진조이면서 가짜라고 할까.

     

    “저희 왕실 회의도 제국의 내의원을 인상 깊게 지켜보았습니다.”

     

    내 눈앞의 던세이니 백작은 진조 본인이 틀림없다. 정확히는 ‘영혼만’ 본인이다.

    몸은 본래 왕국민이던 정치인 로건 던세이니가 맞다.

     

    진조는 자신이 피를 빤 인물에게 혼을 옮겨 활동할 수 있다. 진짜 백작은 정신의 감옥에 가둬놓았다.

     

    본체를 잡아야 토벌할 수 있는데, 이렇게 소체로 활동하곤 하니 잡기가 어렵다.

    백작이야 일반인이지만 놈은 온갖 능력을 갖춘 소체를 다양하게 구비해 놨다.

     

    인간 수집가라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던세이니 백작은 미래에서 놈이 쓰던 소체 중 하나이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무역의 조건을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해볼까.

     

    진조는 본래 인간 세상에 잠입해 내부에서 망가트릴 큰 계획을 세우고 있었겠지.

    도중 마왕군에게 스카우트되어서 본격적으로 왕국을 멸망시키거나 했을 테고.

     

     

    [No. 073 : 뱀파이어의 밤 68% → 72%]

     

     

    진조에게 몰살당하는 배드엔딩의 확률이 증가하고 있었다.

     

    ‘내가 놈이라면.’

     

    연합군의 사령관이 될 각국의 우두머리와 핵심 병력이 될 영웅이 모두 모인 이 파티를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겠다.

     

    강자가 모인 만큼 반격당할 가능성도 크지만, 타이밍을 잘 잡으면 인간계에 입힐 피해도 막대하겠지.

     

    ‘우선 자리를 뜨고 놈을 제압해야 해.’

     

    백작을 자리에서 몰아내고 다른 세 명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나는 그에게 설사약을 탄 찻잔을 밀었다.

     

    앉은 상태에서 지릴 수는 없으니 마시면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너무 긴장하지 마십쇼. 작은 갈등이야 해일에 털어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입술이 마르셨는데 목부터 축이시죠.”

     

    “…하하, 배려 감사합니다.”

     

    정치적인 웃음과 함께 고개만 꾸벅 숙이는 백작. 카모플라주가 훌륭하다.

     

    눈치챘나 본데.

     

    어차피 우위권은 이쪽에 있으니 좀 더 객기를 부려볼까.

     

    “마음에 안 드십니까?”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꼬아 테이블에 올렸다.

    내 망나니 같은 태도에 페르시야 왕녀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국왕 전하, 백작께서 더러운 제국놈이 주는 차는 입에 대기도 싫으신가 봅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던세이니 백작이 손을 들어 자기 반대편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북부 공국의 풍경을 그린 명화입니다. 산맥이 국경을 나눈 동부와는 달리 북부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지요.”

     

    순간 전원의 시선이 그림으로 향한다. 아래쪽에서 작게 달각 소리가 났다. 잔을 움직이는 소리였다.

     

    자식, 손 빠르네.

    내 잔과 자기 잔을 바꿔쳤다.

     

    “왕실이 제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분위기는 꽤 바뀌었습니다. 제국과 왕국도 저 북부처럼 평탄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 말하고 차를 한 모금 기품 있게 마시는 백작.

     

    잔을 내려놓으며 내게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어온다.

     

    내가 말했다.

     

    “참 아깝군요.”

     

    “어떤 말씀이신지?”

     

    “저를 의심하시느라 백작님을 위한 서프라이즈를 놓치셨으니 말입니다.”

     

    그리 말하고 내가 내 잔을 쭉 들이켰다.

    설사약을 타 백작 앞에 놓았던 바로 그 잔이었다.

    그 모습에 백작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대책은 있다.

    슬쩍 손가락 사이에 숨겨놓은 지사제를 함께 입안에 넣어 삼켰다. 반대 효과를 가진 약이다.

     

    실제로는 중화제가 아니기에 두 개를 동시에 먹으면 안 된다. 양쪽 효과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장마비가 온다. 비상 상황이니 일단 임시방편이다.

     

    백작이 당황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찻잔을 바꿔치셨잖아요?”

     

    “뭣이! 백작, 그게 무슨 짓인가!”

     

    국왕이 호통을 치니 백작의 미소에 당황이 깃들었다.

