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2

    저녁이 다 되어갔다.

     

    나는 일전에 있었던 네르와 아르윈과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쓰러져 피를 흘려도 아르윈을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고, 네르가 애원해도 가볍게조차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 선택들이 과연 옳았을까,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달라질 수 있는건 없다.

     

    나는 그녀들을 위해 시엔을 내팽개칠 생각은 없었다.

     

    시엔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고, 곧 태어날 우리의 아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변하는게 없을텐데, 그녀들을 내버려둔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나와 시엔은 집의 뒤편에 있는 숲으로 산책을 나온 상황이었다.

     

    과거 네르와 매일 같이 찾았던 그 숲이었다.

     

     

    나는 그녀와 가만히 앉아 오늘의 일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시엔이 그런 내 볼을 쿡 누르며 물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

     

    대답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시엔은 나의 침묵에 내 팔을 더 꼭 껴안았다.

     

     

    “…요새 힘드네, 벨.”

     

    그녀가 속삭였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

     

    “…네가 힘들어해서.”

     

    “…”

     

     

    시엔은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벨.”

     

    “…”

     

    “…하지만 왜인지 세상이 너만 괴롭히는 듯 해.”

     

     

    시엔의 말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커다란 힘이 되고 있었다.

     

     

    또,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평생토록 이렇게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때, 마을쪽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는게 들려왔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그 소리에 또 심장이 내려앉는다.

     

    여기다 더해 대체 어떤 불길한 일이 더 벌어질 수 있는걸까.

     

    “…”

     

    “…”

     

    나는 시엔과 눈길을 나누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마을에는 바란이 들어서고 있었다.

     

    도적단을 소탕하기 위해 낮에 출발했던 그들이었다.

     

     

    “무슨 일이야.”

     

    나와 게일이 달려가 바란에게 물었다.

     

     

    피를 평소보다 더 끼얹은 바란이 공허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단장.”

     

    그가 눈을 깜빡였다.

     

    나는 저 눈을 잘 알고 있었다.

     

     

    상실을 경험했을 때 보여주는 눈빛이다.

     

    피가 싸늘하게 식는것만 같았다.

     

     

    구분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모르는 주민의 죽음보다… 함께 전쟁을 경험했던 단원들의 죽음이 언제나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를 악물며 바란에게 물었다.

     

    “…누구야?”

     

    바란은 힘겹게 그 이름을 속삭였다.

     

     

    “…크리안입니다.”

     

    홍염단의 간부였던 크리안.

     

    시어도어와 언제나 친하게 지냈던 그였다.

     

     

    입술을 악물고 있는 동안, 뒤에서 크리안의 시신이 끌려왔다.

     

    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시엔이 곁에서 숨을 삼켰다.

     

     

    소란에 마찬가지로 뛰어나온 네르와 아르윈도 아무말을 하지 못했다.

     

     

    “…”

     

    나는 크리안의 곁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어쩌다?”

     

    그리고는 조용히 바란에게 물었다.

     

    “…매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규모도 컸고요.”

     

    “몇 명.”

     

    “어림잡아 쉰 명이 넘어갈 듯 했습니다.”

     

    “…상대는 어떻게 됐어.”

     

    “…반은 죽였고, 이후로는 우리도 퇴각을 했습니다. 크리안의 치료가 먼저라 생각해서…”

     

    크리안은 스탁핀으로 돌아오던 와중에 명을 달리한 듯 했다.

     

     

    나는 또, 이렇게 나의 사람을 잃었다.

     

     

    압박에 압박이 쌓인다. 가슴이 터질듯한 답답함도 나를 찾았다.

     

     

    나는 크리안의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당장의 분노도 당장은 억눌러 놓았다.

     

    그를 보내주며 가져야할 감정은 아니었다.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엔이 곁에 붙어 나를 안았다.

     

    “…”

     

    나는 그녀의 손을 토닥여 포옹을 풀었다.

     

     

    네르와 아르윈도 나를 멀리서부터 지켜보았다.

     

    “…”

     

    “…”

     

    나보다 더 아파하는 표정으로 둘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들을 마주하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내 안에 무언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

     

     

    침대에서 나는 시엔의 끝없는 위로를 들었다.

     

    “…벨, 무슨 말도 위로가 안되겠지만…”

     

    그런 시엔을 나는 토닥였다.

     

     

    “괜찮아, 시엔.”

     

    “…”

     

    “…자자. 내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렇게 말로서 그녀를 진정시키고, 잠에 든척 눈을 감았다.

