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1

   샬롯과의 약속을 마치고, 크라슈는 샬롯과 헤어져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의 근처에 인기척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크라슈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잿빛 색의 머리카락을 묶어 올린 상어 같은 이가 돋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요, 동생 양.”

     

   아까 전 위기라고 할 수 있었던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나가 수틀리는 순간 크림슨가든의 종인 게 들통날 수 있는 상황인데 뭘 태평히 굴고 있습니까?”

   “와하하, 그건 조금 식겁하긴 했어. 로나가 천방지축이긴 해도 거짓말은 안 하는 애니까.”

     

   천방지축인 건 본인도 포함인 거 같지만.

   어쨌든 그녀는 호탕한 웃음을 흘리고, 자기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그래서 나를 굳이 불러낸 이유가 있지?”

   “로나 임블라이즈의 곁을 계속 감시해주세요.”

     

   다음 말을 듣자 그녀가 짧게 눈을 반짝였다.

     

   “로나가 지칭한 건 특정한 한 명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곁에 흑마녀의 종이 나타날 거란 계산이지?”

     

   마법을 다루는 이 아니랄까 봐 타리아는 머리 좋게 바로 이해했다.

     

   “예, 흑마녀 입장에서는 기껏 심은 종이 밝혀지는 것을 마냥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혹시나 로나가 수틀려 세계 침식자의 종을 다 알려주고 다니면 그쪽도 큰 피해를 본다.

   흑마녀의 종으로서는 당연히 그 전에 로나를 제거하고 싶을 터.

     

   2기생인 크라슈 보다는 1기생인 타리아가 좀 더 자유롭게 로나의 곁을 지켜줄 수 있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도 로나는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겁니다.”

     

   크라슈의 말을 듣고, 타리아는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이유라도 있어?”

   “그냥 가능성을 열어 두는 거죠.”

     

   타리아는 팔짱을 낀 채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었다.

     

   “그러니 위험해지면 크림슨가든을 통해 바로 부르세요. 달려 갈 테니까.”

     

   크라슈가 하늘을 슥 가리켰다.

   거기에는 하늘을 느긋하게 날고 있는 까마귀가 한 마리 있었다.

     

   타리아는 하늘을 보고는 씨익하니 웃었다.

     

   “내가 그렇게 약해 보여? 동생 양 없이도 슥삭이야.”

     

   1기생 마학과 수석 아니랄까 봐 그녀는 꽤나 높은 자존심을 보였다.

   하물며 크림슨가든의 종이기까지 하니 그녀에게도 많은 마법을 배웠겠지.

     

   하지만 세상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저도 위험하면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합니다.”

     

   타리아는 올해로 16살이 되었다.

   그녀는 분명 천재이고, 후에 천하십강이 될 인재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에 일.

   지금의 그녀는 아직 세계의 기준으로 보건대 마냥 강하다고 할 수 없었다.

     

   타리아 또한 아직 세상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햇병아리인 것은 같다.

   그러니 천재인 그녀라도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었다.

     

   “특히, 세계 침식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본인의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객기부려 좋은 거 없습니다.”

     

   세계 침식자는 이 세계에 없는 특별한 힘을 지닌 게 대다수다.

   그들은 자기 세계만의 연마 방법으로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니까 말이다.

     

   그러한 변수로 인해 죽은 이들을 크라슈는 수없이 많이 봐왔다.

   당연하지만 타리아라고 해서 그러한 변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불러주세요. 하나 보단 둘이 더 나은 편이잖습니까.”

   “……흐음.”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리아는 이내 손을 풀어 안경을 치켜올렸다.

     

   “동생 양, 꽤나 애늙은이 같네. 마탑의 선생님들이 생각나.”

   “어른스러운 거라 해주세요.”

   “하긴, 15살은 한창 어른스러운 걸 좋아할 나이 때지.”

     

   자기도 그런 때가 있었다면서 타리아는 긍정했다.

   미안하지만 그쪽보다 못해도 십 년은 더 살았다.

     

   하지만 타리아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알았어. 동생 양의 충고, 참고해 둘게.”

     

   타리아는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크라슈는 그 모습이 꽤나 불안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타리아는 과거에도 자존심 탓에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로 인해 결국 마탑에 틀어박혔었다.

