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1

   “맛있겠구나. 후후, 이들의 영혼을 모두 내 영역으로 끌고 가면….…”

   화신은 자기 자신이 마신인 것처럼 지껄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화신이 마신 그 자체인 것은 아니었다.

   화신은 마신이 사도라는 ‘창’을 통해 이 세상에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사도 개인의 인격이라는 ‘틀’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클라라는 원래 사도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육체의 그릇은 데볼루트를 통해 억지로 키워내 빚은 것이었고, 영혼의 그릇 역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기반으로 했다.

   거기다 ‘차명 사기’까지 더해졌으니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마신은 그릇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으음? 크흐흐……여기까지인가. 그래. 어쩔 수 없지. 남은 시간 부디 원하는 대로 날뛰어 보아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는 내 사도였느니라.”

   마신이 연회장 전체에 파피락스를 뿌린 것은 상당히 무리하게 권능을 발휘한 것이었다.

   창이 깨지고 틀이 일그러졌다.

   마신은 그의 사도에게 인격의 주도권을 넘기고 장막 저편으로 사라졌다.

   화신의 몸을 덮고 있던 외골격이 딱딱거리며 도미노처럼 들썩였다.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으으, 좋아. 이제 내 차례야……. 레이나, 그 계집은 어디 갔나? 나와아아앗!”

   화신이 다리들을 쿵쿵 짚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수십 개의 더듬이를 휘두르며 연회장 안을 살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자신의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역시 공기 방울들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그것에는 사람들을 정신적 충격에 빠지게 만드는 험담과 뒷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색색의 커다란 산호들이 반투명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네페쿠스의 영역인 ‘속삭임의 정원’은 어비스의 얕은 바다에 존재하는 산호초의 숲이었다.

   산호들은 그곳에 쌓이는 사람들의 대화를 거름 삼아 자라나며 속삭임을 공기 방울 형태로 토해냈다.

   “전부 그년 때문이야! 그년! 레이나, 어디 갔어!”

   화신은 연회장 안을 쿵쿵 돌아다니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년이 있어야 하는데.

   그년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됐어.

   찰리 선배를 뺏어가더니, 나까지 이렇게 만들다니.

   그년에게 들려줘야 해.

   자기 출생의 비밀을!

   본인의 삶이 가짜라는 것을!

   만들어진 인형이라는 것을!

   하하, 절망하겠지?

   화신은 꼬리를 끌며 연회장 안을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았다.

   카렌은 바로 앞으로 커다란 집게가 스쳐 지나가는데도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심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 이 썅년이. 네 엄마라는 년이 널 버리고 괜히 떠났겠냐.

   -뭘 꼬라보는 거냐, 엉? 확 눈깔을 파버릴라.

   아버지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을 때.

   -너……이상해. 솔직히 너 같은 애랑 더 친구 못하겠어.

   -걔 그거 아냐? 막 여자인데 여자 좋아하는 애.

   -아, 미친년, 생각만 해도 더러워.

   처음 사귀었던 동성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

   -꺼져.

   -꺼지라고.

   -너처럼 역겨운 애는 처음이야.

   얼마 전, 마야에게 절교를 당했을 때.

   좋지 않은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카렌을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직접 작용했다.

   “싫어……. 그만……. 그만해…….”

   카렌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더는 정신적으로 버틸 힘이 없었다.

   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 같은 현상은 연회장 전체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클라라는 절망적인 눈으로 장내를 둘러봤다.

   어른, 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파피락스에 사로잡혀 하나둘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걸을게요……. 때리지 마세요.”

   그녀의 옆에 있던 메렌도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눈물을 쏟아냈다.

   원래 파피락스라는 것은 마음속 은근히 속삭이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마신이 직접 자신의 권능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것은 클라라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황이 희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클라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매일 특별한 약을 마셔야 했다.

   그것을 제조하는 데는 데볼루트와 그것을 다루기 위한 트릴의 파편이 필요했다.

   그런데 둘 다 뺏기고 말았다.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내일부터 서서히 육체와 영혼에 어긋남이 생기면서 얼마 가지 않아 주술이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때는 돌아갈 원래의 몸도 없다.