     

     

    시엔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쉬었다.

     

    그녀가 잠들어있음을 확인하고…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벗어났다.

     

     

    방에 있던 검마저도 챙긴다.

     

    이 충동적인 행동이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

     

    마찬가지로 집까지도 나선다.

     

     

    -쿵!

     

    그와 동시에, 나를 쫓아 두명의 사람이 뛰쳐나왔다.

     

     

    네르와 아르윈이었다.

     

    “…어디가?”

     

    네르가 먼저 물었다.

     

     

    나는 손에 든 검을 내려다보며, 거짓말은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금방 갔다올거야.”

     

     

    아르윈이 이어서 말했다.

     

    “…베르그, 안돼요.”

     

    이미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하고 있는 듯 했다.

     

    용병 시절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너무 위험해요. 이제는 이, 이곳의 영주잖아요. 이런 무모한 짓은 하면 안된다는 걸 모르시나요…?”

     

    “…”

     

    나는 심호흡을 내쉬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가슴을 가볍게 누르며 그들에게 말했다.

     

     

    “…답답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진심을, 그녀들에게 정말 오랜만에 드러냈다.

     

    시엔은 너무나도 나를 걱정할 걸 알기에 말할 수 없던 마음이었다.

     

     

    “끝없이 제한이 걸리는게 너무나도 답답해. 난 원래 이렇게 살았는데…원래 이게 내 방식이었는데…”

     

     

    그녀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귀족이라던지…영주라던지 너무 날 답답하게 해.”

     

     

    귀족이 되며 책임져야 할 것은 많아졌고,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은 적어졌다.

     

    온 영지를 생각한다면 내가 가장 안전히 살아야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슬럼에서부터 배운 습관들이, 또 우두머리 조의 조장으로서 활동하던 순간들이 그 현실과 자꾸만 부딪힌다.

     

     

    내가 홀로 위험을 감수해, 도적단을 전부 소탕해왔더라면….오늘 크리안은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럴지도 몰랐다.

     

    그 가정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나를 향해 두 명이 달려와 팔을 잡았다.

     

    “안돼요.”

     

    아르윈이 말했다.

     

    “아…아이까지 있잖아, 베르그. 하지마.”

     

    네르도 아이에 대한 이야기까지 꺼냈다.

     

     

    나는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참 오랜만에 아무런 벽 없이 그녀들을 맞이하는것만 같아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특이하게도 그녀들을 거부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해진다.

     

    …물론, 아직도 달라질건 없었지만 말이다.

     

     

    “…너희는 날 알잖아.”

     

    그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설득하기 쉬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지만, 시엔만큼이나 그녀들은 나를 알았다.

     

     

    간단한 그 말에, 네르와 아르윈은 내 손을 놓친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마구간으로 향했다.

     

     

    ****

     

     

    스탁핀의 영지에 화톳불을 피어놓은채, 론딜은 살아남은 동료들과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오늘의 수확은 나쁘지 않았다.

     

     

    집단의 절반이나 되는 동료들이 10명 남짓한 홍염단의 대원들에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직 남은 25명만 해도 충분한 전력이 되었다.

     

    내일 해가 밝으면 다시 다른 영지로 떠나 도적질을 이어가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그저 빼앗은 음식과 술을 마시면 되는 것이다.

     

     

    “술 더 가져다 줘!”

     

    론딜은 술통 근처에 있던 동료에게 외쳤다.

     

     

    이 약탈행위로 나름의 불만까지도 풀고 있었다.

     

    2년전만해도 용병으로 잘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용사가 마왕을 토벌했고, 그 결과 용병이란 용병들은 모두 할 일을 잃게 되었다.

     

    론딜은 그 순간적인 변화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떵떵거리며 살던 삶에서, 어떻게 이토록 순식간에 거지처럼 살아가게 됐는지 알수없었다.

     

     

    그는 전쟁이 있던 세상이 훨씬 좋았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신에게 선택받은 투사들이 그의 원수였다.

     

     

    용사와 그 동료였던 아크란. 마법사 실프리엔, 성녀와 고독의 투사라고 말하는 베르그 라이커까지.

     

    그들만 없었어도 잘만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았을 때 오늘의 수확이 더 달달했다.

     

    성녀와 베르그 라이커의 영지에서 이렇게 난동을 피웠으니 말이다.

     

     

    거기다 더해, 같은 용병단이었음에도 다른 운명이 펼쳐진 홍염단에 대한 질투도 있었다.

