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돌진 패턴이었다. 버멜은 회랑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비가 하도 쏟아진 탓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쉭쉭! 토터스가 콧김을 내뿜었다. 녀석이 곧 땅을 지르밟으며 직진했다. 이제 하늘에선 비가 아니라 물폭탄이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버멜은 토터스에게 달라붙었다. 녀석은 중앙 분수대를 지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버멜이 새 스태프를 소환해 분수대에 박힌 핵을 내리쳤다.
콰앙!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정신 조작 마법이 해제됩니다.]
시스템창이 혼란의 종식을 고했다. 이걸로 후폭풍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으으으아악─!!”
토터스가 날뛰며 진공파를 흩뿌렸다. 버멜의 몸이 땅을 구르다 공중에 뜨기를 반복했다. 토터스를 붙잡은 팔이 뜯겨 나갈 것만 같았다.
사방을 헤집어놓는 토터스. 비명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자포자기한 마도사들.
헤를라인이 보낸 골렘은 짧은 돌진 몇 번에 으스러졌다. 잦은 이동에 로켓으로 조준하기도 쉽지 않았다. 프레이는 이제 공격은커녕 토터스를 회피하기에도 바빴다.
“흐앗!”
에테르는 프레이를 들고 뛰었다. 프레이의 모자가 다시 벗겨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인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이 친구를 살리는 게 중요했다.
‘요르문간드가 지랄하면 골치 아파져.’
에테르는 토터스의 공격을 빗겨 피했다. 순간, 그녀의 눈과 토터스의 녹아내린 눈알이 마주했다.
토터스는 이를 그르렁거렸다. 말은 못 하지만, 어쨌거나 지성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가 에테르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촤아악! 토터스 입에서 탁한 구정물이 쏟아져 나온다.
저 또한 ‘증기의 비’와 성격을 공유하는 물. 일반인이 맞으면 위험하다. 그러나 에테르는 가소롭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시건방지구나.”
제 상관을 못 알아보고 물대포를 쏘다니.
에테르는 프레이가 쓰던 로켓을 빼들었다. 어쨌거나 강자성체로 이루어진 물질. 조금 무겁지만, 투척 재료로 쓰기엔 더없이 좋으리라.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 테슬라(Tesla)]
[상급 전계마도 ─ 레일건(Railgun)]
에테르는 지구 자기장의 수조 배에 달하는 자력을 걸었다. 주변의 물 분자가 순간적으로 해리된다.
쐐애애액! 로렛 발사기가 그대로 물대포를 뚫고 지나간다. 그 주위로 나선 궤적이 그려진다.
그 궤적은 일종의 잔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추가타를 먹일 수 있었다. 에테르와 프레이를 향해 직진하던 물대포는 금박에 맞고 튕겨 나가는 알파 입자처럼 뒤쪽으로 산란했다.
그래도 그중 일부는 맞을 수밖에 없었다. 에테르는 몸을 가려서 프레이를 보호했다. 몇 방울이 에테르의 손과 얼굴에 맞았다.
“야, 괜찮아?”
“…….”
“혹시 물 맞았어? 고개 좀 돌려봐!”
“…아니.”
에테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프레이도 그녀를 더 걱정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크흑, 커헉….”
버멜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까부터 토터스에게 매달려 다니느라 온몸이 넝마짝이 되어 있었다. 무릎은 다 까지고, 머리는 헤졌다.
온몸이 멍울투성이였다. 성하지 않은 곳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키긱! 기기긱!
“크윽…….”
에테르와 프레이가 공격을 빗겨 피하는 동안에도 버멜은 몇 번이나 땅을 굴러야 했다.
그렇게 의식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던 와중.
삐비빅!
[─ SYSTEM : 방철(防鐵)의 비약 인챈트 시간이 종료에 임박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떴다.
“…제기랄.”
벌써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곧 증기의 비에서 무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수가 되지 않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으으윽, 아아악!”
버멜은 흐릿해지려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고는, 그가 써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을 시도했다.
까아앙!
끼긱, 끼긱!
스태프로 연약한 부분을 전부 긁어낸다. 아니, 도려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알맞으리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겉껍질을 작살낸다. 나무에 난 도끼자국처럼 토터스의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뜯어놓은 곳의 상처를 벌리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버멜이 악을 쓰며 토터스의 배를 저며냈다.
제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지닌 토터스라도 어쩌지 못하고 몸을 까뒤집었다. 녀석의 배가 사선으로 노출된다. 시커먼 토터스의 뱃속 사이에는 교미하는 가터뱀처럼 이리저리 꼬인 전선들이 얽혀있었다.
그러한 전선들 사이로 보이는 이물질이 하나.
‘저건…….’
에테르가 미간을 모았다. 자신이 만든 EMP 생성기가 저기 있었다.
‘그거였군.’
동향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에테르는 버멜이 무얼 하라는 것인지, 그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챘다.
인격이 두 개로 나뉘어 사고가 혼곤한 와중. 에테르는 마력초를 하나 더 물고 마력을 집중시켰다.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 테슬라(Tesla)]
다시 한번 같은 마법을 사용한다.
여기가 기로다. 몸의 주도권을 가진 채로 버멜과 함께 해피엔딩을 보거나, 아니면 일을 그르쳐서 추방당하거나.
