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2

       에테르는 물대포를 정면에서 맞았다.

       ​

       후두둑, 하고 물이 어깨 위로 떨어진다.

       ​

       강한 일격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수압 자체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날아갔어야 했다.

       ​

       하지만.

       ​

       꽈악.

       ​

       에테르는 스태프를 더 세게 붙잡았다.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

       신발이 땅바닥 깊숙한 곳으로 처박혔다. 머리는 온통 빗물로 젖었다. 스태프를 쥔 손은 갓 구운 감자를 쥔 것처럼 뜨거웠다. 그렇게 한동안 쏟아지던 물줄기를 단신으로 받아냈다.

       ​

       에테르는 고장 난 목각인형처럼 몸을 틀었다.

       ​

       그 사이에 프레이와 헤를라인은 장벽을 공고히 다졌다. 덕분에 토터스가 벌인 최후의 발악은 생존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

       ‘저 녀석, 저러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

       자길 살리려고 뛰쳐나가다니. 에테르가 걱정된다. 버멜은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필사적으로 치떴다.

       ​

       [─ SYSTEM : 2번 시련과 3번 시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 SYSTEM : 경고. 4번 시련의 발생 확률이 90%에 근접했습니다.]

       ​

       시련 넘어 시련이다. 진절머리가 났지만, 버멜은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생각했다.

       ​

       ‘여기가 갈림길이다….’

       ​

       여기만 넘기면 2학기는 어떻게든 한숨 돌린다. 아직 쓰러져서는 안 됐다. 그러나, 몸은 생각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

       에테르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보다도 심각한 중상. 움직이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당장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

       ​

       “끄으으….”

       ​

       일어나야 한다. 조금 전에 구해준 빚을 갚아야 한다.

       ​

       무엇보다도, 계약.

       ​

       – 우리 둘이 한 편이야. 기간은 마왕 잡을 때까지. 오케이?

       – 그 뒤로 뭐 하냐니. 넌 여기 남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난 국밥 먹으러 돌아간다.

       ​

       너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나누었던 비즈니스를 이행해야 한다.

       ​

       버멜은 팔을 딛고 상체를 일으켰다. 온갖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제발 가만히 좀 누워 있으라고 뇌가 아우성쳤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가누었다.

       ​

       뻐억! 무언가에 얻어맞은 건 그때였다.

       ​

       “……아.”

       ​

       뒤통수.

       ​

       경추에 직격했다. 몽둥이 같은 물건에 당했다.

       ​

       ‘아, 안 돼.’

       ​

       누가 때렸는지는 모르겠다. 거기까지 사고할 여력이 없다. 단지, 버멜은 코앞만을 바라보았다.

       ​

       어느새 사람 사이에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는다. 삐이이, 하는 이명을 뚫고 흐릿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

       사고는 거기서 끊겼다.

       ​

       ​

       **

       ​

       ​

       사태는 천천히, 그러나 뭉근하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

       토터스의 죽음과 함께 걸어 다니던 시체들이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바닥에 깔려있던 증기도 점차 옅어졌다.

       ​

       남은 것은 단 한 명뿐. 토터스의 물줄기를 맞은 채로 꼿꼿이 서 있는 어느 소녀였다.

       ​

       “에테르!”

       ​

       헤를라인이 소리쳤다. 그녀는 비가 그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 뒤를 프레이가 따랐다.

       ​

       “하, 학생! 괜찮아?”

       ​

       저 멀리서 누군가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어느덧 비가 그쳤다. 다만, 햇빛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우중충했다.

       ​

       그래도.

       ​

       사람들은 안심했다. 생존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처마 바깥으로 나왔다. 철퍽, 철퍽. 세 걸음 걸을 때마다 시체가 하나씩 밟힌다. 대부분은 마수가 되어버린 자의 것이었다.

       ​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뒷수습을 해야만 했다.

       ​

       공포가 지나가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 가지 감정이 어렸다.

       ​

       하나는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슬픔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 모든 비극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가족과 연인을 잃은 사람들이 절규했다. 누군가는 끅끅대며 울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수의 사체로 변해버린 제 가족을 찾으러 아카데미 내부를 방황했다.

