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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이제 집에 가는겐가.”

     

    여름 옷을 구매한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바람에 진이 빠져 다이튼에게 업힌 루크가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소르비가 어림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저었다.

     

    “무슨 소리, 이 다음엔 수영복 보러 가야지.

     

    “뭐? 수영복이라니?”

    “수영복 말인가?”

     

    루크와 다이튼은 거의 동시에 물었다.

     

    “응, 사실은 루크가 일식을 보러가자고 해서 지금 거기 가서 입을 옷 고르는 거거든.”

     

    “아, 일식 보러 갈 준비를 하는 거였구나.”

     

    “그렇다네. 요즘 일식은 바닷가에 모여서 본다고 하지 않나? 마침 일식에는 흥미가 있어서 말이지.”

     

    루크는 언제나와 같이 할애비 같은 말투였다.

    근데 이녀석 솔직히 일식은 핑계고, 바닷가에 가고 싶은 거 아냐?

    루크는 말을 저렇게 해도 속은 애 같은 부분도 많으니까.

     

    “음, 그러고보니 벌써 일식인가…….”

     

    하긴, 이맘때에 일식을 보러 바다에 가는 사람이 꽤 있지.

    바다라…….

     

    상념에 빠진 다이튼의 표정을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루크는 대신 말을 잇듯이 물었다.

     

    “헌데 수영복이라니, 수영을 위해서 따로 입는 옷이 또 있는 것인가?”

    “그야 당연하지?”

    소르비의 말에 루크는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엔 딱히 수영복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냥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거나,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경우 두 가지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전자는 물에 빠진 경우요, 후자는 목욕을 하는 경우였다.

     

    때문에 물놀이는 딱히 성인에게 권장되는 놀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물놀이를 해야겠다면 그냥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물에 들어가곤 했다.

    또한 그런 물놀이조차 레니에나 케일 같은 몸만 큰 어린것들이 아니면 하지 않으니, 애초에 수영을 위해 옷을 새로 구매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론 수영을 해선 안되는 건가?”

     

    그렇게 묻자, 소르비와 예르나는 단호했다.

     

    “당연히 안되지, 그걸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해!”

    “맞아, 누가 그 옷으로 바다에 들어가겠어. 게다가 모처럼의 새 옷인데 아깝게.”

     

    “음……. 그런 것인가?”

     

    하기사, 자신은 수영에 대한 시대의 상식과 관념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니,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이 이상해보일지도 모른다.

    다수가 주장하는 이야기에는 그들을 꺾어야 하는 것이 있고 그들에게 꺾여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 경우엔 꺽여야 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는 새로이 정의된 것이다. ‘물가에서 놀기 위해서는 수영복을 입는다’라는 상식이.

     

    법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다수의 ‘약속’과도 같은 것.

    그것이 바로 불문율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불문율은 시대마다, 상식과 규칙이 변화할 때마다 바뀌어왔다.

    게다가, 물에 들어간다고하면 확실히 갈아입을 옷 하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뭐, 그렇다면야…….”

     

    아무래도 수영이라는 것은 영 떨떠름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 그럼 수영복도 사러 가는 거지?”

     

    예르나의 웃음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은 그리하지.”

     

    그렇게 생각을 마친 루크는 문득 다이튼의 표정을 살피었다.

    다이튼은 방금 눈앞에서 예르나의 미소를 보아서인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정신을 다시 불러올 필요가 느껴져서 루크는 조금 목소리를 냈다.

     

    “다이튼, 혹시 그대도 바다에 가고 싶은 게 아닌가?”

     

    “으음, 그, 그게…….”

    마음같아서야 가고싶긴 하지만, 그것이 괜찮을런지 모르겠다.

    만약 생각이 있다면 쇼핑에 오기 전에 예르나가 먼저 물어봤을텐데, 그 이야기는 여기서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

    그렇다면 딱히 자신을 부르고싶지 않다는 뜻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남자친구도 아닌데, 여성이 남성과 바다에 일식을 보러 가는 경우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다이튼이 대답을 쉬이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자, 그 심정을 눈치챈 루크는 예르나를 불렀다.

