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냐?”
“……가, 갖고 싶어.”
레이븐이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무덤덤했고, 여기 와서 반짝반짝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고, 이젠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차원 줄기 미끼가 잘 먹혀들었다는 것일 타.
녀석은 마법사다.
특출나게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 환경과 세계수의 줄기, 열매 등등 전부 흥미를 가진 것 같았다.
이걸 이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녀석을 여기 정착시키는 것 말이다.
지배자급 전력이니 가능하면 능동적인 전력으로 써먹을 생각이다.
고로.
“공짜로?”
녀석에게 직접 대답을 들어야지.
레이븐은 머뭇거리다 답했다.
“……난 이미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겠다고 했어. 엘프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여기서 더 바라는 게 있어?“
“많지. 내가 원하는 건 잠깐 머물다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럼?”
“좀 더 깊은 관계가 되는 거지.”
“깊은 관계?… 이상한 짓을 벌일 생각?”
살짝 경계하는 눈빛이 되었다.
괘념치 않고 마저 설명했다.
“이상한 건 아니고. 우선 1년으로 하자. 1년 동안 이곳에 머무는 게 조건이야.”
“………?”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눈빛.
경계하던 눈빛이 사라지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멀뚱히 바라본다.
재차 설명했다.
“여기서 1년 동안 일하라고. 말했다시피 엘프를 가르치고,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추가로 일을 시킬 수도 있어. 물론, 그만큼 네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고.”
“……아.”
“그 반응은 뭐냐. 뭘 상상했길래.”
슥.
녀석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수치스러운 듯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냥… 탑에는 더러운 자들이 많으니까. 잠깐 오해했어. 사과할게.”
요컨대, 날 이상한 놈으로 봤다는 거군.
표정의 90%가 담담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그건 됐고. 어쩔 거야. 여기서 1년 동안 머물면 이걸 줄 수 있다고. 그뿐만 아니라 원하는 지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지.”
슥슥.
다시 차원 줄기를 흔들어 보였다.
녀석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흔들다가 퍼뜩 깨어나서 고민 모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조건은 방금 말한 게 끝?”
“일단 그래. 기간을 연장할지 말지는 더 보고 정해야지.”
“……정말 그게 전부?”
“또 같은 질문 반복하네.”
맘 같아선 바로 다크레아의 마법사가 되어 활약해라! 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서야 수동적으로 움직일 게 뻔하고, 이번 아칸벨리처럼 쉽게 우리를 배신할 게 틀림없다.
천천히 구워삶아야 한다.
녀석이 이곳에 적응되도록.
이곳이 아니면 안 되는 몸으로.
그렇게 길들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크레아를 위해 움직이게 될 거다. 먹을 거에 길들여져 정신 못 차리는 폐기장의 미야처럼 말이다.
이 녀석도 다르지 않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을 뿐, 반응을 보면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다. 연구를 좋아하는 마법사라 쓸모도 많을 테고.
게다가 1년이면 충분하지.
레이븐이 이곳에 적응하고 엘프 마법 병단이 탄생하는 건.
뭐가 됐든 이쪽이 손해 볼 건 없다.
그러니 한번 구워삶아 보자고.
우릴 위해 충성할 지배자를.
*
‘뭐야. 이 엘프….’
레이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1년은 머물 생각이었다.
잠깐 가늠한 것으로 연구할 게 넘쳐났고, 이곳에서 수련하면 경지를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보인가… 이걸 알려 줘야 하나?…….’
너무나 후한 조건.
강요하는 게 일절 없었다.
다른 세력이었다면, 압박하거나 원하는 연구를 강압했을 텐데.
여긴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엘프에게 한두시간 뺏기는 게 고작이다.
척 봐도 놀라운 영약을 서슴없이 주고,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특별한 지팡이를 주겠단다.
레이븐은 감정 능력도 높다.
웬만한 물건의 가치는 바로 알 수 있다.
무찬이 주었던 생명과나 저렇게 흔들고 있는 차원 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마법사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호구인가!’
번뜩 땡잡았다고 생각했다.
그저 멀뚱히 무찬을 바라보다가.
끄덕.
“그렇게 할게.”
