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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그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해결하기는 했지만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기라도 한 듯 표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사범에게 말했다.

         

       “흠. 이거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혹시 근래 여행을 갔다거나, 외국에서 물건을 샀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는지요?”

         

       사범은 진성의 질문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건 왜 물어보십니까?”

       “아, 별것은 아닙니다.”

         

       진성은 사범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긴장하지 말라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의 톤을 조금 높여 말했다.

         

       “마나라는 것이 자주 쓰이는 힘은 아니고. 폴리네시아, 남미. 뭐 이런 곳에서나 볼법한 힘이니까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런 곳은 따뜻하기도 하고 볼 것도 많아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가끔 그런 곳에 가서 기념품이라고 뭘 사 왔는데, 그게 알고 보니 주물이었던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특히 폴리네시아 쪽에서 만든 주물의 경우 나무나 뿔, 돌로 만든 자그마한 조각상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의 목소리는 별것이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표정은 일부러 웃음을 짓는 것처럼 아주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으며, 사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 자신이 하는 말이 빈말이라고 은근슬쩍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여행을 가지도 않았고, 외국의 물건은 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령 샀다고 해도 그것이 주물인지 모를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것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아, 그렇지요.”

         

       진성은 사범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사만 편집증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아예 외국에서 들여오는 물건들도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진성의 속내는 겉과는 달랐다.

       알고 있다는 듯,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는 일본의 병적인 집착에 혀를 찼다.

         

       병적인 집착.

       주술사, 주물을 막기 위한 노력.

         

       ‘쯧. 이러니 과거 내가 일본에 발을 디디지 못했던 것이지.’

         

       외국에서 오는 주술사는 입국하지 못하게 만들고, 설령 밀입국을 한다고 해도 온갖 첨단기기와 음양술을 이용해 색출한다. 주물은 당연히 철저한 검사를 통해 조사한다.

         

       아마 주물을 주문한 사람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 주물이 어떻게 이동하고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지 역시 감시가 붙겠지.

       그뿐만 아니라….

         

       ‘그렇군. 일본에서는 택배를 꼭 사람이 받아야만 하던데. 거기에도 수작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일본에서는 택배가 본인 수령이 원칙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집 앞에 놓고 가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반드시 사람이 받아야만 했다.

         

       물론 무인택배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인택배함의 숫자는 번화가나 신축건물에서나 종종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인택배함에도 주물을 감지하거나 주물을 수령하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고. 택배를 사람이 직접 받아야 하는 것 역시 주물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렷다.’

         

       거기에 더해서, 은밀하게 ‘주물을 주문한 거동 수상자’를 근거리에서 관찰하거나 처리하려고 할 때, 배달원으로 변장한다면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진성은 파도 파도 나오는 주술사를 색출하기 위한 일본의 집착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혼과 백이 이렇게 널려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랴. 외국에서 오는 통제할 수 없는 주술사들이 폭탄처럼 느껴졌겠지.’

         

       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사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그냥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희박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렇다고 아예 말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크흠.”

         

       사범은 진성의 말에 수긍했다.

       앞서 보았던 전문가들이 딱 저런 태도였다.

         

       가능성이 작은 것임에도 굳이 말을 꺼내서 시간을 잡아먹고,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면서 끝까지 가능성을 놓지 않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며 확언을 내리지 않는 모습 말이다.

         

       ‘먹물을 먹은 것들은 다 저렇군.’

         

       진성은 자연스럽게 눈동자를 굴리며 사범의 표정을 살펴보았고, 그에 맞춰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옛날에 보았던 사례가 떠올라서 찝찝하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찝찝함 속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 역시 살짝 섞어놓았다.

         

       “사례를 보면 황당한 경우가 많아서, 드물지만 일어날 수 있지요. 1960년에 있었던 마나를 방사능으로 착각해서 벌어진 사건이라거나, 80년대에 목재를 수입했는데 그 안에 주물이 들어있던 사건이라거나, 91년에 하와이에 갔다 온 관광객이 기념품을 사서 열쇠고리로 달고 비행기를 탔는데 거기서 주물의 효과로 인해 엔진이 다운되어서 5시간 동안 지연되었던 사건이라거나….”

       “그렇습니까?”

       “하하. 읽는 것만으로도 황당한 사건들이기는 했습니다마는, 그래도 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은 확률이 0%는 아니라는 것이니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진성은 사범이 지루한 기색을 보이자 말을 돌리는 것처럼 연기했고, 지루함을 환기하려는 듯 과장된 몸짓과 말투를 보여주며 다시 사범의 집중력을 돌려놓았다.

