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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은인이 당혹스러워 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저 인간이 나를 놀리는 일은 있어도 내가 저 인간을 놀린 적은 없었는데.

       

       상황이 반대가 되니 이토록 즐겁구나. 나는 가만 날 바라보는 노인을 똑같이 바라봐 주었다.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다.

       

       마음속에 묻어두었으며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하던 사람이다.

       

       할 말은 너무도 많았지만 그를 무덤 앞에서만 내뱉어야 했던 분이다.

       

       그런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는 걸 다시금 볼 수 있을 줄이야.

       

       “화령이더냐? 아니. 그럴 리가.”

       “추측하고 계신 건 있었을 텐데요.”

       

       내 신공의 기틀을 닦아준 게 당신이니 아예 모를 린 없다 생각합니다마는.

       

       내가 그리 묻자 노친네가 입을 다물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어느 정도 생각을 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대는 외부인이지 않습니까.”

       “다른 세상의 저라고 해두지요. 증명할 방법도 여럿 있습니다.”

       

       나와 노친네만이 알고 있을 이야기도 몇 가지 존재하고, 무엇보다 백화령을 불러 오면 바로 증명을 해줄 터이니 말이다.

       

       노친네가 눈을 끔뻑이는 것을 보며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슬슬 혈도를 찌른 반동이 올 때인지라.

       

       “쉬고 계십시오.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그리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

       

       [님들 이거 뭐임?]

       

       <하늘에 낀 구름이 갑자기 반으로 갈라지는 영상>

       

       구석진 데서 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갈라짐.

       

       이거 뭐임?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한참 동안 멍 때리면서 하늘 쳐다보고 있었네.

       

       – 저거 뭐야. 몰라. 무서워.

       – 화룡무인 꽤 오래 했지만 저런 거 처음 보는데?

       – 검선급 고수끼리 싸우고 있는 거라면 말 되지 않음?

       – 그거라면 말 되긴 하네.

       

       [방금 올라온 그거 화령 짓 같은데?]

       

       <방금 전 영상>

       <화령이 하늘의 끝에서 하늘 가르는 영상>

       

       비슷하지 않음?

       

       – 오.

       – 뭔 개소리하나 싶어서 왔는데 이왜진?

       – 진짜 비슷한데?

       – 아니 이 인간 또 방송 안 하고 뭔 짓 하고 다니는 거야.

       └ 이 정도면 억지로 악질 양성하는 수준 아님?

       └ 더 빡치는 건 분명 보면 개쩌는 명장면일텐데 마이튜브에도 안 올려준다는 거야.

       

       [화령… 불타야겠지?]

       

       천마랑 싸운 것도 안 보여주고.

       

       이번에 개쩌는 싸움 한 것도 어물쩡 넘겨버릴 거고.

       

       채팅창. 불나야겠지?

       

       – ㄹㅇ 괘씸해서 안 되겠음.

       – 화령은 영상을 내놓아라!

       – 혁명이다!

       – 레볼루숑!

       

       *

       

       어두운 공간에서 몸을 일으킨 혈교주는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방금 전에 자신을 향한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다.

       

       혈교주에게 물리적인 고통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그에게 강시의 몸은 그저 쓰다가 버릴 소모품에 불과하니.

       

       그 몸에 어떠한 것이 닥친다 하여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렇기에 사지가 잘리더라도 웃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하여 그의 정신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빌린 몸이라 할지라도 그의 몸이다.

       

       남들이라면 한 번만 겪더라도 정신이 망가질 법한 일들을 강시의 몸을 통해 수도 없이 겪어온 그가 어찌 정신이 약할 수 있겠는가.

       

       허나 방금 전의 그것은.

       

       도대체.

       

       살기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의 구체화다.

       

       그 마음을 내기에 실어 상대를 압박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태 여러 무인들을 상대해 온 혈교주는 살기에 짓눌려보기도 했고 살기를 직접 사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민가가 살기를 내뿜던 광경을 떠올린 순간 혈교주의 이빨이 저들끼리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 때 혈교주는 보았다.

       

       자신의 육신이 난도질당하는 풍경을.

       

       자신의 육신이 불에 타오르는 풍경을. 무저갱 아래로 떨어지는 풍경을.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짓눌러 버리는 풍경을.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죽음이 그를 향했으니 그는 저승의 판관이 그에게 내린 심판이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찰나였으나 영원과도 같은 죽음의 풍경은 민가의 발이 강시의 얼굴을 부숨으로써 끝이 났다.

       

       ‘기억하라. 내가 그대의 적이라는 것을.’

       

       그는 경고였다.

       

       자신의 주제를 알라는 경고.

       

       혈교주는 이를 악물어 몸의 떨림을 멈춘 후에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내쉰 순간 다시 그의 몸에 떨림이 시작됐다.

       

       이번에 혈교주는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얼굴에서 손을 떼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그의 입이 벌려지며 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양은 분명 진하디 진한 웃음이었다.

       

       아아. 감정다운 감정을 느껴본 게 대체 얼마만이지?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증오도.

       

       두려움도.

       

       수많은 죽음의 아래에서 마모되어 가라앉아버린 감정이 다시금 떠오른 게 도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적인가.

       

       적으로 치부해 주시다니 너무 감사하군요.

       

       그렇다면 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단 소리 아닙니까.

       

       하아. 가벼운 경고도 이 정도였는데 진심으로 그녀가 나를 적대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난 산 아래에 있는 그 적막한 마을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지가 잘린 강시들이 버둥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구나. 곰방대를 입에 물고서 시스템의 기능을 사용해 바루를 불러냈다.

       

       “둘은 어찌하고 있느냐?”

