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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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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수정이 다 안끝났지만… 작품의 몰입을 위해 제스 일러 일부 가져왔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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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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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강아지처럼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몸을 마구 털어 하얗게 쌓인 눈을 털어냈다. 리안을 배려한 건지 최대한 입구에 붙어 몸을 털어낸 덕분에 동굴 안쪽으로 눈이 들어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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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이라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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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안도하며 작은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시선이 저절로 추운 지역에 온 이후 더욱 복슬복슬해진 붉은 머리카락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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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카락 덕분에 덜 춥다고 생각하기엔… 노출이 너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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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가 입는 낡은 옷은 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개그 필터의 권능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화끈한 노출을 마주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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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험한 상상에 빠르게 고개를 털어냈다. 그러자 하얀 눈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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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제 몸에도 눈이 쌓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생각도 둔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온기를 축적할 수 있는 공간에 들어와서 그런지 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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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그럭거리며 떨리는 손을 들어 머리에 눈을 털어냈다. 몸 여기저기가 녹슨 로봇의 팔처럼 덜컹거렸지만 움직이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남아있는 개그 핕러가 착실하게 작동한 덕분에 통증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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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이 몽롱하니 생각이 제멋대로 통통 튀었다. 바람에 따라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이리저리 흘러가던 생각은 마왕과 헤어진 이후부터 꾸준히 떠올랐던 의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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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그때 그 능력의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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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을 품에 안고, 그녀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던 그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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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개그 세계의 신이 건네주었던 권능과 전혀 다른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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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능이 맞는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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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라고 부르는 권능을 오랜 시간 사용해와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그때 사용했던 힘이 ‘권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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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주고 말하는 걸 깜빡한 권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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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지만… 리안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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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니야. 이 권능은 보다 더 오래전부터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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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신에게 ‘개그 필터’라는 권능을 받긴 전 -… 아주 먼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힘이었다. 그저 ‘권능’이라는 게 뭔지 몰라 그 힘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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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이런 능력이 아니었는데? 성장이라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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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기억하기로 이 능력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파악’하게 해줄 뿐,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능력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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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이 느끼는 대략적인 감정, 생각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은 ‘눈치 좋은 사람’ 혹은 ‘공감 잘해주는 사람’라는 평가받게 해주었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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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능이라는 있어 보이는 단어를 떼고 생각해본다면 그저 감이 좋은 사람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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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리안은 그 권능을 능력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전생에는 눈치가 조금 빨랐을 뿐 특별한 능력은 없었다 -… 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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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도로 리안이 자각한 권능의 힘은 미약했다. 미약했던 힘이 신이 피조물을 내려다보듯 강해지기 그의 생각대로 ‘강화’나 ‘성장’한 것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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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몸에 마검까지 없는 상태라서 그런가… 그저 감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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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감정을 어렴풋이 알게 해주는 허접한 능력이었다고 해도 없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강화까지 된 상태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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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어디에 쓸 수… 있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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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뻑꿈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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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꺼풀에 철근이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너무 무거웠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생각을 이어가 보지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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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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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 사이로 숨결을 뱉어내자 작은 입김이 아주 잠깐 흘러나왔다. 체온이 확 떨어져 동굴 안과 숨결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아 입김이 길게 흘러나오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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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큰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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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이 둔탁해서 그런지 생각이 느리게 흘렀다. 리안은 슬쩍 옆구리 쪽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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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벌써 아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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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의 몸을 빼앗은 외신들의 습격이 있었다. 옆구리에 남은 상처는 외신들이 남긴 상처 -… 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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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발차기에 날아간 외신이 기둥을 부쉈고, 부서진 기둥 조각 중 하나가 옆구리를 스쳐 생긴 상처였다. 