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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그 시각, 제국 황궁 지하.

     

     끼릭, 끼릭, 끼릭.

     

     요철이 맞물려 떨어지는 소리가 지하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중간중간 무언가가 갈리며 가루가 만들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민소매에 용접 기구를 양손에 들고 좌우로 나사를 돌리는 청발의 남자-합스베르크 황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폐하.”

     황제의 맞은편, 빈 마석에 마나를 집어넣었다가 그걸 손으로 꾹꾹 누르며 ‘액체화’시키고 있는 클레이돌 후작이 반쯤 풀린 눈으로 물었다.

     

     “이제와서 마도공학을 배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다네, 클레이돌 후작.”

     “저는 궁금한 걸 여쭤본 게 아니라, 본심을 좀 말씀하시라고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게 궁금한 걸 물어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연구진들을 며칠째 집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요?”

     클레이돌 후작이 자신의 뒤에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하얀 가운에는 기름때가 찌들어 있고, 머리는 며칠을 감지 못한 것처럼 엉겨 붙어있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피부는 당장이라도 트러블이 일어날 것처럼 퍼석퍼석했다.

     “저도 마찬가지고, 다들 휴식은 없습니까?”

     “일생일대의 발명을 두고 어찌 함부로 휴가를 논할 수 있을까. 황제부터 지금 솔선수범하여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마당에.”

     “정무도 보셔야죠.”

     “정무는 이거 연구하면서도 볼 수 있다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제 말은, 저기 황제의 집무실로 가셔서 나랏일을 좀 돌보라는 말이었습니다.”

     “왜. 내가 떠난 사이에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잠이라도 자려고?”

     “예!!”

     클레이돌 후작이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저희가 이렇게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지하에서 기체 개발에 동원되기 위해 이렇게 된 줄 아십니까?!”

     “그게 아니어도 내가 그렇게 해줬으니, 내 명령과 지시를 따라야지. 황명이야.”

     “끄아아…!”

     “크, 클레이돌 후작님…!”

     연구원들이 폭주하려는 듯한 클레이돌 후작을 향해-

     “부, 부디…!”

     “제발…!”

     응원을 보낸다.

     순수한 무력파로서 이 자리에 불려 온 것은 그저 빈 마석에 마나를 불어넣어 액화상태로 만들기 위함이었고, 그는 마도공학자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며칠, 아니 보름-약 15일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먹고 연구하고 마시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면서, 그들은 어느덧 동지애와 전우애가 생겨났다.

     “폐하!”

     “그런다고 귀 안 먹어.”

     “이런다고 그레이 지브롤터가 좋아할 것 같습니까?!”

     

     뚝.

     직접 기계 부품을 조립하던 합스베르크 황제의 손이 멈췄다.

     “그러면?”

     “황제폐하께서 이렇게 연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레이 지브롤터는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

     “애초에 이건 제국의 기밀이자 극비사항입니다. 이미 ‘프로토타입’을 보내셨다고 하니 지나간 일이지만, ‘플라잉 바이크’의 첫 시험기를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보냈다고 그가 반길 리가 없잖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당연히 그게 세간에 노출되면 분명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또 내놓으라고 난리를 칠테니까요!”

     연구원들은 뒤에서 숨을 죽인 채 클레이돌 후작을 향해 기도했다.

     “시험기를 무능왕에게 빼앗긴다. 경룡장에서 그 수치를 당하고도?”

     “폐하께서는 무능왕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알고는 있지만, 또 그런다고? 정치적인 상황이 또 바뀌었고, 이번에도 또 그 짓을 하면 전면전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누군가를 위해 자수를 열심히 하며 받는 사람이 얼마나 기뻐할까 손도 멈추지 않던 영애와도 같았던 합스베르크 황제가 손이 멈춘 지금이야말로 기회.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어디까지가 선인가, 그걸 확인하려고 할 수도 있겠어.”

     “그렇죠?”

     “하지만 그건 걸렸을 때의 이야기 아닌가. 그레이 지브롤터도 함부로 이걸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야.”

     “크아아아…!”

