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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사범은 진성을 보낸 후 전문가들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던 이전과는 다르게, ‘마나’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전문가들을 수소문하는 것은 쉬웠다.

         

       사범은 순식간에 두 명을 구할 수 있었다.

         

       대동아전쟁에 참전했던 조상들이 노획한 물품들을 모아 박물관을 개장한 지역 유지.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자.

         

       사범은 둘에게 연락해서 자문했다.

         

       가장 먼저 진성이 마나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이 맞는지, 마나가 혼령과 상호작용을 해서 특별한 일을 벌일 수 있는지, 마나의 잔재가 남아있다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 그리고 만약 마나가 남아있다면 그것을 쉽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사범은 내심 진성의 말이 틀리기를 바랐고, 자신이 지장보살을 두 조각으로 잘라버린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기를 원했다.

       그는 결코 ‘남아있는 마나로 인해 다시 혼령이 힘을 얻어서 난리를 피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신이 수련장을 담당하고 있는 동안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것을 자기 보신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보신주의에 찌들었다고 해도 좋았고, 제 몸 하나는 끔찍하게 챙긴다고 비꼰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본래 일이라는 것은 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책임은 한없이 가벼울수록 좋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범의 소원은 이루어지기가 힘들었다.

         

       『 마나에 대한 자문이라. 좋습니다. 잘 찾아오신 겁니다. 저는 미국의 로체스터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거든요. 적어도 이 일본에서는 마나에 관해서는 권위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

       『 제가 한창 대학원에 있을 당시 교수님께서 저를 폴리네시아 쪽으로 많이 끌고 가곤 하셨지요. 하하하.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데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게다가 문화도 맞지 않고 시설도 낙후되어 있는데 다짜고짜 그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하니 당혹스러웠습디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그 사람들의 순박함에 저도 마음을 열게 되었고, 그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죠. 』

       『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폴리네시아의 섬들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전사와 주술사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전사와 주술사들은 마나를 에너지로 사용해서 이능을 발휘했고, 현대에는 도저히 이해 못할 야만적인-아, 이건 인종차별적인 말은 아닙니다. 그냥 말 그대로입니다. 정말 야만인들이나 할법한 짓을 하곤 했었거든요. 』

       『 흠, 그래서 그때 보고 들었던 것들이 지금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허허허, 이 나이를 먹고도 명확하게 박혀있었다는 것은 참…. 본래 그 시절이 잘 기억나고는 합니다마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선명히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긴 했지요. 』

       『 자.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일단 마나에 대한 설명은….』

       …

       …

       …

       『 일단,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더 깊이 들어갔다가는 끝이 없거든요. 그리고 이 이상은 전공자나 알법한 내용인지라, 생략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

       『 그런데 이거는 좀 흥미롭군요. 마나가 혼령과 상호작용을 할 경우라…. 보자. 이거 관련한 논문이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여기 있군요. 「 문화 지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마나의 발달과정에 관한 연구 」…여기에서 혼령과 마나의 결합이 나오죠. 정확히 말하자면 마나를 사용한 토템에 혼령…그러니까 그 지역에서는 조상령이나 수호령으로 취급했던 영혼이 깃들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

       …

       …

       『 …이스터섬에서 가장 거대했다고 하는 석상에서 거대한 마나가 깃들었고, 석상을 가져가기 위해 접근했던 영국의 모험가들에게 공격하기도 했지요. 이것을 본다면 물건에 빙의하거나 몸을 숨길 수 있는 악령의 특성과 마나는 분명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자명합니다. 』

       『 마나의 잔재가 남아있다면 어떻게 되냐고요? 하하하. 그거야 뭐, 똑같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겠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꿀을 엎질렀는데 거기 꼬인 개미만 치운다고 해서 거기 벌레가 또 안 꼬이겠습니까? 』

         

       학자라는 사람은 진성의 의견과 흡사한 의견을 내비쳤을 뿐만 아니라, 사범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 크게 흥미마저 느꼈다. 게다가 진성이 그와 비슷한 답변을 했다고 하자 학술적인 흥미마저 느끼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연락처는 얻을 수 있는지 묻기까지 했다.

         

       그리고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

         

       『 마나요? 아니 뭐 모르지는 않습니다. 작고하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은 물건들이 죄다 그런 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것을 물으시면 그건 또 곤란합니다. 알기는 아는데, 기껏해야 아마추어 수준이거든요. 제대로 된 답변을 원하신다면 마나를 전공하고 있는 교수를 찾아가거나, 학자를 찾아가는 게 나을 겁니다. 』

       『 일단 마나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마나라는 것은 태평양의….』

       …

       …

       …

       『 …이상입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라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

       『 마나와 혼령의 상관관계? 』

       『 아 당연히 있죠. 악귀나 악령이 수준이 좀 높아지면 에너지를 쓰는 놈도 나오지 않습니까? 기를 이용해서 몸에 상처를 입히거나, 마력을 사용해서 염동력을 사용하거나. 마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 그런데 혼령이면, 흠. 뭐 빙의한 물건에 따라서 가능합니다. 아티팩트에 깃들어서 멀쩡했던 물건을 저주받은 물건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은데, 뭐 마나로 만든 주물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밖에요. 』