리안의 몸에 남은 상처 대부분이 그런 흔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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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해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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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 덕분에 외신들의 공격을 전부 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개그 필터 때문에 어이없는 상처들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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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져 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반쪽짜리 개그 필터는 상처를 치료하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어 마왕성을 빠져나와 설산에 들어설 때까지 전부 아물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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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왕 아물지 않은 거 상처 좀 후벼서 통증으로 잠이라도 깨보려 했는데 설산을 오르는 사이 다 나아 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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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게라도 치료를 해준 개그 필터에 감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같은 의미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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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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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잠이 들면 안 되기에 제스에게 팔뚝을 할퀴어달라고 말해보고자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무거운 눈을 겨우겨우 굴려 제스 쪽을 바라보았지만,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흐릿한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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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너무 졸..려서어..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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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길게 늘어지고 정신이 번쩍거렸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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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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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내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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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이크 처리되어 번져 보이는 사진처럼 제스가 흐리게 보였다. 여기까진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 하고 넘길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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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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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살결, 누더기가 된 옷이 어우러져 보여야 하는데, 흐릿하게 번져 보이는 건 새하얀 살결의 색과 붉은색뿐이었다. 그 말은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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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머릿속에 어떠한 결론이 나기 직전 익숙한 체향이 훅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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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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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리안의 몸과 비교하면 ‘뜨겁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체온이 높은 제스의 헐벗은 몸이 리안을 끌어안았다. 얼어붙은 몸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순순히 제스의 품에 몸을 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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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몽롱하게 풀려있던 정신이 차가운 바닷물에 던져진 것처럼 번쩍 정신을 차렸다. 리안은 뻐근할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코앞까지 다가온 쇄골과 어깨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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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잠깐! 제스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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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리안이 다급히 제스를 밀어내고자 굳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과 부드러운 살결에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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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를 통해 조금이나마 단련되었던 뇌가 오작동하는 것처럼 버벅거렸다. 그러는 사이 제스는 가방에서 꺼낸 모포로 리안과 제 몸을 동시에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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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사람의 몸이 모포 안쪽에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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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스 이건 정말 아니야. 난 정말..! 정말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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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지금까지 리안에게 끝없이 구애해왔지만, 리안은 제스에게 구애를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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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금슬금 거리를 두는 리안과 가까워지기 위해선, ‘몸만큼 어린 수인’이란 인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리안은 제스를 ‘여자’로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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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만 큰 어린아이란 생각이 강하다 보니 어린아이에게 못된 짓을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기겁하는 반응이 절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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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르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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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리안의 귓가로 위협이 섞인 울음이 들려왔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가 뱉어내는 울음처럼 살기가 느껴져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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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분 정도 동상처럼 굳어있자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사이 전보다 훨씬 따뜻해진 몸은 장판을 틀어놓은 이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노곤하게 풀어졌다. 그 탓에 눈꺼풀이 아까보다 두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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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로 잠들면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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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적 자살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온기를 찾아감에 따라 몸에 감각이 돌아와 그저 뜨겁게만 느껴지던 제스의 살결이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적나라하게 느껴지기 전에 당장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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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 이제 괜찮으니 -…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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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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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쪽 귀가 날카로운 이에 깨물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한 번,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듯 평소보다 배는 큰 고통에 한 번, 피가 날 정도로 깨물린 곳을 할짝거리는 제스의 행동에 한 번, 총 세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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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지? 혹시 이 동굴에 이상한 식물이라도 심겨 있는 건가? 개박하 같은 그런… 아니면 내가 조는 사이 이상한 걸 주워 먹기라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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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차 어지럽게 헝클어지는 것과 동시에 제스가 리안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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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 가방에서 깔아둔 건지 바닥에는 낡은 모포가 깔려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두겹으로 깔린 모포 위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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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가볍게 돌려져, 제스의 상체가 리안의 등에 닿았다. 그녀의 다리가 뱀처럼 리안의 다리를 휘감고 두 팔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등 뒤로 몇 번이고 닿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뜨겁고 말랑한 것이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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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뻣뻣한 인형처럼 굳은 상태로 품에 안겨있자 귓가에 숨결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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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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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애원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더 놓아달라 말하려는 순간, 제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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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은빛분자님! 후원감사합니다! 삽화는..열심히… 작업해서..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ㅂ;9

