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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굳어버린 여성회 사이.

   크라슈만이 물끄러미 로나 임블라이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도구 제작사, 로나 임블라이즈.

   지금이야 미치광이로 불리지만 후에 그녀가 만들어낸 마도구들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로나 임블라이즈를 창공의 세대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창공의 세대는 마도구까지 지니며 분명 전에 없는 전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런 그녀가 폭탄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라헬른 아카데미에는 현재 세계 침식자와 계약을 맺은 이가 있다.」

    

   원래라면 뚱딴지 같은 소리로 취급될만한 일이지만.

   얼마 전 최근에 라헬른 아카데미를 소란스럽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마법학 부교수 제니칼렌이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고 난 뒤.

   귀족 학생 세 명을 납치한 사건.

    

   사건 자체는 귀족 학생들이 저지른 비열한 짓이 낱낱이 밝혀지며 펠레이의 위상이 크게 올라간 사건이었으나.

   제니칼렌이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었다는 것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사건이 불과 얼마 전에 있었다.

   그런 마당에 지금 이 발언을 로나가 내뱉었으니 당연히 전원 굳을 수밖에 없었다.

    

   “……진심인가요. 로나 임블라이즈 씨.”

    

   조용해졌던 회장 안.

   한 명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푸른색 머리카락 아래 투명한 눈동자를 지닌 그녀의 이름은 미레이 베아키스.

   프리만 왕국의 역대 최소 추기경이었다.

    

   그런 그녀와 마주한 로나는 대뜸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의아함을 보인 순간 그녀는 자기 가슴골에 자리한 목걸이를 보여 주었다.

   

   

    

   목걸이의 형태는 자그마한 목걸이 형태의 검 브로치이었다.

   그 목걸이 검 브로치를 손가락으로 꺼내든 로나는 입가를 쭈욱 찢어 웃었다.

    

   “최근에 아카데미에 그런 사건이 있었잖아? 그래서 하나 만들어 봤어.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는 세계 침식자 감지용 마도구.”

   “정말인가요?”

    

   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로나가 그런 걸 만들어 냈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로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상을 돌아선 배신자라 할 수 있는 세계 침식자의 종을 전부 알아낼 수 있다.

   희대의 발명품이다.

    

   크라슈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마학과 수석 타리아 발레스가 있었다.

    

   그녀는 크림슨가든의 종이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가 마도구를 쓰기라도 했다가는 즉시 들통 날 수 있었다.

    

   “호오, 그럼 그걸로 세계 침식자의 종을 발견한 건가요?”

    

   1기생 문학과 차석 에이링 오르노아까지 덩달아 마도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몰린 시선 속에서 로나는 마도구를 손으로 가볍게 굴리다가 이내 놓았다.

    

   그러자 마도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다시 안착했다.

    

   “그건 들킨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은근한 웃음을 지은 그녀가 턱을 괸 채 회장을 관망했다.

    

   들킨 본인이라는 말과 함께 나온 저 제스쳐.

   그건 이 회장 안에 세계 침식자의 종이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여성회 일원들이 슬쩍슬쩍 주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모두들 로나의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의심이 꽃피울 때쯤.

    

   “그럼 어서 빨리 마도구를 사용해서 세계 침식자의 종을 밝혀내 주셨으면 하는데요.”

    

   이번에도 추기경 미레이가 투명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녀의 재촉에 로나는 턱을 괸 자세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재미없는걸. 나는 내 마도구의 우월성을 알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 생각하거든.”

    

   그녀가 괜히 미치광이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세계 침식자의 종을 바로 밝혀내지 않겠다는 선언에 회장 안의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인가 서로를 향한 의심보다는 당장 정체를 밝혀내지 않는 로나에게 향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로나는 그런 비난의 눈초리 속에서도 여유로웠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곱창 나버린 회장 안.

   크라슈만이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상황이 골 때리게 흘러가는데.’

    

   그리고 크라슈는 이 골 때리는 상황 속.

   몇 명의 의심 되는 이를 추론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의심하지 않았을 테지만.

   회귀자인 크라슈이기에 의심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말이다.

    

   하지만 확신은 없다.

   크림슨가든의 종들은 비교적 쉽게 티가 난다.

   오히려 크림슨가든은 일부러 종들을 더 티 나게 만든다.

    

   그건 그녀 나름의 주위 세계 침식자들에게 하는 경고였다.

   이 아이는 자신의 종이니 건드리는 순간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라고 말이다.

