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2

       전혀 쉽지 않았다.

        

       “응? 그래? 그럼 같이 먹을까?”

        

       우선 레오의 경우부터가 전혀 쉽지 않았다.

        

       동성 친구가 생기기 전에 이성 친구가 먼저 잔뜩 생긴 레오 주변에는 먼저 같이 밥 먹자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소라면 나는 앨리스와 함께 식사하거나, 아니면 우리 그룹 아이들과 다 같이 모여앉아 식사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 중에선 레오도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냥 존나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

        

       내가 먼저 레오한테 말을 걸자, 레오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순간 물리적인 빛이 쬐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조금 가늘게 떴을 정도로.

        

       레오는 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친구인’ 내가 먼저 밥 먹자고 해준 것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게 다르게 비친 모양이다.

        

       그래, 나도 말을 걸고 나서야 알았다.

        

       앨리스와 샤를로트가 말을 먼저 건다고 해도, 그녀들이 레오를 좋아한다고 착각할만한 사람은 얼마 없다. 왜냐하면 신분의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질투하면서 뒷담화나 까는 인간들이 왜 그럴 때만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논리적인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런 뒷담화는 문자 그대로 뒷담화가 하고 싶으니까 할 뿐인 거니까.

        

       문제는, ‘내가’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한테 먼저 밥 먹자는 제의를 하지 않는 내가.

        

       심지어 레오는 웃으며 대답했고.

        

       아,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좀 특별 취급 같아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은, 말을 걸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나마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런 짓까지 했다가는 뒤늦게 내 행동을 깨닫고 주변 눈치를 황급하게 살피는, 슬슬 감정이 돌아오기 시작한 쿨데레 히로인의 행동 그 자체니까.

        

       “…….”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나에게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클레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클레어 그레이스’가.

        

       평소라면 무슨 파란 골든 리트리버처럼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을 텐데.

        

       아니, 그거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니까.

        

       라는 말을 해봐야 의미 없겠지. 이미 의심이 뼛속 깊이 침투한 뒤였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할만한 말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클레어.”

        

       그리고 내가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샤를로트였다.

        

       “어?”

        

       갑자기 자기 어깨를 잡은 샤를로트를 클레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근처에 괜찮은 식당 하나를 찾았는데, 같이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벨부르 음식을 하는 곳인데, 제가 먹어보아도 꽤 훌륭한 맛이었어요.”

        

       “어, 그러면 언니나 레오랑 같이—”

        

       “아, 그런데 아쉽네요. 마침 자리가 거의 꽉 차버려서요. 어제 예약도 겨우 했어요. 겨우 두 사람쯤 더 부를 수 있을 텐데, 그래서야 제가 레오와 맞선이라도 보는 것 같은 모습이 되어버리지 않겠어요? 기왕이면 여자 둘이랑 가는 쪽이 더 낫겠죠!”

        

       완벽하게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하긴 클레어를 끼어서 함께 가자고 해도 문제이긴 했다. 안 그래도 내가 레오를 좋아한다고 의심하고 있는데, 심지어 클레어는 내가 레오와 결혼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었으니까.

        

       상황이 엄청나게 불편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도 생각이 있어서 레오한테 말을 걸었던 거다.

        

       “그럼 남은 자리에 내가 끼어도 될까? 그 자존심 높은 벨부르 사람이 추천하는 벨부르 음식점이 어떤 곳인지 한 번 가봤으면 좋겠네.”

        

       그렇게 말하며 일어난 앨리스가 척, 하고 클레어의 옆에 섰다.

        

       그리고 클레어는 그 상태로 두 사람에게 연행되듯 교실을 끌려 나가 버렸다.

        

       “어, 잠깐, 언니, 언니—!”

        

       클레어가 그런 비명을 지르며 교실 밖으로 끌려 나가는 장면을, 교실 안의 모두가 아연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우리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

        

       뭐, 좋아.

        

       그렇게 나오겠다는 말이지.

        

       나도 생각은 있다.

        

       레오는 어제 이미 소피아와 그럭저럭 가까워졌다. 함께 어떤 일을 하는 것만큼 친밀감을 높이는데 좋은 방법이 없지. 그리고 그 ‘어떤 일’이 봉사활동이라면 더 좋다. 상대방한테 자기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도 있고,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은근슬쩍 강조하기도 좋다.

        

       무엇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다.

        

       그러니, 지금 소피아를 불러다가 셋이서 식사를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리라. 레오가 거절하지도 않을 거고.

        

       레오에게 ‘하나의 확실한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주변에서 레오에게 향하는 질투의 시선도 조금은 거두어질 수 있을 거다.

        

       서로 외국 출신이라도 가문상으로는 남작가와 기사가문이었으니 아주 심한 차이도 아니고. 지금의 소피아 성격이라면 그레이스 남작 부부도 괜찮다고 여길 거다.