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ai로 일러스트를 뽑아도 이상한 부분을 하나하나 수정하는 편이라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ㅠㅠ
유감스럽게도 수위는 없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아직 수정이 다 안끝났지만… 작품의 몰입을 위해 제스 일러 일부 가져왔습니다 ㅠ)

부스스.

제스는 강아지처럼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몸을 마구 털어 하얗게 쌓인 눈을 털어냈다. 리안을 배려한 건지 최대한 입구에 붙어 몸을 털어낸 덕분에 동굴 안쪽으로 눈이 들어오진 않았다.

‘수인이라 괜찮은 건가?’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안도하며 작은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시선이 저절로 추운 지역에 온 이후 더욱 복슬복슬해진 붉은 머리카락 쪽으로 향했다.

‘머리카락 덕분에 덜 춥다고 생각하기엔… 노출이 너무 많지.’

노예가 입는 낡은 옷은 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개그 필터의 권능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화끈한 노출을 마주했을지도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험한 상상에 빠르게 고개를 털어냈다. 그러자 하얀 눈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제 몸에도 눈이 쌓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생각도 둔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온기를 축적할 수 있는 공간에 들어와서 그런지 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덜그럭거리며 떨리는 손을 들어 머리에 눈을 털어냈다. 몸 여기저기가 녹슨 로봇의 팔처럼 덜컹거렸지만 움직이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남아있는 개그 핕러가 착실하게 작동한 덕분에 통증도 거의 없었다.

정신이 몽롱하니 생각이 제멋대로 통통 튀었다. 바람에 따라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이리저리 흘러가던 생각은 마왕과 헤어진 이후부터 꾸준히 떠올랐던 의문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능력의 뭐였을까?’

마왕을 품에 안고, 그녀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던 그 능력.

그건 개그 세계의 신이 건네주었던 권능과 전혀 다른 능력이었다.

‘권능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개그 필터’라고 부르는 권능을 오랜 시간 사용해와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그때 사용했던 힘이 ‘권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이 주고 말하는 걸 깜빡한 권능일까?’

개그 세계의 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지만… 리안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이었다.

‘아니, 아니야. 이 권능은 보다 더 오래전부터 있었어.’

개그 세계의 신에게 ‘개그 필터’라는 권능을 받긴 전 -… 아주 먼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힘이었다. 그저 ‘권능’이라는 게 뭔지 몰라 그 힘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땐 이런 능력이 아니었는데? 성장이라도 한 건가?’

그가 기억하기로 이 능력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파악’하게 해줄 뿐,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능력 같은 건 없었다.

상대방이 느끼는 대략적인 감정, 생각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은 ‘눈치 좋은 사람’ 혹은 ‘공감 잘해주는 사람’라는 평가받게 해주었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은 없었다.

권능이라는 있어 보이는 단어를 떼고 생각해본다면 그저 감이 좋은 사람이 될 뿐이었다.

솔직히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리안은 그 권능을 능력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전생에는 눈치가 조금 빨랐을 뿐 특별한 능력은 없었다 -… 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 정도로 리안이 자각한 권능의 힘은 미약했다. 미약했던 힘이 신이 피조물을 내려다보듯 강해지기 그의 생각대로 ‘강화’나 ‘성장’한 것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유리 몸에 마검까지 없는 상태라서 그런가… 그저 감사하네.’

상대의 감정을 어렴풋이 알게 해주는 허접한 능력이었다고 해도 없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강화까지 된 상태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걸 어디에 쓸 수… 있는…려나….’

꿈뻑꿈뻑.

눈꺼풀에 철근이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너무 무거웠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생각을 이어가 보지만 쉽지 않았다.

“하아…”

입술 사이로 숨결을 뱉어내자 작은 입김이 아주 잠깐 흘러나왔다. 체온이 확 떨어져 동굴 안과 숨결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아 입김이 길게 흘러나오지 못한 것이다.

‘이거… 큰일인데.’

머릿속이 둔탁해서 그런지 생각이 느리게 흘렀다. 리안은 슬쩍 옆구리 쪽을 더듬었다.

‘끙… 벌써 아물었네.’

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의 몸을 빼앗은 외신들의 습격이 있었다. 옆구리에 남은 상처는 외신들이 남긴 상처 -… 는 아니었다.

제스의 발차기에 날아간 외신이 기둥을 부쉈고, 부서진 기둥 조각 중 하나가 옆구리를 스쳐 생긴 상처였다. 리안의 몸에 남은 상처 대부분이 그런 흔적들이었다.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해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개그 필터 덕분에 외신들의 공격을 전부 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개그 필터 때문에 어이없는 상처들이 생겨버렸다.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져 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반쪽짜리 개그 필터는 상처를 치료하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어 마왕성을 빠져나와 설산에 들어설 때까지 전부 아물지 않았었다.

이왕 아물지 않은 거 상처 좀 후벼서 통증으로 잠이라도 깨보려 했는데 설산을 오르는 사이 다 나아 버린 듯했다.