       ​

       방황하던 이들 중 상당수가 에테르에게 다가갔다. 마지막에 비를 맞은 게 그녀다. 그것도 정면으로. 살아있기는 한 건지, 왜 마지막 위기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건지 알고자 했다.

       ​

       “어….”

       ​

       가장 먼저 도착한 건 헤를라인이었다. 그녀는 정면에서 에테르를 쳐다보다 말고 옅은 신음을 흘렸다.

       ​

       “…다 끝났나.”

       ​

       소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곧 그녀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

       ​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

       사람들은 놀라 뒤로 자빠졌다.

       ​

       소녀의 얼굴이, 몸이 멀쩡했다.

       ​

       피부는 은색으로 변색되지 않았다. 눈이 실명하거나 녹아내리지도 않았다.

       ​

       정말, 진짜로. 비정상적일 정도로 상처 하나 없었다. 물대포가 아니라 물총을 맞은 것 같았다.

       ​

       틀린 말은 아니었다.

       ​

       사천(四天).

       ​

       마왕의 최측근인 네 명의 마수.

       ​

       그들에게 이따위 물대포는 샤워나 다름없다. 사천은 최상급 정령이 쏘는 수탄(水彈)도 정면으로 맞고 버틴다. 반대로 말하자면, 최고위 정령 정도가 쓴 게 아니라면 에테르에게 물공격은 무효하다.

       ​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사람들을 마수로 만들던 그 물이.

       ​

       건물 몇 채를 쳐부수던 그 거북이가.

       ​

       반타 토터스의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

       “괴, 괴물이다.”

       ​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

       그리고.

       ​

       비명.

       ​

       “괴물이다아아아!!”

       “마, 마수가 또 있었어?”

       “인간형이다! 인간형이 한 마리 더 있었어!”

       “엄마, 저 누나 눈이 무서워!”

       ​

       푸욱! 에테르는 진흙탕에서 발을 뽑아냈다. 머리카락을 쥐어짜서 빗물도 살짝 털어냈다.

       ​

       “에, 에테르…….”

       ​

       그때 헤를라인이 어깨를 만졌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

       “윽!”

       ​

       그러나 헤를라인은 곧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아릿한 통증. 빗물에 젖은 그녀의 손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

       “저것 봐. 자기 혼자 멀쩡하잖아. 마수 맞다니까?”

       “방금 죽은 거북보다 더 강한 거 아니야?”

       “당연하지…! 저, 저건…!”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

       어떤 이는 공포스러운 눈으로. 어떤 이는 크게 당황한 듯한 눈으로. 또 어떤 이는 타오르는 분노를 담은 눈으로. ‘증기의 비’를 겪은 모두가 저마다의 감정을 품고 소녀를 노려보았다.

       ​

       ‘들켰나.’

       ​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은 알았다. 에테르는 땅에 박혀있던 스태프를 뽑아들었다.

       ​

       단순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공격이라 생각했는지, 사람들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

       “에, 에테르야….”

       ​

       주위에 남은 건 프레이. 그리고 헤를라인 교수뿐.

       ​

       “뭐,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니지? 응? 너 괴물 아니잖아. 마수 아니잖아!”

       “나는….”

       ​

       프레이는 분을 참다못해 씩씩거렸다. 에테르를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

       사람들이 멀찍이서 소리쳤다.

       ​

       “꼬맹아! 그 녀석에게서 떨어져! 걔는 괴물이야!”

       “내 친구한테 괴물이라고 말하지 마!”

       “저 아이도 마수 아니요? 아니면 찬동했다든지.”

       “절대로 아니야, 이 인간 새끼들아─!!”

       ​

       허억! 프레이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

       그녀는 요호족. 엄밀히 말해 ‘갯과(科)’에 속한다.

       ​

       요호족에게는 ‘개새끼’는 물론 ‘인간 새끼’도 욕설이었다. 욱한 프레이가 무심코 실언하고 만 것이다.

       ​

       “인간 새끼…? 지금 우리보고 ‘인간 새끼’라고 한 거 맞지?”

       “아, 아니야! 방금 건 말실수였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역시 똑같은 마수가 맞았어…! 마도사들은 뭐해! 우리 세금으로 벌어먹고 있으면 이란 거라도 빨리 수습하란 말이야!”

