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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뭐!”

         

         – …아무것도 아닙니다. –

         

         할 말이 있으나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 제로였지만, 말투는 불량할지언정 몸은 외출할 채비를 끝마치느라 바빴다.

         

         나도 몇 없는 준비물을 점검하는데 신경을 쏟고 있었고.

         응…? 그게 대체 뭐냐고? 이제 막 겨우 집이나 구한 사람에게 뭐 특별한 게 있겠나? 늘상 가지고 다니던 그 녀석이지.

         

         찰칵!

         클립에 가지런히 정렬된 대구경 권총탄을 수동 삽탄기(Magazine Loader)를 이용해 단번에 탄창 안에 꽂아 넣었다.

         

         여분 탄환을 짤랑거리며 들고 다니다가 한 발… 한 발 정성스럽게 낱개로 탄알집에 채워 넣는 날 보고 기가 막혀 한 헬레나가 추천해준 일품으로.

         

         원래는 경찰에 납품하는, 자동화 삽탄기를 못 쓰는 경우를 대비한 야전용 군수품이랬었나? 덕분에 내 엄지손가락과 군용 장갑의 수명 증진에 크나큰 도움을 받은 물건이다.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그런데 설마… 여태 가방에 그런 걸 넣고 다녔던 거냐고?

         

         당연하다! 온갖 구급약품에 복용약에, 비상 식량이나 이런 가재도구(?)까지 싸들고 다녀야 하는 방랑 생활을 우습게 보지 말아라. 내가 괜히 단벌 신사와 비교당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니랍시고, 속옷 차림새로 침대에 걸쳐 앉아서 이러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 제가 여기 있습니다만. –

         

         “그… 나도 꽤 복잡한 성관념을 가진 사람이기는 한데. 너에 비하면 진짜 반딧불이 같은 거니까, 그건 나중에 네가 그런 말을 담담하게 꺼내기 힘들어지면 얘기할래?”

         

         이게 혹시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는 생체형 안드로이드 몸을 구해주지 않은 내 탓일 수도 있을까, 하다못해 플라토닉한 성별 개념이라도 가져주면 좋으련만. 인공지능 육아가 이렇게나 어렵다 참.

         

         하여간, 간단한 총기 수입이 끝났으면 확실하게 장비까지 해야 한다.

         지금은 편하게 그냥 클릭하거나… 끌어서 빈 칸에 올려놓는다고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제는 익숙하게.

         풀어왔던 홀스터를 당겨 제대로 딸깍하는 소리가 나도록 허벅지에 끼우고, 아프지는 않지만 절대 흔들리지도 않게끔 벨트를 조여 고정.

         

         거기에 피스메이커를 끼우고 덮개를 닫아주면 내 기본 무장의 반은 갖춘 셈이다. 나머지는… 수트만 챙겨 입으면 끝이다.

         과연 오늘 요걸 쓸 일이 있을지는 당장 알 수 없어도, 아론이 당최 무엇을 바라고 나를 카지노로 불렀는지 모르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카지노(Casino)라는 것은 결국 공인된 도박장을 뜻한다.

         꼭 돈을 거는 게 아니더라도 ‘우연히 나온 결과’에 따라 승자에게는 재산상의 이익을, 패자에게는 손실을 주면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뭐, 그것마저 허용되지 않았던 어느 극동의 두 나라는 따로 편법적인 경품 환전소를 세워서까지 이를 악물고 운영하려는 사람들이 넘칠 만큼 수익성이 보장된 사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도박장의 목적이자 목표,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하면 당연히 찾아오는 고객들의 지갑을 극한으로 우려내는 게 일순위일진대.

         

         왜 그런 곳에 뜬금없이 나를… 그것도 든든했던 가상 계좌 열사님의 장례를 치른지도 얼마되지 않은 이쪽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 초대하려는 건지.

         

         “……아니지?”

         

         잽싸게 팔을 쭉 뻗어서 탁자 위에 있던 샛노란 플라스틱 카드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었다.

         두어 번 드나든 경험이 있는 금고방에서 본 물건이다. 안에 크레딧을 넣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충전형 직불 카드.