     

   “타리아 선배, 한 가지만 기억해 두세요.”

     

   크라슈는 그녀의 뒤를 향해 말해두었다.

     

   “흑마녀는 자기 의사 없이도 상대에게 종을 심어 넣을 수 있습니다.”

   “기억해 둘게.”

     

   타리아는 그렇게 떠나갔다.

   크라슈는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크림슨가든, 너야말로 부탁한다.”

   [ 걱정 말거라. 내 종이니. 내가 잘 살필 생각이다. ]

     

   이쪽은 크림슨가든을 믿으면 되겠지.

     

   크라슈는 기지개를 쭈욱 피곤 한차례 목을 두둑 풀었다.

   오늘따라 하루가 무척이나 긴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달링한테 들려서 어서 빨리 여체화를 풀고, 방에 들어가든가 해야지.’

     

   수련이고 자시고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하다.

   얼른 쉬기나 하자.

     

     

   * * *

     

     

   드디어 남자 모습으로 돌아온 크라슈는 겨우 편안해진 기분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다.

     

   「어땠어?」

     

   걸어가는 길, 달링 녀석이 은근히 기대에 찬 눈으로 묻던 게 떠올라 화딱지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참고, 겨우 기숙사 방을 찾은 순간이었다.

     

   “아, 크라슈 님!”

     

   오늘은 침대에 좀 누워 있자며 생각한 순간.

   크라슈는 왜인지 방문 밖에 서있는 직속 하녀 알리샤와 마주쳤다.

     

   그녀는 크라슈를 보자마자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크라슈도 의아함을 품은 채 인사를 해주며 다가섰다.

     

   “알리샤, 왜 밖에 있어.”

   “안에 손님이 와계시옵니다.”

     

   손님?

   크라슈는 눈을 깜빡였다.

     

   그도 그럴 게 손님으로 올 만한 예정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지.’

     

   크라슈가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왜인지 이쪽을 보던 아이들이 흠칫 놀라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째선가 기숙사 상당히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라슈의 눈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 방문을 왜인지 열면 안 될 것 같은 음침한 기운이 들었다.

     

   잠시동안 고민하던 크라슈는 이내 방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의 성격상 미심쩍은 일이 있으면 부딪쳐 보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끼릭-

     

   오늘따라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크라슈가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크라슈는 곧 오늘따라 방이 무척이나 꽉 찬 느낌을 받았다.

     

   아니다.

   꽉 찼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그도 그럴 게 방에 구비된 탁자 앞에 자기 손보다 한참 작은 차를 홀짝이고 있는 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크라슈는 방문을 닫고 이대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상대의 지위를 알기에 애써 참은 크라슈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총장님.”

     

   그는 다름 아닌 전 천상사강인 투황 듀란달이었다.

     

   총장인 그가 자신의 방에서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하고 있는 건 대체 무슨 광경일까.

   단지, 지금 경험해본 바로 그게 썩 달갑지 않은 광경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오, 크라슈 학생 자네 드디어 왔군. 바쁜 모양이야.”

   “라헬른 아카데미 생활을 출중하게 하느라 여러모로 바쁘네요.”

   “하하, 이번에 중간 평가에서도 무학 수석을 달성했다지. 이거 참, 축하하네.”

     

   총장씩이나 되는 그가 고작 축하 하나 하자고 온 것은 아닐 터.

   크라슈는 조금 경계 섞인 눈초리로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저를 기다리신 듯한데 이유가 있으십니까?”

     

   볼 일이 있다면 얼른 보고 가라.

   크라슈는 그 의사를 듬뿍 담아 말하였다.

     

   그러자 듀란달을 한차례 너털웃음을 짓더니 손짓했다.

     

   “일단 앉아 보게나.”

     

   크라슈는 그의 뜻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알리샤가 재빨리 그의 차와 과자를 준비해 앞에 내놓았다.

     

   여성회에서 지긋지긋하게 먹고 온 거라 더 이상 손대기는 싫었지만.

   알리샤가 준비해준 만큼 예의상 한 모금한 크라슈가 듀란달을 보았다.

     

   거기에는 거대한 곰이 한 마리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앞에서 마주하니 확실히 이 인간이 얼마나 거대한지 체감이 된다.

     

   문제는 이 인간은 저런 몸으로도 날렵하게 움직인다는 거다.

