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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

       “…….”

       “…….”

       “삐꾹.”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거의 완벽한 고요 속에서 아르가 딸꾹질을 했다. 

       

       내 어깨에서 튕겨져 나가 몇 번 데구르르 구르고 철퍽 엎어졌다가 일어나려는데 엄청난 신성력 폭발이 일어나 놀란 모양이었다. 

       

       ‘미친.’

       

       평소 같으면 놀라서 육성으로 튀어나왔을 말이지만, 워낙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방금 뭐였지?’

       

       나는 온 시야가 하얗게 물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레키온이 신성력을 검끝에 모은 뒤 검을 땅바닥에 내리찍었고. 

       

       땅이 갈라지며, 온몸에 짙은 마기를 두르고 있던 하무트교 지부장 쪽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 한 방에 지부장은 물론이고 추종자들까지 다 쓸렸다고…?’

       

       하무트의 힘을 받아 몇 배나 강해진 그놈들이?

       

       만약 지금 레키온이 있는 곳을 기점으로 부채꼴 형태로 퍼져 나간 거대한 범위의 땅이 전부 뒤집어져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면 나조차도 믿기 힘들었을 정도였다. 

       

       콰르르르르.

       

       폭발의 여파로 무너지는 건물들이 굉음과 함께 땅을 진동시켰다.

       

       그 진동을 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방금 벌어진 일이 비로소 실감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땅에 검을 꽂은 채로, 손잡이에 두 손을 얹은 채 서 있는 레키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슈우우우우….

       

       이글거리던 순백색의 기운이 서서히 꺼지며 마치 불이 잦아든 것처럼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데보라였다. 

       

       “야, 레키온. 레키온!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껏 둘이서 하무트교 지부를 박살 내고 다닐 때도 보지 못했던 큰 기술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레키온의 어깨를 잡았다. 

       

       “…….”

       

       하지만 가만히 있던 레키온은, 데보라의 말을 무시하고 별안간 이쪽을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터벅터벅 걸어와서 아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먼지투성이가 된 아르의 몸을 두어 번 툭툭 털어 주고는 물었다. 

       

       “괜찮니, 아르야?”

       “쀼, 쀼우.”

       “다행이다.”

       

       아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키온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아르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은 내가 다 없애버렸어. 삼촌 잘했지?”

       “쀼우우. 쀼우?”

       

       그렇게 말하는 레키온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는지, 아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쀼 소리를 내며 레키온의 눈앞에 짧뚱한 팔을 흔들어 보였다. 

       

       대충 ‘갠차나여? 몬가 힘들어 보여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르의 걱정대로, 레키온은 대답하는 대신 눈을 감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쀼, 쀼우우!”

       

       아르가 놀라서 얼른 레키온의 얼굴을 젤리로 꾹꾹 눌러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뭐야, 레키온!”

       

       데보라가 놀라서 얼른 뛰어와 레키온을 반듯이 눕혔다. 

       

       “레키온! 정신 차려! 어떡하지? 역시 이럴 땐 인공 호흡이라도….”

       

       패닉 상태에 빠진 데보라가 그렇게 말하며 레키온의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쿠우울….”

       “…….”

       

       멀쩡히 숨소리를 내며 잠든 레키온이 뒤척였다. 

       

       ***

       

       “완전히 탈진 상태네요. 그냥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레키온의 상태를 살펴 본 실비아의 진단이었다.

       

       “…그런 것 같아요. 용사로서 뭔가 각성하면서 얻었다는 신성력이라는 그 힘이 지금은 거의 안 느껴져요.”

       

       레키온의 곁에서, 레키온이 신성력을 쓰는 걸 가장 많이 봐 왔을 파트너인 데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렇게 저절로 회복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보통 사람은 이 정도로 자신이 가진 힘을 짜내면 회복 단계에 접어드는 데만 해도 몇 달 이상 걸릴 수도 있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점점 회복되고 있는 걸 보면, 단장님은 확실히 회복 단계에 들어서신 것 같네요.”

       

       쿨쿨 자면서 실시간으로 회복하고 있는 레키온의 몸 상태가 오히려 신기하다며, 실비아는 연신 감탄했다. 

       

       ‘그래, 이게 레키온이긴 해.’

       

       이게 레키온이고, 이게 용사긴 하다. 

       

       그 사기적인 전설급 고유 특성을 몇 개나 가지고 시작하고, 영웅급 특성은 손가락으로 다 셀 수도 없는 사기적인 스펙의 용사. 

       

       그중 「재생」, 「기사회생」 같은 특성은 레키온이 죽을 듯 말 듯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숨 돌릴 기회만 있으면 살아나게 만들어 주는 효자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아무리 그렇게 스펙이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급발진을 해 버리다니….’

       

       -아ㄹ….

       -아르야아아아아아악!

       

       아니, 분명 아르 계약자는 난데 누가 보면 레키온이 아르 계약자인 줄 알겠어.

       

       ‘그때 아르가 좀 불쌍하게 튕겨 날아가긴 했는데….’

       

       좀 꼰대 같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애들은 좀 크면서 먼지도 먹고, 맨땅에 구르면서 흙투성이도 좀 되어 보고 하는 거다.

