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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제국력 98년 5월 초.]

     

     현장 체험학습 장소가 렘부르 군터 자작령으로 결정된 날로부터 약 5주 정도가 흘렀다.

     약 40일 동안 나는 공식적으로는 특별히 렘버리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윈체스터 대공이나 나리아에게도 이야기를 했지만, 비리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진행되기 마련.

     하지만 그냥 놔두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사람을 렘부르 군터 자작령으로 보냈다.

     “오랜만이군.”

     “도련님을 뵙습니다.”

     

     아카데미 건물이 아닌, 렘부르 군터 자작령 인근의 어느 허름한 숲.

     머리를 짧게 자른 금발의 청년이 나를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행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편하게 자세를 취하라.”

     “어찌 지브롤터의 영광에 함부로 하겠나이까.”

     “제국의 미래가 아니고?”

     “어느 쪽이든 지브롤터는 빛날 거 아닙니까? 후후.”

     “늘었군.”

     나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고생이 많네. 카를로스 경.”

     “별말씀을.”

     카를로스.

     5년 전 멘테 경과의 대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기사.

     아버지가 새롭게 구축한 [지브롤터 기사단]의 단장.

     아쉽게도 마스터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브롤터의 방식이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

     

     “지난번에 뵈었을 때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군요.”

     “그러는 경이야말로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될 것 같은데.”

     “하하. 감사합니다.”

     상급 기사들은 누구나 벽을 느끼게 된다.

     그 벽을 허물든 넘어서든 땅을 파고 넘어가든 지나가게 될 경우, 마스터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조급하지는 않나?”

     “조급하긴요. 멘테 경은 십수 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제 막 1년 정도 되었을 뿐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다행이군.”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카를로스 경은 장난스럽게 품에서 검은색 모자를 꺼냈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지브롤터의 정신 아니겠습니까?”

     “그래. 뭐든지 될 때까지 하면 안 될 게 없지.”

     정신론이라고 하기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있다.

     지브롤터는 가능성이 없으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다.

     바보 같을 정도로 맨땅에 머리를 박아가면서 시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얼마나 시간이 걸려도 결국 성과가 나올 걸 알고 있기에 시도하는 것.

     “체험학습 도중에 여러 마스터를 상대할 기회가 있을 것이야.”

     “하, 하하하….”

     “크게 다치지는 않을 것이지만, 우리 쪽 마스터가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몸조심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를로스가 허리에 찬 검을 가볍게 두드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왜. 마스터의 검을 받아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변경백 각하의 검을 받아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요?”

     “아버지가 대련도 해주시나?”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돌아가면서 봐주십니다.”

     “그러실 줄은 몰랐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백작께서는 감히 자신의 검을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보여주시지도 않으셨는데.”

     기사단의 전력 상승을 위해 직접 검으로 대련하며 실력을 봐준다?

     아버지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그건 그냥 시간 낭비다.

     그럴 시간에 아버지가 혼자서 스스로 심상 수련을 하는 것이 아버지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

     ‘크림슨은 최고점 대비 약해진다고 하더라도, 지브롤터는 강해지고 있는 건가.’

     혼자가 아닌, 함께.

     어딘가 가슴이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에 괜히 웃음이 흘러나왔다.

     “도련님?”

     “좋은 경험일 거야.”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도련님이랑 대련하고 난 뒤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혹시 만나게 되면 다음번에도 한 번 대련하자고 그러셨습니다.”

     “…….”

     좋은 경험이겠지만, 나에게는 좋은 경험은 아니다.

     “갑자기 기분이 썩 안 좋아졌군.”

     아버지에게 시달릴 걸 생각하니 갑자기 불쾌해졌다.

     불쾌해진 만큼, 이 불쾌감을 다른 불쾌감으로 잊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런 김에 기분 안 좋은 이야기나 하도록 하지.”

     “…….”

     “본론. 현재, [지브롤터 기사단]의 훈련 지원 상황은?”

     “최상입니다.”

     지브롤터의 기사인 카를로스 경이 왜 렘부르 군터에 장기간 머무르고 있었는가.

