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1

       “피해!”

       ​

       돌진 패턴이었다. 버멜은 회랑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비가 하도 쏟아진 탓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

       쉭쉭! 토터스가 콧김을 내뿜었다. 녀석이 곧 땅을 지르밟으며 직진했다. 이제 하늘에선 비가 아니라 물폭탄이 내리고 있었다.

       ​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

       버멜은 토터스에게 달라붙었다. 녀석은 중앙 분수대를 지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버멜이 새 스태프를 소환해 분수대에 박힌 핵을 내리쳤다.

       ​

       콰앙!

       ​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정신 조작 마법이 해제됩니다.]

       ​

       시스템창이 혼란의 종식을 고했다. 이걸로 후폭풍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

       “크으으으아악─!!”

       ​

       토터스가 날뛰며 진공파를 흩뿌렸다. 버멜의 몸이 땅을 구르다 공중에 뜨기를 반복했다. 토터스를 붙잡은 팔이 뜯겨 나갈 것만 같았다.

       ​

       사방을 헤집어놓는 토터스. 비명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자포자기한 마도사들.

       ​

       헤를라인이 보낸 골렘은 짧은 돌진 몇 번에 으스러졌다. 잦은 이동에 로켓으로 조준하기도 쉽지 않았다. 프레이는 이제 공격은커녕 토터스를 회피하기에도 바빴다.

       ​

       “흐앗!”

       ​

       에테르는 프레이를 들고 뛰었다. 프레이의 모자가 다시 벗겨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

       지금은 수인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이 친구를 살리는 게 중요했다.

       ​

       ‘요르문간드가 지랄하면 골치 아파져.’

       ​

       에테르는 토터스의 공격을 빗겨 피했다. 순간, 그녀의 눈과 토터스의 녹아내린 눈알이 마주했다.

       ​

       토터스는 이를 그르렁거렸다. 말은 못 하지만, 어쨌거나 지성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가 에테르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

       촤아악! 토터스 입에서 탁한 구정물이 쏟아져 나온다.

       ​

       저 또한 ‘증기의 비’와 성격을 공유하는 물. 일반인이 맞으면 위험하다. 그러나 에테르는 가소롭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

       “시건방지구나.”

       ​

       제 상관을 못 알아보고 물대포를 쏘다니.

       ​

       에테르는 프레이가 쓰던 로켓을 빼들었다. 어쨌거나 강자성체로 이루어진 물질. 조금 무겁지만, 투척 재료로 쓰기엔 더없이 좋으리라.

       ​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 테슬라(Tesla)]

       [상급 전계마도 ─ 레일건(Railgun)]

       ​

       에테르는 지구 자기장의 수조 배에 달하는 자력을 걸었다. 주변의 물 분자가 순간적으로 해리된다.

       ​

       쐐애애액! 로렛 발사기가 그대로 물대포를 뚫고 지나간다. 그 주위로 나선 궤적이 그려진다.

       ​

       그 궤적은 일종의 잔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추가타를 먹일 수 있었다. 에테르와 프레이를 향해 직진하던 물대포는 금박에 맞고 튕겨 나가는 알파 입자처럼 뒤쪽으로 산란했다.

       ​

       그래도 그중 일부는 맞을 수밖에 없었다. 에테르는 몸을 가려서 프레이를 보호했다. 몇 방울이 에테르의 손과 얼굴에 맞았다.

       ​

       “야, 괜찮아?”

       “…….”

       “혹시 물 맞았어? 고개 좀 돌려봐!”

       “…아니.”

       ​

       에테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프레이도 그녀를 더 걱정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

       “크흑, 커헉….”

       ​

       버멜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

       아까부터 토터스에게 매달려 다니느라 온몸이 넝마짝이 되어 있었다. 무릎은 다 까지고, 머리는 헤졌다.

       ​

       온몸이 멍울투성이였다. 성하지 않은 곳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

       키긱! 기기긱!

       ​

       “크윽…….”

       ​

       에테르와 프레이가 공격을 빗겨 피하는 동안에도 버멜은 몇 번이나 땅을 굴러야 했다.

       ​

       그렇게 의식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던 와중.