거래를 승낙했다.
*
“연구할 거야. 세계수의 비밀을 밝힐 거야.”
“의욕 높은 건 좋은데, 그렇다고 시킨 일은 소홀히 하진 마.”
“응. 최선을 다할게.”
거래는 성사되었다.
녀석은 앞으로 1년간 다크레아에 머문다.
솔직히 인질로 잡아 온 시점에 강제로 시켜도 되겠지만, 죄질이 약하고 그렇게 부려 먹으면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잘 통제해줘야겠지.
저래 보여도 지배자 전력이니까.
물론, 혹시 모르니 시리안에게도 잘 감시하라고 전해놓을 생각이다.
하지만 걱정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건 세계수에서 자란 거야?”
톡톡.
파다닥!
차원 줄기를 받아든 레이븐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지팡이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처음부터 싸움을 피하려 했던 녀석인 만큼, 굳이 해가 될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맞아.”
“너는 누군데 세계수를 마음대로 관리하고 다루는 거야?”
“알려줘?”
“응.”
“그럼 3년 계약 연장이야.”
“…그건 싫어…….”
“농담이야. 우선 직접 알아내 봐. 스스로 파헤쳐 보는 게 재밌을 거 아냐. 정 궁금하면 3개월 연장으로 알려줄게.”
“음… 직접 알아볼게. 우선 이것부터.”
툭툭.
휘익~
녀석은 대화하면서도 차원 줄기를 멈추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물건을 검사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았다.
바닥을 두들기고.
높이 들어 올려 자세히 관찰하고.
그러다가도.
“평범함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져. 이거 분해해 봐도 돼?”
“분해?”
차원 줄기를 분해하고 싶단다.
그건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차원 줄기는 가장 단단한 줄기다.
차원 압력을 버티도록 설계된 거니까.
이때껏 차원 줄기가 물리적으로 부서진 걸 본 적이 없다. 과연 녀석이 차원 줄기를 부술 수 있을지 나도 알고 싶다.
어쩌면 모르지.
나도 모르는 비밀을 밝혀낼지도.
나도 내 몸의 객관적인 부분이 궁금하거든.
저 정도 되는 녀석이라면 혹시 모른다.
획기적인 비밀을 밝혀낼지도?
가능하면 지원해주자.
“그것 말고도 필요한 자원이 있으면 말해. 어차피 연구 성과를 공유한다면, 나도 널 지원해서 나쁠 게 없으니.”
“내가 원하는 것만 연구해도 돼?”
“엘프만 잘 가르친다면야. 나머지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호구….”
“응?”
“아, 아니야….”
“어쨌든. 있다 엘프를 보내줄게. 집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엘프가 꾸며줄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1층으로 와서 내게 말하고.”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아까 말했잖아. 엘프들 가르치라고.”
“정말 그게 전부?….”
“그 말만 오늘 몇번째인지 알고 있냐? 난 이만 갈 테니 쉬고 있어.”
휙.
뒤돌아 집을 나섰다.
너무 간섭해도 좋진 않을 테니, 우선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줄 심산이다.
빠안-
녀석은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굳이 관심주지 않고 집을 나섰다.
알아서 적응하겠지.
*
“후우~ 어찌 급한 건 다 마무리했네.”
시리안의 진화.
본체 육신의 진화.
드워프 왕국의 침략 방어.
아칸벨리 잔당 처치 및 레이븐 합류.
레이븐과 거래로 연구 지원 및 집 지어주기.
이전에 세오른과 거래하고 샤엘라와 다크레아로 등반한 것까지.
생각보다 바쁜 시간이었다.
그저 샤엘라와 함께 등반할 생각뿐이었는데,뭐이리 일이 생기는 건지.
대신 얻은 것도 많다.
강력한 부하들.
강력해진 본체 육신.
굴러들어온 지배자 전력.
어느새 왕국은 지배자 여럿을 상대할만한 전력을 갖췄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고층에서 활약할 국가 레벨이 될지도 모르겠지.
“고생했어. 쉬어쉬어~”
팍팍~
샤엘라가 등을 두드려준다.
참고로 우리는 한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으려면.
“레이븐 녀석은 뭐 하고 있냐?”
