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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흐응.”

        

       앨리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는 이유는 보통 둘 중 하나였다.

        

       한가지는 내가 뭔가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뒤 죄다 황제한테 뒤집어씌웠을 때.

        

       내 주변 친구 대부분이 내 성격의 일부를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본질을 거의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존재는 앨리스 한 명뿐이다. 클레어는 요즘 들어 조금 위험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긴 했고, 샤를로트도 점점 내 표정을 조금씩 짐작해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문제는 내가 요즘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린드버러에서 돌아오자마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고를 치고 다니기는 했다. 온종일 쉬지 않고 날아온 비행선 덕분에 돌아오는데 며칠씩 걸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거의 그 직후부터 제도의 가장 중요한 곳을 털고 다녔다. 물론 일을 터뜨린 뒤에는 꼭 시간을 되돌려서 증거를 인멸하긴 했지만.

        

       그러니 앨리스가 저런 눈으로 나를 보는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날 놀릴만한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앨리스가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나에게 마음을 확 열어버린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앨리스는 내 무표정한 모습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놀려댔다. 심지어 내 능력에 대해서 대충 눈치챈 이후로도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내 능력에 대해서 눈치챘기에 놀릴 수 있는 건지도.

        

       뭐, 아무튼.

        

       분명 어린 시절 나한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앨리스였는데, 지금은 내가 앨리스한테 라이벌 의식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앨리스가 저렇게 보는 것에 발끈하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결국 그 눈빛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교실에 모여 앉아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여기저기 파견 실습을 다니고서도 수업이 제대로 굴러가나 싶겠지만, 애초에 이 세계에서는 법으로 반드시 정해진 의무교육 커리큘럼 같은 것이 없다.

        

       세계 최고의 교사진이라고는 하지만 수백 년간 정립된 교육학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기가 평생 연구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상식을 알려주는, 고등학교보다는 차라리 대학교에 가까운 곳.

        

       그러니 도중에 수업이 조금 잘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애초에 교사들도 파견 실습에 대해 알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서 자기 스케쥴을 짜니까.

        

       그렇기에 교실 안의 분위기는 즐거움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지금까지의 파견 실습 중에서 지난번 린드버러 파견 실습이야말로 가장 ‘여행’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 윈터필드나 노스우드도 나름대로 여행지 기분이 나긴 했다만. 그래도 린드버러가 가장 이국적이니까.

        

       웅성웅성, 주말이 지나고도 지난 파견 실습 때의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덕분에, 내 말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지는 일은 없었다.

        

       “아니, 뭐, 그냥.”

        

       앨리스는 새침하게 튕기기라도 하는 듯 눈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곧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래, 저건 분명히 약 올리는 동작이었다. 그 증거로, 턱을 괴고 있는 듯 슬쩍 가린 입술 끝의 근육이 살짝 올라와 있었다. 앨리스는 내 쪽을 보면서 실실 쪼개는 중이었다.

        

       “…….”

        

       그리고, 나는 왠지 그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조금 더 돌려서 샤를로트 쪽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외국 왕녀님께서는 슬쩍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말했구만.

        

       나는 한숨을 꾹 참았다. 아무리 요즘 들어 위태로워진 컨셉이라고는 하더라도, 완전히 깨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니까—

        

       *

        

       …….

        

       아니, 뭐. 그래.

        

       쿨뷰티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서 쿨데레가 되고, 나중에는 그 얼음 같던 표정까지 깨지면서 메가데레로 각성하는 것도 어느 정도 클리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남자 캐릭터와 이어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아니, 남자 캐릭터 말고 여자 캐릭터와 이어지는 것도 별로 생각 없다. 내가 진짜로 레오한테 빙의되었거나, 하다못해 그냥 남자 캐릭터로 이 세상에 왔다면 히로인 중 몇 명에게 껄떡거려볼 수는 있었을 거다. 이렇게 여자 캐릭터가 많으니 주인공과 이어질 캐릭터를 NTR 하는 것만 아니라면 나도 은근슬쩍 낄 수는 있잖아?

        

       하지만 나는 여자 캐릭터가 되어버렸지. 게다가 원작에서 등장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무근본 캐릭터였다.

