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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침묵이 감돌았다. 

       

       아까는 건물 무너지는 소리라도 났지, 지금은 개미 기어가는 소리 하나도 나지 않는 완벽한 고요였다. 

       

       차라리 레키온이 바로 방금 했던 말을 부정하면서 ‘하하. 제가 잠이 좀 덜 깨서 헛소리를 좀 했나 봅니다.’ 같은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좀 나았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레키온 본인마저 ‘아.’ 한 마디를 내뱉고 얼어 있다는 건….

       

       ‘설마 알고 있었던 거야…?’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걸?

       

       어떻게?

       

       왜…?

       

       등골에 서늘함이 스쳤다. 

       

       따지고 보면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아는 건, 같은 드래곤인 이드밀라를 제외하면 실비아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실비아는 엘프인 데다, 원래부터가 드래곤의 조력자 부족 출신이다.

       

       드래곤과 관련 없는 외부인에게 아르의 정체를 들킨 적은 한 번도 없는 셈이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레키온이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우리를 해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니지, 아직 신성력을 다 쓰고 회복하기 전이라면.

       지금이라면 아르의 힘과 나의 힘, 그리고 실비아의 전력까지 쏟아붓는다면 레키온을 처리하고 데보라의 입까지 막을 수도….

       

       ‘아니, 잠깐…. 잠깐만.’

       

       아르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뇌정지가 올 뻔한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애초에 방금 레키온이 힘을 다 쓴 게 하무트교 놈들에게서 우리 아르를 구하기 위해서였잖아.’

       

       그렇다는 건, 레키온은 아르가 드래곤인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해 줬다는 건데.

       

       ‘혹시 드래곤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 같은 건 없는 편인 건가?’

       

       그렇다고 하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나는 일단 침을 꿀꺽 삼킨 뒤, 한손을 아르의 배에 올리며 먼저 침묵을 깼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비로소 멈췄던 시간과 공기가 다시 흐르는 것 같았다. 

       

       “…….”

       

       레키온은 잠시 푹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 착잡한 표정이었다. 

       

       뭐 직접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잘 지낸 게 그리 착잡할 것까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레키온한테는 그게 아니겠지.’

       

       원체 정의롭고 거짓말도 잘 못 하는 성격이다.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마 레키온의 마음속에서는 죄책감이 조금씩 쌓여 왔을 것이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사이인 데보라한테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니, 표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데보라, 숨겨서 미안해.”

       

       데보라는 어울리지 않게 얼빠진 표정으로 레키온과 아르를 번갈아 보았다. 

       

       “아니, 미안하고 자시고…. 드래곤이라니 그게 뭔 개소리야? 이 쪼그만 녀석이 그 천 년 전에 모습을 감췄다는 용족이라고?”

       

       데보라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아르의 똘망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레키온이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보다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저게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몰랐다. 

       

       데보라는 가까이 와서 아르의 말랑한 볼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뀨우.”

       

       아르는 작게 뀨 소리를 냈다.

       

       “이 말랑한 녀석이?”

       

       데보라는 아직도 못 믿는 눈치로, 아르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아르야. 말해도 돼.”

       

       보다 못한 내가 허락하자, 아르는 데보라를 보며 말했다. 

       

       “온니, 저 드래곤 마자여.”

       “꺄악!”

       

       아르가 사람 말을 하자 데보라는 즉시 아르에게서 손을 떼며 비명을 질렀다. 

       

       “까, 깜짝이야. 말도 할 줄 알아?”

       “넹!”

       

       데보라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사람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마물이 와이번일 리가 없으니 드래곤이 맞긴 한 것 같은데, 여전히 인지부조화는 해결되지 않은 듯했다.

       

       나는 데보라를 혼란스러워하게 내버려 두고, 레키온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기왕 들킨 거, 궁금한 건 다 물어볼 생각이었다. 

       

       “혹시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다거나? 아니면 그전부터? 그러고 보니 아르 인형을 가지고 계셨던 게…. 설마 저희를 데보라 님의 할머니 가게로 가도록 일부러 유도한….”

       “그, 그렇게까진 안 했습니다! 아니, 못 하죠. 제가 무슨 재주로…. 데보라에게 아르 인형을 받고 아르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그 뒤가 우연이 아니었을 뿐이죠.”

       

       레키온은 이야기의 전말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제 입으로 새삼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저는 귀여운 걸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르 인형을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죠. 문제는 실물 모델이 있다는 말을 들어 버린 데에서 시작됐습니다.”

       

       레키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르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제 친구 중에 좀 정보에 밝은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에게 아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죠.”

       

       아.

       여기서 알렉스 찬스를 쓴 거였구나. 

       

       “그 친구가 은신에 좀 능해서, 미행을 하다가 아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본 겁니다. 그래서 알게 된 거예요.”

       

       황실 직속이라 상당히 바쁠 텐데, 그런데도 도와준 걸 보면 레키온이 어지간히 아르를 보고 싶다고 졸랐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왜요, 실비아 씨? 뭐 있어요?

       -아뇨, 방금 아주 잠깐 누군가가 저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어서….