     

    “저기, 예르나. 다이튼도 일식 구경에 동참하는 것이 어떤가?”

     

    예르나는 조금 놀랐다는 듯이 눈을 떴다.

     

    “다이튼도? 괜찮아? 같이 가도? 일식 별로 안 좋아하잖아.”

     

    일식?

    확실히,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어한다.

    그런데 그걸 기억해서 일부러 제안하지 않았던건가.

    솔직히 좀 서운했는데, 나름대로 신경을 써준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그딴 건 알 바가 아니고.

     

    “괜찮아! 아무런 문제없어!”

     

    “좋아, 그럼 다 같이 가자.”

     

    갑자기 찾아온 기회에 다이튼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다이튼.

     

    예르나와 함께 바닷가!

    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 파격적인 제안이 아닌가!

     

    마치 엄청난 보물을 눈앞에 둔 모험가처럼 상상만으로도 다이튼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예르나의 수영복도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과연 예르나는 어떤 수영복을 좋아할까?

    전통적인 비키니? 아니, 그건 화상 때문에 입으려고 하지 않으려나.

    그러면 실용적인 슈트일까? 어쪄면 그냥 래쉬가드를 입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마 예르나라면 무엇이든 어울리겠지, 그런 예르나와 즐겁게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자신을 상상하니, 정말이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이어나가던 그 순간.

     

     

     

    “아, 맞다. 다이튼, 그대는 수영을 좀 할 줄 아는가?”

     

    “흐으응?! 뭐, 뭐라고?”

     

    그렇게 예르나의 수영복을 상상하며 한껏 풀어진 표정을 짓던 다이튼은 혹시나 자신의 표정이 루크에게 들켰을까봐 화들짝 놀라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에, 루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되물었다.

     

    “그대는 수영을 잘 하느냐 물었네.”

     

    “수, 수영? 아, 수영 말이구나.”

     

    다이튼은 겨우 숨을 고른 뒤,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나 수영은 꽤 잘해.”

    “오오, 그게 정말인가?”

    “그래. 숲지기가 되기 전엔 수영장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도 했어.”

    “그건 대단하군.”

     

    그것은 루크의 진심어린 감탄이었다.

     

    사실, 자신은 수영을 할 줄 모르니까.

     

    그에 변명하자면 이렇다.

     

    애초에 물에서 헤엄치는 법은 뱃사람이 아니면 딱히 배우지도 않는다.

    루크 자신도 물에 빠질 일이 전혀 없는 대마법사였으니 굳이 수영을 배울 필요도 없었고.

    마법을 이용해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럴 수 없겠지.

     

    자칫하면 물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럴 때, 수영을 할 수 있는 믿음직한 동료가 있다면 또 얼마나 의지가 되겠는가?

    과연, 다이튼을 일행으로 받아들인 것은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았다.

     

    “그럼 물에서 누굴 구해낸 적도 있나?”

    “그러고보니 그런 적은 없네. 사실은 그리 오래 한 것도 아니었어. 원래 디아나가 수영 배우고 싶다고 해서 겸사겸사 했던 건데, 수영에 질려서 금방 그만 뒀으니까.”

    “그렇군. 그럼 바다에서 수영을 해 본 경험은?”

    “어디보자….”

     

    그러고보니 바다에 언제 마지막으로 가봤더라?

    기억은 까마득하다.

    아마, 16살 때였던가.

    그 후로는 부모님과 연락이 끊기고 자신도 여러가지로 바빠서 갈 일은 없었다.

     

    아, 잠깐. 그럼 디아나는 바다에 가 본 적이 없는 건가?

     

    다이튼은 이내 조금 진지해진 표정으로 예르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디아나도 데려가도 괜찮아? 걔, 바다는 처음인 것 같아서.”

     

    “나야 환영이지!”

     

    예르나의 흔쾌한 승낙에 다이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그 모습을 보던 루크가 등을 톡톡 건드렸다.

     

    “응? 왜?”

     

    “아직 대답을 못 들었으니 다시 묻겠다. 그대가 바다에서 마지막으로 수영을 해 본건 언제지?”