        

       이 시대에 동성애라니, 물론 게임 자체가 오타쿠를 노리는 서브컬쳐 풍으로 만들어졌으니 동성애에 대해서 관대할지도 모르지만, 괜한 모험을 해서 문제를 만들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를 사귄다면 여자가 되겠지만.

        

       그렇다.

        

       나는 적어도 앞으로 ‘남자’와 사귈 일은 없다.

        

       “으음…… 그게 말이죠.”

        

       나와 앨리스를 마주한 샤를로트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저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 일’을 비밀로 하는 것은 귀족으로서의 예의니까요.”

        

       ‘그런 일’이 뭔지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냥 잠자코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의 여동생이 그렇게 물어오면 저도 계속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레오를 좋아한다’라고 클레어한테 말씀하셨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끝까지 참지는 못했다.

        

       이어지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나마 남아있는 다른 어이들이 내 머리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얼른 그렇게 물었다.

        

       “아, 아뇨,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는데요.”

        

       내 표정이 진짜로 살벌하기라도 했는지, 샤를로트는 보기 드물게 당황해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샤를로트는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어.”

        

       앨리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클레어한테 들었거든.”

        

       “…….”

        

       “내 여동생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는데, 그냥 안 듣고 넘어갈 수도 없잖아. 그리고 클레어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클레어도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으니까.”

        

       “말하지 않으려는 클레어를 어떻게 구슬렸습니까?”

        

       “클레어의 계획에 찬동하겠다고 했지. 그때는 그게 무슨 계획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이마를 짚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게 무슨 계획인지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너도 린드버러 공작의 계획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러겠다고 했잖아. 그거보다는 내 쪽이 훨씬 가벼운 실수인 것 아닐까?”

        

       “…….”

        

       그건…… 할 말이 없긴 했다.

        

       “그리고 말이야.”

        

       앨리스는 벽에 기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만약 네가 레오를 좋아하는 마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클레어의 그 계획은 너한테도 꽤 좋은 계획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실실 쪼개는 것을 보니 나한테도 별로 좋은 계획일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일단 들어나 보기로 했다.

        

       “무슨 계획이십니까?”

        

       “클레어는 레오가 너와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거든.”

        

       “……그럴 수가!”

        

       샤를로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깜짝 놀랐다.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샤를로트에게로 향하자, 샤를로트는 경악한 표정 그대로 앨리스에게 물었다.

        

       “어째서죠? 클레어는 실비아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따르잖아요? 자기 진짜 ‘언니’가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 아닌가요?”

        

       “그게 문제야.”

        

       앨리스는 말했다.

        

       “클레어는 실비아가 자기 ‘언니’로 있기를 바라지, 자기 ‘동생’이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거든.”

        

       …….

        

       ………….

        

       ………………아.

        

       그렇구나.

        

       한참 동안 머리가 굳어있다가 겨우 돌아가기 시작했다.

        

       클레어는 레오를 ‘남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서로서로 ‘오빠’, ‘누나’라고 주장하는 사이였으니 실제로는 어느 쪽이 더 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도 그 기 싸움은 진짜였던 모양이다.

        

       클레어는 레오를 정말로 자기 남동생으로 여기기에, 내가 레오와 결혼하면 내가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주먹을 이마에 댈 것 같아서, 팔 자체에도 힘을 꽉 주었다.

        

       “그럴 수가!”

        

       샤를로트는 진심으로 이입하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게다가, 클레어는 실비아를 그냥 언니라고 부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자기 가족 안에 넣어서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자기 남동생이랑 자기 언니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무슨 기분이 들겠어?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아도 말이야.”

        

       “…….”

        

       실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네가 레오를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그런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야. 안 그래? 그러면 네 동생 걱정도 좀 덜어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아니, 샤를로트가 나를 보는 눈은 꼭 여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언니를 보는 것 같은 눈인데요.

        

       …….

        

       좋아, 그러면.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나서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미 커플 하나를 만들어서…… 지나치게 성공적으로 만들어서 안 그래도 그 둘을 볼 때마다 속이 쓰릴 정도로 훌륭한 커플 메이커였다.

        

       레오 여자친구 만들어주는 정도야, 뭐.

        

       이미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으니 쉽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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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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