     

    “백작께서 눈치가 빠르셨습니다. 사실 드실 차에 이걸 탔거든요.”

     

    내가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안에는 부슬부슬한 하얀 가루가 들어있다.

     

    “그건?”

     

    “레몬청을 추출한 농축 가루입니다. 차에 타면 풍미를 더해주지요.”

     

    “호오, 향신료 같은 것이오?”

     

    “그렇습니다. 저희 고트베르크 공장에서 약제를 추출하는 기술로 만들어본 시제품입니다. 무역이 시작하면 수출할 제품이라, 인사차 보여드리려 했습니다만. 어디, 한 번 맛보시겠습니까?”

     

    내가 레몬청 가루를 탄 차를 페르시야에게 내밀었다.

     

    페르시야가 한 모금 맛을 보고는 눈을 찡긋거렸다.

     

    “상큼하니 신기한 풍미가 나네요. 왕국에는 없던 맛이에요.”

     

    페르시야의 감상을 듣고는 백작을 향한 국왕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설마 그걸 독이라고 의심이라도 해서 잔을 바꿔쳤단 말인가? 던세이니 백작! 고트베르크 주치의와 협상하겠다고 자리를 요청한 건 자네였잖나! 역으로 귀빈에게 해를 입힐 생각이었다니, 지금 제정신인가?!”

     

    국왕이 노발대발하며 백작에게 삿대질을 했다. 백작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오해를 살 행동이었습니다. 사죄드립니다.”

     

    “하하, 독같이 심각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하셨겠죠. 익살꾸러기의 장난을 받아치실 깜찍한 행동 아니셨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사의 의미로.”

     

    “그러면 됐습니다. 저도 백작님을 뵈어서 반가우니까요.”

     

    나는 백작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그의 앞에 차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품에서 봉투를 꺼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얀 가루를 하나 더 사르르 타 준다.

     

    물론, 레몬청이 아니라 설사약이다.

     

    “자, 이번엔 거절 안 하시겠죠?”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미지근해진 차를 쭉 들이키는 던세이니 백작.

     

    그가 입을 꽉 다문 채 입꼬리를 쭉 올리고는 용건을 꺼냈다.

     

    “이어 말씀드립니다만, 해로로 개방하는 품목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헤이케가 대답했다.

     

    “제국은 왕국에 연합군으로서 가용할 무기, 방어구, 의료품을 수출한다. 왕국은 제국에 서부에서 내려온 곡물 4종 및 마도구를 수출한다. 반발을 고려해서 슈프레 상단을 가용하되 자유입찰제를 채용하지.”

     

    “동의합니다. 골자는 저희 왕실 회의와 같으십니다. 세부사항을 말씀드리자면…”

     

    던세이니 백작이 말을 멈췄다.

     

    “백작?”

     

    “…말씀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백작이 급한 태도로 어기적어기적 밖으로 나갔다.

     

     

     

    쿵, 문이 닫히자마자 내가 진지하게 낯빛을 바꾸고 세 사람에게 말했다.

     

    “던세이니 백작은 마족입니다.”

     

    “지금 뭐라 하였소?!”

     

    국왕이 의자에서 벌떡 튀어 올랐다.

     

    반면 헤이케는 갑작스러운 정보에도 냉정하게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하는 태도였다. 그 바람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트베르크, 이 자리에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아쉽게도 불가능합니다만 확실합니다. 저는 의학으로 사람을 진단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귀빈이 많이 모인 자리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즉시 대피 안내를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마족이라니….”

     

    1왕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고트베르크, 나는 그대를 신뢰한다. 움직이고 싶다만 거물들을 움직이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헤이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진단.”

     

    상태창으로 이 방의 사람들을 둘러본다.

    페르시야, 헤이케, 국왕, 그 외 호위기사와 시종들.

     

    …특별한 이상은 없다.

     

    던세이니 백작을 검사하면 뭔가 나오겠지만 이쪽이 낌새를 눈치챘다고 들킨 순간 행동을 일으킬 게 뻔하다.

     

    “아니면.”

     

    백의 안에서 자그마한 기구를 꺼냈다.

    당뇨병 진단을 위한 소형 혈액채취키트다.

     

    “살짝 따끔합니다. 협조 가능하겠습니까.”

     

    “부탁드려요. 아바마마도 해주시겠어요?”