     

    홍염단은 영지까지 하사받아 잘 사는데, 자신은 길에 내앉았으니.

     

     

    론딜은 술을 쭉 들이키며 말했다.

     

    “아쉽게 됐어. 그 놈들 더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더 확실히 숨어있으라고 했잖아. 크라우스 놈이 조금만 더 늦게 걸렸어도…”

     

    그의 곁에 있던 동료가 답한다.

     

    “대신 크라우스는 오늘 죽었잖아. 그걸로 넘어가자고.”

     

    “넘어가긴 개뿔. 그 지랄만 안했어도 오늘 다 살 수 있었던 거라고. 쉰 명이 10명 쯤 못죽였겠냐.”

     

    론딜은 오늘의 싸움을 회상하며 아쉬움을 밝혔다.

     

     

    하지만 곁의 동료는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는 듯 몸을 떨 뿐이었다.

     

    “…홍염단 대원들이 하나 같이 쎄긴 하더라. 근데 그 베르그라는 놈은 그 중에서도 특출났다고 하니…어느 정도인거야?”

     

     

    론딜도 베르그 라이커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우두머리 토벌 숫자가 200명에 근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같은 용병 출신으로서, 론딜은 도무지 그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인족들이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거지. 뭘 믿고 그래.”

     

     

    -툭. 화르륵!

     

    그때, 무언가가 날아들어 불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던져진 장작에 모두가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는 어둠밖에 없었다.

     

    “…뭐야?”

     

    론딜은 이내 불속에 날아든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어?”

     

    자세히 보니, 누군가의 손목이 불 안에 놓여있었다.

     

     

    -타다닥!

     

    그 손목을 보게 된 모든 도적들이 한 순간 튀어올라 무기를 쥐었다.

     

    분명 경비를 선 동료도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어떠한 경고의 말도 듣지 못했다.

     

     

    론딜은 취기가 오른 몸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대가 자신들을 죽이러왔으면 분명 알았을텐데…그런 군대가 나타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나, 나와. 겁쟁이처럼 숨지 말고.”

     

     

    -저벅…저벅…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밝은 화톳불로 걸어나왔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그가 말했다.

     

     

    이내, 한 인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잘생긴 외모. 흉터투성이의 팔과…얼굴에 있는 커다란 상처.

     

     

    모든 것이 한 존재만을 가리킨다.

     

    “…베르그…라이커….”

     

    론딜이 속삭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영주였다.

     

    전쟁 영웅이었고, 이곳에 나타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호…혼자 온거냐…?”

     

    론딜이 용기를 내어 되물었다.

     

     

    베르그 라이커가 질문을 던진 론딜을 바라보았다.

     

    론딜은 굳이 먼저 질문을 던진걸 후회하려던 참에…베르그가 순간적으로 검을 들어올리는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나는 거친 숨을 진정시키며 말을 몰았다.

     

    구태여 도적들의 시신을 치워주는 수고는 들이지 않았다.

     

    들짐승들이 그 작업을 대신 해줄 것이었다.

     

     

    고된 방식으로 몸을 고문시키고 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역시나 나는 이렇게 나서는 편이 내 몸에 맞았다.

     

     

    아무리 영주라도 뒤에 숨어서 행동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멍청한 놈.”

     

    그렇게 말을 몰고 스탁핀으로 돌아오니, 나무방벽에 등을 기댄채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었다.

     

    “…”

     

    게일이었다.

     

     

    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았던 네르와 아르윈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게 아닐까 싶었다.

     

    “…”

     

     

    나는 게일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멍청했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언제나 이게 나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게일 또한, 언제나 이런 내 방식을 싫어했다.

     

    용병 생활을 이어가던 순간만 하더라도 게일은 내게 끝없는 잔소리를 던졌었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나. 시엔의 배에 있는 아이는 생각하지 않는것이냐?”

     

    “…이 시간에 아직도 안 주무시고 뭐하십니까.”

     

     

    나는 그의 등장에 말에서 내렸다.

     

    게일은 천천히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친곳은…?”

     

    “…베인곳이 몇 있습니다.”

     

    “…”

     

     

    나는 몸을 씻고 다시 누울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잠시.”

     

    게일은 그런 나를 멈춰 세웠다.

     

    “…?”

     

    그를 돌아보자, 게일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잠시 대화 좀 나누지.”

     

    “…”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다른 표정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주제를 던지려고 하는 듯 했다.

     

     

    눈을 깜빡이던 게일이 말한다.