    

   그러나 흑마녀는 라헬른 아카데미에 잠입시키려고 일부러 종을 만들었다.

   당연히 크라슈라고 할지라도 쉽게 종을 구분할 수 있지 않았다.

    

   “세계 침식자의 종이라.”

    

   그러는 순간 쭉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시그린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회장 안이 순식간에 시그린 쪽으로 시선이 몰렸다.

    

   이 회장의 주역은 이러나저러나 결국 시그린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나 양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부디 장난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시그린은 눈웃음을 그리며 로나를 바라보았다.

    

   “자칫 했다간 엄한 사람을 몰고 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녀의 휘어진 눈동자를 본 크라슈는 역겨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로나의 저 마도구의 가치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마음에 차지 않는 이가 있다면 언제든 세계 침식자의 종으로 몰아갈 수 있는 마녀사냥 도구.

   로나의 마도구는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오늘의 다과는 여기까지만 즐길까요?”

    

   분위기가 어두워진 만큼 시그린은 여성회를 마치자는 의사를 보였다.

   이번 여성회에서 줄곧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시그린이다.

    

   샬롯이 참가한 만큼 정보를 줄 수 있는 건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 시그린의 반응에 다른 여성회 일원들도 동의 하는 눈치였다.

    

   샬롯과 시그린이 알게 모르게 기 싸움하고 있었던 만큼 원래도 무거웠던 분위기다.

   거기에 로나가 폭탄 발언까지 하며 더 숨 막히게 됐으니 모두들 해산할 분위기를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이번에도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다들 인사를 나누며 하나둘 회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나눈 이야기들은 라헬른 아카데미에 금방 쫘악 퍼지겠지.

    

   주로 퍼지는 것은 세계 침식자의 종과 관련된 로나의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끝났네.”

    

   시종일관 여성회에 관심 없는 듯이 자기 손톱을 매만지던 샬롯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샬롯을 따라 크라슈도 함께 일어난 순간 타리아가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크라슈의 손이 뻗어지며 타리아의 옷깃을 툭 잡았다.

   타리아가 크라슈를 돌아보자 크라슈는 말없이 눈으로 눈짓했다.

    

   대화하자는 의사였다.

    

   타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금 밖으로 나갔다.

    

   크라슈가 샬롯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 살짝 저물기 시작한 해가 보였다.

   그만큼 꽤나 오랜 시간을 여성회에서 보낸 것이다.

    

   여성의 수다는 한번 시작 되면 끝이 없다던데 정말 딱 말 그대로였다.

    

   “어땠니?”

    

   그러는 순간 샬롯이 크라슈를 돌아보며 물음을 던져왔다.

    

   “유익했습니다.”

    

   이번 여성회에 참가 못 했다면 뒤늦게 로나의 소식을 들었겠지.

   확실히 유익한 시간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그럼 됐어.”

    

   샬롯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무엇을 위해서 샬롯이 이번 여성회에 데려온 것일까.

    

   크라슈는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님, 한 가지만 부탁을 더 해도 됩니까.”

    

   본래라면 스스로 해결해 보려 했던 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왜인지 샬롯에게 부탁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걸어가던 샬롯이 우뚝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꼬리는 늘 그렇듯 살짝 치켜 올라간 채 자신만의 웃음을 그리고 있었다.

    

   “말해 봐.”

    

   그녀는 선뜻 말해왔다.

   예전이었다면 딱딱하다고 느낄 그 말이 지금 와서 보니 다른 의미로 들려왔다.

    

   “……아서 그라말테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 녀석을 사자단에 넣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짜 아서 그라말테.

   그를 옆에서 제대로 알기 위해 크라슈는 지금 자신이 속한 사자단에 끌어들이는 게 목표였다.

    

   저쪽도 자신과 샬롯을 가까이서 볼 기회이니 선뜻 미끼를 물 터.

    

   “그래, 어려운 것도 아니네.”

    

   그리고 샬롯은 무척이나 손쉽게 크라슈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

   거기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멍하니 샬롯을 바라보았다.

   살아오면서 크라슈는 샬롯에게 많은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야, 샬롯과 크라슈가 살아온 세계는 너무나 달랐으니까.

   어린 시절에서도 가깝게 지낸 적이 없었고, 어른이 되었을 때는 샬롯은 이미 누구보다 빛나는 별이었다.

    

   자신은 그러한 별에 져버린 그림자일 뿐.