     

    “음, 바다는 모르겠는데.”

     

    “…….”

     

    별로 믿음직스러운 대답은 아니었다.

     

    ……예르나는 수영을 잘 할까?

     

    —————–

     

    도착한 수영복매장에서, 루크는 생각했다.

     

    “언니, 이건 어때요? 괜찮아요?”

    “음, 아까 그것보단 조금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래요? 흠, 고민되네…….”

     

    즐거운 듯이 ‘수영복’을 고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리봐도 그것은 그랬다.

     

    몸의 형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야말로 치부만을 가리는 의상.

    헌데 배꼽은 딱히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지극히 외설스러운 옷.

     

    ‘그렇다면 이건 그냥 속옷이 아닌가?’

     

    혹시 속옷매장을 착각해서 들어온 것이 아닌지 몇 번 더 간판을 확인해보는 루크였으나, 그런다고 수영복이라고 적힌 글자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하던 루크는 곧 머릿속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법한 변명거릴 찾아냈다.

     

    “혹시 ‘수영복’이라는게 따로 갈아입는 옷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옷 안에 입는 속옷 같은 걸 말하는 모양이군?”

     

    그야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저렇게 속옷과 닮은 형태를 취하겠느냐는 말이다.

     

    루크가 그렇게 묻자, 소르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보통은 그냥 수영복만 입는데.”

     

    “하하, 다이튼 같은 장난은 그만 두게.”

     

    “장난 아냐, 진짜야.”

     

    “설마.”

     

    소르비는 원래 신뢰도가 별로 없었으니 무시할만 하지만, 예르나의 저 표정은 신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것을 쉬이 믿기란 어려웠다.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내보일 일이 없는 속옷이라면 모를까, 어째서 밖에 드러내고 다니는 수영복이 저토록 파렴치한 행색이란 말인가?

     

    분명 이 시대에서도 알몸이나 속옷을 내보인다는 행위는 부끄러운 일에 속하는 일이었다.

    헌데 어째서 똑같이 생긴 수영복은 용납이 된다는 말인가?

     

    물론 벌거벗는 것 보다야 낫지만, 딱히 더 훌륭하다곤 할 수 없는 차림이다.

    루크는 의심을 담아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말 그 차림으로 지금 당장 밖에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겐가?”

     

    “음……. 당연히 안 그러지. 외출할 때 수영복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하하. 그것 보게. 역시 그랬군.”

     

    역시나 저 둘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작당하고 꾸며낸 말이 분명하다.

     

    수영복만 입고 외출해서 곤란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요즘 자신이 꽤 감정을 내비치게 되었다고 장난감처럼 놀릴 생각만 가득한 모양인데, 이래봬도 마법사인 몸이다.

     

    스스로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쉽게 믿지 않는 마법사.

     

    만약 그것이 보편적인 의상이라면 어쩌다 한명은 입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을테지만, 자신이 보기에 그런 속옷이나 다름없는 행색으로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야, 보편적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대들은 내가 그 말을 믿고 밖에 그런 차림으로 나가게되면 그것을 놀리며 나의 반응을 즐길 생각인 것이 분명해. 그런 얕은 꾀에는 속지 않는다.”

     

    그렇게 당당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짓고 있는 루크를 바라보다가, 이내 서로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확인한 소르비와 예르나는 거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렇게 웃지?”

     

    “푸하하하! 루,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프하하학, 큭, 그렇게 장난같았어?”

     

    물론 밖에서 그렇게 다니는 사람은 없지만 정말 바닷가에 가면 다들 이런 차림으로 다니는데.

     

    하지만 지금 루크는 아무리 말해도 그걸 믿으려고 하지 않는 모양이다.

    정말 그렇게 부끄러운가?

    처음 수영복을 입는 거라면 모두들 부끄러워하기는 하지만, 루크는 조금 유별나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면 그때는 정말 믿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또, 다들 비슷한 차림이면 특별히 부끄럽지도 않다.

    아마도 수영복에도 금방 적응하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야가오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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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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