       ​

       삐비빅!

       ​

       [─ SYSTEM : 방철(防鐵)의 비약 인챈트 시간이 종료에 임박했습니다.]

       ​

       그런 메시지가 떴다.

       ​

       “…제기랄.”

       ​

       벌써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곧 증기의 비에서 무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수가 되지 않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

       “으으윽, 아아악!”

       ​

       버멜은 흐릿해지려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고는, 그가 써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을 시도했다.

       ​

       까아앙!

       ​

       끼긱, 끼긱!

       ​

       스태프로 연약한 부분을 전부 긁어낸다. 아니, 도려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알맞으리라.

       ​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겉껍질을 작살낸다. 나무에 난 도끼자국처럼 토터스의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이미 한번 뜯어놓은 곳의 상처를 벌리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버멜이 악을 쓰며 토터스의 배를 저며냈다.

       ​

       제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지닌 토터스라도 어쩌지 못하고 몸을 까뒤집었다. 녀석의 배가 사선으로 노출된다. 시커먼 토터스의 뱃속 사이에는 교미하는 가터뱀처럼 이리저리 꼬인 전선들이 얽혀있었다.

       ​

       그러한 전선들 사이로 보이는 이물질이 하나.

       ​

       ‘저건…….’

       ​

       에테르가 미간을 모았다. 자신이 만든 EMP 생성기가 저기 있었다.

       ​

       ‘그거였군.’

       ​

       동향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에테르는 버멜이 무얼 하라는 것인지, 그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챘다.

       ​

       인격이 두 개로 나뉘어 사고가 혼곤한 와중. 에테르는 마력초를 하나 더 물고 마력을 집중시켰다.

       ​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 테슬라(Tesla)]

       ​

       다시 한번 같은 마법을 사용한다.

       ​

       여기가 기로다. 몸의 주도권을 가진 채로 버멜과 함께 해피엔딩을 보거나, 아니면 일을 그르쳐서 추방당하거나.

       ​

       에테르는 속으로 되뇌었다.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

       하나뿐인 가족을 보기 위해서. 쓰다 만 논문을 PRL에 등재하기 위해서. 생각해 보니 APS 학회 가는 것도 약속을 잡아 놨었는데, 이런 썅.

       ​

       돌아가도 할 게 산더미였다. 그런데 왜 돌아가야 하지? 그야 그곳이 고향이니까. 여기가 내 고향인데?

       ​

       ‘빌어먹을.’

       ​

       자기장을 전개했다. 츠츳! 펄스 생성기의 솔레노이드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

       1 암페어, 1백 암페어, 1억 암페어…. 급작스러운 전류 변화에 펄스가 일렁이며 뿜어져 나온다.

       ​

       펄스에는 색도, 맛도, 향도, 그 어떤 형태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무형지독이 여기 있었다.

       ​

       “가아아아악─!!”

       ​

       토터스는 증기를 토해내며 아우성쳤다. 눈에선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은 완전히 녹아 뼈대만 남았고, 배때기에선 액상 니코틴처럼 생긴 점액이 줄줄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

       쿠웅! 버멜의 세계가 뒤집혔다. 하늘이 땅이 되었고, 땅은 하늘이 되었다.

       ​

       토터스가 땅을 박찼다. 이전과는 다른 거센 발길질. 대부분의 생명체가 그러하다. 죽기 직전에 가장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법이었으니. 이는 기계인 반타 토터스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 SYSTEM : 곧 인챈트 아이템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SYSTEM : 카운트타운을 시작합니다.]

       ​

       [10초.]

       ​

       버멜은 입술을 짓씹었다. 머리가 웅웅 울렸다. 코끝에서 찡한 느낌이 들었다.

       ​

       [9초.]

       ​

       혓바늘이 돋았다. 그럴수록 혀를 꽉 씹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다.

       ​

       [8초.]

       ​

       이마에서 끈덕진 느낌까지 들었다. 철푸덕! 버멜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머리끝을 만졌다. 이산화탄소를 잔뜩 머금은 피가 뺨을 타고 흐른다.

       ​

       [7초. 6초. 5초…….]

       ​

       “으윽….”