     다시, 황제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레이돌 후작은 마음 같아서는 저 손을 냅다 잡아다가 황제를 강제로 침실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었다면 이미 열흘 전에 그렇게 저질렀을 것이다.

     설령 황제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중죄이며 반역이라고 하더라도.

     “폐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쉬고 싶습니다!”

     인간의 정신을 가진 이들이 보름 동안 도합 20시간조차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 연구하는 건 어지간한 곳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백은가루가 된다면 평생 쉴 수 있다네, 경.”

     “하…!”

     “그러니까…응?”

     삐비빅.

     합스베르크 황제의 허리에 채워진 직사각형의 마석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 그래. 나다.”

     [또 우리 애들 괴롭히고 있지요, 폐하.]

     “아앗…!”

     직사각형 마석에서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연구원들의 붉은 눈동자에 희망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회장님…!”

     “괴롭히다니. 한 달에 십만 탈러씩 받아 가는 인간들인데, 이 정도 성과는 내줘야지.”

     [크런치도 정도가 있죠. 그만두셔도 될 것 같아요.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인계 마쳤으니까.]

     “정말인가?”

     [예, 예. 그러니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빼앗길 걸 대비해서 2호기, 3호기 여분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런가….”

     합스베르크 황제가 조금은 허탈하다는 듯 좌우로 날개가 달린 바이크 비슷한 무언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무능왕에게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뭐. 그레이 지브롤터가 뭔가 전하라고 한 말은 없던가?”

     [전해도 되나요?]

     “뭐든지.”

     [이걸 받았으니, 어디에 있든 아스타시아에게 더 빨리 날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

     합스베르크 황제가 입꼬리를 아래로 비틀었다.

     누가 봐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말이라 심사가 입술처럼 비틀린 것 같아, 연구원들과 클레이돌 후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을 죽였다.

     “아스타시아에게, 라.”

     [왜요. 합스베르크에게 날아가는 게 아니라서 실망하셨나?]

     “별다른 말 없으면 끊지.”

     [아니, 폐하. 지금-]

     뚝.

     합스베르크 황제는 마석의 윗부분에 달린 원을 꾹 눌렀고, 곧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은 아스타시아를 위해서, 인건가. 하.”

     “폐하.”

     “참으로 안타깝군. 그래도 사실상 처음으로 제국에서 만들어 낸 ‘비행체’인데. 본인이 타지 않고.”

     “그…폐하.”

     클레이돌 후작이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능왕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면, 그레이 지브롤터에게는 아스타시아 황녀 전하를 태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백만금을 가져다주는 것보다, 아스타시아 황녀 전하를 위한 무언가를 보내서 황녀 전하를 기쁘게 하는 게 그레이 지브롤터의 환심…을 사는 게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

     합스베르크 황제는 뚱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스패너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나의 선물이라는 걸 좀 생각해 줬으면 좋겠건만.”

     “…….”

     “알고 있지. 내가 모를까. 그레이 지브롤터의 행복은 모두 아스타시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내가 그래서 아스타시아를 위해 온갖 드레스와 보석을 보내고 있고, 그 덕분에 제국인들이 나를 무슨 팔불출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크흠.”

     “모든 것은 그레이 지브롤터를 위한 것이거늘.”

     “폐하. 정말로 다음 대의 황위를 물려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합스베르크 황제는 뭘 당연할 걸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반역해보려고?”

     “…….”

     “내가 죽은 뒤에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반역하려고 한다면 어디 한 번 해보시게. 그레이 연대기에 올라갈 숙청 명단에 클레이돌이라는 단어가 당당히 올라가게 될 테니.”

     “누가 반역을 한답니까.”

     클레이돌 후작은 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황녀님과 그레이 지브롤터 사이에서 나오는 자식이 남자든 여자든, 다음 황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걸 노려보는 거죠.”

     “안 돼.”

     “예?”

     “딸이든 아들이든, 둘 사이에서 나올 자식이 나중에 장성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를 낳아야 할 상대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거든.”

     “……예?”

     “뭐, 그건 나중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합스베르크 황제는 싱글벙글 웃으며, 날개가 달린 바이크를 가리켰다.