       『 그냥 의견이 그렇냐고요? 아뇨, 아버지가 겪었거든요. 우리 박물관에 진열된 물건 중에 어린애 머리뼈랑 정강이뼈로 만든 완드(Wand)가 하나 있거든요?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이 물건을 일본에 전리품이랍시고 가지고 오셨는데, 이놈이 말썽을 부렸다고 합니다. 밤마다 어린애 우는 소리가 나지를 않나, 덜덜덜 떨면서 집안의 물건을 허공에 띄우고 휙휙 날아다니게 하지를 않나. 』

       『 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요. 그게 일어난 겁니다. 』

       『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절에다가 신사에다가 신부님에다가…. 온갖 사람을 다 모았다고 해요. 그리고 그 완드 안에 어린애 귀신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고, 바로 정화작업을 거쳤다고 하죠. 』

       『 뭐 저는 제 눈으로 보지는 못했으니 자세한 것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뭐 완드가 가지고 있는 주물로서의 힘이거나, 그게 아니면 그 안에 깃든 원혼이 완드에 깃든 마나를 사용해서 장난질을 친 게 아니겠습니까? 』

       『 어느 쪽인지는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날 이후 완드를 특별관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부적을 덕지덕지 붙인 유리 상자 안에다가 보관해놓은 것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정화 의식을 하고,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금줄까지 쳐놓았습니다. 그리고 금줄 역시 주기적으로 바꾸고 있고요. 』

       『 어렸을 적에는 뭐 저거 가지고 유난 떠나 싶기는 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혼령이 깃들어서 난리가 나면 곤란하잖아요? 』

       『 그래서 혹시나 해서 박물관 전체에다 부적도 붙이고, 금줄도 치고, 소금도 놓고 그럽니다. 』

         

       지역 유지의 말 역시 비슷했다.

       혼령과 마나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겪은 일이라고 생생하게 이야기까지 하고 있으니….

         

       “제기랄.”

         

       사범은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진성과 다른 두 전문가가 한결같이 말한다.

         

       혼령을 치운 것은 잘했는데, 마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거라고.

       그것을 어떻게든 치우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래, 그 의견은 맞기는 맞지.’

         

       일리가 있다.

       아니, 분명히 저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찾느냐는 말이다.

         

       장비를 이용해서 찾자니 산 전체를 들쑤시고 다녀야 하니 불가능할 것은 뻔했고, 그렇다고 기감을 펼쳐서 찾기에는 시간이 오랫동안 걸릴 것이 분명했다.

         

       기감이라는 것이 귀를 쫑긋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기를 이용해 온 감각을 깨워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신경이 곤두서니 피로도 많이 쌓이고, 기감을 펼치는데 기가 많이 소모되니 오랫동안 켜놓을 수도 없고, 그리고 사범의 경지로는 이 기감을 넓게 펼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련생들을 이용한다?

         

       그것도 불가능하다.

       훈련을 시키진 못할망정 기감을 켜고 마나의 흔적이나 수색하게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만약 그랬다가는 내 모가지가 썰리겠지.’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로 목이 썰리거나, 아무리 온건해도 팔 하나가 썰릴 것이다.

         

       시현류는 전장의 무술이며, 병사의 무술이며, 일격필살의 무술이다.

         

       단기간에 병사들을 훈련할 때 익히게 하기도 했고, 독기를 품고 있는 사람을 살인 기계로 만드는 무술이기도 했다.

         

       자기 수양을 위한 무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지극히 실전적인 무공.

         

       그리고 이런 실전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독기가 가득하고, 몸에 살기를 품고 있다.

         

       이는 시현류의 초고수, 카즈오(計夫)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침이 없고, 잔인하고, 폭급하다.

         

       ‘카즈오 대사범님….’

         

       사범은 카즈오에 대해서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뒤, 결론을 내렸다.

         

       ‘묻자.’

         

       사람을 동원해 찾는 것도,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파는 것도, 수련생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 제4의 선택이었다.

         

       그냥 이 일을 묻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어차피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포탄이 같은 자리를 때리지 않는 것처럼 이런 문제가 또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어야 하는 법.

         

       사범은 괜히 설레발을 쳐서 자신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에 알리는 것보다는, 그냥 조용히 일을 묻는 것을 택했다.

         

       세 사람이 말한 ‘또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라는 의견은 단순한 확률에 대한 말로 변했고, 앞서 방문했던 수많은 전문가가 그러했듯 거의 없는 확률을 부풀려서 언급해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작이 되었다.

         

       ‘마침 다음 주부터 폭우가 내린다고 하지? 폭우가 내리면 나무에 붙어있는 저 흉측한 얼굴들도 다 쓸려 내려갈 것이고, 수련생들이야 입단속을 철저히 하면 그만이고. 전문가들은…. 관리비에서 좀 떼고, 내 돈을 좀 써서 감사 표시를 하면 되겠고.’

         

       사범은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믿었다.

         

       모든 것이 잊힐 것이라고.

       위에 이야기가 올라가지 않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 * *

         

         

       『 저주가 마을을 덮치리라. 』

       『 하늘이 칼에 찔려 신음을 흘리고. 』

       『 마침내 쏟아진 눈물은 땅에 떨어져 피눈물이 될 것이다. 』

       『 산의 은혜를 잊어버린 자들은 저주받으리라. 』

       『 저주받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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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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