   지금 화신이 날뛰는 꼴을 보니, 녀석은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방법이 있다면 하나였다.

   지금 주술을 깨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원래의 몸을 찾은 뒤, 어떻게든 남은 자원을 수습해서 달아나야 했다.

   이 정도 규모의 난리를 쳤는데 정교회 측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마 퇴마사들이 몰려올 것이다.

   클라라는 품에서 단도 한 자루를 꺼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칼의 날에는 피로 적혀진 붉은 색의 문자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혹시나 이 몸에서 긴급 탈출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하기 위해 몰래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이걸로 자신을 찌르면 주술은 깨지게 됐다.

   “레이나, 어디 숨어 있는 거니? 응?”

   화신은 집게가 달린 꼬리를 휘휘 휘둘러가며 연회장을 들쑤셨다.

   다리들로 사람들을 헤집고 뒤졌지만 도통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괴성을 내지르며 분통을 터트리던 그녀는 다른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

   무대 앞에 선 두 사람.

   마야와 카렌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있었지.”

   둘은 대나무 숲에서 자신이 정성들여 준비한 함정을 조잡한 속임수로 깨부쉈다.

   감히 새파랗게 어린 년들이 선배를 모욕해?

   화신은 위협적으로 외골격을 일으키며 둘에게 다가갔다.

   클라라는 단도를 쥔 손에 힘을 줬다.

   하려면 지금 해야 했다.

   놈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아쉽네.’

   그녀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겨우 익숙해진 클라라의 삶이었다.

   이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도 반가웠고, 학교생활에도 재미를 붙였으며, 곡예를 익히는 것도 의욕적으로 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주인님으로부터 응원까지 받았는데.

   이렇게 또 떠나서 숨어 살아야 한다니.

   ‘죄송해요.’

   클라라는 이미 연회장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분에게 속으로 조용히 사죄의 말을 하고는 칼을 목에 찔러 넣었다.

   그러나 칼날이 목에 닿기 직전.

   그녀의 손이 멈췄다.

   화신이 노리던 두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한 사람은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서 패닉에 빠져 있었지만, 다른 한 사람이 움직였다.

   오늘의 파티 퀸.

   마야는 자신의 근처에 떠오르는 공기 방울들을 귀찮은 파리를 내쫓는 것처럼 휘휘 손을 저어 터트렸다. 안에서 속삭임 무더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뭐야, 너……. 어떻게 극복한 거지?”

   괴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려 마신이 직접 권능을 발휘했는데 멀쩡히 서 있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야는 전신에 활력이 돋는 것을 느꼈다.

   돌덩이처럼 굳었던 마력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심화되었던 파피락스가 모두 해소되었다.

   그녀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분에.”

   그녀에게 들린 것은 최근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힌 2가지 사건이었다.

   단장님과 레이나와 있었던 일.

   카렌이 단장님에게 고백한 일.

   마신은 그녀가 더욱 괴로워하도록 그녀에게 당시의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자세히 쏟아냈다.

   그것이 바로 마신의 실수였다.

   마야의 귀에 두 사람의 대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빠트린 내용 없이 모두 전달되었다.

   -제가 4년 전에 만든 옷이니까요.

   -제 철없는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레이나.

   그녀가 단장님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는 것은 자신의 오해였다.

   그녀는 그저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렸을 뿐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계집애.

   단장님께 무슨 해괴망측한 부탁을 한 거람.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들어보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콧대 높게 굴던 애가 단장님 앞에서 어린애처럼 굴었다.

   레이나와의 대화가 끝나고 이어서 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있었던 대화의 전문이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마야가 단장님이랑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지 아세요? 이번에는 마야에게도 좀 베풀어주세요!

   -하지만 자꾸 여성적인 것에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제가 뭔가 잘못된 건가요?

   그녀가 자신에게 숨겼던 비밀이란 단장님에 대한 마음이 아니었다.

   마야의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울먹이고 있는 카렌을 바라봤다.

   이 바보.

