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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아, 그리고.”

        

       나는 초대장을 받아든 손아름에게 덧붙여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안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 혹시라도 옷 필요하면 말해. 빌려줄 테니까.”

        

       “옷이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한 손아름에게, 나는 보란 듯이 한숨을 쉬어 보였다.

        

       “너도 그거 보면 알겠지만.”

        

       내가 손아름 손에 들려있는 초대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손아름의 눈도 그 손끝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사실 그냥 평범하게 친구들 몇 명만 초대하고 말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판이 커져 버렸어. 친척 어른이 직접 개최해버리는 바람에. 그것도 그 친척 어른이 직접 보내준 초대장이고. 솔직히 아무리 봐도 생일파티 초대장이 아니라 결혼식 청첩장처럼 생겼잖아.”

        

       내 말에, 손아름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가는 모양이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일파티는 아니게 될 거야.”

        

       드라마에서나 보던 호화파티가 되겠지.

        

       하필이면 그 주인공은 나일 거고.

        

       ……사라는 이 상황에서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그러니까…… 정해진 드레스 코드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아무렇게나 입고 오면 분명히 누가 흉볼 거야.”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생일파티를 해야 해?”

        

       손아름이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은 채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솔직히 영 내키지 않기는 했다. 아무리 봐도 졸부가 돈 자랑하겠다고 하는 파티 같잖아.

        

       그런데 어쩌겠는가. 초대장을 이만큼이나 줬다는 말은, 이미 이 초대장을 받은 인물들이 있다는 소리다. 적어도 유진 그룹과 관련된 친척들은 죄다 초대받았겠지. 나한테 ‘소개해주겠다’라는 것이 이번 파티의 최대 목적이었으니까.

        

       당연히 내가 그 파티에서 빠지는 건 친척 어르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일거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참석하는 게 옳은 일이다. 괜히 한순간 덜 쪽팔리겠다고 행동했다가 평생 쪼이는 수가 있었으니까.

        

       “뭐……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돼. 솔직히 나도 별로 찬성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그래도 너한테는 줘야 할 것 같아서 주는 거야.”

        

       “어…… 어어!?”

        

       내 말에 손아름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다.

        

       “그러니까, 만약에 오고 싶은데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말흐엑!?”

        

       그리고, 나도 손아름에게 대답하는 와중에 그런 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사실 ‘누군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뭣했다. 내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으니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하늘이가 앉아있었다.

        

       내 옆구리를 찔렀다는 것을 굳이 티 내지도 않고, 하늘이는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와 손아름이 하던 대화에는 일절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오른쪽에서 찌르는 걸 느꼈는데?

        

       “응? 왜, 무슨 일 있어?”

        

       내 시선이 자기 쪽으로 향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양, 하늘이가 그렇게 물었다. 얼굴에는 생글생글 미소가 걸려있었다.

        

       …….

        

       그런데 왜 무서울까.

        

       아니, 별로 화내는 표정은 아니다. 평소에 다양한 표정을 짓는 하늘이답게도, 이 표정도 몇 번이나 본 표정이었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그 미소 너머에 뭔가가 있다고 느껴졌다.

        

       “아, 으에, 그러니까…… 그…….”

        

       나는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나 보이는 하늘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

        

       “응? 아니?”

        

       하늘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상한 기분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그래……?”

        

       그래서,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하늘이의 눈을 피하는 것을 택했다.

        

       *

        

       “그러니까 선배도 일단 받아둬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초대장을 건네자, 남다운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걸 받아 펼쳐 들었다.

        

       “뭐냐 이건. 청첩장?”

        

       “……생일파티 초대장이요.”

        

       “허어.”

        

       내가 쪽팔림을 무릅쓰고 설명하자, 남다운은 어이없다는 표시인지, 아니면 순수한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대체 파티를 얼마나 크게 하려고 이런 걸 만드냐? 너 이런 거 좋아하는 성격이었어?”

        

       “좋아하는 성격처럼 보여요?”

        

       “아니?”

        

       “그런데 왜 물어봐요?”

        

       “약 올리려고.”

        

       “…….”

        

       나는 오른손을 들어 뒷목을 살살 쓸어내렸다.

        

       내 몸이 아무리 약해도 고혈압이 있지는 않거든?