        

       법국 스파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그건 좀 나중에 해결하면 될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려 소피아의 자리 쪽을 보는데—

        

       —그대로 소피아와 눈이 마주쳤다.

        

       소피아의 눈에는 눈물이 반쯤 차 있었다.

        

       아.

        

       아니, 잠깐만. 그게 아니라.

        

       내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소피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교실 바깥으로 뛰쳐나가 버리고 말았다.

        

       “…….”

        

       그리고 그 광경을, 교실 모두가 본 다음,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응? 왜 그러지? 소피아한테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

        

       너잖아.

        

       너, 너잖아, 너!

        

       아니, 물론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만들어버린 거긴 하지만!

        

       “……실비아.”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시선을 돌려보니, 어느새 다가온 미아가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같이 식사하자는 말이라도—

        

       하지만 내가 그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미아는 내 손을 살포시 잡더니,

        

       “드디어, 감정이라는 것을 배웠네요.”

        

       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다.

        

       한 2.5초 정도 굳어있다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미아 방에 가서 마르마로스와 총을 찾아냈을 때, 미아한테 변명이랍시고 했던 말이다.

        

       미아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내 손을 놓고 교실 밖으로 얼른 나가버렸다.

        

       “…….”

        

       그 찰랑이는 검은 머리카락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황녀님, 건투를 빕니다.”

        

       비장한 표정과 목소리로, 레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다는 듯, 고개를 한차례 끄덕여 보인 뒤 교실에서 나가주었다.

        

       참고로 제이크와 로티는 이미 한참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점심시간 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어디서 염장이나 지르고 있겠지.

        

       결과적으로, 교실에 남은 나의 지인은 내 앞에서 의문에 찬 미소를 지은 채 앉아있는 레오 한 사람뿐이었다.

        

       “…….”

        

       아니,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데?

        

       *

        

       다시!

        

       를 외치지는 않았다.

        

       딱 한 가닥 남은 이성의 끈을 조심스럽게 붙잡은 채 생각해보니, 이건 그래도 꽤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굉장히 쪽팔리기는 했지만, 레오와 마주 앉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나누어보며 지금 레오가 처한 상황이나 진짜 마음에 대해서 알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여동생이 있더라도, 상대가 여동생이기에 하지 못하는 말도 있는 법이다.

        

       특히 학교생활의 어려움 같은 것은 더 그렇다.

        

       클레어 성격이라면 평소에 아무리 티격태격하는 레오의 말이더라도 듣고 나면 곧장 레오를 위해 행동해줄 아이이기는 했지만…… 친구 문제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조금 더 제대로 된 원인을 찾아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소리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둘이서 식사하게 되었네.”

        

       아무래도 시선이 몰리는 교실에서 식사하기는 조금 그래서, 우리 둘은 바깥으로 나온 참이었다.

        

       그렇다고 아카데미 정원은 아니었다. 바깥에 앉아서 먹기에는 날씨가 상당히 추웠다.

        

       그래서 우리가 고른 곳은, 아카데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작은 빵집이었다.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이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이 빵집 안에는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다. 우리 두 사람이 죽치고 앉아있으면 누가 옆에 끼어들지도 못한다.

        

       은근슬쩍 오래 서서 우리 이야기를 엿들을 눈치를 보이는 애들이 몇 명 있지만, 대부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자리를 떠버렸다.

        

       “생각해보니까 이러는 건 처음이야.”

        

       “그렇습니다.”

        

       나는 바로 말했다.

        

       “저는 다른 누군가와 단둘이 식사해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

        

       “그렇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크림치즈가 발라진 바게트를 천천히 씹었다.

        

       “덕분에 교실에서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

        

       “하하…….”

        

       내 말에 레오는 힘없이 웃었다.

        

       “뭐, 어차피 남들 모두 언제나 오해하고 있는걸, 뭐.”

        

       그리고 조금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나는 레오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을 괴롭힌 적이 있습니까?”

        

       “……응?”

        

       나의 질문에, 레오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요즘 들어 당신의 행동에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거…….”

        

       레오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음, 뭐랄까.”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기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친구 관계가 조금 치우쳐져 있어서, 종종 대화할만한 상대가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그러십니까.”

        

       역시 그랬던 건가.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엔레나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요. 이런 장르를 좋아하면 저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특정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저도 마찬가지라서 같은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장르에 따라 읽고 못 읽고가 정해집니다. 노맨스 소설은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보고 싶네요. 아직까지 생각해둔 것은 거의 다 TS 백합, 혹은 노맨스입니다만, 그래도 한 편 정도는 아주아주 평범한 노멀 순애물이 있네요. 다만 이 경우는 길게 끌만한 내용은 아니라서 100화 내외가 될 것 같습니다… 쓰기 시작하는 것도 한참 뒤가 될 것 같네요.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다양한 독자 여러분의 취향을 맞츨 수 있는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