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괜찮아요?”
“나야 괜찮지.”
“하지만 아저씨 요즘 너무 바쁘잖아요.”
“그게 지금 내 가슴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는 이유였니?”
“헤헤…”
나는 가슴을 사정 없이 짓누르는 지방 덩어리의 폭력에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쁘긴 하지만 잠깐 정도는 어울려 줄 수 있었으니까.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준비라고 해도 짐 조금 챙기는 거랑 수련밖에 없는 걸요. 요즘 장로님이 엄청나게 굴리고 있어요.”
최대한 실력 끌어올린다고 수련을 도와주는 건가.
혜령이는 특히 배울 것이 많긴 할 테니, 장로님이 세심하게 봐주시고 있겠지.
“목경이는?”
“지금 제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 말 하지 말아줄래. 무섭잖아.”
“농담이에요! 목경이는 수련장에서 검 휘두르고 있을 거예요. 몸도 다 나았고 본격적으로 수련을 해야 제대로 싸울 수 있다면서 며칠째 그러고 있어요.”
매일 전쟁 준비하고 시간 나면 맹주님이랑 1대1 논검에 비무까지 하고 있으니 주변에는 전혀 신경을 못 썼네.
“시간 내서 한 번 보러 가긴 해야겠네.”
“아저씨, 저 궁금한 게 있어요.”
“궁금한 게 있다고?”
“네.”
뭐가 궁금한 걸까. 의문을 담아 혜령이를 내려다보니, 내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눈만 슬쩍 드러낸 혜령이가 말했다.
“파르스라는 사람은 얼마나 강한 거예요?”
“글쎼. 나도 모르지.”
“아저씨는 싸워본 거 아녜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맹주님이랑 비슷했던 거 같은데.”
서양과 동양은 체계가 다르니 완전히 같다고 보긴 힘들지만…당시 내 경지가 일천하다보니 정확한 수위를 파악하는 건 힘들었다.
맹주님과 단장님이 얼추 비슷했으니 그렇게 추측을 하는 거지.
꽤 여유로웠던 걸 보면 어쩌면 그 때도 이미…
뭐, 그 놈은 강하지 않을래야 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놈을 어릴 적부터 칼리프가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 까지 키운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까.
이 시기 이슬람 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으니, 천자가 단 한 명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성장을 시킨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그놈이 지 부하 이끌고 탈주 해서 사실상 군벌이 되었다는 건데.
애초에 놈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제어가 불가능했겠지만…
“나이가 얼마나 되길래…”
“나보다 많은 건 확실해. 못해도 10살?”
“아저씨 나이에 10살이면 이립을 넘는 거네요?”
“그렇지.”
처음 조우했을 때도 단장과 팽팽할 정도였으니.
한 시진을 싸웠는데도 결판이 안 났던가.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과연 그놈이 천마보다 강한지는 의문이었다.
그놈이 배운 아츠의 특성상 마공으로 상대하기 아주 까다롭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천마를 상대로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여기 천마가 내가 아는 천마가 맞다면 아무리 성장이 폭발적이어도 한 수 내지 반 수 아래 일 텐데, 그 부분은 다른 부분으로 메꾼 건가.
정직하게 싸워주는 놈이 아니었으니 예상치 못한 수로 천마에게 타격을 입히고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놈은 이기기 위해서 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는 놈이 아니었으니.
“아마 지금 쯤이면 화경은 진작에 도달했겠지.”
“화경…”
다시 만날 때마다 기이할 정도로 강해져 있는 놈이었으니.
“그놈이 얼마나 강한지 지금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할 일이나 하자.”
그놈이 얼마나 강하든, 우리 쪽도 화경의 고수를 대동하면 충분히 맞 상대할 수 있을 터.
그놈을 다른 고수가 막는 동안 맘루크들을 착실히 줄여나가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파르스가 그걸 지켜보기만 하진 않을 테니 쉽진 않겠지만.
“자자, 이제 슬슬 떨어져.”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아직 모자란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몸 비비지 마라.”
“아저씨 정말 고자예요?”
내 초인적인 인내력을 시험하고 싶은 건가. 나는 속으로 주기도문을 외우며 혜령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들어 올렸다.
마치 고양이처럼 허공에 매달린 혜령이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더 있으면 안 돼요?”
“슬슬 맹주님이랑 비무하러 갈 시간이야.”
내가 신청했으니 슬슬 하러 가야지.
나는 혜령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장삼을 걸쳤다.
“아저씨, 잘 다녀와요!”
“그래.”
나는 혜령이의 배웅을 받으며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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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
그리고 충격.
윌리엄과 맹주님의 몸이 3장 정도 멀어졌다.
서로의 검이 부딪힌 반동 때문이었다.
“이제 위력 하나는 자네도 나와 비슷해졌군!”
“질리도록 붙어 댔으니 슬슬 어느 정도는 맞춰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아들이 들었다면 자네를 한 대 때렸을 걸세.”