       ​

       신음을 토해냈다. 걸쭉한 핏물과 함께 3초 만에 사념을 떨쳐낸다.

       ​

       [4초.]

       ​

       버멜은 상태창을 켜며 내달렸다. 토터스의 체력바가 표시된다. 좋아. 녀석이 죽어가고 있다.

       ​

       [3초.]

       

       달린다. 달린다. 회랑까지 달려나간다.

       ​

       [2초.]

       ​

       그때였다.

       ​

       “푸우우.”

       ​

       고래가 숨구멍을 여는 듯한 소리. 불길한 기운이 등줄기를 툭툭 건드렸다.

       ​

       버멜은 미친 듯이 달리다 말고,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

       ‘이 소리는…….’

       ​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것은 일종의 미래 예지였다.

       ​

       ‘죽는다.’

       ​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

       ‘하필이면 마지막에 이렇게 되다니…. 억까도 정도가 있지……!’

       ​

       뒤를 돌아 막으려 해도 무리다. 뒤쪽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마력은 다 떨어졌다. 어찌어찌 막아내더라도,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마수가 되어 죽거나, 물대포에 맞아 죽거나였다.

       ​

       [1초.]

       ​

       ‘젠장, 정령만 있었어도……!’

       ​

       카운트다운이 다 되어간다. 버멜의 표정이 급박해졌다.

       ​

       회랑까진 거의 다 왔다. 버멜이 최대한도로 손을 내뻗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대포에 맞고 죽기에는 충분했다.

       ​

       [야, 저 애 어떻게 해!]

       [인간들 반응 안 해?]

       [이봐요, 주인님. 당신이라도 뭐 좀 해 보세요!]

       ​

       정령들이 아우성쳤다. 그러나 다 쓰러져 가던 토터스를 넋 놓고 바라보던 군중은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

       마법을 쏘는 것에도 시전 시간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빨라야 1초에서 2초가 한계. 그에 비해, 곧 죽을 것처럼 삐걱거리던 토터스가 물대포를 장전하고 발사까지 하는 데 걸린 시간은 0.5초 남짓이었다.

       ​

       “갑자기 뭔데…!”

       ​

       쿠쿠쿵!

       ​

       그나마 프레이가 최대한 빨리 반응하여 회랑 전체에 토벽을 끌어올렸다.

       ​

       콰아아아! 결궤된 입에서 검은 폭포가 쏟아진다.

       ​

       버멜과 토터스의 거리는 50미터 남짓. 버멜은 회랑에 손끝을 걸쳤다. 그러나 때는 살짝 늦은 뒤였다.

       ​

       [0초.]

       [제한 시간이 만료되었습니다.]

       [방철(防鐵)의 비약의 인챈트 효과가 제거됩니다.]

       ​

       “크윽…!”

       ​

       발끝에서 뜨거운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피부가 철처럼 변하고 있다.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

       ‘여기서 끝인 건가….’

       ​

       갑자기 지난날들이 후회됐다. 만약 그때, 더 공격적으로 움직였더라면…….

       ​

       타악!

       ​

       보드라운 손이 버멜의 팔을 붙잡았다.

       ​

       “…어?”

       ​

       버멜의 몸이 땅에 떨어지듯 끌어당겨졌다. 그가 어어, 하고 허망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 사이, 버멜의 손을 잡아당겼던 소녀가 그 반동으로 인해 앞으로 튀어나갔다. 버멜은 안전지대의 중심에 해당하는 회랑 중앙까지 데굴데굴 굴렀다.

       ​

       반대로.

       ​

       소녀의 신형이 내쏜 화살처럼 사라졌다. 적어도 40미터는 단번에 날아간다. 0.1초? 그보다 짧은 시간이다.

       ​

       찰나의 순간. 소녀는 캘리퍼스를 땅에 뿌리박았다. 폭우에 머리와 어깨가 전부 젖었다.

       ​

       ‘본관이 왜, 이런 짓을.’

       ​

       이유는 없다. 그냥,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나갔다.

       ​

       그리고.

       ​

       쿠우우우─!!

       ​

       에테르는 자신도 모르게 날아오는 물대포를 맞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