         

         내가 카지노에서 사용할 유흥비나 칩 값을 전부 저쪽이 부담하는 시점에서 돈은 목적이 될 수가 없다. 나를 원하는 장소에 부르기 위한 구실이라면 또 모를까.

         

         심지어 조금 조사해보니까, 파라다이스 산하 사업장도 아니고 소유주가 따로 있는 꽤 드문 사설 카지노던데… 그럼 뭘까 대체.

         

         명확하게 선을 긋고 각자의 입장을 재확인했음에도 음흉하기 그지없는 아론 녀석의 속내는 정확하게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급발진에 대한 사죄로 제시한 보상안이지만, 어디까지나 노골적인 접대 게임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마련한 장치?

         혹은 내가 따로 할 일이 있음에도 막상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비밀에 붙이려는 간교한 술수?

         

         “으음….”

         

         ……존나 하나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서로 얼굴 마주 본 채로 건방 떨지 말라느니~ 아닌 척 시치미 떼는 건 그만두라니~ 그런 식으로 신나게 으르렁거린 게 불과 하루이틀 전인데.

         

         지금 갑자기 꼴사납게 연락해서 ‘크흠… 그래서 이게 사과의 표시 겸 성의야? 아니면 허가서나 밀린 공과금을 대신 내준 가격으로 내가 해내야 할 모종의 의뢰야…?’ 하고 뒤늦게 묻는 것도 좀…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다고 강하게 항변하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짓을 해버리면 내가 지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놈의 콧대가 천장까지 올라갈 게 뻔하다니까!? 그걸 어떻게 두 눈 뜨고 용납해? 차라리 흙을 뿌려…!

         

         톡톡.

         이마 근처가 지끈거려서 쥐고 있던 카드 모서리로 여러 차례 두들겼다.

         

         그래도 이 정도로 열변을 토했으면 이 외출의 당위성은 모두가 이해해 주었으리라 믿는다.

         또한… 어차피 가야 하는 일이고, 피할 수 없는 행사라면 최대한의 이득을 보기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도.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겁나 굶주린-주로 잔고가- 사자인 내가 주어진 먹이감에 달려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 아샤님. 입장상 무조건 가야 한다는 점은 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가볍게 즐기시는 거라면 모를까… 본격적으로 요행에 기대려 하시는 건 과연 어떠신지…. –

         

         “후흐흐…. 이 귀여운 녀석, 그건 바로 내가 안일하게 불확정성에 기댄다는 가정이나 전제 조건부터가 전혀 틀렸다는 거지!”

         

         비록 당장은 길어봐야 하룻밤의 짧은 산책으로 보고 있었지만.

         

         이게 파라다이스의 비공식적인 의뢰라면 예상 이상으로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집안 구석구석 전자기기들의 자리비움 기능과 케어봇 집사 권한 간의 상호 작용을 꼼꼼하게 확인한 제로가 걱정스러운 충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나는 그렇게까지 무대책이 아니라고? 어??

         

         자신감 넘친다는 건 분명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확고한 근거가 있는 부정을 던질 수가 있었으니.

         

         자, 아직은 가게 입장 시간까지 여유가 좀 되니까 우리 같이 골머리를 앓아보도록 하자.

         단순한 것과는 거리가 먼 아나스타샤라는 뒤죽박죽인 존재에 대해서.

         

         …싫다고? 안타깝지만 설령 동의하지 않아도, 내 고민과 고뇌의 나날이 아까워서라도 일방적으로 떠들 생각이니까. 각양 각종 스팸 메일과 꾸준한 사이버 테러에 범벅이 되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계십쇼.

         

         우선 내가 ‘나’라는 객관적인 증언과 증거는 제로를 통해, 그리고 또 상당히 아슬아슬했던 잠입 수사를 시행한 끝에 간신히 가설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슬프게도 원래 육신은 단백질 덩어리로 바스러지고, 뇌도 재생하는 과정에서 여러 실험과 자극에 노출된 탓에 다양한 혼선을 겪었지만… 어쨌든.