   그건 자신을 향한 중얼거림인 동시에 상대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괜히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오해를 키우기는.

   마신이 만약 마야 개인만 노렸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허와 실을 섞는 수를 썼을 것이다.

   홉스의 경우처럼.

   마신은 그에게 의도적으로 몇 가지 정보를 누락시키고 전달했다.

   파이렌이 스승의 술에 약을 타서 먹이고 첫날밤을 유도했다든가, 당시 학년 수석이던 홉스의 성적을 노리던 다른 선배와의 거래로 일부러 그를 가지고 논 것 등.

   상대를 완전한 악으로 만드는 것보다 상대를 미워할 수만 없게 만드는 게 정신적 충격이 더 크다. 시네페쿠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쓴 것은 이곳에 있는 수백 명을 향한 광역기였고, 그런 섬세한 조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래서 마야는 역으로 파피락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화신은 이를 갈며 분함을 토했다.

   “……그래. 이 비겁한 년. 또 무슨 속임수를 썼나 보지. 그때 계단을 만들었을 때처럼. 하지만 말이야…….”

   까드득. 까득.

   화신이 외골격을 뒤틀며 수십 개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직접 산산조각내면 그만이야!”

   거대한 그림자가 마야를 덮였다.

   그녀는 있는 마력을 모두 쥐어 짜내어 염동력 구체를 쏘아 보냈다.

   그 크기는 드발체프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작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막 마력을 회복한 터라 끌어낼 수 있는 마력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쾅.

   외골격과 부딪친 염동력 구체는 우렁찬 타격음을 냈으나 실질적인 피해는 주지 못했다.

   딱딱한 게딱지에 아주 약간의 흠집이 났고, 내리쳤던 다리가 잠시 멈칫했을 뿐이었다.

   화신을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다니? 더 잔재주는 없니?”

   그녀가 다시 다리를 내리쳤다.

   마야는 자신을 덮쳐오는 죽음을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단장님.’

   그분은 파티 중간에 먼저 돌아가신 걸까?

   야속한 동시에 안심이 됐다.

   아무리 단장님이라도 마신의 화신에게는 대적하기 힘들 테니까.

   다행이었다.

   단장님이라도 살아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쿵.

   굉음이 연회장 전체를 울렸다.

   대리석 바닥이 들썩였다.

   차가운 폭풍이 마야의 뺨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렇게 몇 초를 기다리던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멀쩡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이었다.

   설마 단장님이?

   그녀는 눈을 떴다.

   그러나 그곳에는 검은색 망토도 금빛 머리카락도 없었다.

   온통 붉은색 일색이었다.

   그것은 마야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고, 동시에 그 사람의 머리카락이기도 했다.

   마야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카……렌……?”

   카렌이 화신의 공격을 받아내 자신을 지켜주었다.

   무려 맨몸으로.

   그녀는 마야를 슬쩍 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와 내장을 한 움큼씩 토하면서.

   “쿠, 쿨럭……. 버, 버티고 서는 건……땅 재주꾼의 특기지…….”

   그녀의 몸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져 내렸다.

   자신보다 몇십 배는 무거운 대상이 체중을 실어 내려친 공격이었다.

   아무리 땅재주의 기술을 모두 발휘한다고 해도 인간의 몸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야는 쓰러지는 카렌의 몸을 받았다.

   그녀의 두 팔은 뼈와 근육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었으며, 그녀의 두 다리는 피부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뼈와 살점이 다 비집고 터져 나와 있었다.

   마야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랬어?”

   그녀는 자신의 입을 저주하고 싶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지는 못할망정 지금 상황에 그딴 게 궁금하다니.

   그러나 카렌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야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감정했지만, 카렌은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떨리는 손과 오그라든 입술, 그리고 그녀의 눈 끝에 맺힌 눈물을.

   카렌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친구가 자신을 위해 슬퍼하고 있었다.

   “마야, 나 있지…….”

   카렌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생생하고 살아있었다.

   절대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고, 그녀의 입술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야의 냉정한 두뇌는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였다.

   카렌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