       

       투호르반에서 지낼 때, 실비아가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사실상 투호르반에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그게 알렉스였을 줄이야.

       

       ‘알렉스 정도면 실비아 씨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은신하는 게 가능하지.’

       

       그럼 나도 조금 아는 척을 해 볼까. 

       

       “아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걸 봤는데도 저희가 못 알아차릴 정도였다니, 그 정도면 거의 황실 직속 암살자 수준인데요?”

       

       내 말에 레키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서 조금 진정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보라의 눈도 다시 커졌다. 

       

       “그, 그걸 어떻게?”

       “야, 레키온! 거기서 그걸 어떻게라고 말하면 어떡해!”

       “아.”

       

       레키온이 또다시 말실수를 한 자신을 자책하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나는 황급히 레키온을 말렸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대신 저희도 비밀을 하나 더 알려드릴게요. 여기 있는 실비아 씨, 사실 9성 검사예요.”

       “그리고 전 인간이 아니라 엘프랍니다.”

       

       실비아가 데보라를 보며 윙크했다.

       

       “…….”

       “…….”

       

       이젠 놀라는 것도 지친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르가 드래곤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임팩트가 강했든지.

       

       “그래, 어쩐지 검술이 예사롭지 않다 했어.”

       “알렉스가 은신 들킬 뻔했다면서 심상치 않다고 말씀하시길래 실력자이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인간 사이에서 검술로는 거의 최상의 재능을 가지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레키온과 데보라가 동네 용병 길드에서 남편이랑 수련하고 있는 B급 용병에게 검술로 감탄을 하다니, 아무리 실력을 숨겼어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긴 했다. 

       

       “그 어려운 의뢰들을 그렇게 완벽하게 빨리 처리하신 것도….”

       “실은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조절을 하느라 늦었죠.”

       “허어….”

       

       레키온은 궁금했던 게 하나 생각났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럼 대륙 남부에서 뒷골목 세력들을 정리하며 맛집 탐방을 다녔다는 가족이 레온 님 일행이 맞는 건가요?”

       “아아. 맞아요. 그거 관련해서 이제 말씀을 드리면….”

       

       이제 정체가 밝혀졌으니 하무트교와 헤카르테교에 대해서도 마음껏 말할 수 있다. 

       

       “남부에 헤카르테교라는 집단이 있었는데, 얘네들은 하무트교랑 마찬가지로 헤카르테라는 마왕을 섬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랑 그 이드밀라라고 하시는 드래곤 분이 또 있는데….”

       

       이야기를 들은 레키온과 데보라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마왕이 하나가 아니었다고요?”

       “벌써 마왕 하나를 그럼 봉인하신 겁니까…? 대체….”

       “이드밀라 님의 도움이 컸고, 마왕도 완전히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무사히 잡을 수 있었죠. 이드밀라 님은 잠들었지만, 앞으로 단장님이랑 부단장님이 힘을 합쳐 주신다면 만약 하무트가 직접 부활을 한다 해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힘을 합쳐야죠! 하무트교….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끝까지 싸워 없앨 겁니다.”

       

       레키온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리고 꽤나 회복이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앞으로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요.”

       

       레키온은 악수를 하러 다가오려다가, 아르를 내려다보았다. 

       

       “잠깐만요.”

       “네?”

       “그…. 아르야. 나가기 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거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될까?”

       

       기사들 앞에서 변신할 수는 없으니 아무도 안 볼 때 원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음…. 알게써여.”

       

       아르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슈우우우, 하고 커져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와….”

       “와….”

       

       어느새 사람 키보다 조금 더 커진, 뚠뚠한 덩치의 아르를 본 레키온과 데보라가 동시에 감탄했다. 

       

       “미쳤다…. 이건 미쳤어….”

       

       특히 왕 커서 왕 귀여운 아르를 본 레키온의 광대는 벌써 승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레키온이 참지 못하고 아르를 껴안기 위해 달려들려는 순간.

       

       “삼쵼.”

       “응?”

       

       아르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레키온을 불렀다. 

       

       “왜 그러니, 아르야?”

       

       레키온의 물음에 아르가 입을 열었다. 

       

       “아르 드래곤인데 갠차나여?”

       “음, 그게 무슨 뜻이니?”

       

       아르가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삼촌은 용사라서, 드래곤을 보면 해칠지도 모른다구 구래서…. 솔찍히 쪼금 무서웠어여.”

       “……!”

       

       레키온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걸 망설였구나. 아냐, 괜찮아. 내가 그동안 아르가 얼마나 귀엽고 착한지 봐 왔는데 왜 해치겠니?”

       

       그러자 아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르는 왕 커진 손을 모아 젤리를 살포시 맞대었다. 

       

       “아르, 착한 드래곤이에여. 사람들 마니 도와줬어여. 그럼 갠차나여?”

       

       밝아진 표정, 더 커진 동그란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를 올려다 본 레키온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아르에게 달려들었다.

       

       “그럼! 괜찮고말고!”

       

       꽈악.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아르의 목을 껴안은 레키온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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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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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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