     

    “…베르그. 내가 왜 이곳에 계속 남아있던 건지 알고 있나?”

     

     

    나는 게일이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다 답했다.

     

    “…아담 형에게 남은 마음의 빚 때문 아니었습니까?”

     

     

    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 때문이었지.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네.”

     

    “…”

     

     

    게일은 큰 숨을 들이쉬었다, 나를 보며 말했다.

     

    “자네 때문이었어.”

     

    “…저 때문이라고 하신다면…”

     

    “…아담을 잃고 길을 잃을게 분명 했으니까. 자네는 잘 버려진 검과도 같네. 도구와도 비슷한 거라고 봐야겠지.”

     

    “…”

     

    “…지도자의 성격은 아니야. 지도자란 무릇, 소중한 사람도 버릴 줄 알아야하니까….자네는 정이 너무 많아. 책임감도 막중해서, 누군가의 죽음에 너무나도 힘들어하고. 그러니 홀로 모든 부담을 짊어지는게 편한거겠지.”

     

    “…”

     

     

    게일의 솔직한 태도 덕에 그의 말은 언제나 신뢰가 가능했다.

     

    애초에 그의 말이 틀렸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미 아담 형조차도 많이 말해온 이야기였고, 나조차도 실감하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의아함을 느낀다.

     

     

    “…이걸 왜 지금 제게 이야기 하십니까?”

     

     

    그 근본적인 질문에, 게일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게일이 이 주제로 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었다.

     

     

    “이제야 나도 확실하게 깨달아서 그러네. 자네는… 이런 삶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살아서는 행복이랑은 거리가 멀 것이라는 걸.”

     

    “…예?”

     

     

    게일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을 떠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단 둘만이 남아있는 상황속에서 말을 꺼낸다.

     

    장난으로 하는 말 같지도 않았다.

     

    달빛에 반사된 그의 눈동자에는 한 없이 깊은 생각이 담겨 있었다.

     

     

    “…”

     

    그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대답을 하지 못할 동안,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자네는 귀족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부담은 전부 짊어진채, 그 대가로 오는 이점은 그 무엇도 누리지 않고 있어. 오로지 아담만을 위한 생각에, 또 홍염단 대원들을 위한 마음에 억지로 이곳에 남아있을 뿐이야.”

     

    “…”

     

    “…하지만 난 자네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이네. 누군가는 말해주지 않으면 자네도 멈추지 않겠지. 이대로는 불행하게 살게 될거야, 베르그. 그러기 전에 떠나는게 옳아.”

     

    “…도망을 치라는 말입니까?”

     

    “도망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가라는 말일세.”

     

     

    당장 어깨에 있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달콤한 이야기를 게일이 속삭였다.

     

    그 속삭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상상을 하고 만다.

     

     

    시엔과 어디론가 멀리 떠나, 단 둘이서 사는 삶을.

     

    애초에 나는 귀족의 삶이 필요한게 아니었다.

     

    평온한 곳에서…가족들과 행복히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그와 동시에 나의 오랜 꿈이 떠올랐다.

     

     

    무엇인지 잊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억났다.

     

    그때는 분명 그게 꿈이었다.

     

    긴장감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고.

     

    전쟁으로 틀어져야만 했던 나의 오랜 생각이었다.

     

     

    “…”

     

    “…어떤가, 베르그. 이곳은 내가 책임을 잘 지겠네. 내 모든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너와 아담의 사람들은 내가 책임지겠어. 기회가 된다면 오늘 떠나게. 지금 행한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내가 말하고 다닐테니.”

     

    “…”

     

     

    나는 게일의 제안을 잠시 생각하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못합니다.”

     

    “뭐라고…?”

     

    “그러기에는 제가 해야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남았네요.”

     

     

    분명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귀족의 삶이 어울리지 않았다는걸 다시금 실감했다.

     

     

    하지만 아직은 농사일도, 역병도 해결한게 하나 없다.

     

    도적단도 사라진게 아니었고, 아담 형의 꿈도 이루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크룬드까지 나타난 상황이다.

     

    전쟁의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속에서, 나만 살고자 도망치는 건 내 성격이 아니었다.

     

     

    그가 물었다.

     

    “…아담의 꿈은, 자네가 행복히 살아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르네.”

     

    “…”

     

    나는 잠시 생각을 이어가다, 게일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게일은 안타깝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

     

    한숨까지도 내쉰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가 말했다.

     

    “…그게 자네의 선택이라면, 끝까지 도와주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