     “저를 비롯한 4명의 기사는 아카데미에서 파견 나온 기사들에게 ‘지브롤터식 훈련’을 철저히 주입했고, 5일 동안 이루어지는 학생 대상 훈련 과정에 대하여 철두철미한 운영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흑장미 기사단과는 트러블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도련님의 말씀대로 비룡 훈련에 대해서는 저희가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미니, 그들도 순순히 저희와 손을 잡았습니다. 무엇보다….”

     카를로스가 검을 한 번 튕기고, 손으로 술잔을 꺾는 시늉을 하고, 손을 위아래로 튕기는 행동을 하며 씩 웃었다.

     “아무래도 남자들만 있다보니.”

     “캐롤라인을 썼나?”

     “지브롤터는 그런 거 없이도 우월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는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적당히 조절하게. 모르가니아는 아군이야. 괜히 아군 기사들을 약쟁이로는 만들지 말라고.”

     “존명.”

     기사단 훈련은 지브롤터식 교육만 있는 게 아니다.

     모르가니아에서도 일부 기사들이 파견되었고, 그 대단한 황금여명 기사단에서도 기사가 나왔다.

     왕실. 대공가. 백작가.

     노스트럼. 모르가니아. 지브롤터.

     왕국의 3대 기사단이 제각기 학생 훈련이라는 명목으로서, 렘부르 군터 자작령에서 자존심 대결에 들어간 상황.

     다행히 기사들 사이의 대결은 지브롤터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렘부르 군터의 상황은?”

     “최악, 입니다.”

     

     카를로스 경이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학생용 텐트는 나흘 정도 쓰면 망가질 것 같은 재질이고, 비라도 오면 사흘째에는 자체적으로 움막을 지어야 할 판입니다.”

     “완벽하군.”

     “음식 준비는 그냥 평범하기는 하지만, 뇌물을 찌른 상단이라거나 평소 정치적으로 연대를 맺은 귀족 가문 위주로 주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최고일 정도로 최악이야.”

     “무엇보다 저희로부터 훈련을 받은 렘부르 군터 자작령의 병사들 있지 않습니까.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교로 가르칠 병사들.”

     “왜. 뭐 심각한 문제라도 생겼나?”

     “공문에는 그들을 향해 훈련 및 강습에 대한 특별수당을 편성해 뒀는데,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

     역시, 발자크 렘부르 군터.

     “혹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왕국 최강 기사단의 훈련을 간접경험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도련님.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습니까?”

     “아니. 그냥 예상일 뿐이야. 그런 말도 했겠지. ‘너희는 이미 병사 봉급을 받지 않느냐?’,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의 일환인데 어딜 구질구질하게 돈 이야기를 하느냐?’, ‘병사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충성이며 애국이다.’라고.”

     “와, 도련님. 어디 도청 장치 달아둔 겁니까? 아니면 몰래 하늘로 다녀가기라도 하셨습니까?”

     “뻔하지.”

     매국노 그레이 옆에서 파티 때마다 하는 소리가 그런 것들이었는데.

     발자크 자작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인간들이 하는 말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얌전히 지켜보도록 하되, 적당히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만 풍기게.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게 오히려 더 경계를 사게 되니까.”

     “의심하는 모습은 보이되, 아직 걸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라는 말씀이시죠? 흐흐.”

     “정확해.”

     나는 카를로스를 향해 손뼉을 쳤다.

     “혹시 바라는 거라도 있나? 이 정도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지원해 주겠네.”

     “그렇다면.”

     카를로스 경이 볼을 긁적거렸다.

     “…혹시 저희, 드라군은 양성하실 의향이….”

     “비룡 한 번 타보니까 재밌지?”

     “크흠. 그게.”

     “검토는 해보겠네. 하지만 조만간, 비룡 말고 다른 걸 더 타고 싶어질 거야.”

     “다른 거…?”

     “그렇다네.”

     이미 어느정도 상용화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1년 뒤면, 기사들이 말이 아니라 바이크를 타고 창질을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으니.”

     아직 마도 바이크를 이동용으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군용’으로 쓰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 * *

     미래.

     그러니까 내가 ‘숙청’당하고 난 뒤, 협곡에서 포격을 맞고 망국의 공주와 산화하기 전까지.

     혁명군, 콩키스타도르에서 짧게나마 활동했던 적이 있다.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분노는 남아있었던 모양인지,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하기는 했지만 마지막에는 망국의 공주가 하는 걸 조금은 돕기는 했다.