     

    “으음… 알겠다. 고트베르크 주치의가 고든을 고친 걸 내 직접 봤으니 믿을 수밖에.”

     

    페르시야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왕도 납득했기에 빠르게 혈액샘플을 채취하고 즉시 [혈액검사B]로 상태를 분석한다.

     

    귀빈들을 거치고 시종과 기사를 체크해 나가던 도중.

     

    “당신, 거기서 대기.”

     

    “…저 말입니까?”

     

    왕국 호위기사 한 명의 혈액에서 기묘한 성분을 검출했다.

     

    ‘MCV가 낮고 칼슘은 너무 많아. 명백히 비정상적이야.’

     

    상시 빈혈 상태나 마찬가지다.

     

    “최근에 쓰러져서 깨어났거나 기억이 끊긴 적 있어? 빨리 대답해.”

     

    “그게… 이틀 전 밤에…”

     

    대답하기도 잠시, 호위기사가 별안간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고는 내 목을 치려 있는 힘껏 휘둘렀다.

     

    ―챙!!

     

    그의 검을 막아낸 건 내 바로 뒤에서 경계를 취하고 있던 타냐였다.

     

    호위기사는 매력적인 미소를 내보이며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백작은 아끼는 소체였는데 말이야. 덕분에 화장실에 버려두게 됐군.”

     

    “쯧.”

     

    국왕을 감시할 눈을 미리 붙일 가능성을 진작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차피 거사는 오늘 일으킬 예정이었다. 한 시간 당겨진 정도야 얼마든지 양해해주지.”

     

    호위기사― 진조가 나를 검지로 가리켰다.

     

    “의사 고트베르크. 감이 좋군.”

     

    “나? 어이쿠, 과대평가야. 낙하산으로 주치의가 됐거든.”

     

    사천왕급 마족에게 찍히는 건 사절인데.

     

    “하하, 그렇게나 여유 넘치는 인간은 드물었지. 워낙 수명이 짧으니까.”

     

    호위기사가 눈을 초승달처럼 뜨며 활짝 웃었다.

     

    “피의 축제를 열어보자고.”

     

    타냐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의 턱을 강하게 쳐 벽으로 날려버렸다. 쓰러진 기사는 정신을 잃고 동력을 잃은 태엽인형처럼 힘없이 팔을 떨어트렸다.

     

    “대피하시죠. 황녀님, 먼저 회장을 떠나십쇼. 왕녀님, 국왕 전하도요.”

     

    “고트베르크, 자네는.”

     

    호위기사들이 보호하는 헤이케.

    내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저는 제 황녀님 챙겨야죠.”

     

     

     

    ***

     

     

     

    타냐와 함께 귀빈실을 나왔다.

    메인 홀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 복도를 달려 그녀를 찾았다.

     

     

    [No. 073 : 뱀파이어의 밤 72% → 74%]

     

     

    진조가 뭘 터트리긴 터트리려나 본데.

    폭탄이라도 준비했나.

     

    “브루노, 네리아 찾을 수 있겠어?”

     

    “천둥족과 함께 계실지요?”

     

    “아마도.”

     

    “그럼 찾을 수 있습니다.”

     

    “데리고 여기서 나가.”

     

    브루노에게 네리아를 챙기게 한 후 2층을 크게 한 바퀴 돈다.

     

    별안간.

     

    번개가 스쳐 지나가듯, 뇌간을 찌릿하고 쏘는 감각에 발을 멈추었다.

     

    아셀라가 분명했다.

     

    “내가 몇 번이나 네 시선을 받아봤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아니나다를까, 머잖아 그림자 속에서도 황금빛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어째선지 발코니에서 홀로 쓸쓸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셀라는, 자기 외의 인간을 발아래의 존재로 보고 개미 관찰하듯 보던 평소와의 태도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꼭 고위층의 세상 자체에 조금 싫증이 난 것 같은 눈치랄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나는 단숨에 아셀라에게 달려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황녀님.”

     

    나를 돌아보며 깜짝 놀라는 아셀라.

     

    그 동공에 가득하던 불안에 한 방울 안도가 떨어져 풀어졌다.

     

    그러기도 잠시, 슬쩍 턱을 내밀어 킁킁 냄새를 맡더니 원망과 함께 다시금 질투가 깃들었다.

     

    “너, 여태 왕녀랑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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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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