         

       “흠. 그렇다면 말입니다. 혹시 공사한 적이 있습니까?”

       “공사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사범이 되물었다.

         

       “아, 이런. 아닙니다. 이건 제가 언급하기에는 조금 민감한 것 같군요.”

       “민감하다니요?”

       “그것이 그. 크흠!”

         

       진성은 사범의 눈치를 슬쩍 보는 듯 눈동자를 움직이더니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마나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힘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그렇다면 공사에서 마나가 필요하거나, 마나가 들어간 물건이 들어가는 경우는….”

         

       진성은 거기서 말을 흐리고 슬쩍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범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혹시 국가에서 뭔가 시설을 짓지 않았느냐 하는 겁니까?”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애초에 산세 자체가 불길하다고 해서 아무도 발을 디디려 하지 않지요. 물론 위에서도 꺼리고요. 이곳에 있는 시설은 수련장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진성은 그 말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언가 응어리가 남은 듯 시원하지 않은 표정을 만들었다.

         

       “그럼 마나가 대체 왜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혹시 마나가 남아있으면 문제가 생깁니까?”

       “네. 그럴 수 있지요.”

         

       그 말에 사범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방금 지장보살을 베지 않았습니까?”

       “그건 저 혼령을 벤 것이지요.”

         

       진성은 짜증 섞인 반문을 하는 사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집에 난 불을 끈 것과 같습니다. 불도 무사히 껐고, 별다른 피해 없이 집도 무사히 지켜졌지요. 집을 활활 태울뻔했던 불은 사그라들었고, 화재는 무사히 진압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화재를 무사히 진압했다고 해서 앞으로 또 불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법입니다.”

         

       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기 말이 옳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 확신을 품고 있었다.

         

       “불을 무사히 껐다고 한들 화재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 또 같은 이유로 불이 날지 모르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가스가 새고 있으면 새지 않게 하고, 합선이 일어났다면 전기를 고치고, 난로가 엎어져서 난 것이라면 더 안전한 난로를 사용하거나 난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요.”

       “…그러니까. 불은 껐는데 원인은 못 잡았다, 이겁니까?”

       “흐-음. 면목 없지만…. 네. 그렇습니다.”

         

       그는 찜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와 혼령이 원인이라는 것도 알았고, 장난질을 치던 혼령 역시 무사히 퇴치하였지요. 그런데 마나가 도무지 왜 있는 건지를 알 수가 없으니…. 참. 그것까지 해결해야 완벽할 텐데….”

       “마나, 마나라…?”

       “이번 일도 악령도 아닌 것이 마나로 힘을 증폭해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니…. 만약 마나가 남아있고, 혼령이 나타나서 마나를 빨아들이며 힘을 축적한다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또….”

       “그리고 이건 그…. 별로 말씀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악령이나 악귀라면 일이 조금 더 심각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진성은 심각해진 사범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마나에 관해서는 다른 전문가를 고용하시지요.”

       “…어떤 전문가가 좋겠습니까?”

       “그거야 뭐…. 엄청 전문적인 사람은 필요 없을 겁니다. 마나를 감지하는 장비만 있으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아마 산 전체를 수색해야 할 것 같은데….”

         

       사범은 진성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산 전체요?”

       “예. 마나가 어디서 오는지를 모르니…다 살펴보는 수밖에 없지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사범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진성에게 살짝 얄밉다는 감정을 느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산 전체를 수색하는 것이 어디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사람도 사람대로, 시간도 시간대로 써야 하는 데다가, 많은 사람이 써야 하는 마나를 감지하는 장비까지 구해야 한다.

       게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산이 북적이면 주민들이 이것을 모를 리도 없을 것이고, 산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상한 장비를 차고 있으면 당연히 화제가 될 터.

         

       그렇게 된다면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 오랫동안 심력을 소모하여 혼령을 퇴치하는 것에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크게 심력을 소모하지 않았으니 마음을 쓰지 마시지요.”

       “어찌 그러겠습니까? 오늘 일은 제가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일도 끝난 것 같으니 만들어놓은 간이 신사를 철거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고생이야 사범님이 훨씬 하셨지요. 아, 혹시 도움이 더 필요하다면 말씀해주시지요. 제가 나이와 경험은 일천하기는 하지만, 시현류의 부름이라면 기꺼이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사범은 진성의 조언을 전적으로 믿는 대신,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티 내지 않고 진성을 정중한 태도로 보냈고, 진성이 차를 타고 산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나를 알법한 전문가가 누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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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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