     

   “크라슈 학생, 자네는 강해지고 싶나?”

     

   뜬금없는 물음이다.

   하지만 참으로 의미 없는 물음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무학과에 소속된 아이 중 모두가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입니다.”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은 더 본질적인 것일세. 자네는 강해지는 데 목표가 있나?”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왜냐하면 이 말을 꺼낸 듀란달의 눈이 누구보다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목표.

   당연히 있다.

     

   반푼이던 시절, 크라슈는 어떤 목표를 가지더라도 무의미했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딱 하나 가질 수 있었던 목표.

     

   그것이 바로 세계 멸망을 막는 것이었다.

     

   오직 크라슈의 인생에서 단 하나의 목표.

   멸망을 막기 위해 크라슈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강함을 갈구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일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듀란달이 천천히 입가에 주름진 웃음을 지었다.

     

   “목표로 지닌 이들은 한없이 강해지지. 나는 그런 이들을 꽤나 여럿 봐왔네.”

     

   격동의 시대 속.

   듀란달은 그런 그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성장하고, 혹은 저버리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들이 한 명이라도 더 저버리지 않기를 바랐기에 듀란달은 라헬른 아카데미를 세웠다.

     

   “꽤 오래전 전대의 세피라가 남긴 예언이 하나 있지.”

     

   점성술사 가문인 세피라.

   그곳에서 들었던 예언을 줄곧 기억해 두던 듀란달이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예언이란 그 대상에게 알려주면 운명에 묶인다고 하니 구태여 언급은 안 하겠지만.”

     

   그의 투명한 눈에 크라슈가 비추었다.

     

   “나는 크라슈 학생, 자네가 그 예언과 어울리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크라슈가 의문을 보였다.

   듀란달이 이렇게까지 뜸을 들여서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 못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든 비술 재룡락. 알고 있나?”

   “예, 그야…….”

     

   재앙의 용을 떨어트린다는 살벌한 비술.

   이 비술을 이용해 듀란달은 수많은 세계 침식을 막아냈다.

     

   왜냐하면 재룡락은 세계 침식을 상대로 가장 극대화 되어 있는 비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재룡락은 일종의 안티 세계 침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러한 재룡락을 통해 듀란달은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된 이들도 그들에게 세계 침식의 힘을 지워 돌려놓곤 했다.

     

   중간 평가에서 귀족 납치 사건을 벌였던 아카데미의 마학과 부교수 제니칼렌이 그 예시다.

     

   “나는 지금까지 재룡락의 후계자를 만들어 놓지 않았네. 자식이 없기도 했고, 마땅한 이가 없기도 했지.”

     

   그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의 눈이 천천히 뜨여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듀란달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재룡락.”

     

   듀란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크라슈 학생, 자네가 배워보지 않겠나?”

     

   투황 듀란달의 후계자가 되어라.

   듀란달은 지금 그 말을 하고 있었다.

     

   크라슈가 떠진 눈으로 몸을 굳혔다.

   터무니없는 기연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세계 침식자의 모임, 익시온과 맞붙어야 하는 크라슈다.

   재룡락을 익힌다면 당연히 크라슈에게 크나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크라슈 자신이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재룡락을 사용한다면 분명히 지닌 세계 침식의 힘과 맞부딪칠 것이다.

     

   지금 크라슈가 나아 가던 길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게 어떤 결과가 불러올지는 크라슈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크라슈는 눈앞에 주어진 기회를 놓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인생은 늘 리스크 덩어리다.

   리스크를 짓누르고 이겨냈을 때 돌아오는 반환이 얼마나 큰지는 크라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분명히 재룡락을 사용할 방법은 있다.’

     

   크라슈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번개가 치듯 번뜩였다.

     

   딱 하나.

   정말 딱 하나.

     

   그 저주를 얻는다면 터무니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마침, 크라슈는 최상위 저주를 얻기 위해 벨투아 락로드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한 번에 퍼즐이 이어 맞춰지며 또 한 번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한 발걸음이 뻗어졌다.

     

   크라슈의 푸른 눈동자가 거세게 빛났다.

     

   “배우겠습니다.”

     

   목표가 있는 이는 강해진다.

   그것은 딱 크라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 내 후예가 되어라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