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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191화. 신뢰의 방식 ( 2 )

       

       

       

       

       

       떼거지로 모여있는 악마들의 틈에서 그림자 송곳이 솟아났다.

       땅에서 솟아난 그림자의 가시는 무자비하게 늑대와 악마의 숨통을 앗아갔다.

       

       “키헤에엑ㅡ!!”

       “깨갱! 끼잉 끼잉…”

       

       송곳이 사라진 곳에는 까맣거나 보라색, 혹은 붉은 피가 흩날리며 설원을 적셔나갔다.

       

       푸슉! 촤아아악!

       

       그림자 속에서 솟구치는 공격에 까맣게 모여있던 악마 무리가 주춤했다.

       

       그림자에서 올라오는 공격은 왼쪽에서 올라오다가, 오른쪽에서 솟구쳤고 어느 순간에는 뒤쪽에서 솟아오르기를 반복했다.

       

       상대가 그림자에 숨어 다니면서 공격하기를 반복하니,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었다.

       

       “키르륵ㅡ! 비, 비겁하다!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싸워ㅡ 쿠륿?!”

       

       날뛰던 악마의 얼굴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뚫렸다.

       뒤로 힘없이 쓰러지는 보라색의 악마의 손에는 작은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최후의 발악으로 던져보려고 했던 것일까.

       

       화아악!

       

       악마가 쓰러지면서 땅으로 떨어진 불덩이가 발밑의 그림자를 환하게 비췄다.

       한순간, 그림자가 사라지고 그 속에 숨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악!”

       

       하얀 머리의 여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햇빛에 노출된 피부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가며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여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한없이 무방비한 모습. 

       여인은 악마들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악마 중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몇몇 악마가 상황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

       그림자를 없애야 한다!

       

       “꾸-륿! 그림, 자를! 없애-라!”

       “키히이익ㅡ!! 불! 불을 가져와!!”

       

       불을 피울 수 있는 몇몇 악마들이 불을 만들어 주변의 그림자를 향해 들이밀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치이이익ㅡ!

       

       “끄아아악! 아아악!!”

       “꺄흐으으윽!!”

       

       대부분은 민첩하게 물러났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햇빛에 노출됐다.

       

       “이런…!”

       

       하얀 머리의 사내가 그림자 속에서 얼굴을 굳혔다.

       다른 동족들이 낙오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변의 그림자에서 계속 기회를 엿봤지만.

       

       “키히에에엑!! 불을! 키르릅! 피워라!”

       “그림자를 없애! 불을 더 많이 가져와!”

       

       낙오된 이들 주변에서는 악마들이 수없이 불을 피우며 그림자를 없애고 있었다.

       아예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존재하니, 당연히 불을 따라 생겨난 그림자가 존재했다.

       

       하지만 주변의 그림자에서 공격하는 순간, 악마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림자를 없애려 할 것이 분명했다.

       

       치이익ㅡ

       

       “끄흡, 으아아아ㅡ!”

       “커헉… 으, 아….”

       

       태양은 그림자에 숨어 있던 이들을 무자비하게 불살랐다.

       피부가 타들어가고 근육이 말라붙고 뼈가 뒤틀린다.

       

       그야말로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모습.

       

       악마들은 이들을 둘러싸고 오히려 낄낄거리며 구경했다.

       이대로 두는 것이 더 끔찍한 고통을 주는 방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이대로 두면 동족들은 허무하게 죽을 것이다.

       하얀 머리의 사내가 떨리는 눈으로 끔찍한 광경을 바라봤다. 이대로 손 놓고 있어야만 하는가?

       

       부웅ㅡ 콰앙!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전사들이 아니었다.

       메이스가 벼락같이 날아들며 낄낄거리는 악마들의 대갈통을 박살 냈다.

       

       “돌격! 당장 돌격해라!”

       “사악한 마귀들의 대가리를 찢고 부숴버려라! 여섯 신의 이름으로!”

       “카악- 퉷! 저 씹어 먹을 똥개들! 오늘 개처럼 좀 맞아보자!”

       

       앞선 공격으로 악마들의 진형이 크게 흔들렸고, 그 틈을 파고들며 전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제국의 기사는 제국의 강철로 빚어진 검을 휘둘렀고, 성기사는 만신전의 표식이 새겨진 메이스를 휘둘렀다.

       술 냄새 가득한 트림을 하며 활을 쏘는 북부의 전사도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불꽃을 두른 케니스가 있었다.