       

       아르랑 만난 초기에는 실제로 나랑 아르 둘 다 생존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이불 하나 없는 동굴 흙바닥에서 서로의 체온만 믿고 껴안고 자기도 했고.

       

       지금이야 돈도 많고 여러 모로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아주 비늘에 윤기가 흐르고 배도 뚠뚠빵빵해졌지만, 예전엔 그런 거 없었단 소리다. 

       

       ‘으이? 애가 좀 넘어져서 무릎도 까지고 할 수도 있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라지만, 장래를 위해서는 좀 강하게 키울 필요도 있다. 

       

       이렇게 드래곤을 키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게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내 육아관이었다. 

       

       실제로 아르도 툭하면 삑 쀽 하면서 넘어지고 울긴 했지만 결국 이렇게 귀여우면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지 않은가.

       

       아, 새삼 뿌듯하네.

       

       ‘뭐, 그래도 이렇게 호들갑 떨어 주는 사람이 삼촌 포지션 정도로 있어 주는 건 나쁘진 않긴 해.’

       

       부모가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가끔 만나서 용돈도 주고 귀여워해 주는 삼촌이 있는 것 정도야 괜찮긴 하다. 

       

       ‘근데 언제부터 레키온이 삼촌이 됐지.’

       

       너무 자연스럽게 언제부턴가 레키온이 아르한테 자신을 ‘삼촌’이라고 지칭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스며들어 버렸다. 

       

       ‘뭐, 여튼 덕분에 위기는 스무스하게 넘겼네.’

       

       만약 거기서 레키온이 이렇게 힘을 쏟아내지 않았더라면 전투는 꽤나 힘들었을 거고.

       

       어그로가 이쪽으로 쏠린 탓에, 여차했으면 아르가 ‘천 년의 힘’을 써야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들켜 버리고 말았겠지. 

       

       ‘근데 아까 지부장이 나보고 용을 깨울 자라고 해 버린 건 어떡하지.’

       

       지부장이 착각한 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용을 깨울 자는 맞는데 아직 안 깨웠다고 해야 하나.

       아예 모르쇠로 잡아 떼는 게 낫나?

       

       뭐가 최선인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일단 최대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자. 

       

       “그럼 레키온 님이 회복하는 동안, 저희는 지부 안쪽을 탐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쓸 만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반쯤은 있을 거라 확신하고 한 말이었다.

       

       만약 하무트교가 누군가 쳐들어 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었다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미리 중요한 정보나 물건들을 안전한 곳으로 빼돌렸겠지만.

       

       이번 건 완벽한 기습이었기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옮기거나 폐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을 테니까. 

       

       ‘이렇게 레키온과 데보라를 두고 안쪽을 탐색하는 동안 실비아 씨랑 어떻게 할지 의논도 좀 해 보고 하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지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만요.”

       “네?”

       

       하지만 데보라도 만만치는 않았다. 

       

       “같이 가요. 어떤 게 중요한 정보고 물건인지 파악해야 하기도 하고, 훼손하면 안 되는 증거물을 보관할 아티팩트도 제가 가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레키온 님을 두고 가는 건….”

       “데리고 가면 되죠.”

       

       데보라는 잠든 레키온이 걸치고 있는 경량 플레이트 아머를 척척 해제하더니 레키온을 들쳐 업었다. 

       

       “가시죠.”

       “…알겠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데보라와 함께 지부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쓸 만한 정보를 탐색했다. 

       

       내 예상대로 안에는 날것의 정보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지부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기 전에 중요한 물자를 어떤 경로로 공급 받았는지.

       다른 지부와 연락은 어떤 빈도로 어떻게 해 왔는지. 

       그리고.

       

       “엇, 이거 다른 지부 위치 같은데요?”

       

       우리가 찾아 마지않던, 다른 곳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을 지부의 위치까지도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여긴 무기고 같은데…. 와. 이건 그냥 갖다가 성에 보급해도 되겠는데요.”

       “방어구도 전반적으로 쓸 만한 것 같아요.”

       “쀼우우웃!”

       “으응? 아르야, 왜? 아, 보석도 발견했구나?”

       

       게다가 놈들이 아마 불법적인 방법으로 축적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재물들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지부 밖에 있는 기사 분들까지 불러서 옮겨야겠는데요.”

       

       사실 이런 건 아공간을 이용하면 손쉽긴 하지만, 여기서 아공간을 쓸 수는 없….

       

       “근데, 레온 님.”

       “네?”

       

       그때 데보라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아까 물어보려다 말았는데…. 지부장이 했던 ‘용을 깨울 자’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맙소사. 올 게 왔구나. 

       

       아직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못한 나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 그건….”

       

       내가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용…. 용용이….”

       

       데보라가 잠시 무기고 문짝 쪽에 내려 기대 놓았던 레키온이 부스스 눈을 떴다.

       

       그리고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아르를 발견하더니,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우리 귀여운 용용이 아르, 이리 온! 삼촌이 한 번만 쓰다듬자. 응?”

       “……?”

       “……?”

       

       그 말에 나도, 아르도, 실비아도, 그리고 데보라마저도 굳었다. 

       

       그러자 우리의 반응에 잠이 좀 깬 레키온도 뭔가 실수했다는 듯이 굳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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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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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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