       ​

       에테르는 눈을 흘겼다. 그녀의 머릿속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

       ‘에테르’는 모든 이를 통틀어 1천 번의 기회를 내렸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실수했다.

       ​

       여신교에 가입하면 복이 내려진다면서 돈을 떼먹고 도망갔다. 길거리에서 스프를 건네주길래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강간하려 했다. 친구라며,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는데 인신매매 조직의 얼굴마담이었다.

       ​

       999번의 배신. 이제 온갖 뒤통수에는 익숙하다.

       ​

       그러니 여유를 갖고 기다렸다. 동시에 관조했다.

       ​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본관의 눈으로 직접 보겠다.’

       ​

       여기선 자기 입으로 무얼 말하더라도 소용없다는 걸 안다. 사람들은 현장에서 꾸며진 억측을 사실처럼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이미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박살이 난 상태겠지.

       ​

       따라서 지금까지 쌓은 인덕으로 승부해야 한다. 헤를라인, 프레이, 버멜. ‘나’와 친하게 지냈던 이들의 입담으로 주도권을 빼앗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솔직히 믿음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

       ‘엘프는, 기절했나.’

       ​

       에테르는 버멜이 쓰러진 곳을 흘겨보았다. 인파를 뚫은 에리카와 메릴다가 그를 부축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

       – 메릴다! 치유의 가락 좀 써봐!

       – 부상이 너무 심해요! 당장 일어나기는 무리일 거예요!

       ​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

       에테르는 두 엘프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한 채 주변을 둘러본다.

       ​

       ‘찾았다.’

       ​

       독수리와도 같은 눈으로 목표를 포착했다.

       ​

       아직, 선동꾼이 남아있었다.

       ​

       “누구든 좋으니까 쟤들 좀 내쫓아줘!”

       “제가 나서지요.”

       ​

       사람들의 요구에, 머리가 벗겨진 중년 사내가 앞장섰다.

       ​

       “아니, 당신은 뫼스바이어 교수님 아니십니까?”

       “옛날 동부전선에서 요호족을 섬멸했다는 그……!”

       ​

       뫼스바이어. 그는 버멜과 로즈마리가 숨바꼭질을 벌였을 때부터 있었던 마수측 스파이다.

       ​

       그의 몸은 인간이었지만, 정신은 마왕군에 의탁한 지 오래다. 배신한 것이다.

       ​

       배신의 이유? 단순했다.

       ​

       – 우리처럼 되고 싶다고?

       – 예, 명령만 내려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영생을…!

       – 좋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이중 첩자 같은 시시콜콜한 짓 하면 알지?

       – 네, 넵! 물론이지요!

       ​

       녹슬지 않는 강철의 삶이.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무뎌지지 않는 철혈의 육신이 부러웠다.

       ​

       뫼스바이어는 기계로서의 영원을 동경했다.

       ​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 횡재냐!’

       ​

       뫼스바이어는 에테르를 몰랐다. 플레어를 만들어 마수를 방해하려는 자인 줄로만 알았다.

       ​

       해서 로즈마리의 말만 듣고 그녀가 속한 이사장 파벌을 감시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즈마리는 사적인 관계에 철저한 걸로 알고 있다. 제 상관이 ‘언니, 언니’ 하며 에테르를 따랐을 때. 그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뫼스바이어는 로즈마리가 연기하는 줄로만 알았다.

       ​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어떻게 저걸 맞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금안족은 다 저런 모양인가 보군.’

       ​

       뫼스바이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어쨌거나 저 소녀를 몰아세우면 4석께서 나를 한층 좋게 보시겠지? 암, 그렇고말고!’

       ​

       그가 스태프를 빼들었다. 일단 인간이었는지라 마법 사용에는 무리가 없었다.

       ​

       “헤를라인 교수, 다치기 전에 거기서 나오시오!”

       “자작, 미쳤나요? 제 학생들에게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만 봐요!”

       ​

       헤를라인은 프레이와 에테르를 양손으로 끌어안았다. 한쪽 손은 은처럼 변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

       헤를라인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직 다 못썻는데… 벌써 새벽이네…

    나머진 자고 일어나서 쓸게요! 아마도 이게 1부 마지막 에피소드가 될 듯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