       

       옅게 두른 별빛을 장작처럼 태우며 신성한 불꽃을 두른 케니스는 거대한 대검을 두 손으로 휘두르며 악마를 장작처럼 토막 냈다.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푸히히히힝ㅡ!! 푸르륵! 푸르르륵!!》

       

       하얀 갈기를 휘날리는 유니콘에 올라탄 케니스의 모습은 용맹을 사람의 모습으로 그린 듯했다. 유니콘은 설원을 내달리며 악마들을 쳐 밟고 부수고 으깨며 질주했다.

       

       《푸르륵! 행복하구려! 푸히힝!》

       

       케니스를 등에 태운 유니콘은 말의 얼굴로도 웃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

       

       

       

       “흐윽… 아파, 아파…! 꺄흐읏!”

       

       악마들에 둘러싸인 여인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전투가 일어나기 전, 이름 모를 북부 전사에게 음침한 여자라고 핀잔을 들었던 여인이다.

       

       “키르르! 끼헥헥! 고, 통!”

       “불! 탄다! 너!”

       

       주변을 둘러싼 악마들이 여인을 조롱하며 비웃고 있었다.

       여인은 타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리며 절망했다. 길고 긴 생의 끝이 결국에는 햇빛에 타 죽는 것이라니.

       

       카앙! 촤아악! 부웅!

       

       “끼헤엑!! 막아! 죽여어!”

       “크르르르ㅡ! 캐앵!”

       

       멀리서 악마와 늑대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진다.

       여인이 웅크린 곳을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다.

       

       촤아악! 챙! 카가강!

       

       “이봐! 일어나!”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온 북부 전사 한 명이 웅크린 여인의 앞을 막아서며 햇빛을 가렸다.

       애꾸눈에게 이 음침한 여자는 뭐냐고 투덜거리던 전사였다.

       

       “후으… 흐으으ㅡ!! 끄으윽…”

       

       여인은 어깨를 감싸 안은 자세로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훤하게 드러난 등은 까맣게 타서 딱딱한 껍질처럼 변했고, 식은땀 가득한 피부는 고통에 물들어 시체에 가까울 정도로 창백했다.

       

       “시간 없어! 얼른 일어나! 엄살 부리지 말라고!”

       “흐으으윽… 아, 아파… 아파요…”

       “치잇!”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모습.

       짧게 혀를 찬 전사는 달려드는 악마의 대갈통을 반듯하게 쪼갠 뒤, 재빨리 망토를 벗었다.

       

       늑대의 가죽으로 만들어 두툼한 망토였다.

       어쩐지 이 망토를 본 웨어울프들이 더욱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워우우우ㅡ!! 크르륵!!”

       “에잇 진짜! 이 썩을 똥개 녀석들!”

       

       난리통에도 전사는 여인에게 망토를 덮어 햇빛을 가렸다. 그러고는 망토로 칭칭 감싼 후에 어깨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가녀린 여인의 허리는 전사의 어깨에 거뜬히 올라갔다.

       

       “후ㅡ 흐으으… 끄흐읍!”

       

       고통이 극심한지 말도 제대로 못 하며 부들부들 떠는 것이 망토 너머로 전해졌다.

       

       콰직! 부웅! 카앙!

       

       “다 비켜, 이 더러운 새끼들! 북부 제일 전사가 나가신다!”

       

       전사는 한 손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악마와 웨어울프의 골통을 쪼개기 시작했다.

       홀로 고립된 와중에도 전사의 용맹은 꺼지지 않고 불타올랐다.

       

       “이런 씹! 여기서 혼자 뭐 하는 거야! 뒤지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죽여 줄 수 있는데!”

       “흐. 잠깐 주워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등신 새끼 진짜! 여자한테 미쳐 가지고! 내가 저거 술집 루이즈한테 돈 꼬라박을 때 알아봤지!”

       

       곧장 합류한 다른 전사 두 명이 여인을 둘러멘 전사의 곁으로 모였다.

       

       북부의 전사 세 명이 모이면 두려울 것이 없으니.

       호기롭게 뭉친 전사들이 도끼와 검을 휘두르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세는 참으로 좋았으나ㅡ

       

       키르륵! 채챙! 아우우우!!

       

       “끄흑… 방패! 방패를 들어라! 전선을 유지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라!”

       “신, 신의 곁으로… 돌아가리…”

       “니미 제기랄! 화살이! 부족하구만!”

       

       기사는 팔 한쪽에서 피가 철철 흘렀고, 이름 모를 성기사의 눈동자에서 빛이 꺼져갔다.

       북부 전사는 손가락이 터져라 활을 쏘고 도끼를 휘둘렀지만.

       

       눈앞에 보이는 악마를 죽이면, 또 다른 악마가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옆에서는 웨어울프가 손톱을 찔러왔고, 밑으로는 작은 악마가 발을 노리며 튀어나왔다.