     “충분히 쉰 것 같으니, 다시 일하지. 이번에는 풍석의 출력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도록 잘 조정해야 할 것이야. 페달을 밟는 걸로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고, 이 ‘키’를 이용해서 비행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끄아아…!”

     “폐, 폐하…!”

     “뭐 해? 연구해야지. 내가 그레이 지브롤터 덕분에 자네들을 어떻게 쓰면 될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어 눈이 뜨이는 기분이야.”

     합스베르크 황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둡던 연구실 천장에 회색의 마석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악…!!”

     “누, 눈이…!!”

     마석을 통한 발광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원들은 전부 손으로 눈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빛과 함께 드러난 그들의 머리는 하얗고, 눈은 붉고, 다들 송곳니가 뾰족하게 나 있었다.

     “후후후. 인간은 수면이 필요하지만, 블러디 엘프는 수면이 필요치 아니한 법. 어서 모듈을 짜게. 이번 시범 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번 실험은 여기에서 마무리 짓는 걸로 하지.”

     “우, 우오오…!!”

     좀비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연구원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폐하.”

     오직, 클레이돌 후작만이 침을 삼키며 전신을 떨었다.

     “어디까지가 성공입니까?”

     “그야 당연히….”

     탕.

     “내가.”

     합스베르크 황제는 바이크에 달린 날개를 손으로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레이 지브롤터와 함께 이 비행체를 타고, 저 하늘을 함께 달릴 수 있는 안정성이 확보될 때까지.”

     “어…대화, 13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13분? 하, 나와 그레이의 대화가 고작 13분으로 끝날 것 같은가?”

     

     합스베르크 황제는 비행체의 연료로 들어갈 빈 통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었다.

     “13분이 아니라 13시간이어도 모자랄 것이야.”

     꽈아악.

     “13일이면 더 좋고.”

     “…….”

     “어서 일해. 비행체가 아무리 못해도 1시간은 날 수 있어야지, 고작 13분이 뭔가.”

     “하….”

     클레이돌 후작은 머리에 열이 올랐으나, 그 열기를 가려줄 머리카락은 블러드 엘프가 된 뒤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어디서 무슨 미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귀가.”

     아스타시아와 함께 플라잉 바이크를 타고 밤하늘을 나는 중, 나는 귀가 이상하게 간지러웠다.

     “제가 귀에다가 속삭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그런 것도 있겠군요. 제가 속삭여 드릴까요?”

     “뭐라고요?”

     “사랑해?”

     “아하하.”

     아스타시아는 낮게 웃으며 바이크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렘버리나 한 번 더 살피죠. 모처럼 이런 것까지 생겼으니.”

     “예.”

     마스터급은.

     “대충 이 정도 높이에서 낙하한다면, 손과 발에 비행석을 달고 짧게 방출하는 식으로 세 번 정도만 해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상으로부터 2km 높이에서 떨어져도, 중간중간 추락을 끊어주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소음이라거나 그런 건 조금 신경이 쓰이겠지만, 아직 시간은 좀 남아있…응?”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

     “왜 그러세요?”

     “하.”

     렘버리가 열리는 장소의 배치에, 나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발자크 렘부르 군터.”

     설마 하늘에서 이걸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아스타시아. 혹시 아십니까? 왜 렘부르 군터 자작령은 렘부르나 군터가 아니라, 렘부르 군터인지.”

     “……그러게요?”

     “별거 없습니다.”

     본래의 성은, 군터.

     “대악마 [아스모데우스]를 죽인 영웅, 대마법사 렘부르가 태어나고 죽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어머님의 핏줄에-”

     “아. 그건 아닙니다.”

     

     영웅의 핏줄일 리가.

     

     “그냥 이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 모두, 자기가 대마법사 렘부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거랑 비슷한 거죠.”

     “…….”

     “뭐, 그것과는 별개로.”

     아스타시아를 붙잡은 내 손에 절로 힘이들어간다.

     “멘테 경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군요.”

     할 일이 생겼다.

     * * *

     그리고, 몇 주 뒤.

     “렘버리, D-1.”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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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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