에테르는 속으로 되뇌었다.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나뿐인 가족을 보기 위해서. 쓰다 만 논문을 PRL에 등재하기 위해서. 생각해 보니 APS 학회 가는 것도 약속을 잡아 놨었는데, 이런 썅.
돌아가도 할 게 산더미였다. 그런데 왜 돌아가야 하지? 그야 그곳이 고향이니까. 여기가 내 고향인데?
‘빌어먹을.’
자기장을 전개했다. 츠츳! 펄스 생성기의 솔레노이드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1 암페어, 1백 암페어, 1억 암페어…. 급작스러운 전류 변화에 펄스가 일렁이며 뿜어져 나온다.
펄스에는 색도, 맛도, 향도, 그 어떤 형태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무형지독이 여기 있었다.
“가아아아악─!!”
토터스는 증기를 토해내며 아우성쳤다. 눈에선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은 완전히 녹아 뼈대만 남았고, 배때기에선 액상 니코틴처럼 생긴 점액이 줄줄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쿠웅! 버멜의 세계가 뒤집혔다. 하늘이 땅이 되었고, 땅은 하늘이 되었다.
토터스가 땅을 박찼다. 이전과는 다른 거센 발길질. 대부분의 생명체가 그러하다. 죽기 직전에 가장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법이었으니. 이는 기계인 반타 토터스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SYSTEM : 곧 인챈트 아이템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SYSTEM : 카운트타운을 시작합니다.]
[10초.]
버멜은 입술을 짓씹었다. 머리가 웅웅 울렸다. 코끝에서 찡한 느낌이 들었다.
[9초.]
혓바늘이 돋았다. 그럴수록 혀를 꽉 씹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다.
[8초.]
이마에서 끈덕진 느낌까지 들었다. 철푸덕! 버멜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머리끝을 만졌다. 이산화탄소를 잔뜩 머금은 피가 뺨을 타고 흐른다.
[7초. 6초. 5초…….]
“으윽….”
신음을 토해냈다. 걸쭉한 핏물과 함께 3초 만에 사념을 떨쳐낸다.
[4초.]
버멜은 상태창을 켜며 내달렸다. 토터스의 체력바가 표시된다. 좋아. 녀석이 죽어가고 있다.
[3초.]
달린다. 달린다. 회랑까지 달려나간다.
[2초.]
그때였다.
“푸우우.”
고래가 숨구멍을 여는 듯한 소리. 불길한 기운이 등줄기를 툭툭 건드렸다.
버멜은 미친 듯이 달리다 말고,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이 소리는…….’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것은 일종의 미래 예지였다.
‘죽는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필이면 마지막에 이렇게 되다니…. 억까도 정도가 있지……!’
뒤를 돌아 막으려 해도 무리다. 뒤쪽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마력은 다 떨어졌다. 어찌어찌 막아내더라도,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마수가 되어 죽거나, 물대포에 맞아 죽거나였다.
[1초.]
‘젠장, 정령만 있었어도……!’
카운트다운이 다 되어간다. 버멜의 표정이 급박해졌다.
회랑까진 거의 다 왔다. 버멜이 최대한도로 손을 내뻗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대포에 맞고 죽기에는 충분했다.
[야, 저 애 어떻게 해!]
[인간들 반응 안 해?]
[이봐요, 주인님. 당신이라도 뭐 좀 해 보세요!]
정령들이 아우성쳤다. 그러나 다 쓰러져 가던 토터스를 넋 놓고 바라보던 군중은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마법을 쏘는 것에도 시전 시간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빨라야 1초에서 2초가 한계. 그에 비해, 곧 죽을 것처럼 삐걱거리던 토터스가 물대포를 장전하고 발사까지 하는 데 걸린 시간은 0.5초 남짓이었다.
“갑자기 뭔데…!”
쿠쿠쿵!
그나마 프레이가 최대한 빨리 반응하여 회랑 전체에 토벽을 끌어올렸다.
콰아아아! 결궤된 입에서 검은 폭포가 쏟아진다.
버멜과 토터스의 거리는 50미터 남짓. 버멜은 회랑에 손끝을 걸쳤다. 그러나 때는 살짝 늦은 뒤였다.
[0초.]
[제한 시간이 만료되었습니다.]
[방철(防鐵)의 비약의 인챈트 효과가 제거됩니다.]
“크윽…!”
발끝에서 뜨거운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피부가 철처럼 변하고 있다.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인 건가….’
갑자기 지난날들이 후회됐다. 만약 그때, 더 공격적으로 움직였더라면…….
타악!
보드라운 손이 버멜의 팔을 붙잡았다.
“…어?”
버멜의 몸이 땅에 떨어지듯 끌어당겨졌다. 그가 어어, 하고 허망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 사이, 버멜의 손을 잡아당겼던 소녀가 그 반동으로 인해 앞으로 튀어나갔다. 버멜은 안전지대의 중심에 해당하는 회랑 중앙까지 데굴데굴 굴렀다.
반대로.
소녀의 신형이 내쏜 화살처럼 사라졌다. 적어도 40미터는 단번에 날아간다. 0.1초? 그보다 짧은 시간이다.
찰나의 순간. 소녀는 캘리퍼스를 땅에 뿌리박았다. 폭우에 머리와 어깨가 전부 젖었다.
‘본관이 왜, 이런 짓을.’
이유는 없다. 그냥,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나갔다.
그리고.
쿠우우우─!!
에테르는 자신도 모르게 날아오는 물대포를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