       

       죽여도 죽여도 악마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절대적인 수의 부족.

       인간과 악마들 사이에 그어진 전선이 천천히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악마들이 전사들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

       

       

       

       

       

       “좋지 않네요…”

       

       케넬름이 초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서리용과 프리가의 활약으로 눈사태를 막아냈고, 잊힌 종족 중 하나의 활약으로 피난민들도 무사히 도망쳤다.

       

       잊힌 종족에 대한 것은 케넬름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그녀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의 눈을 빌려 지상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기분 좋은 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케넬름이 초조하게 지켜보는 여러 개의 거울은 각기 다른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하나는 설산의 꼭대기를, 다른 하나는 치열한 전장을. 그리고 마지막 거울에서는 케니스의 얼굴이 보였다.

       

       – “이런…! 유니콘, 저쪽! 저쪽에 고립된 이들이 있어요!”

       – 《푸히힝! 꽉 잡게 처녀여!》

       

       성스러운 유니콘과 함께 악마를 벌레처럼 으깨는 케니스의 용맹한 모습은 소싯적의 자신을 쏙 빼닮았다.

       

       케넬름은 살짝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애용하던 작은 망치가 허리춤에서 무게감을 자랑했다.

       

       보고 있자니 자신까지 손이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역시.’

       

       케니스와 유니콘이 미친 듯이 날뛰며 전장을 휘저었지만, 그럼에도 전선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역시 밀린다.

       

       케넬름이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가 이베르에게 사용한 별빛 조각은 색을 잃어 돌멩이가 된 지 오래였고, 바다는 여전히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위대하신 분이 일어나야 했다.

       

       “커읍!… 크어어ㅡ”

       

       여전히 깊은 잠에 빠진 모습. 케넬름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망치를 힐끔 내려봤다.

       

       딱 한 대만 치면, 일어나시지 않을까?

       

       방금까지 케니스가 악마를 쳐부수는 것을 봐서 그런지 유독 손이 근질거렸다. 저도 모르게 손이 망치로 향한다.

       

       케넬름이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찰싹! 때렸다. 어찌 이런 불경한 생각을 또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케넬름은 머리를 쥐어싸며 자책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종종걸음으로 잠든 이의 곁에 다가갔다.

       

       “스읍… 후우ㅡ”

       

       잠시 숨을 고른 케넬름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무릎 꿇었다.

       

       그녀는 그간 위대하신 분의 모습을 엿보며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많이 봐왔다.

       

       작은 사람들이 나와 연기하는 까만 상자도 그중 하나였는데, 신비한 상자에서 본 것 중에는 잠든 이를 깨우는 방법도 있었다.

       

       ‘위, 위대하신 분의 세계에서 본 것이니까…! 위, 위위위대하신 분에게도! 효과가 있을 테죠…!’

       

       입맞춤이다.

       

       상자에서는 잠든 이를 입맞춤으로 깨웠다.

       

       케넬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명석한 이성은 정말 입맞춤으로 잠든 이를 깨울 수 있는 거냐는 의문을 제시했지만, 폭주하는 감성이 이를 단숨에 제압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웠고,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이 새빨갛다. 케넬름이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새하얀 면사포를 들어 올렸다.

       

       하얀 피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입술이, 오똑하게 솟은 코가 보인다. 이윽고 물기 가득한 벌꿀색 눈동자가 보였다.

       

       “후, 후우… 후우…”

       

       챱챱!하고 제 뺨을 두들긴 케넬름이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했다.

       

       ‘부, 부부불경을! 용서하세요!’

       

       어쩔 수 없는거다.

       이건 모두를 위해서다.

       

       케넬름은 미친 듯이 속으로 되뇌았다. 비록 폭주하는 심장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

       

       쿵 쿵 쿵 쿵.

       

       점점 얼굴이 가까워진다.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심장이 더욱 크게 뛴다.

       

       케넬름은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실책이었다.

       

       눈을 감으니 오히려 감각이 예민해져서 상대의 숨결마저 느껴졌다.

       

       쿵 쿵 쿵 쿵ㅡ!

       

       “으, 으으…!! 후으읍!!”

       

       상대의 숨결이 뺨을 간지럽히고, 각오를 마친 케넬름이 있는 힘껏 다가갔다.

       

       그리고ㅡ

       

       

       

       

       

       *****

       

       

       

       

       

       “아. 익숙한 천장이다…”

       

       나는 눈에 익은 천장을 보며 일어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교차가 미쳤군요. 독자님들 모두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 ‘신선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망치를 휘두르다니…? 대신 잠자는 공주?님을 깨우는 뽀뽀를 드렷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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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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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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