        

       최근에 살이 찌기 시작한 사라가 투덜거렸다.

        

       야!

       

       

       사람이 화가 나면 뒷목을 만지는 이유는……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하여간 고혈압 같은 것이 없어도 그냥 만지게 되는 거다. 만지게 되는 거니까 만지는 거지,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음,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하여간, 나는 뒷목을 슥슥 문지르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래서, 올 거예요, 말 거예요?”

        

       “오라고 준 거 아냐?”

        

       “예의상 드린 겁니다.”

        

       내가 일부러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남다운은 다시 “허어…….”하는 소리를 냈다.

        

       “뭐, 갈게. 혹시 드레스 코드 같은 것도 있냐?”

        

       아마 분위기를 보면 농담처럼 한 말 같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이 그냥 농담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같아서, 나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따로 정해진 건 없는데…… 기왕이면 좀 차려입고 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농담이지?”

        

       초대장을 받은 뒤 처음으로 남다운이 진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남다운도 어린 시절에는 이쪽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일 뿐이다. 이런 파티에 몇 번 나가본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세한 기억까지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옷도 부모님께서 골라주셨을 거고.

        

       “저희 집안사람들이 좀 많이 올 것 같아서…….”

        

       내가 말을 흐리자, 남다운은 세 번째로 “허어…….”하는 소리를 냈다.

        

       “아, 혹시 불편하면 오지 않아도 돼요.”

        

       남다운은 최나경과 악연이 있었다. 물론 최나경이 올 리가 없으니 직접 마주칠 일은 없긴 하겠지만,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이 최나경 아래에 있는 유진 그룹이었고, 그 유진 그룹을 움직이는 것이 사라의 가문이라고 생각하면 악감정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뭐,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남다운은 잠깐 초대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뭐, 생각은 해 볼게. 그래봐야 며칠 안 남기는 했지만. 고맙다?”

        

       남다운은 초대장을 흔들면서 말했다.

        

       뭐라고 대답해도 애매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

        

       그리고 그 후로, 학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실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고 나서는 세상이 사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그 생각이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전에도 조금씩 주목받고 있었던 나와 사라였지만, 이제는 아주 대놓고 주목받고 있었으니까.

        

       이제 생일이 고작 이틀 남았으니, 아마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일 이야기를 꺼낸 뒤, 그리고 손아름에게 공개적으로 초대장을 건넨 뒤부터 주목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 ‘생일파티’와 관련 있겠지.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눈치가 없지는 않다.

        

       지금 나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애들은 거의 대부분 초대장을 받고 싶어 하는 애들이다.

        

       물론, 나는 그 초대장을 받고 싶은 이유가 그저 잘 꾸며진 파티장에서 호화파티를 즐기고 싶어서 단 하나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첫째로, 내가 초대장을 건넨 시점에서 그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나에게서 ‘완전히 용서받은’ 사람이 된다. 앞으로 내가 무슨 보복을 가할 이유도 없고, 어쩌면 친한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바로 손아름이 딱 그랬다.

        

       처음에는 나를 대놓고 적대하다가, 나중에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내 친구가 된 아이였으니까.

        

       내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이, 소희, 수아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고.

        

       그리고 남다운도 그렇다. 남다운은 원래 그 외모와 운동신경 덕분에 인기가 많은 사람이긴 했지만, 동시에 처음부터 별다른 편견 없이 나를 대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나에게 초대장을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그런 것을 의도하고 준 것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 초대장은 나의 신뢰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이 파티에는 유진 그룹의 중진들이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파티장도 유진 그룹 휘하의 유명한 건물이었다. 주최 측이 쓰여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유진 그룹일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회장인 최나경이 사라진 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큰 파티. 그 주인공은 차기 회장이 유력한 예사라.

        

       척 봐도 그림이 그려지는 광경이다.

        

       나의 최측근까지는 되지 못해도, 그 파티에서 유진 그룹의 중진들에게 잘 보일 수 있다. 잘하면 내가 소개해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

        

       물론 완전히 틀려먹은 생각이지만.

        

       나는 유진 그룹의 중진이라면 딱 한 사람밖에 모르거든. 이 초대장을 만들어서 준 이 아저씨뿐이다.

        

       ……어쩌면, 내 손에 이렇게 많은 초대장을 들려준 것은 나의 인선 능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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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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