    

   환한 빛 앞에서는 그림자조차 존재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회귀하고 난 뒤.

   샬롯과 여러 일에 엮이며 크라슈는 최근 그녀에게 부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 세계에서 샬롯은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인지 이제야 알았다.

    

   샬롯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부탁하면 들어준다.

   그것이 어떤 부탁이라고 할지라도 대가 없이 말이다.

    

   ‘그랬구나.’

    

   크라슈는 그제야 자기 색안경 하나가 또 한 번 깨져 나감을 느꼈다.

    

   자신이 그동안 샬롯은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회귀했음에도 벗겨지지 않았던 그 색안경이 얼마나 지독하리만치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는지도.

    

   ‘나도.’

    

   크라슈는 태어날 때부터 샬롯과 비교당한 채 살았다.

   그야, 샬롯은 태어났던 그날부터 이미 천재였으니까.

    

   그래서일까.

   그 당시에 자신은 그저 그녀를 세계 최고의 천재이자 검성, 샬롯 발하임으로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

    

   자기 누이가 아닌 샬롯 발하임이라는 검성 말이다.

    

   그러니 그녀가 보여 주는 모든 면모를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판단했었다.

   가족과 핏줄을 별개로 생각하고, 판단해왔다.

    

   그야,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반푼이임을 인정해도 마음속 깊은 내면이 샬롯을 너무나 부러워했고, 시기했었으니까.

    

   자랑스러움을 가지기에는 샬롯은 눈이 멀어 버릴 만큼 빛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자신의 누나인 샬롯 발하임과 검성인 샬롯 발하임을 별개의 사람으로 본 것이 말이다.

    

   그러나 오늘 지금.

   이제야 크라슈는 샬롯이 지금껏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샬롯은 늘 자신을 친동생으로서 여겼다.

   그것이 설령 회귀 전에 샬롯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에게 크라슈는 친동생이었다.

    

   그것을 밀어낸 것은 늘 크라슈 본인이었다.

    

   ‘벨로킨을 욕할 처지가 아니었어.’

    

   유일하게 가족으로서 남아주었던 사람을 자신이 줄곧 내치고 있었다.

    

   어째선가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샬롯을 누나로서 보지 못한 자신이 역겨웠고, 샬롯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이것을 회귀한 후에야 알았다는 사실이 한심했다.

   회귀 전 자기 누이를 크라슈는 단 한 번도 친누나로서 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검존과의 필사적인 전투 후.

   기어코 검존을 꺾고, 결국 기력이 다해 죽음을 맞이하던 샬롯.

    

   창공의 세대조차 검존을 상대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후퇴하던 그때.

   샬롯은 크라슈의 앞에서 발하임 가문의 망토를 휘날리며 말했다.

    

   「크라슈, 잘 봐두렴.」

    

   그녀의 검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 당당히 빛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네 누나 샬롯 발하임이란다.」

    

   그녀는 늘 그렇듯 자신만의 특허인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그녀에게 해줬어야 했던 말들이 여럿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던 그 말들이 말이다.

    

   “하.”

    

   그리고 이제는 그 말들이 영원히 그녀에게 닿을 수 없음을 안다.

    

    

   그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뒤늦은 후회란 참으로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이제는 후회했던 그날의 일을 더 이상 메꿀 수 없게 되니까.

    

   크라슈의 눈에 다시금 샬롯이 비췄다.

    

   자신과 똑같은 검푸른 색의 머리카락.

   발하임의 상징과도 같은 그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저무는 태양 사이로 크라슈를 바라보는 샬롯의 눈동자에는 예전에는 크라슈가 보지 못했던 애정이 묻어 나와 있었다.

    

   늘 차갑다고만 생각했던 그 눈동자를 보며 크라슈는 미소 지었다.

    

   “다음에는 제가 데이트 신청 한 번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샬롯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늘 그렇듯 크라슈를 친동생으로 생각했던 샬롯은 유유히 몸을 돌렸다.

    

   “그러렴. 기대하고 있을게.”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아까보다도 좀 더 가벼워져 있었다.

   그것은 기분 좋을 때 샬롯이 종종 하곤 했던 발걸음이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크라슈의 시선이 하늘에 닿았다.

    

   저무는 태양이 있으면 새로 뜨는 태양도 있는 법이겠지.

    

   사라진 세계만큼 새로운 세계가 오기를.

   크라슈는 옛 세계를 되새기며 오늘도 새로운 세계를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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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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