       “죽으려면 말을 하고 죽어야 할 것 아니냐. 둘을 안심시키느라 고생했다.”

       “다시 오겠다고 말해두지 않았느냐.”

       

       어차피 본인이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죽음을 걱정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나.

       

       내가 고갤 갸웃거리자 바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신령인 그대가 할 말인가?”

       “신령인 내가 이 말을 하게 만드는 네가 이상한 거다!”

       

       바루는 그리 소리를 치면서 지팡이로 내 머리를 툭하고 때렸다.

       

       움직임이 어설펐기에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그냥 맞아주었다.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은 자신들이 머무르던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럼 조금 천천히 가도 되겠구나.”

       “할 일이 있느냐?”

       “잡것들을 처리해야지.”

       

       본인의 살기에 당했으니 당분간 혈교주가 움직이진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마는 그렇다 한들 이 산에는 아직 혈교의 손이 닿은 쓰레기들이 남아있지 않나.

       

       그들은 모두 처리하고 이 산에 설치된 혈진도 지워버려야지.

       

       은인께서 머무는 곳인데 그 정도 수고는 하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바루야. 이 곳에 설치된 혈진 말이다. 분석할 수 있겠느냐?”

       “해봐야 알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구나.”

       “그럼 부탁 좀 하마.”

       

       혈교에서 설치한 진법은 무작정 박살을 내려 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도록 수작을 부려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말이다.

       

       내 몸으로만 감당해도 된다면 그냥 묻어버리고 말테지만 이 곳은 은인이 은거하는 산이지 않나.

       

       용꼬리를 단 이 곳의 신령도 바루와 아는 사이처럼 보였으니 이 산에서 우악스러운 짓을 하긴 좀 그렇지.

       

       “오냐. 그런데 말이다. 진을 살펴보는 동안에 네 이야기나 한 번 해보거라.”

       “본인 말이냐?”

       “그래. 약속하지 않았나.”

       

       워낙에 다급하게 움직이느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해두진 않았다마는 말을 하기로 했으니 해야겠지.

       

       “단적으로 말하자면 본인은 천마였다.”

       “허?”

       “이 곳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긴 하다만.”

       

       바루에게 빙의라던가 현대에 관해 모든 걸 이야기해주진 않았다.

       

       그를 말한다 하여도 혼란만 가중될 것임을 알았기에.

       

       다만 본인이 다른 세상에서 백화령의 삶을 살았고 우연한 기회에 이 세상에 당도하게 되었다 설명했을 뿐이었다.

       

       내가 그리 설명을 잘했다 생각하진 않았지만 바루는 어렵잖게 납득을 했다.

       

       “결국에 지금의 천마가 여러 일을 거쳐서 도달한 게 너라는 소리지 않더냐.”

       “그렇지.”

       “그럼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구나.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여러 압도적인 모습이라던가. 처음 보는 것일텐데도 아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나. 천마와 그토록 친할 수 있었던 것이나.”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느냐?”

       “당연하지. 그대와 같이 지내다보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바루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이 투정을 부렸다.

       

       생각해보면 그렇구나. 별 말을 하지 않기에 괜찮나 싶어 태연히 지나간 것들이 한 둘이 아니긴 하지.

       

       “그럼 왜 묻지 않았느냐?”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말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 바루의 머리 위로 손이 올라갔다.

       

       귀가 쫑긋 튀어나와 있는 갈색 머리칼을 마음대로 휘젓자 바루가 분석에 방해가 된다며 성을 냈다.

       

       그러면서도 손길을 떼어내진 않는 것이 실로 바루다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투닥거리던 중에 바루가 나를 밀어냈다.

       

       “비켜 보거라. 내 이것을 한 번 해주해 볼 테니까.”

       

       바루가 지팡이로 땅을 내리 찍자 그녀의 주변으로 산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녀의 도술은 생기를 기반으로 하는 기적이니 아직까지 생명이 남아있는 이 산은 그녀의 구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기운들이 혈진의 주변을 둘러싸더니 혈진의 붉은 기운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혈진의 기운은 처음에 저항을 하는 듯 싶었으나 결국에는 바루의 기운 앞에 패하고 말았다.

       

       결국에 혈진의 색이 하얀 색으로 물든 순간 불길한 기운을 내뿜던 혈진이 자취를 감추고 흩어져 버렸다.

       

       “완벽하게 해석한 건 아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겠지.”

       “놀랍구나.”

       “별 것 아닌 일이다.”

       

       바루는 말로는 겸손을 떨었지만 쫑긋거리는 귀와 꼬리에서 나오는 자부심은 감추지 못했다.

       

       “역시 바루다. 나는 감히 손조차 댈 수 없었거늘.”

       “전문분야가 다른 것이지.”

       “아니다. 이 산의 신령처럼 보이던 그 아이는 혈술에 저항조차 못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그녀가 당황해서 그런 것이다. 실제론 나보다 오랜 삶을 살아온 녀석이니 나보다 더 잘 할 것이 분명하다.”

       “전혀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만.”

       “에이. 그럴 리가.”

       

       잔뜩 띄워주는 말을 계속했더니 지금은 바루의 꼬리가 풍차마냥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바루의 콧대가 높아지는 게 물리적으로 드러났다면 그녀는 분명 콧대로 하늘을 찔렀으리라.

       

       “자아. 괜한 칭찬은 되었고 슬슬 움직이자꾸나. 잡졸들을 처리한다 하지 않았느냐.”

       “그랬지.”

       “내 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마.”

       

       안아달라는 듯 두 팔을 벌린 바루를 들어 어깨 위에 앉히고서 발을 움직였다. 빠르게 끝을 내보자꾸나.

       

       은인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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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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