         

         그러면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어…?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정말 순수한 기적, 압도적인 과학 기술력, 거기에 한 바보 인공지능의 편애까지 어우러져서 태어난 우연의 산물이란 말인가?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런 변명으로는 하드웨어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는 차원 간섭기 설계도면은커녕, 부유하던 무의식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세계와의 접선.

         내가 일정 선을 넘으려던 순간 가로막았던 정체불명의 의지 중 그 무엇도 똑바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 손안에 쥐게 된 꽤나 강력한 능력, 최초로 설정한 스탯과 강제로 비례하듯 제한된 육체의 한계.

         일종의 캐릭터 설정처럼 음습하게 바짝 다가온 거슬리는 올가미들.

         

         이걸 동시에 만족시키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다.

         가령… 필연성이라던가. …운명? 운명은 너무 정해진 길을 쫓는 것처럼 느껴져서 별로다. 내 안의 반항심이 마구마구 자극된다고 할까, 스스로 걸어 놓은 양심의 제약들을 전부 벗어 던지고 싶어 진다고 할까.

         

         얘기가 중간에 좀 샜는데, 결국 하려던 말은 그거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빈도와 치명타율을 강제로 높여주던 행운이라는 지표가 선천적으로 높다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처음에야, 이런 낭만만 넘치는 우중충한 잿빛 세계에서도 가는 곳마다 어찌저찌 좋은 인연을 얻게 되는 것 같아서 마냥 좋아했는데.

         

         부드럽게 풀리는 일 하나 없는 더러운 악운과 그 와중에도 기적처럼 솟아나는 천운을 번갈아가며 체험하다 보니 슬슬 궁금증이라 쓰고 실험 정신이라 읽는 삐뚤어진 오기 겸 아이디어가 생겼다.

         

         이걸 순수한 확률 싸움으로 끌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악마적 발상이.

         

         하늘의 기운이 개입해서 도박사의 오류를 강제로 수정해 버리기라도 하나?

         말도 안 되는 외부 요인이 나타나서 평균 회귀를 보장해준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베팅 금액을 계속 두 배로 늘리면서 걸다 보면 언젠가는 억만장자 될 수 있다는 금단의 돈 복사 이론이 마침내 현실이 될…… 크흠! 요건 실수, 시꺼먼 본심이 살짝 섞였는데 못 들은 걸로 해주시길.

         

         아무튼지간에 이런 무지막지한 이론을 남의 돈으로 실험할 절호의 기회가 와버렸으니, 나름 승부사 기질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는 도저히 검증 욕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는… 그런 얘기이다.

         

         “흐후흐, 흐헤헤…!”

         

         – 저에겐 영락없는 중독자의 ‘흐름을 탔다. 그러니 이긴다.’ 와 유사한 레퍼토리처럼 들립니다만…… 아닙니다. 믿겠습니다. –

         

         그래, 그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데 손해볼 게 어디 있어? 잘 안 풀리면 화풀이 삼아 음식이나 실컷 먹고 오면 그만이니까 뭐.

         

         …좋아, 날 원망하지 마라 카지노 녀석들. 오늘의 나는 아론이라는 진짜 악마가 내린 시련이나 다름없으니까… 슬슬 가보자고.

         

         훌쩍 몸을 일으키며 손가락을 몇 번 튕겨본다.

         

         다행히 실컷 스트레스를 해소한 덕분인지 컨디션은 물론 능력의 출력조차 절호조.

         운영 측이 과도하게 유리한 수작질을 부릴 경우, 여차하면 이쪽도 상식 외적인 대응책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니 나를 막을 테면 어디 한 번 막아 봐라…!

         

         – 잠시, 아샤님? 이대로 전투 수트를 착용하실지, 혹은 미스터 드레이퓨스가 보낸 드레스를 입고 가실지는 정하셨습니까? 일단 양쪽 모두 깨끗하게 세탁해 두었으니 편하게 고르셔도 괜찮습니다. –

         

         “아.”

         

         아. 망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인?체 실!험

    겨우 요거 쓴다고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여나 내일 연재분이 정시에 올라오지 않는다면 ‘허허 이 인간이 느려터져가지고 또 다 못 썼구나 껄껄껄’ 하고 편하게 때려주세요.
    으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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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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