샤엘라가 궁금증을 표출했다.
2층에 혼자 내버려 둔 녀석이 뭐 하고 있나 궁금한 듯했다.
싸악~
잠시 식물의 시야로 살폈다.
엿보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거든.
현재 레이븐은.
머엉~
멍때리고 있다.
집 밖에 나와 2층 난간에서 다크레아 왕국 풍경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엘프의 낙원….”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텁~ 난간에 걸터앉았다.
녀석의 두 손에는 내가 준 차원 줄기 지팡이가 소중히 들려 있었다. 그런 모습을 샤엘라에게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여기가 신기한 모양이야. 2층에서 왕국을 가만 구경하고 있어.
“귀여운 구석이 있네.”
“맞아. 4차원적인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부터 남다르긴 했지.”
“뭐? 매력적이라고?”
“응?”
“나보다?”
“………?”
뜬금없는 비교 질문.
샤엘라가 게슴츠레하게 바라본다. 명백히 원하는 답이 있는 것 같았다.
“넌… 특별하지.”
“특별? 그건 무슨 의미야?”
“한 번 보면 시선을 돌리기 어렵거든. 매력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있어.”
“흐음?”
“매일 네 생각을 할 정도로.”
“뭐, 뭐야… 무차아앙~”
톡톡.
푹~
녀석이 어깨를 두 번 치고 밀착한다.
오랜만에 보는 느끼한 샤엘라 모드다.
익숙해지고 적응하고 나니, 왜인지 이 모습이 기분 좋은 듯한….
뭐튼 좋다.
둘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일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니까.
‘분명 또 침략이 올 거란 말이지….’
아칸벨리의 침공.
한 번으로 끝나 리가 없다.
여력이 없더라도 다른 세력에게 정보를 팔아 재침공할 가능성이 높다. 정보를 팔기 전에 먼저 제지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한 일일까.
전력의 무려 7할을 동원한 침략이었으니 정보가 이미 어딘가로 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시간 벌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매우 필요하겠지.’
도시 이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아칸벨리를 부수면 작정하고 정보를 퍼트릴 순 없을 테니, 시간을 벌거나 더 많은 세력의 개입을 줄일 수 있다.
과한 참견이 아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일전에 시리안의 보고로 듣기를, 벨칸국은 원래 더 발전된 문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력이 크게 소실됐다.
그들 정도 문명이면 기술을 받쳐줄 시설이 필수적인데, 그걸 몽땅 잃고 처음부터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주하면서 유능한 기술자들도 많이 납치당했을 테고.
그걸 막아야 한다.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다크레아가 온전히 벨칸 왕국의 기술력을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실 이게 본심이다.
세리아스 기억에서 엿보기를.
‘아칸벨리에는 히페리온 동력원이 있다.’
히페리온 동력원.
매우 뛰어난 에너지 구체다.
주로 비공정이나, 거대 함선을 움직일 때 사용하며,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수백에서 수억 포인트까지도 거래된다.
그리고 아칸벨리 것은 중상급.
최소 1억 가까이하는 보물이다.
‘내가 이때껏 벌어들인 돈보다 비싸다니…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지.’
탐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저거라면 비공정을 만들 수 있을 터.
비공정이란.
하늘을 지배하는 배.
마법과 첨단 기술 두 가지를 조화로이 섞은 기술의 절정체로 빠른 기동성을 갖춘 강력한 이동 수단이다. 웬만한 모든 세력이 뛰어난 비공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세력 전쟁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어쩌면 아칸벨리는 비공정을 만들기 위해 드워프를 침략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에 따르면 설계도도 구비해놓은 것 같았거든.
나는 그걸 취할 생각이다.
동력원과 설계도를 가져와 이곳에서 기깔나는 비공정을 만들 생각이다.
다크레아는 충분히 가능하다.
첨단 기술을 가진 드워프가 있다.
지배자급의 뛰어난 마법사 레이븐도 있다.
그들이라면 설계도를 더욱 보완한 이동 수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처들어 가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적은 101층에 기거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침략해 어떻게 강탈할 것인가.
뭐, 혼자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어떡할까.”
“응?”
샤엘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함께 의논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