     물론, 한 줌이었다.

     

     내가 가세한다고 해서 대륙의 판도는 변하지 않았고, 그저 혁명군의 수명을 좀 더 늘려줬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

     혁명군은 기동 타격이 특기였다.

     약탈을 주로 하던 자들이었고, 제국군의 눈을 피하는 건 기본이고 제국군의 추격을 너무나도 쉽게 따돌리고는 했다.

     그게 가능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신체 스펙이 뛰어나서?

     아니면 노스트럼의 멸망에 갑자기 혁명군에 드래곤이 나타나서 하늘로 솟았을까?

     아니면 엄청난 마법사가 있어서 사고를 칠 때마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공간이동을 하고 그랬을까?

     정답은 바로 이것에 있다.

     부르릉ㅡㅡ

     “…배기음, 합격.”

     마도 엔진이 떨린다.

     엔진에 저장된 마석으로부터 마나를 뽑아내며, 실린더에 음각된 마법진이 바퀴를 빠르게 굴러가게 만든다.

     

     동시에 뒤로 달린 배기구에서는 단순히 내부의 열기만 뿜어내는 게 아니라 마력까지 방출하여 ‘추진체’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만 하면 말이랑 하등 다를 게 없지.’

     말은 건초를 먹는 생물이지만.

     바이크는 마석을 먹는 무생물이다.

     혁명군, 콩키스타도르가 주력으로 사용했던 물건은 바로 바이크였다.

     그것도 약탈하기는 했지만.

     ‘마석 연료가 떨어져도 여차하면 본인의 마나로 잠시나마 대체할 수 있고, 고장이 나도 부품만 교체하면 되는 거니까 큰 문제도 없었지.’

     노스트럼의 기사들이 말이나 비룡이 아닌 강철로 된 군마를 탄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에 중독되거나 적의 화살에 맞았을 때 치료가 필요한 생물인 말과 달리, 바이크는 관리가 무척이나 편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휘두르며 싸운다. 기마나 기승이나, 다를 바가 없기는 해.’

     처음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렇지, 익숙해지면 바이크를 타고 달리면서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는 것.

     심지어 바이크에다가 뭔가 이상한 장치를 달기 시작하면, 그건 더 이상 바이크가 아니라 별도의 무언가라고 불러야 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바야흐로, 바이크가 드래곤을 넘보게 될 것 같은 시대.

     앞으로 10년은 더 지나야 나올 물건이 지금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이게 뭡니까.”

     “몰라, 나도.”

     물건을 가져온 수수께끼의 헬멧녀가 어깨를 으쓱인다.

     

     “장모님.”

     “장모라니. 나는 그냥 배달부란다.”

     “제국의 황후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카데미에 이거 몰고 와도 되는 겁니까? 아니, 애초에 어디로 오신 건데요?”

     “그냥 길 따라왔는데? 그리고 제국의 황후라니. 그런 사람 나는 몰라.”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나는 바이크의 옆에 달린 날개와도 같은 물건을 가볍게 두드렸다.

     “무슨 전차가 옆에 칼날을 단 것도 아니고, 바이크 옆에다가 좌우로 뻗은 날개를 단 건 도대체 누구입니까?”

     “누구겠어.”

     헬멧을 쓴 정체불명(?)의 여성은 빈정거리듯 말하며, 흘러내린 하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가 그거 타고 밤을 달려와서 황궁에 인사하러 오기를 오매불망 바라는 사람이겠지.”

     “…….”

     “마도자동선은 너무 커서 걸릴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마도 바이크를 새롭게 연구해 봤다고 하더라.”

     “…이런 거 만들 예산 있으면 열차나 몇 대 더 만들 것이지.”

     “내 말이.”

     뭐, 별 건 아니고.

     “당사자 전언이야. 보자, 편지 그대로 읽는다?”

     갑자기.

     “생일 선물 준비가 늦었다. 감사는 직접 듣는 걸로 하지.”

     “반품은 안 됩니까?”

     “반품은 정중히 사양하지.”

     “그건 장모님 말씀이신가요?”

     “아니. 방금 그 말까지 편지에 적힌 그대로 읽은 건데?”

     “……하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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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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