느리게라도 치료를 해준 개그 필터에 감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같은 의미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제스..”

이대로 잠이 들면 안 되기에 제스에게 팔뚝을 할퀴어달라고 말해보고자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무거운 눈을 겨우겨우 굴려 제스 쪽을 바라보았지만,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흐릿한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나… 너무 졸..려서어.. 그런데..”

말이 길게 늘어지고 정신이 번쩍거렸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것 같았다.

“나 좀 -…어?”

상처 내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모자이크 처리되어 번져 보이는 사진처럼 제스가 흐리게 보였다. 여기까진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 하고 넘길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제스…?”

붉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살결, 누더기가 된 옷이 어우러져 보여야 하는데, 흐릿하게 번져 보이는 건 새하얀 살결의 색과 붉은색뿐이었다. 그 말은 곧 -..

리안의 머릿속에 어떠한 결론이 나기 직전 익숙한 체향이 훅 가까워졌다.

“허억?!”

얼어붙은 리안의 몸과 비교하면 ‘뜨겁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체온이 높은 제스의 헐벗은 몸이 리안을 끌어안았다. 얼어붙은 몸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순순히 제스의 품에 몸을 내어주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몽롱하게 풀려있던 정신이 차가운 바닷물에 던져진 것처럼 번쩍 정신을 차렸다. 리안은 뻐근할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코앞까지 다가온 쇄골과 어깨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 잠깐! 제스 이게 무슨…!”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리안이 다급히 제스를 밀어내고자 굳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과 부드러운 살결에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노아를 통해 조금이나마 단련되었던 뇌가 오작동하는 것처럼 버벅거렸다. 그러는 사이 제스는 가방에서 꺼낸 모포로 리안과 제 몸을 동시에 휘감았다.

두 사람의 몸이 모포 안쪽에 가려졌다.

“제,제스 이건 정말 아니야. 난 정말..! 정말 괜찮으니까..!”

제스는 지금까지 리안에게 끝없이 구애해왔지만, 리안은 제스에게 구애를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생각했다.

슬금슬금 거리를 두는 리안과 가까워지기 위해선, ‘몸만큼 어린 수인’이란 인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리안은 제스를 ‘여자’로 인지하지 못했다.

몸만 큰 어린아이란 생각이 강하다 보니 어린아이에게 못된 짓을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기겁하는 반응이 절로 튀어나왔다.

“으르릉..”

“…!”

그런 리안의 귓가로 위협이 섞인 울음이 들려왔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가 뱉어내는 울음처럼 살기가 느껴져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1분 정도 동상처럼 굳어있자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사이 전보다 훨씬 따뜻해진 몸은 장판을 틀어놓은 이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노곤하게 풀어졌다. 그 탓에 눈꺼풀이 아까보다 두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대로 잠들면 절대 안 돼.’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적 자살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온기를 찾아감에 따라 몸에 감각이 돌아와 그저 뜨겁게만 느껴지던 제스의 살결이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적나라하게 느껴지기 전에 당장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제스 이제 괜찮으니 -…아윽!”

우득!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쪽 귀가 날카로운 이에 깨물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한 번,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듯 평소보다 배는 큰 고통에 한 번, 피가 날 정도로 깨물린 곳을 할짝거리는 제스의 행동에 한 번, 총 세 번 놀랐다.

‘뭐지? 혹시 이 동굴에 이상한 식물이라도 심겨 있는 건가? 개박하 같은 그런… 아니면 내가 조는 사이 이상한 걸 주워 먹기라도 한 건가?’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차 어지럽게 헝클어지는 것과 동시에 제스가 리안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누워버렸다.

언제 가방에서 깔아둔 건지 바닥에는 낡은 모포가 깔려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두겹으로 깔린 모포 위에 쓰러졌다.

몸이 가볍게 돌려져, 제스의 상체가 리안의 등에 닿았다. 그녀의 다리가 뱀처럼 리안의 다리를 휘감고 두 팔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등 뒤로 몇 번이고 닿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뜨겁고 말랑한 것이 짓눌렸다.

뻣뻣한 인형처럼 굳은 상태로 품에 안겨있자 귓가에 숨결이 닿았다.

“제스…”

리안이 애원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더 놓아달라 말하려는 순간, 제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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