“제 몸이 튼튼하다고 검강으로 후려치시는 분이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때려서 성장하는 게 아니고 갈수록 맞아서 성장하는 것 같단 말이야.
물론 그쪽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내가 검을 쓰기는 하지만, 결국 내 핵심 아츠는 오러아머였으니.
공격보다 방어 쪽이 강화되는 게 윌리엄 입장에선 더 이득이었다.
기사가 아니면 공격을 맞추는 것 만으로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차라리 상대의 틈을 강제로 비집고 벌릴 수 있는 오러아머의 강화야말로 그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자네가 튼튼해서 때리는 맛이 좋아서 말일세.”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드님은…”
“한 놈은 무림인이 아니라 학자라 이번 일과는 연이 없고, 다른 한 놈은 지금 폐관 수련 중일세. 초절정고수가 되겠다고 벼르며 들어갔건만, 자네를 보면 자괴감이 들겠군.”
“…과장이 심하십니다.”
“자네가 얼굴만 보면 폭삭 늙어 보여서 그렇지, 제 나이대로 보였다면 질시를 많이 받았을 걸세.”
그의 말에 윌리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습니다.”
“좋을 대로 생각하게나. 자, 슬슬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떤가?”
“살살 좀 해주시죠.”
둘은 다시 한번 검에 검강을 둘렀다. 굳이 검강을 두를 필요는 없지만, 둘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비무에서는 검강을 꺼낼 것.
숨기는 것 없이 전력으로 맞붙을 것.
단 두 가지 규칙.
윌리엄은 벽력삼보의 구결을 통해 보완한 보법을 펼쳐 맹주에게 달려들었다.
벼락처럼 빠르지만, 바위처럼 무거운 움직임. 무시무사한 파공성과 함께 날아든 윌리엄의 어깨가 맹주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자네, 장인어른을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닌가?”
“이 정도에 맞을 분은 아니시잖습니까?”
“허 참. 사위한테 맞고 사는 장인이라니, 남들이 보면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윌리엄의 검이 허리를 끊어버릴 기세로 날아든다. 맹주의 손에서 장풍이 터져 나온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
윌리엄은 장풍이 날아온 순간 몸을 슬쩍 비틀어 오러아머로 흘려냈다.
능숙한 움직임.
공격을 장풍으로 견제하는 맹주의 수법을 10번 넘게 맞은 결과물이었다.
“이젠 통하지도 않는구먼.”
“그렇게 맞았는데 계속 당하면 초절정 소리 들을 생각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강과 검강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폭음을 낸다.
절정의 고수들조차 진탕이 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파가 비밀 연공실을 뒤흔든다. 가감 없이 휘두르는 검강이었기에 가능한 일.
윌리엄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감을 확인하자 검을 회수하고, 자세를 바꿔 찌르기에 들어갔다.
맹주와의 첫 비무보다도 더 날카로워진 찌르기. 맹주는 몸을 반바퀴 돌리며 검신으로 찌르기를 걷어내고, 손을 휘둘러 윌리엄의 가슴팍에 주먹을 휘둘렀다.
강맹한 위력을 자랑하는 유성권이 윌리엄의 가슴팍에 부딪히자, 폭음과 함께 윌리엄의 몸이 번쩍였다.
“이러다 사위 잡겠습니다.
“허허…내 딸 데려간 도둑놈에게 이 정도면 자비로운 걸세.”
“과부 만드실 일 있으십니까?”
“허허.”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둘의 검이 쉴새 없이 부딪혔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다.
그간의 싸움으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탓이었다.
‘비무를 거듭할 때마다 단단해지니 원.’
‘참 영악하게 싸우신단 말이야.’
무림인이라면, 그것도 정파 무림인이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싸움을 질질 끌며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도 드문일일진대, 맹주는 그런 전략도 곧잘 사용하며 윌리엄을 압박하곤 했다.
어차피 내공은 맹주 쪽이 더 많으니, 천천히 갉아먹겠다는 전략.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윌리엄의 오러아머는 싸움을 거칠수록 점점 효율적으로 맹주의 공격을 흡수해버리게 되어서는, 이제는 강력한 초식을 꺼내지 않으면 유의미한 피해를 주기 어려워져 버렸으니.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정말 미래가 두려운 녀석이로다.’
문일지십(問一知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종국에는 그를 넘어 망상으로나 나오는 경지라는 현경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딸이 남자 보는 눈은 정말 뛰어나구나. 이런 사위를 물어오다니.’
어떻게든 맹주 자리에 앉혀 놓으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둘은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연공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의 비서 역할을 맞고 있는 서문비검이었다. 그는 맹주와 윌리엄이 연공실 문을 열고 나타나자 다가와 입을 열었다.
“맹주님, 위대협에게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손님이 누굽니까?”
“본인을 명 대인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위 대협이 주문하신 물건을 가져왔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아.
명소인?
정말 오랜만에 들은 그의 소식에 나는 탄성을 흘렸다.
명소인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